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고정희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고정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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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탄생되는 시인을 위하여
우리 서로 문 닫고 혼자인 밤에는
사는 것이 돌보다 무거운 짐 같고
끝내는 눈 덮인 설원 하나 곤두서서
더운 내 부분을 지나갑니다
무사한 날을 골라 반기는 그대
우리는 정말 친구인가요?
우리는 정말 시인인가요?
캄캄한 어둠이 우리 덮는 밤에는
제 십자가 무거워 우는 소리 들리고
한 사람의 시인도 이 땅에는 없습니다
저자

고정희

1975년『현대시학』을통해등단했다.시집『누가홀로술틀을밟고있는가』『실락원기행』『초혼제』『이시대의아벨』『눈물꽃』『지리산의봄』『저무덤위에푸른잔디』『광주의눈물비』『여성해방출사표』『아름다운사람하나』,유고시집『모든사라지는것들은뒤에여백을남긴다』등이있다.대한민국문학상을수상했다.1991년6월9일43세를일기로생을마감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실존의늪
누가홀로술틀을밟고있는가?/카타콤베/차라투스트라

2부아우슈비츠
미궁의봄2/미궁의봄4/미궁의봄6/미궁의봄7/바람/아우슈비츠1/아우슈비츠2/아우슈비츠3/바벨탑과마을/결빙기/살풀이

3부회소(回蘇),회소,
수유리/숲/라벨(Ravel)과바다/브람스전(前)/산행가/내설악연가/대청봉절정가/동해가/파블로카잘스에게/문/대장간의노래/회소(回蘇),회소,/서식(棲息)의노래/서식기/동물원사육기/변증법적춤/점화

4부탄생되는시인을위하여
연가/변증의노래/가을/영구를보내며/층/얼음/나무/겨울/그늘/숲/성금요일/호수에서/종소리/보도에서/부활그이후/탄생되는시인을위하여

출판사 서평

새벽에깨어있는자,그누군가는
듣고있다창틀밑을지나는북서풍이나
대중의혼이걸린백화점유리창
모두들따뜻한자정의적막속에서도
손이라도비어있는잡것들을위하여
눈물같은즙을내며술틀을밟는소리_「누가홀로술틀을밟고있는가」부분

〈너를꽃이라부른후너꽃으로돌아가고
너를너라부른후드디어강하나살아나
나와너사이범람하고있을때〉_「결빙기」부분

삐꺽이는거리에흰시트처럼눈이덮여도
저벌거벗은나무의진실은어쩌지못한다_「나무」부분

고정희시인의첫시집『누가홀로술틀을밟고있는가』를문학동네포에지21번으로새롭게복간한다.1979년7월배재서관에서처음시집을묶었으니그로부터꼬박42년만이다.총47편의시를4부에나누어실었으며1부는79년에,2부는78년에,3부는77년에,4부는데뷔전후에쓴작품들을선했다.올해(2021년)는그의타계30주기가되는해이기도하다.“오늘하루를생애최초의날처럼,또한마지막날같이”를생활지침으로삼고43년의생을불꽃처럼살다1991년6월9일지리산과하나되어떠나간고정희시인.이른이별을예감이라도한것일까.1975년등단한이후사후1992년에발간된유고시집까지모두11권의시집을발표하는놀라운창작열을보여주었다.김승희시인은말한다.고정희에와서한국여성현대시는‘젠더’를문제의식으로가지게되었고‘여성도민중’이라는역사적발견을외쳤으며‘가부장제적유교문화비판’과‘여성적글쓰기’의고민을할줄알게되었다고.한국여성시는고정희이전과이후로확연히갈라지는새로운경계를그었다고.황무지같았던한국여성주의문학의개척자이자여성운동에마중물을부어“푸르른봇물”을튼고정희.30주기에그의첫시집을읽는일은고정희라는문학과여성운동의뿌리가지닌현재성을다시한번확인하고“영혼의빈두레박”에샘물을채우는일이될것이다.
기독교계가민중신학적실천을통해성서속예수의해방을민중의해방과연결시켜고통받는한국사회의현실에더치열하게다가가려던1975년,고정희시인은한국신학대학(지금의한신대)에입학한다.같은해『현대시학』에박남수시인의추천으로「부활그이후」「연가」를발표하며등단하게된다.박남수시인은고정희시인을가리켜“일렁이는영혼을달래기위한한방법으로시를쓰는것일까.그녀의작품에는뭣인가드높은목소리가있다”고말한다.고정희시인에게시쓰기란“나를성취해가는실존의획득”이었으며스스로믿는것을실현하는장이자보는것을밝히는방이며바라는것을일구는땅이었다.그실존은“최소한의출구와최소한의사랑을포함하고있다”(시인의말).“내가나를인식하는실존적아픔과나와세계안에가로놓인상황적아픔”을동시에껴안으며스스로“뜨끈뜨끈한질화로”가되어추운사람을녹여주려했던고정희(1981년).그에게삶과이데아는동전의안과밖의관계와같았고“‘현실’이라는렌즈가곧꿈의광맥을캐는도구”(1983년)였다.눌린자의해방은눌림받은자의편에섰을때만가능하다는사실을인식하고새로운인간성의모델을‘수난자어머니’의본질에서찾았던(1989년)시인은20세기인류의과제를‘인간으로부터인간을해방시키는운동’으로보았다.그대안적시도인여성주의시각은“역사속에서소외되어온여성의삶과억압구조를해방의우선순위”에두었다(1990년).
1979년출판된배재서관판초판시집차례에는98쪽에해설이실려있다고되어있으나실제시집에는해설부분이사라져있고96쪽에서백지로,곧이어102쪽시인의후기로페이지가넘어간다.이에대해고정희시인과목요시동인으로활동했던강인한시인은다음과같이이야기한바있다.고정희시인은첫시집의해설을대구에서알게된한시인에게부탁하였으나그내용을확인하지못한채시집을출판하게된다.시집이나온후해설을읽은고정희시인은자신의시어“자궁”에대한남성중심적인해석에놀라당시광주에서함께활동하던목요시동인들과같이해설부분을면도칼로베어냈다(강인한,『문학나무』,2008년봄).첫시집은재판도찍지않고초판으로절판시켰고6년이흘러평민사에서재간행했을때는해설없이시인의시와‘책머리에’만을실었다.
고정희시인의첫시집에서는기독교적세계관의영향을강하게느낄수있다.시집을여는첫시이자시집의제목이기도한‘누가홀로술틀을밟고있는가’에서의이“술틀”은포도를으깨즙을짜는‘포도주틀’을가리키는단어로홀로술틀을밟는행위는하나님의심판을비유하는상징이기도하다(이사야63장2-3절).고정희시인은이첫시집의제목에대해의미있는기억을갖고있었는데대부분의사람들이‘술틀’이라는단어를‘수틀’이라는단어로바꿔서말하거나쓴다는것이다.시인이‘술틀’이라고고쳐말해도활자화된것은어김없이수틀로나오곤했다며바로그것이여성에대한고정관념의반영아니겠느냐고되묻는다(박혜란).
“거부당한우리들몇마디언어가/이제는적막한허공에떠서/끊임없이질문을던지는아침”(「서식기」).넘어야할산밖에는보이지않는첩첩산정,우리에게주어진시간과사람들은산너머에보이지않는다넘어야할산밖에는(「미궁의봄4」).“박제된한세대의꿈을아는건/박제된한마리사슴뿐이고/박제된한시대의생명을아는건/박제된한마리사슴뿐”.‘산짐승’이‘죽은목숨’처럼길들여지는마을.길들다숨진사슴의골반은포수의흥정대상이되고뼈가추려지고박제당한다(「바벨탑과마을」).“죽음같은자정,문닫은후의거리를/한순례자가절룩이며절룩이며가고있다”(「문」).“목숨의뿌리에닿기위해서/(…)/영혼의뿌리에닿기위해서”(「대장간의노래」).

우리서로문닫고혼자인밤에는
사는것이돌보다무거운짐같고
끝내는눈덮인설원하나곤두서서
더운내부분을지나갑니다
무사한날을골라반기는그대
우리는정말친구인가요?
우리는정말시인인가요?
캄캄한어둠이우리덮는밤에는
제십자가무거워우는소리들리고
한사람의시인도이땅에는없습니다

_「탄생되는시인을위하여」전문

■기획의말

그리운마음일때‘IMissYou’라고하는것은‘내게서당신이빠져있기(miss)때문에나는충분한존재가될수없다’는뜻이라는게소설가쓰시마유코의아름다운해석이다.현재의세계에는틀림없이결여가있어서우리는언제나무언가를그리워한다.한때우리를벅차게했으나이제는읽을수없게된옛날의시집을되살리는작업또한그그리움의일이다.어떤시집이빠져있는한,우리의시는충분해질수없다.

더나아가옛시집을복간하는일은한국시문학사의역동성이드러나는장을여는일이될수도있다.하나의새로운예술작품이창조될때일어나는일은과거에있었던모든예술작품에도동시에일어난다는것이시인엘리엇의오래된말이다.과거가이룩해놓은질서는현재의성취에영향받아다시배치된다는것이다.우리는현재의빛에의지해어떤과거를선택할것인가.그렇게시사(詩史)는되돌아보며전진한다.

이일들을문학동네는이미한적이있다.1996년11월황동규,마종기,강은교의청년기시집들을복간하며‘포에지2000’시리즈가시작됐다.“생이덧없고힘겨울때이따금가슴으로암송했던시들,이미절판되어오래된명성으로만만날수있었던시들,동시대를대표하는시인들의젊은날의아름다운연가(戀歌)가여기되살아납니다.”당시로서는드물고귀했던그일을우리는이제다시시작해보려한다.

문학동네포에지3차분리스트

021고정희『누가홀로술틀을밟고있는가』
022남진우『깊은곳에그물을드리우라』
023전연옥『불란서영화처럼』
024이산하『천둥같은그리움으로』
025이선영『오,가엾은비눗갑들』
026전남진『나는궁금하다』
027정끝별『자작나무내인생』
028신기섭『분홍색흐느낌』
029곽은영『검은고양이흰개』
030신동옥『악공아나키스트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