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남진우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남진우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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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나는 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이슬을 깨고
어느 날 한 마리 새가 태어날 것임을
혹은 그대 곁에 서서 나는 유리창 너머 펼쳐진 여름을 바라본다
들판은 하루종일 둥글게 익어 이젠 누군가의 손길이 스쳐지나가길 바라고 있다
구름이 지나간다 지나가며 내 눈을 감긴다 _「저문 빛」 부분

새벽, 내 입술을 열고
새 한 마리 하늘로 날아가면 완전히
닫혀진 연꽃과 함께
나는 물밑으로 가라앉는다 _「연꽃 속에 누워」 부분

날개를 준비할 것. 낢, 혹은 우리의 좌절에 대한 대명사. 솟아오름으로 가라앉는 변증법적 사랑의 이중성. _「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 부분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남진우 시인의 첫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를 문학동네포에지 22번으로 새롭게 복간한다. 1990년 3월 민음사에서 첫 시집을 묶었으니 그로부터 꼬박 31년 만이다. 이십대 초중반 젊은 시절에 쓴 55편의 시를 4부에 나누어 실었다. ‘시운동’이란 시동인에 참여하며 동인지에 발표한 작품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중앙대학교 문창과 2학년에 재학중이던 남진우는 “이미지 풍부한 조형술은 그 내면에 숨은 자의식의 싸늘한 선율과 더불어 통일된 세계를 이끌어낸다”는 평을 받으며 기존 신춘문예 당선작과는 다른 파격이 우리 시단을 더욱 다채롭게 하리라는 기대 속에 데뷔하였다. 남진우의 초기 시를 가리켜 정끝별은 ‘상상력의 역동성과 깊이, 언어의 밀도, 시적 성찰 및 직관과 예지를 팽팽하게 견지’하고 있으며 그의 시적 공간은 성경과 신화, 전설과 원형 상징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 고도의 시적 독법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언어와의 고독한 작업에서 고도의 폭발력을 가진 몽상을 꿈꾸는 남진우의 언어들은 보들레르가 「악의 꽃」 마지막 구절에서 불러냈던 죽음의 심연을 향해 나아간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려는 자아의 실존적 현실이자 동시에 변형된 현실 그 자체다(정끝별). 초판 해설에서 박철화는, 절망은 희망을 위한 의지의 역설적 표현이어야 한다는 우리의 일반적 논리를 넘어서는 곳에 남진우의 시는 자리하고 있으며 그의 시세계 전체는 삶을 향한 치열한 의지를 드러내려는 방법적 절망이라고 쓴다. 남진우 시인은 과거는 낯선 나라라는 말처럼, 과거에 썼던 시들을 보니, 내가 아닌 타인이 쓴 작품 같다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그 시절 시를 불만족스러운 현실과 절연시키려 최대한 멀리 신화적이고 심미적인 영역으로 끌고 가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이다. 여전히 시선이 가닿을 수 없는 지평 너머에 존재하는 그 세계, 도취와 죽음이란 양극단을 포괄하는 무아(無我). 시인은 묻는다. “언어를 가지고, 언어를 통해서 얼마나 그 무아지경의 황홀과 공포에 다가설 수 있을까”(개정판 시인의 말).

새는 그 내부가
투명한 빛으로 가득차 있다
마치 물거품처럼, 부서짐으로써 스스로의
나타남을 증거하는
새는
한없이 깊고
고요한,
지저귐이 샘솟은 연못과 같다

_「새」 전문
저자

남진우

1981년동아일보신춘문예를통해등단했다.시집으로『깊은곳에그물을드리우라』『죽은자를위한기도』『타오르는책』『새벽세시의사자한마리』『사랑의어두운저편』『나는어둡고적막한집에홀로있었다』가있다.대한민국문학상,김달진문학상,소천비평문학상,현대문학상,대산문학상,김종삼시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1
시인의말2
개정판시인의말

1부환한밤에서어두운낮으로
깊은곳에그물을/몽상가/어둠은내목위로/불과재/이것이나의피니/환한밤에서어두운낮으로/열쇠도없이헛되이/문밖에서/안개저편/오찬란한낙인이여/두나무사이에찢긴채/심판의날/저무는숲의노래/성찬식/바닷가작은마을

2부달의메아리속으로
새/저문빛/밤바다를위하여/자정/별/마른연못/연꽃둘레를돌며/연꽃속에누워/피리부는소년/달의메아리속으로/섬/부활/11월의마지막날/아득히먼곳에서

3부나는불꽃을바라본다
남회귀선/음유시인/나는너를종달새라부른다/그새벽나라로/공작/들소/지평선너머/나는불꽃을바라본다/불새/소금기둥/늙은인디언추장의노래/깊은숲오솔길을지나1/깊은숲오솔길을지나2/돌아가다

4부깊고둥글고어두운
모래톱/잠자는여인/숲에서보낸한철1/숲에서보낸한철2/밀물/그저녁나라로/부엉이/깊고둥글고어두운/한여름밤의꿈/은하/일각수(一角獸)/로트레아몽백작의방황과좌절에관한일곱개의노트혹은절망연습

출판사 서평

■기획의말

그리운마음일때‘IMissYou’라고하는것은‘내게서당신이빠져있기(miss)때문에나는충분한존재가될수없다’는뜻이라는게소설가쓰시마유코의아름다운해석이다.현재의세계에는틀림없이결여가있어서우리는언제나무언가를그리워한다.한때우리를벅차게했으나이제는읽을수없게된옛날의시집을되살리는작업또한그그리움의일이다.어떤시집이빠져있는한,우리의시는충분해질수없다.

더나아가옛시집을복간하는일은한국시문학사의역동성이드러나는장을여는일이될수도있다.하나의새로운예술작품이창조될때일어나는일은과거에있었던모든예술작품에도동시에일어난다는것이시인엘리엇의오래된말이다.과거가이룩해놓은질서는현재의성취에영향받아다시배치된다는것이다.우리는현재의빛에의지해어떤과거를선택할것인가.그렇게시사(詩史)는되돌아보며전진한다.

이일들을문학동네는이미한적이있다.1996년11월황동규,마종기,강은교의청년기시집들을복간하며‘포에지2000’시리즈가시작됐다.“생이덧없고힘겨울때이따금가슴으로암송했던시들,이미절판되어오래된명성으로만만날수있었던시들,동시대를대표하는시인들의젊은날의아름다운연가(戀歌)가여기되살아납니다.”당시로서는드물고귀했던그일을우리는이제다시시작해보려한다.

문학동네포에지3차분리스트

021고정희『누가홀로술틀을밟고있는가』
022남진우『깊은곳에그물을드리우라』
023전연옥『불란서영화처럼』
024이산하『존재의놀이』
025이선영『오,가엾은비눗갑들』
026전남진『월요일은슬프다』
027정끝별『자작나무내인생』
028신기섭『분홍색흐느낌』
029곽은영『검은고양이흰개』
030신동옥『악공,아나키스트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