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슬프다 (전남진 시집)

월요일은 슬프다 (전남진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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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오전 열시 이십칠분의 햇살은 오전만큼의 기울어진 그림자를 만들고
내 그림자도 그 기울기로 천천히 기울다 어느 기울기에서 사라지면
그때야 나는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그런 나는 화장실에 앉아 오늘이 월요일이란 사실에 놀라며
내가 앉아 있는 이곳에서 내 생은 짧게 혹은 느리게
그러나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내가 꿈꾸지 않은 모습으로 쉴 새 없이 진행하고 있는 것인데 _「월요일은 슬프다」 부분

부서진 빛의 조각까지도 그대 속에서 꽃의 씨앗이 된 적이 있었다.
(……)
우리가 타인에게 등을 돌린 후에도 그 사람의 향기가 오랫동안 우리를 향해 불어올 때가 있는 것처럼. _「이별」 부분

정신 바짝 차리며 살라고
못이 구부러진다, 구부러지면서
못은 그만 수직의 힘을 버린다
왜 딴생각하며 살았냐고
원망하듯 못이 구부러진다
나는 어디쯤에서 구부러졌을까
살아보자고 세상에 박힌다 _「구부러진 못」 부분

1999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한 전남진 시인의 첫 시집 『월요일은 슬프다』를 문학동네포에지 26번으로 새롭게 복간한다. 2002년 10월 문학동네에서 첫 시집을 묶었으니 그로부터 꼬박 19년 만이다. 등단작을 표제작 삼아 선보였던 초판 『나는 궁금하다』에서 시 몇 편을 덜어내고 미발표작을 더해 『월요일은 슬프다』라는 첫 시집을 다시 내놓는다. 전남진 시인은 새천년을 앞둔 1999년 겨울 『문학동네』 동계문예공모 시 부문에 ‘시선을 끄는 경쾌하고 거침없는 화법’으로 ‘자신만의 개성적인 공간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데뷔하였다. 전남진의 첫 시집이 보여주는 풍경은 스산하거나 쓸쓸하지만 그 속에 나오는 빛은 시에게 활기를 준다(신경림). 이성부 시인은 말한다. 가난하고 볼품없는 것들의 삶, 소외된 사람과 사물에서 전남진 시인은 따뜻하고 치열한 시정신의 깊이를 드러내 보여준다고. 그의 시는 “우리 어려운 시대에 굳센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하나의 증표”라고. 초판 해설에서 황현산 평론가는 “가망 없는 자리에의 꿈, 비극으로 이루어진 이 희망” 혹은 “희망으로 만들어진 이 비극이 푸념의 시간을 넘어서는 시의 순진한 빛”을 읽는다. 시인 전남진이 돌아가야 할 진정한 집은 “현실의 시간 끝에 팬 깊은 도랑 너머에 있다”. 그 집에 가기 위해서는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해야 한다(「지혜롭기와 순진하기」).

얼마 전 읍 단위 시골에 사는 동생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보다 두 살 어린 그는 스무 살 즈음 다니던 대구의 프레스 공장에서 오른손 검지 하나를 절단기에 잘려, 악수를 할 때마다 뭉툭한 흉터가 내 손바닥을 지그시 눌러왔었는데, 처음엔 그것이 마음까지 눌러 아프더니, 어느 날부턴가 상처를 에워싼 거무스레한 굳은살의 뭉툭한 느낌을 뚫고 자라난 듯 보이지 않는 어떤 손가락이 내 속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져 다정했다. 검지를 대신해 중지가 잡은 볼펜이 과일 이름이며 값을 쓱쓱 써내려갈 때, 여문 자리가 볼펜을 턱 받치고 있는 것이, 중지가 제 할 몫도 아닌 것을 덕분에 하게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명절, 파장 난 과일 공판장에서 고기 구워 술잔 돌 리다 팔던 수박이며 참외를 손으로 짝짝 짜개 안주 삼을 때, 그 과일도 제 속으로 들어오는 어떤 손가락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런 술자리마저 몇 년간 하지 못하던 차에 회사로 전화를 걸어온 것인데. 어찌 사시느냐, 아직 그 회사 다니시느냐, 자식 늘어 살기 수월치 않을 텐데…… 그런저런 안부 끝에 한 안부가 붕대 푼 손 처음 잡아 악수하던 그날처럼 마음을 또 지그시 눌러왔는데. 형님, 남는 것도 없는 서울서 뭐 그리 아득바득 삽니까. 내 밀어줄 테니 내려와서 과일 장사나 하며 설렁설렁 삽시다. 그래 어찌 나도 네가 밀어주는 과일 리어카 끌며 스리슬쩍 살고 싶지 않을까. 인호야 우리 딱 한 번은 그렇게 살아보자. 그리고 죽어도 죽자.
_「과일장수 원인호」 전문
저자

전남진

1999년『문학동네』신인문학상을통해등단했다.시집으로『월요일은슬프다』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개정판시인의말

1부내가부를노래
내가부를노래/과일장수원인호/눈물젖은테이프/어떤장례/실업/연탄/뒤돌아보면아프다/검은흙/공명/지하의걸인/빵가게를지나면/구절리를떠나며/치매/염/비둘기/복지만리/황사/갑자기짚은점자/손톱을깎으며/나는궁금하다

2부퇴근길은서점을지난다
십오분전/가로수를심는노인/지나간사실은사실이아니다/나방론/안에서/피아노/새벽,골목길/비석/저울의힘/아침에떠나다/최후의만찬/사북에서/과일을피우는팔/퇴근길은서점을지난다/얼굴을잊은친구를위하여/숫자와싸우다/그사내/유언/사랑에게보내는부고/월요일은슬프다

3부꿈꾸는쟁기
문상가는길/주택복권/산촌의밤/가뭄/꿈꾸는쟁기/안면도/겨울날의동화/당신은/아버지의끈/초등학교운동장에서/마지막집/쉬운죽음/맏상주/늙지않는강아지/어린시절/안개의마을/부여/어린시절/어린시절/말의무덤

4부상처는둥글게아문다
이별/비포장길/이십대마지막아내/오래된편지/우리가그리워하는/상처는둥글게아문다/운주사가는길/꽃밭에서/선물/그푸른대문앞/소나기/저녁이오는골목/드라마처럼/구부러진못/되돌아가는시간/길/뜨락/현수막/강

출판사 서평

■기획의말

그리운마음일때‘IMissYou’라고하는것은‘내게서당신이빠져있기(miss)때문에나는충분한존재가될수없다’는뜻이라는게소설가쓰시마유코의아름다운해석이다.현재의세계에는틀림없이결여가있어서우리는언제나무언가를그리워한다.한때우리를벅차게했으나이제는읽을수없게된옛날의시집을되살리는작업또한그그리움의일이다.어떤시집이빠져있는한,우리의시는충분해질수없다.

더나아가옛시집을복간하는일은한국시문학사의역동성이드러나는장을여는일이될수도있다.하나의새로운예술작품이창조될때일어나는일은과거에있었던모든예술작품에도동시에일어난다는것이시인엘리엇의오래된말이다.과거가이룩해놓은질서는현재의성취에영향받아다시배치된다는것이다.우리는현재의빛에의지해어떤과거를선택할것인가.그렇게시사(詩史)는되돌아보며전진한다.

이일들을문학동네는이미한적이있다.1996년11월황동규,마종기,강은교의청년기시집들을복간하며‘포에지2000’시리즈가시작됐다.“생이덧없고힘겨울때이따금가슴으로암송했던시들,이미절판되어오래된명성으로만만날수있었던시들,동시대를대표하는시인들의젊은날의아름다운연가(戀歌)가여기되살아납니다.”당시로서는드물고귀했던그일을우리는이제다시시작해보려한다.

문학동네포에지3차분리스트

021고정희『누가홀로술틀을밟고있는가』
022남진우『깊은곳에그물을드리우라』
023전연옥『불란서영화처럼』
024이산하『존재의놀이』
025이선영『오,가엾은비눗갑들』
026전남진『월요일은슬프다』
027정끝별『자작나무내인생』
028신기섭『분홍색흐느낌』
029곽은영『검은고양이흰개』
030신동옥『악공,아나키스트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