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고 고요한 (김명리 시집)

바람 불고 고요한 (김명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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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집은 총 네 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자연물을 통해 느끼는 생명의 작은 기미들과 인간 삶의 본질적인 쓸쓸함을, 2부는 어머니라는 소중한 대상을, 3부는 우리 주위에서 함께 살아가는 연약한 몸을 지닌 동물들을 바라본다. 4부는 이 모든 시상을 아우르는 작품들로 존재를 향한 연민 어린 시선을 보여준다.
저자

김명리

1983년『현대문학』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물속의아틀라스』『물보다낮은집』『적멸의즐거움』『불멸의샘이여기있다』『제비꽃꽃잎속』,산문집『단풍객잔』등이있다.

목차

1부바람불고고요한
앵두/앵두꽃/풀의무게/바람불고고요한/이월블루스/저렇듯작은기미들이/산자락아래봄햇살/봄날,노근란도를그리다/진눈깨비/파위교/초롱이생각/춘몽/무화과는미풍에시들어가고/먼강물과덜컹거리는산그늘과분홍수련과/한날한시/몬순시절/산유리에해가진다/밤의해변에서

2부포무의세계
김치박국끓이는봄저녁/이별에서붐비는것들/밥꽃/피었는가하면/토마토/빗낱에씻기는항아리들/추석명절오후/대나무꽃/엄마/드림캐처/작별인사/과녁/포무의세계/월담

3부혹은당신혹은고양이
노래가왔다/세상의오후/혹은고양이혹은당신/고양이장마/불꺼진눈/한계령/봄의파동/향기의집은어디일까/그나무아래햇빛/잔반/고양이밥값/시월오후/오줌누고똥누는일의신성/혹은당신혹은고양이

4부꽃잎너머
랑탕크레바스/꽃잎소리/냉담/끝없는오후/여행/나뭇잎엽서/겨울선착장/모과의눈/夢/낮달/나의죽은개를위하여/흉터/저빨강색이코치닐이란말이죠?/노래가쏟아지는오후/또한잎검은모란/성대/삶이라는극약/비밀중의비밀/꽃잎너머

해설|언어세공의트윈픽스,그문학사적의미
정과리(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이대로죽음이
삶을배웅나와도좋겠구나싶은”

정련된시적세공으로빚어낸생의아름다움
시력40년,김명리시의정수

문학동네시인선179번으로김명리시인의신작시집을펴낸다.1983년『현대문학』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한이래,정갈하게다듬은시어로존재의쓸쓸함과비극적아름다움을노래해온시인의여섯번째시집이다.“서정적이고예민하고아주부드럽게속삭이는”(문태준시인)시들을꾸준히발표하며오랜기간독자들과호흡해온김명리는이번시집을통해죽은줄알았던모과나무에서어른거리는“연둣빛”(「바람불고고요한」)으로표상되는소생의기운을느끼고,그러한모든살아있는존재의깊이를“풀의무게란/잠시번성했던초록의무게”(「풀의무게」)라고성찰한다.
문학평론가정과리는해설에서이시집을“한국시사에서가장굵은줄기를차지하고있는”“일반적인한국적서정시형을넘어서가려는실천”이라고말한다.시적대상을향한기다림과한(恨)의정서를드러내는데그치지않고“처방전이없는삶”(「삶이라는극약」)을치열하게살아내는시인의“뜨겁게생동”하는시편들은“기다림”이라는태도를“발견의기쁨으로만드는현장”인동시에독자들에게전하는시인의진실한편지이며,시력40년에다다른한예술가가길어올린예술세계그자체이다.

“김명리의시에서느껴지는가장직접적인풍미는고급스러움이다.돌로치면세공된‘보석’이고,옷으로치면‘오트쿠튀르’이며,나무로치면‘사군자’이다.일제강점기의미술평론가김용준의명명을빌리자면‘고아미(高雅美)’라고부름직한,절도와우아함으로이루어진품격이라할것이다.”_정과리,해설에서

시집은총네부로이루어져있다.1부는자연물을통해느끼는생명의작은기미들과인간삶의본질적인쓸쓸함을,2부는어머니라는소중한대상을,3부는우리주위에서함께살아가는연약한몸을지닌동물들을바라본다.4부는이모든시상을아우르는작품들로존재를향한연민어린시선을보여준다.

죽은줄알고베어내려던
마당의모과나무에
어느날인가부터연둣빛어른거린다
얼마나먼곳에서걸어왔는지
잎새들초록으로건너가는동안
꽃한송이내보이지않는다

모과나무아래서있을때면
아픈사람의머리맡에앉아있는것같아요
적막이또한채늘었어요

이대로죽음이
삶을배웅나와도좋겠구나싶은

바람불고고요한봄마당
_「바람불고고요한」전문

시집의핵심적인정서를담고있는표제시「바람불고고요한」은스러져가는삶에집착하지않고그무상성을온전한자연스러움으로받아들여마침내는“죽음”이“삶을배웅나와도좋겠구나”라고노래하는시이다.김명리의이러한시적태도는다른시들에서도찾아볼수있다.

저녁해의불꽃이내흩어지고
서둘러잎내고꽃피우던여름꽃진다
체로금풍의시절이머지않았으니
여름의핏자국들이내희미해지리
우리도끝내자욱이돌아서리라
_「파위교」부분


애도가종잇장처럼
가벼워지는봄날오후

만곡처럼휩쓸리는
새의영원을

햇빛은지나가기만할뿐
바람은스쳐지나가기만할뿐
_「꽃잎너머」부분


한편,「김치박국끓이는봄저녁」은시집가운데오감을가장강렬하게자극하는시로,발표당시눈밝은시인들과독자들사이에서반향을일으키며회자된작품이다.

기억에도분명
맛의꽃봉오리,미뢰가있다
건멸치서너마리로어림밑간잡아
신김치쑹덩쑹덩썰어넣고김칫국물넉넉히붓고
식은밥한덩이로뭉근히끓여내는
어머니생시좋아하시던김치박국
신산하지만서럽지는않지
이골목저골목퍼져나가던가난의맛,
기억의피댓줄비릿하게단단히휘감아들이는맛
반공(半空)의어머니도한술드셔보시라
뜰채로건져올리는삼월봄하늘
봄나뭇가지연둣빛우듬지마다
천둥처럼퍼부어지는저붉은꽃물한삽!
_「김치박국끓이는봄저녁」전문

생전에어머니가좋아하시던김치박국을끓이며,“봄나뭇가지연둣빛우듬지”처럼푸르고“천둥처럼”활달하며“붉은꽃물”처럼찬란했던옛날의기억을떠올리는이야기.“신산하지만서럽지는”않았던가난의시절,어떤음식보다감각을자극하는김치박국은그자체로육박해오는살아있음의생생한증언과도같다.김치박국을통해존재의근원으로내려가생의“피댓줄”을“휘감아들이는”이시는독자들에게울림있는위로를선사할것이다.

◎김명리시인과의미니인터뷰

Q1.안녕하세요,6년만에여섯번째시집을출간하셨습니다.소감한말씀부탁드립니다.

시를처음으로지면에발표(『현대문학』1983년6월호)하기시작한때로부터사십년만에내는여섯번째시집이라그런지만감이교차하네요.기쁜마음이앞서기는하지만마음속에오래간직했던비밀(보물)을세상에열어보이는짜릿함과함께설명하기힘든어떤쓸쓸함이후련하고도기쁜마음을떠받치고있는것같군요.

Q2.「앵두」가이시집의문을여는시예요.이시를가장처음으로배치한이유가있나요?

앵두는시고짜고쓰고맵고단다섯가지맛,즉존재가맛볼수있는오미(五味)를모두함유하고있는과실이아닌가싶어요.청각,시각과후각과촉각,미각을모두동원해시집「바람불고고요한」속시적화자가말하려고하는,혹은말하고싶어하는오욕칠정(五欲七情)의광활하고도은미(隱微)한세계를부디세미하게읽어주었으면하는무의식적인바람이작용하지않았겠는가싶은마음입니다.

Q3.이시집은총4부로이루어져있습니다.1부와4부는주로삶의무상함과쓸쓸함에대하여,2부는주로‘어머니’라는존재에대하여,3부는고양이와동물들에대하여그리고있는듯합니다.시의구성을어떻게생각하셨나요?

시적제재의변별성위주로가름했을뿐1~4부의시편들속에내재된시적주제나사유의방향성은크게다르지않다고생각해요.사계(四季)의순환처럼시적화자의내면에서명멸했던마음의건기와우기에따라시편들을각부에집약적으로모았다고생각하셔도좋을듯싶습니다.

Q4.이시집에서가장아끼는시는무엇인가요?그이유도궁금합니다.

‘가장’이라는부분이마음에걸리기는하지만,꼭짚어야한다면표제시로도쓰인「바람불고고요한」이될수도있겠다싶군요.서시「앵두」처럼단숨에써내려간시임에도불구하고시집속의전체시편들을견인해낼수있을만치시의체력(형식혹은표현태들)이불끈해서,제가말하고싶은부분(본문)과침묵하고싶은부분들(행간)이더이상은손댈필요가없으리만치잘담겨있구나하는마음이들기도했습니다.

Q5.마지막으로,『바람불고고요한』을읽을독자들에게인사를건네주세요.

시집『바람불고고요한』에마음보태주시는독자님들께우선감사드립니다.
시집속모든시편들은한편빠짐없이제삶의뼈대와눈물과피톨들로써이룩한시라는형식의건축물입니다.혼신의힘을기울였으나기우뚱하고누추하기그지없습니다만,그속에서저와함께,생의고단함과슬픔들,아픔과후회들이한순간이나마사랑받고위로받기를바라는마음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