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사랑 (장은진 장편소설)

날씨와 사랑 (장은진 장편소설)

$13.50
Description
이효석문학상 수상 작가 장은진의 감성 연애소설

마음속에 사막을 품은 여자, 내리지 않는 비를 기다리는 남자
우리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소수자들을 향한 따스한 연대와 공감의 에너지”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으며 2019년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장은진의 다섯번째 장편소설 『날씨와 사랑』이 출간되었다. 장은진 소설은 보통에서 조금 비껴난 독특한 캐릭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인상적인 장면을 독자들에게 선사해왔다. 10년이나 스스로를 집에 유폐한 여자(『앨리스의 생활방식』), 눈먼 개와 모텔을 전전하며 유랑하는 남자(『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몸에 전류가 흘러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게 된 여자(『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종말을 맞는 순간까지 제자리에서 서로를 사랑하기로 결심한 연인(『날짜 없음』)까지, 장은진 소설의 인물들은 세간의 눈에 이상하게 보이는 생활방식을 고수한 끝에 자신의 상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작 『날씨와 사랑』에서는 비가 오든 오지 않든 온종일 우산을 쓴 채 생활하는 남자가 시선을 잡아끈다. 잠시도 우산을 접지 못하는 이 남자 ‘우산씨’를 이웃들은 기인奇人으로 여기고 냉담하거나 무관심하게 대할 뿐이다. 하지만 우산씨를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해주’가 나타난 어느 여름, 우산씨와 해주의 일상이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소설은 사랑할 여력이 없기에 은근하게 표현되는 두 사람의 애정을 그리며 간질간질한 설렘을 안겨준다. 찌는 더위나 팍팍한 삶뿐만 아니라 두근거리는 감정으로 숨이 차오르는 여름 풍경이 서정적인 문장을 통해 펼쳐진다.
저자

장은진

1976년광주에서태어났다.2002년전남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동굴속의두여자」가,2004년중앙일보신인문학상에단편소설「키친실험실」이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장편소설『앨리스의생활방식』『아무도편지하지않다』『그녀의집은어디인가』『날짜없음』,소설집『키친실험실』『빈집을두드리다』『당신의외진곳』등이있다.문학동네작가상,이효석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날씨와사랑_007

작가의말_229

출판사 서평

드러낼수없어서더욱두근대는근거리의사랑
우산하나만큼의거리를좁혀가는수줍지만진실된여름

사는게숨찰때,나는창문을올려다보는습관이있다.
창문에는묘한정서가흐른다.그렇다고세상의모든창문이정서를가진건아니다.내시선이닿는높이의건물이어야하고,건물의가장마지막층모서리에위치한작은창문이어야한다.건물맨꼭대기가장자리의작은창만이그것을완벽하게구현해낼수있다.더는옆으로도위로도갈수없는막다른지점.(7쪽)

소설은아득하고도막막한장면에서출발한다.해주는가장높고막다른지점에걸려있는창문을바라보며힘든시간을흘려보내고있다.가출한어머니대신청소년기부터생계를책임져야했던그녀는가족들과운영하는장갑공장일에청춘을쏟아부었다.가장생생하게기억되어야할시기가인생에서지워져버렸다는서글픔,하루종일덥고먼지가날리는사막같은공장에서일하는생활이쳇바퀴처럼반복되는버거움이해주를짓누른다.그때,해주의곁으로맑은날씨에도우산을쓴남자가다가서서함께창문을올려다본다.두사람은막다른곳에몰려아슬아슬하게살아가는존재로서‘창문의정서’를공유한다.
그날이후해주에게그남자가인식되기시작한다.하루도거르지않고태양이작열하는광장에나와우산을쓴채서있는남자를사람들은‘우산씨’라부른다.우산씨는난처한상황에서도,적개심이담긴외압에도결코우산을접지않는다.해주는우산씨에게먼저다가가그가세상에내보이는우산하나만큼의거리감을좁혀보기로한다.우산씨또한그런해주에게점점호감을느끼면서,의지할곳없이삶을혼자견뎌온해주에게기댈수있는유일한존재가되어준다.

나는조용히우산씨옆으로가서앉았다.그러나우산때문에바짝붙어앉지는못했다.바짝붙으면우산살끝에몸이찔렸다.그와나사이에우산하나만큼의간격이벌어졌고,우산이있는한그것은변치않는간극이자불편이었다.(…)그때우산씨가내게우산을씌워주며옆으로바짝붙어앉았다.(…)
우산씨는다른사람한테도이렇게우산을씌워줄까?고개들어우산씨의얼굴을빤히쳐다봤다.이마와귀가붉다고알려주자그가말했다.
“오늘은,무척,덥습니다.”(53~54쪽)

하지만해주는강도높은노동에끝없이시달리고있고,우산씨는타인에게이해받지못할혼자만의싸움을하는중이다.사랑할여유가없는두사람은서로를향한마음을에둘러전하고,그사소한기미를기쁘게감지하며고단한청춘의시기를위로받는다.그리고해주의옆집이웃이자해주를내내좋아해왔던‘재하’가진지하게감정을표현하기시작하면서,우산씨와해주,재하의삼각관계가여름의밀도를점점높여나간다.

찌그러진우산이여름밤을걷는세사람을허공에서감쌌다.그때오빠가내이름을불렀다.그이름은술냄새를풍기며내귀에닿았다.
“해주야,내가……내가……많이좋아한다.”
한여름밤의고백에발이꽁꽁얼어버린듯멈추었다.우산씨의걸음도같이멈추었다.술을마시지않았다면하지못할말이었을것이다.
“왜,좋습니까?”
내내한마디도하지않던우산씨가나대신물었고,우리는다시천천히걸었다.
“살게하니까.”(195쪽)

세사람은각자의진심을상대방에게온전히전달할수있을까.재하를포함한다른사람들이억지로접게만들려던우산을,해주는우산씨스스로접게할수있을까.여름이지나간후,비가그친상쾌한숲속에서우산씨가우산을뒤로살짝젖혀보는결말의한장면은긴장되는동시에아름답다.

자기몫의불행을있는그대로받아들일수있도록
적당히가까운거리에서함께하는나날

『날씨와사랑』은해주와우산씨의관계를서사의큰줄기로삼는한편,그들주변에있는인물들의아픈사연을적재적소에배치한다.재하는가업인목공방을이으라는아버지의뜻에따르느라진정한꿈을포기한후괴로워하며,해주의아버지는가정을내버려둔채아내를찾아전국방방곡곡을헤맨다.해주의여동생‘영주’는어머니의부재로방황하다인생을깊이비관한나머지주위사람들에게절망을전염시킨다.설상가상으로,집값이떨어진다는이유로마을사람들에게눈엣가시로여겨지던해주와재하의집이철거될위기에놓인다.소식이끊긴가족에대한원망과그리움,함께살아갈공간을지키려는애타는마음이절박하게그려진다.
장은진은등장인물각자의불행을곡진히들여다보며그불행이지나가기를함께기다린다.불행이사라지지는않더라도,인물들이자기몫의불행을있는그대로받아들이기를.그러는동안곁에있어준사람을돌아볼수있는마음의힘이차오르기를.그리고그렇게적당한거리에서서로를바라보던인물들이문득관계의거리를좁혀내는찬란한순간을포착한다.
『날씨와사랑』은해주와우산씨의가만한연애이야기이자,해주가족과재하가웃음과눈물을나누는홈드라마이자,인물개개인이각자의상처를딛고일어서는치유의서사이다.변화무쌍한여름날씨를따라불행의한시절을눈부시게통과하는이소설은매해여름이면떠오르는작품으로독자의마음에남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