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것 (강영숙 소설)

두고 온 것 (강영숙 소설)

$13.50
Description
“밤새도록 읽었다.
문장들이 송곳처럼 가슴을 찌르고 들어왔다.”
_김도영(〈82년생 김지영〉 영화감독)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어른의 맛」 수록
불가해한 세계 속에서 해명할 수 없는 실존적 불안에 시달리는 현대인을 그려내는 데 천착해온 작가 강영숙의 여섯번째 소설집 『두고 온 것』이 출간되었다. “자기 경험의 세계가 순금같이 구현된 소설” “다른 세대는 하기 힘든 두툼한 이야기”라는 평과 함께 제18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어른의 맛」을 비롯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발표한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다. 등단 이래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상을 파고드는 혼란과 불안을 황폐한 도시로, 폐부를 비집고 들어오는 흙먼지로, 희뿌연 환영과 낯선 길로 형상화하며 독보적인 소설세계를 구축해온 강영숙은 『두고 온 것』에 이르러 재난 ‘이후’에 주목하며 더욱 넓어진 지평을 선보인다. 소설은 현실을 유리 파편에 비추듯 날카롭게 그려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재난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개인적 불행을 겪은 인물들이 마주한 폐허를 딛고 서서 그 너머로 시선을 던진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뒤흔들리는 세계에서, 재난이 또다른 재난으로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에게 도착한 『두고 온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 깊게 읽힌다.
저자

강영숙

1998년서울신문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흔들리다』『날마다축제』『빨강속의검정에대하여』『아령하는밤』『회색문헌』,장편소설『리나』『라이팅클럽』『슬프고유쾌한텔레토비소녀』『부림지구벙커X』등이있다.한국일보문학상,백신애문학상,김유정문학상,이효석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어른의맛…009
두고온것…039
버려진지대에서…065
후암이후…091
낙산…117
스모그를뚫고…139
더러운물탱크…163
곡부이후…181
라플린…209

해설│황예인(문학평론가)
결국누구도도망가지않았다…239

작가의말…259

출판사 서평

희뿌연스모그너머에두고온것을찾아
길을되짚고헤매고끝끝내걸어나가는이들

소설집의문을여는「어른의맛」의주인공‘승신’은‘호연’과오랜불륜관계를이어가고있다.부모중한명이자살했다는공통점과그로인한불안감으로강하게결속된둘은사랑이나욕망대신재해에대한공포와죽음에대한불안만을나눌뿐이다.이런관계와삶에권태를느끼던승신은어느날어렸을적친구‘수연’의연락을받고그의집을방문한다.양계장을운영하던수연의집이조류독감으로짐작되는바이러스때문에이사를가면서헤어진지수십년만의일이다.승신은호연과나누지못했던누추한‘삶’에대한이야기를수연과나누고어두운길을나선다.
「두고온것」의‘민수’는아내‘진영’과과거에묵었던,지금은폐허가된‘H호텔’안을헤매는중이다.민수는언젠가부터이상행동을보이다결국폐쇄병동에입원한진영을예전으로되돌릴실마리를그곳에서찾을수있지않을까기대하지만,그가마주하는것은호텔처럼무너져내린자신의모습뿐이다.외국에보낼중요한상품샘플을잃어버린뒤해고당한민수는그때문에피해의식에시달리며진영과다를바없이착란을일으키고,자신이무엇을찾는지도잊은채호텔안을맴돈다.
개인적불행을겪고정처없이떠도는인물들의모습은「낙산」과「스모그를뚫고」에서도이어진다.「낙산」의화자‘나’는임신중단수술을받은뒤낙산일대를배회하며그곳의풍경을관망한다.인근의절벽마을에위치한‘나’의원룸은열악하기짝이없고,남자친구와함께십년을벌어야낡은빌라를전세로얻을수있을까싶을정도로삶은여유가없다.「스모그를뚫고」의‘지영’과‘상혁’부부또한구주택단지에살며신도시고층아파트에서의삶을꿈꾸지만,그곳으로향하는길에서마주하는것은위협적인트라우마가되어버린옛애인과구제역으로살처분된짐승들처럼자신도땅속에파묻힐지모른다는공포뿐이다.
그런가하면「후암이후」와「더러운물탱크」는모두실직을겪은중년여성화자의이야기를다룬다.「후암이후」에서“후배들에게양보”(108쪽)하라는말과함께해고당한‘영주’는부동산중개사인친구대신부동산을관리하며비어있는남의회사에무단침입하곤한다.어느날,그는손님으로방문했던한여성이무허가주택의방을무단점거하고있다는소식에그곳으로향하고,술에취해널브러져잠든여성의모습에자신을겹쳐본다.역시나이가많다는이유로사직을권고받은「더러운물탱크」의‘미스수’는대표가건넨“이제자기길가”(169쪽)라는말에시청인근을서성이다‘극지연구소’행버스에오르지만,그가마침내도착한곳은쓰레깃더미가쌓여있는흉한공터이다.
이처럼표류하는인물들을둘러싼현실은마치막막한스모그와도같다.거기에는미세먼지나지진과같은자연재해부터조류독감이나구제역과같은바이러스,질환이나실직등개인에게닥친불행까지헤아릴수없이많은재난이배음처럼깔려있다.이모든재난이직조해낸짙은스모그의장막은한치앞도내다볼수없을만큼조밀하고두텁다.

장막을걷고저너머
두고온이후의삶을향해

그러나『두고온것』의인물들은그너머로한걸음을더내디딘다.「버려진지대에서」에서중년에접어든다큐멘터리작가‘은수’는노년의엄마‘소희’와함께옛공업도시로‘다크투어리즘’을떠난다.제몫의삶을지탱하는것도버거운은수는엄마를살뜰히챙길여력이없고,가정폭력으로남편과이혼한뒤홀로은수를키워낸소희는자신에게무심한딸이섭섭하다.둘은과거모습그대로버려진도시를거닐며서로의삶을돌아본다.버려진지대에서의여행을마치고돌아온뒤소희는‘산림보전지구’로이주해새로운삶을꾸리기로하고,은수는엄마를찍은영상에대해“전과달리네영상이차분하고따뜻해졌다”(89~90쪽)는동료의말을듣고웃음짓는다.
소설집끝에나란히배치된「곡부이후」와「라플린」도그처럼제자리에서한걸음을내딛는인물들의모습에초점을맞춘다.「곡부이후」의‘진석’은중국곡부에서실종된‘정대리’를찾아그의종적을되짚는다.그막막한여정속에서그는회사가무섭다고말하던정대리를점차이해하고,애써외면하고숨기려했던자신의연약함을받아들일수있게된다.

진석은정대리가길을찾고있는중이라고믿기로했다.그리고돌아가는대로꼭공수병주사를맞겠다고다짐했다.왠지사진을찍어대는사람들의목소리가잘들리지않았다.누런땅콩버터빛깔의황하가저기에서흐르고있다는것말고다른점은,변한것은없었다.그뿐이었다.(208쪽)

쇠락한사막도시에서가이드일을하며지내는「라플린」의‘나’는햇빛을받으면상태가악화되는병‘루푸스’를앓고있다.브로커의의뢰로죽음을앞둔노인부부를유기하는일을맡은‘나’는도시를순례한끝에돌아와자신의죽음을기다리지만,그를찾아온것은죽음이아닌아침이다.일출을바라보던그는그다음의아침도맞이할것을다짐한다.

모텔방에태양빛이들어오기시작했다.아저씨일어나요,일어나.저기윈드스콜피온이왔어요.나는대답할수없었다.라플린의일출시간이었다.그들에게라플린의일출을보여주지않은건명백한실수였다.다음고객에게는반드시라플린의일출을보여주겠다고다짐했다.(236쪽)

저마다‘두고온것’을찾아길위를헤매는인물들은끝내자신이두고온것을되찾지못하는듯보인다.그러나강영숙은그사실을짚어보이기보다그저길을걷는그들의모습자체를끈질기게응시한다.그시선을좇다보면어느순간두고온‘것’은희미해지고,두고온‘이후’의걸음만이우리앞에선명해진다.그것은어디에무엇을두고왔든,다시금“잘아는길을걷는것처럼,다시돌아오지않을것처럼”(「어른의맛」,37쪽)나아갈수있음을의미하는게아닐까.
그렇게‘두고온것’이잃어버린것이아니라‘남겨두고떠나온것’이될때,『두고온것』은결국길을되짚고헤매면서도그‘이후’를향해걸어나가는이들의이야기가될것이다.평론가황예인의말처럼“낙관과긍정,비관과체념그어떤단어로도잘잡히지않는독특한-그냥여기에똑바로서서그무엇도외면하지않은채끝까지살아가겠다는”(해설,257쪽)태도로꿋꿋하게,결코도망치지않고서살아나가는이야기가.



책을받자마자밤새도록읽었다.문장들이송곳처럼가슴을찌르고들어왔다.나는이책안의인물들을잘알고있다.낯선곳에서혹은익숙한곳에서내가만났고내가사랑했고내가외면했던사람들이자나자신이었다.그들의심장에머리에자궁에팔다리에나있는검고깊은구멍들은심연처럼나를끌어당겼다.입안의모래알같은그씁쓸하고서걱거리는구멍들을음미하다해가떠올랐다.문득나는내가슴에도작은구멍이나있음을눈치챘다.오랫동안덮어놓고잊어버렸던그구멍이다시모습을드러내자눈물을멈출수없었다._김도영(〈82년생김지영〉영화감독)

세상곳곳의흥망성쇠를초조함없이바라보기란얼마나어려운일인지.꼼짝없이이를터전삼아살아가야하니까.하지만강영숙은낙관과긍정,비관과체념그어떤단어로도잘잡히지않는독특한-그냥여기에똑바로서서그무엇도외면하지않은채끝까지살아가겠다는-태도로이를해내고있는것같다.그에게세상속인간이란,일출속윈드스콜피온(「라플린」)같은게아닐까.작가는루푸스를앓고있어절대적으로햇빛을피해야만하는인물에게태양이작열하는라플린의가이드를맡겨두었다.그는끊임없이죽음을생각하지만살아서미래의계획을세운다.다음가이드때는틀림없이일출을보여주겠다고.윈드스콜피온의또다른이름은태양으로부터도망친자라는뜻을가진솔리푸개Solifugae.결국누구도도망가지않았다._황예인(문학평론가)



다만무엇이든작은것이라도기록하고싶다는열망에서비롯한관찰이전부인,스스로쓰는부고장같은,아직이야기가되지못한소설들을한장의엽서에담았다.늘그렇듯이이번엽서의테마도미진한나자신이다.다음에는더많이기록하되,지금여기있는수많은실수들을극복하고더나은글을쓸수있었으면좋겠다._‘작가의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