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스트의 책상 - 배수아 컬렉션 (양장)

에세이스트의 책상 - 배수아 컬렉션 (양장)

$12.50
Description
“나는 소설을 쓰기를 원했으나, 그것이 단지 소설의 형태로만 나타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무엇이라고 불리는가 하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가 될 것이다.”
정신에 대해, 사랑에 대해, 언어에 대해,
그리고 음악에 대해
‘배반의 글쓰기’라 불릴 만큼 이질적인 작품으로 독자를 당혹스럽게도, 또 즐겁게도 해온 배수아 작가, 그가 또 어떻게 우리를 놀라게 할까 하던 독자들의 기대를 완벽히 충족시켰던 작품. 2003년 출간되어 마니아 독자를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장편이다. 초판의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그는 이 작품이 “단지 소설의 형태로만 나타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에는 글 속에 담긴 스토리 자체를, 혹은 그런 선명한 스토리에 의존해서 진행되는 글을 내게서 가능한 한 멀리 두고 그 사이를 뱀과 화염의 강물로 차단하고자 했다”고. 그간의 작품에서도 이 특징이 드러나지 않은 것은 아니나, 2000년대 들어 발표하기 시작한 작품들에서 본격화한 것은 분명하다. 관습과 통념을 낯선 방식으로 거스르는 그의 작품은 한층 더 이방인의 것, 이국의 것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느껴지는 것 자체가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해온 경계와 틀을 자각하게 하였다. 그 이후에 오는 것이 지금껏 몰랐던 자유로움은 아닐지.
소설은 ‘나’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과 그 사이사이 끼어드는 M과의 기억으로 채워진다. 핵심은 또렷한 스토리나 사건이 아닌 ‘나’와 M이 함께한 시간들, 그 시간을 ‘나’가 기억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흔히 소설적인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으로 구성되기 어려운 작품일 수밖에. 마치 M을 정신적 질료로 하여 그에 대한 회상에서부터 풀려나오는 언어나 음악에 대한 생각과 예술 텍스트에 대한 개인적 논평을 펼쳐놓는 에세이처럼 읽히고, 또 실제로 소설 전체가 인물이나 사건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에세이적인 형식을 띠고 있기도 하다. 이 소설의 제목이 ‘에세이스트의 책상’이라는 것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일반적인 생각대로라면 음악을 내게 더 많이, 라고 말하는 편이 적절할지도 몰랐다. 더 많은 죽음이거나 더 많은 알몸(나체의 개체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 더 많은 (단 한 명인) 최초의 인간, 더 많은 우주, 더 많은 음악의 영혼, 더 많은 유일한 것, 더 많은 더 멀리 그쪽으로, 더 많은 멘델스존, 더 많은 M, 그리고 더 많은 그 겨울.
_10쪽

북 트레일러

  • 출판사의 사정에 따라 서비스가 변경 또는 중지될 수 있습니다.
  • Window7의 경우 사운드 연결이 없을 시, 동영상 재생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어폰, 스피커 등이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 하시고 재생하시기 바랍니다.

저자

배수아

저자:배수아
소설가이자번역가.1965년서울에서태어나이화여대화학과를졸업했다.1993년『소설과사상』에「1988년의어두운방」을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2003년장편소설『일요일스키야키식당』으로한국일보문학상을,2004년장편소설『독학자』로동서문학상을,2018년소설집『뱀과물』로오늘의작가상을수상했다.
소설집『푸른사과가있는국도』『훌』『올빼미의없음』,장편소설『부주의한사랑』『나는이제니가지겨워』『에세이스트의책상』『북쪽거실』『알려지지않은밤과하루』『멀리있다우루는늦을것이다』,산문집『처음보는유목민여인』등이있고,옮긴책으로페르난두페소아의『불안의서』,프란츠카프카의『꿈』,W.G.제발트의『현기증.감정들』『자연을따라.기초시』,로베르트발저의『산책자』,클라리시리스펙토르의『달걀과닭』등이있다.

목차

에세이스트의책상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책과언어가M에게절대적인세상의징표였다면,음악은접근할수없는정신이자종교이고영혼그자체였다.

_8쪽


더,더많은음악,하고그목소리는말했다.보통수량을나타내는많다,라는표현은이경우에적절한것이아니다.더아름답다혹은더슬프다,더멀다,더죽어있다,더혼자있다,라고표현할때처럼그목소리는말했다.더……한음악.더죽어있다,라고우리는아무도말하지않는다.그것은비교할수없는절대적인가치이기때문이다.손바닥을뒤집듯이단지둘중의하나만을가질수있는문제이다.음악은절대적인것이고죽음도마찬가지다.더많은죽음이나덜한죽음이존재하지않듯이음악도마찬가지다.그것은영혼의등가에해당하는것이기때문이다.

_9쪽


아무에게도알리지않고,무거운짐을지고더무거운마음을안고밤기차를타고멀리떠났으나결국은자신에게서조차벗어나지도못했던그여행에대해서.

_27~28쪽


“너도그런데서죽게될거야,분명히.”

“왜그렇게생각하는거야?”

“다른장소란존재하지않으니까.그렇지않아?”

_83쪽


정신적빈곤과경박함은곧죽음과다를것이없다.이것은M의생각이었다.진지한시선이결여된정신은부패하는고기보다더나을것이없다는것이다.죽음이란실제로구체적인형상으로나타나기에앞서서추상적인개념으로우리삶의내용을포괄적으로점유한다는것이다.그기준으로말한다면,이미태어나는순간부터죽어있는사람들이있다.

_84쪽


언어를알게된다는것은결국은자국어의경계를넘어서서사고하는일이며(외국어를배운다는의미에서가아니라),성장한다는것은단지언어를통해서만이가능하며그것은단지언어만이사고(소통이아니라)의명확한도구이기때문이라는것이다.그러나M의생각은환영이었다.M은자국어가단지의지만있으면얼마든지넘어설수있는경계에지나지않는것이아니라,설사외국어에능통하다하더라도역시의식의감옥이라는것을말하지않았으나,나는알고있었다.그리하여마침내는,내가M과서로다른자국어를가지고있다는것이견딜수없을정도로고통스러워졌다.

_106쪽


나를깊게관통했던것은소유욕이란무엇일까,하는물음이었다.그것은어디에서오며과연용납될수있는것인가.아름다움,섬세함,배려와관용,은둔된평화,글을읽고,음악과함께그리고쓴다……그러면서마침내찾아낸영혼의일치,그모든것들을한순간에배반하고파괴해버릴만큼그것은정당한것인가.인간은왜소유욕을가지며그것이충족되지못할때짐승처럼분노하는것일까.

_157쪽


M은마치그림이전혀없는책과같았다.내가영혼을바쳐읽지않으면,나는M을영원히알수없게되는그런존재말이다.나는내가M을일생에단한번밖에만날수없으며,그기회를영영잃었다고인정할수없었다.그래서나는M에대한그리움을멈추지않았다.M에대한그리움이없었다면나는군중사이를산책할필요가없었을것이다.그것이아니었다면나는사람들의얼굴을바라보거나말을걸필요도없었을것이다.

_187~1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