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만우절

날마다 만우절

$15.00
Description
다가올 시간을 새롭게 마주하게 하는 힘,
싱그러운 삶의 조각들로 생동하는 윤성희의 세계

2019 김승옥문학상 대상 수상작 「어느 밤」 수록!
완숙하고 예리한 시선을 바탕으로 인간과 삶에 대한 긍정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선보이는 작가 윤성희의 여섯번째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이 출간되었다.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섯 권의 소설집과 두 권의 장편소설 그리고 한 권의 중편소설을 출간하며 기복 없이 고른 작품활동을 이어온 그이지만, 2016년 봄부터 2020년 겨울까지 쓰인 열한 편의 단편이 묶인 이번 소설집은 그전과는 또다른 아우라를 내뿜으며 윤성희 소설세계의 새로운 챕터를 열어젖히고 있다는 점에서 그에게 ‘단편소설의 마에스트로’라는 수식을 붙이는 데 주저함이 없게 한다.

특히 ‘훔친 킥보드를 타고 달리는 할머니’라는 인상적인 인물을 그려내어 “홀린 듯 읽으며 경험하는 이 놀라움은 윤성희를 읽는 이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라는 평과 함께 2019 김승옥문학상 대상작으로 선정된 「어느 밤」을 포함해, 그간 한국문학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던 ‘노년 여성’의 삶을 다각도로 묘사해내며 “윤성희의 소설과 견줄 수 있는 소설은 윤성희의 소설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문학평론가 이지은), “이만큼이나 인간에 대한 애정을 넘겨받기 적당한 온도로 갈무리해 글로 옮겨내는 작가가 또 있을까”(문학평론가 김녕)라는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 한데 모인 이번 소설집은 한여름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처럼 우리에게 뜻밖의 선물을 건네받는 듯한 기쁨을 안겨줄 것이다.
저자

윤성희

1973년경기도수원출생으로청주대철학과와서울예대문예창작과를졸업하였다.1999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레고로만든집」이당선되어등단했고,「서른세개의단추가달린코트」가2001년「계단」이연이어『현장비평가가뽑은올해의좋은소설2001』에실렸으며,「모자」는『2001년현대문학상수상작품집』에,「그림자들」은『2001년이상문학상수상작품집』에수록되었다.「유...

목차

여름방학_007
여섯번의깁스_033
남은기억_061
어느밤_087
어제꾼꿈_113
네모난기억_141
눈꺼풀_169
아무도미워하지않는밤_197
블랙홀_225
스위치_253
날마다만우절_281

출판사 서평

“할머니는이미다컸잖아요.”
손자가말했다.나는손자에게아직도엄마한테혼나는꿈을꾼다고말해주었다.
손자는누구한테도혼나는꿈은꾼적이없다고대꾸했다.
자기는꿈속에서도착한아이라고.

나는어떤아이였고이제어떤사람으로나이들어갈까
정갈하게늙고싶다는바람은냉소보다는다정을,
기술보다는유머를통해이루어지는게아닐까

우리가지나온시간과앞으로통과할시간의주름을펼쳐보이며
더나은사람이되고자하는마음을불러일으키는,
부드럽고깊은11편의이야기

소설집의전반부에는최근윤성희작가가활달하게써내고있는노년여성서사가주로배치되어있다.소설집의문을여는「여름방학」의‘나’는오래근무하던회사에서잘린참이다.적금만기를몇달앞두고퇴직하게된상황이불만스러울법도한데‘나’는이를담담히받아들이며퇴직후의시간을어떻게보낼지궁리한다.그첫번째는오래일한자신을위해꽃다발을사기,두번째는축하주마시기,그리고세번째는이름을바꾸는것이다.‘나’에게이름을바꾼다는건“오빠들과돌림자를쓰는게평생짐”(15쪽)이었던시간과헤어지는것이다.아버지를잃은뒤정신이온전치못한어머니를돌보며‘미치지않기위해’애써온‘나’는“듣기만해도……달리기를잘할것같은이름”(18쪽)을갖기위해여러후보들을나열하며시간을보낸다.그리고퇴직후처음맞이하는여름,오래전헤어진연인에게서연락이온다.한번만나고싶다고,카페에서기다리고있겠다고.
「남은기억」의‘나’또한오랜시간연락이끊겼던‘영순’에게서전화를받는다.영순의용건은오래전자신의남편과내연관계였던여자와남편의회사에서일하다공금횡령을했던남자가결혼해서차린국숫집이대박이났는데,그국숫집에함께가서욕을해달라는것.이게무슨뚱딴지같은소리인가싶으면서도,‘나’는자신의아들이어렸을때아들에게장난감을많이사주었던영순에대한고마움이있었기에영순을따라그곳에찾아가기로한다.그렇게‘나’와영순이함께국숫집으로가는하루의여정동안,서로만나지않았던수십년의간격이조금씩메워지며서로의이야기가흘러들어간다.
이어지는작품인「어느밤」에나오는육십대의할머니‘나’는어떤가.‘나’는아파트단지를거닐다놀이터에세워진분홍색킥보드를발견하고는그것을훔친다.지쳐있던‘나’에게바퀴의불이커졌다꺼지는것이마치자신을갖고가라는신호처럼여겨졌던것이다.킥보드를타고노래를흥얼거리며단지를돌다보면남편을미워하는마음도,딸을만나지못하는슬픔도,어린시절겪었던아픔도서서히희미해지는듯하다.그렇게매일킥보드를타던어느밤,‘나’는속도를조절하지못하고미끄러져넘어지고만다.몸을움직일수없어가만히누운채구조를기다리는‘나’의머릿속으로지난인생이흘러간다.
막연하게정적이고노련하리라고여겨지는노년의삶은이렇게윤성희를통과함으로써생생한모습으로구체화된다.수십년써온이름을개명하기로결심할때,친구의복수를위해길을떠날때,놀이터에서훔친킥보드를타고달릴때,그럴때우리의시간은고요히멈춰있기를거부하고어느때보다맹렬하고생기롭게흘러간다는것을윤성희는이작품들을통해인상적으로그려보인다.


“따뜻한신발을신고동화속주인공을상상하던나는뭐가되었을까?”

우리가마주할시간뿐만아니라우리가지나온시간이어떻게우리를잡아끄는지에대해서라면「눈꺼풀」과「아무도미워하지않는밤」을살펴보면된다.두작품에는모두십대남자아이가화자로등장하는데,「눈꺼풀」의‘나’는단짝친구가핑계를대고다른친구들과놀러간것에상심해낯선동네로갔다가,차선을넘나들며빠른속도로달려오는버스에치여병원에입원한상황이다.입원해있는동안매일같이찾아와이야기를들려주는가족의목소리는‘나’가스스로생각하는것처럼‘시시한존재’가아님을부드럽게상기시킨다.
두명의친구와함께‘증명왕’이라는동아리를만들어활동하는「아무도미워하지않는밤」의‘나’는자신을둘러싼상황을증명하는일이불가능하다는것을깨달으며미성년시절을통과하는중이다.‘외로운사람이감기에더잘걸리느냐’는물음에도,‘왜그렇게동생이미워졌는지’에대해서도쉽사리답할수없는‘나’는자신이곤경에처할때마다지켜주던옆집형이왜뉴스에나올범죄를저질렀는지에대해서도알수없다.다만명백히증명할수없는일이자신의삶에생겨나기시작했다는걸,그것이성장의다른면이기도하다는걸어렴풋이알아챈다.
마지막에놓인세단편「블랙홀」「스위치」「날마다만우절」은우리가그시절을지나온후에도선명하게해석되지않는,누구에게나뚫려있는검은구멍을들여다본다.「블랙홀」속세명의자식은어머니가감옥에간뒤집을팔기위해한자리에모인다.체육대회가열린날동네사람들이먹을음식에농약을넣어감옥에간어머니.어머니는왜그런행동을한것일까?어디서부터잘못되었는지지난시간을되짚어보는자식들의대화들사이로각자의마음속에검은구멍이생기던순간들이비쳐보인다.

지하철역으로들어가열차를기다리는데젊은여자둘이다가와언니에게영혼이맑아보인다는말을했다.“그말에갑자기화가났어.나도모르게여자를밀었지.”두여자중한여자가넘어졌다.언니는들고있던꽃다발로넘어진여자의얼굴을때렸다.(…)언니는미리를낳을때까지매일그일을복기하고또복기했다.그런데도자신이왜그랬는지이해되지않았다.“그날이후……뭐랄까,마음에커다란구멍이뚫린것같아.블랙홀같은거.조금만잘못해도그안으로빨려들어갈것만같았어.”(247~248쪽)

그런데우리를난처하게하는건마음속에검은구멍이생겼다는사실만이아니다.검은구멍이생겼음을고백하는사람이우리에게가장가까운가족이라는사실,어느시기자신을아껴준사람이라는사실이우리를멈춰세운다.「스위치」의‘나’가교도소에있는막냇삼촌을면회하러가는동안삼촌이자신에게어떤사람이었는지선명히떠올리는건그래서가아닐까.삼촌은“내게눈사람을만들어주었”(270쪽)고“새벽마다오줌이마렵다는나를귀찮아하지않았”(272쪽)고“조카들중나를제일로예뻐했다”(273쪽).물론이러한회상이삼촌의행동을옹호해줄수없다는것을우리는안다.그러나소설은그에대해확정적인대답을내놓는대신다른가능성의영역으로우리를이끈다.이번소설집의표제작인「날마다만우절」에그가능성이담겨있다.
‘나’의가족은삼년만에고모를만나러가는길이다.삼년전아빠와고모가싸운뒤서로얼굴을보지않고지냈는데,고모가암에걸렸다는소식을전해온것이다.그렇게오랜만에얼굴을마주한가족에게고모는“그거거짓말이야.다들속았지”(296쪽)라고말하며웃는다.안도와황당함이지나간뒤,“그런거짓말이라면나도얼마든지할수있어”(302쪽)라는말을시작으로가족은각자가품고있던이야기를서로에게내보인다.거짓말일수도,거짓말이아닐수도있는각자의내밀한사연이‘거짓말’의외피를두르고가볍게던져질때,마음을답답하게옥죄던비밀의부피가조금씩줄어들며그자리에다른것이채워질공간이생겨난다.거짓말이라는이야기의방식을통해자신또는다른사람을찌를수있는날카로운날을무디게만들기.윤성희의소설이우리에게건네주는것은바로이렇게날카로운날을부드럽게만들어내는이전환의마법이아닐까.
이마법이이루어지기까지무엇보다필요한것은기다림의시간이기에,윤성희의이번소설들이일생의특정시기가아니라오랜시간을아우르는건당연한일인지도모른다.소설집전반부에자리한노년서사와후반부에이어지는성장-가족서사를연결하는「네모난기억」은수십년에걸쳐이루어지는이전환의마법을보여주는작품이자이번소설집의유일한연애소설이다.대학교신입생인‘정민’은우연히‘민정’을보고짝사랑에빠져민정이부회장으로있는‘네모네모’라는만화동아리에가입한다.순조로운연애의도입부로보이는두사람의만남은그러나갑작스런사고로인해예상치못한방향으로뻗어나간다.사고이후정민과민정의삶은전혀다른궤도를흐르게되는데,끊어질듯한두사람의관계를이어주는건바로‘장례식장’이다.정민과민정은몇년에한번씩장례식장에서마주치며서로의주위를맴돌지만각자가처한상황탓에결정적으로가까워지지못한다.그러던어느날정민이민정에게말한다.“한번만더장례식장에서만나거든그땐사귀자”(157~158쪽)고.
그렇게장례식장은오래전이루어지지못한상대와재회하는공간으로,먼훗날의사랑을약속하는공간으로변모한다.그리고이는소설에서여러번반복되는‘인생새옹지마’라는말과함께읽힐때좀더풍부한의미로다가온다.‘인생의길흉화복은변화가많아서예측하기어렵다’는그말은윤성희의소설을거쳐이렇게해석된다.지금의삶이버거워보이더라도인생은한번살아볼만하다고.그것은인생의희로애락을겪은끝에인물들이손에쥐게된결론이기에,허무맹랑한위로가아니라맞춤한옷을덮어주듯부드러운온기로우리를감싼다.그렇기때문에윤성희의소설을읽고나면우리는단정한마음이되어좀더나은사람이되고싶다는다짐을하게되는것이아닐까.좋은문학작품이드물게그런순간을선사하듯이,윤성희의소설은아무렇지않은얼굴로우리에게그런마법같은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