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 최은영 첫 장편소설

밝은 밤 : 최은영 첫 장편소설

$15.50
Description
“슬픔을 위로하고 감싸주는 더 큰 슬픔의 힘” _오정희(소설가)

백 년의 시간을 감싸안으며 이어지는 사랑과 숨의 기록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첫 장편소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와 서정적이며 사려 깊은 문장, 그리고 그 안에 자리한 뜨거운 문제의식으로 등단 이후 줄곧 폭넓은 독자의 지지와 문학적 조명을 두루 받고 있는 작가 최은영의 첫 장편소설. ‘문화계 프로가 뽑은 차세대 주목할 작가’(동아일보) ‘2016, 2018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교보문고 주관) ‘독자들이 뽑은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예스24) 등 차세대 한국소설을 이끌 작가를 논할 때면 분야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장 선명히 떠오르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가던 최은영 작가는 2019년, 예정돼 있던 소설 작업을 중단한 채 한차례 숨을 고르며 멈춰 선다. 의욕적으로 소설 작업에 매진하던 작가가 가져야 했던 그 공백은 “다시 쓰는 사람의 세계로 초대받”(‘작가의 말’에서)기까지 보낸 시간이자 소설 속 인물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밝은 밤』은 그런 작가가 2020년 봄부터 겨울까지 꼬박 일 년 동안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한 작품을 공들여 다듬은 끝에 선보이는 첫 장편소설로, 「쇼코의 미소」 「한지와 영주」 「모래로 지은 집」 등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편소설에서 특히 강점을 보여온 작가의 특장이 한껏 발휘된 작품이다.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가 출간된 2016년의 한 인터뷰에서 장편 계획을 묻는 질문에 작가는 “엄마나 할머니, 아주 옛날에 이 땅에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라고 말했던바, 『밝은 밤』은 작가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증조모-할머니-엄마-나’로 이어지는 4대의 삶을 비추며 자연스럽게 백 년의 시간을 관통한다. 증조모에게서 시작되어 ‘나’에게로 이어지는 이야기와 ‘나’에게서 출발해 증조모로 향하며 쓰이는 이야기가 서로를 넘나들며 서서히 그 간격을 메워갈 때, 우리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건 서로를 살리고 살아내는 숨이 연쇄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이야기 자체가 가진 본연의 힘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은은하며 강인한 존재감으로 서서히 주위를 밝게 감싸는 최은영의 소설이 지금 우리에게 도착했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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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은영

삼색고양이의날에태어나삼색고양이와고등어고양이와함께사는소설가.타고난집순이지만매일장기간의세계일주를꿈꾼다.여행,글쓰기,고양이,바다,친구,잠을좋아한다.콤플렉스와약점이라고여겼던것들의힘으로살아가고있다.

1984년경기광명에서태어났으며고려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했다.2013년부터본격적인작품활동을시작했다.지은책으로소설집『쇼코의미소』『내게무...

목차

1부_007
2부_083
3부_153
4부_237
5부_295

작가의말_339

출판사 서평

증조할머니,할머니,그리고엄마를거쳐내게도착한이야기
그렇게나에게로삶이전해지듯지금의나도그들에게닿을수있을까
과거의무수한내가모여지금의내가만들어졌듯
지금의나또한과거의수많은나를만나러갈수있을까

서른두살의‘지연’은서울에서의생활을정리하고‘희령’으로떠난다.희령천문대의연구원채용공고를본건,바람을피운남편과이혼한후한달이지났을무렵이었다.남편이자신을배신했다는충격에서쉽사리헤어나오지못하는지연은도망치다시피이사를결심한다.바닷가의작은도시인희령은열살때할머니집에놀러가기위해방문했던때를빼면가본적이없는낯선곳이다.
“‘나아지고있는걸까’라는질문에선뜻그렇다고답할수가없”(15쪽)는시간을보내며희령에서의생활을이어가던어느주말,지연은집으로돌아가는언덕에서한할머니를만난다.지연과같은아파트단지에살면서가끔마주칠때면반가운내색을하던분이었다.오후의햇살로반짝이는바다가보이고부드러운바람이부는언덕위에서할머니는뜻밖의말을꺼낸다.

“아가씨,내손녀랑닮았어.그애를열살때마지막으로보고못봤어.내딸의딸인데.”
할머니는거기까지말하고나를가만히바라봤다.
“손녀이름이지연이예요,이지연.딸이름은길미선.”
나는할머니의얼굴을들여다봤다.할머니는나와우리엄마의이름을말하고있었다.(…)
우리는언덕위에어색하게서서서로를바라봤다.할머니의얼굴에장난스러운표정이떠올랐는데,나는할머니가처음부터나를알아봤다는생각을했다.
“할머니.”
내말에할머니는고개를끄덕였다.
“오랜만이야.”(20~21쪽)

어떤이유에선가할머니와엄마의관계가소원해진탓에이십년이넘는시간동안만나지못했던할머니는그렇게지연앞에나타난다.지연은할머니와의재회에어색해하고어려워하면서도“그런감정들의바닥에깔린엷디엷은우애”(23쪽)를신기하게받아들인다.그리고그만남을계기로할머니의집에방문하게된지연은조심스러우면서도따듯한분위기속에서할머니와대화를나누다가사진한장을건네받는다.사진속에는흰저고리에검은치마를입은두여자가미소짓고있는데,그중한명은놀랄정도로지연과닮아있다.할머니는그여자를가리키며말한다.이사람이바로자신의엄마라고.그러면서황해도‘삼천’에서백정의딸로태어나핍박받으며살던지연의증조할머니가어쩌다양민의자식인증조할아버지와만나게되었는지,어떤삶을살아내며이곳희령으로오게되었는지이야기를풀어내기시작한다.
그것을시작으로『밝은밤』은지연이희령에서새로운생활을이어나가는현재시점의이야기와할머니에게전해듣는과거시점의이야기가교차하며전개된다.이이야기형식의특별한점은,과거의이야기가할머니의입을통해직접적으로풀려나오는것이아니라할머니에게들은내용을바탕으로지연이재구성한것이라는데있다.즉1930년대를배경으로펼쳐지는증조할머니의이야기에서출발해현재의자신에이르기까지백년에가까운시간을지연이자신의시점에서꿰어나가는이야기인것이다.그렇게『밝은밤』은두이야기의시간을오가며사진과기억속에서만존재하던오래전사람들을구체적인형상을지닌인물로그려냄으로써그들을현재에다시살려낸다.

“사랑은모욕이나상처조차도건드리지못한마음을건드렸다.”
지금나에게이른궤적을거슬러올라가며발견하는사랑의기원

“시간은흘러가는강물이아니라얼어붙은강물”이어서“과거와현재와미래는동시에존재한다”(173쪽)고여기는전남편의믿음과달리,지연의재구성을통해되살아나는이야기는과거또는현재의이야기로고정되지않고서로의이야기에부드럽게섞여든다.백정의딸로태어나누구에게도환대받지못하던증조할머니가‘새비아주머니’를만나처음으로우정을나누는모습은1930년대라는시간을벗어나현재어두운시간을보내고있는지연에게로흘러들고,팔순을앞둔할머니는지연의이야기를통과하면서주름이깊게패고허리굽히는것을어려워하는나이든노인이아니라“먹을것을투정하지도않았고젖니가나는데도보채지않”(74쪽)는순한아기의모습으로다시살아난다.그렇게인물들은현재의고정된모습이아니라,수많은‘나’를간직한모습으로새롭게태어나는것이다.
그리고그것을가능하게하는것이다름아닌서로가서로에게전하는‘이야기’라는점은,소설이라는형식에대한작가최은영의믿음과애정을확인시켜주는듯하다.“네가내이야기를들어주니까,새비아저씨는그만큼더사는거잖아”(81쪽)라는할머니의말처럼과거의이야기는증조할머니와할머니,엄마를거쳐지연에게전해지며계속이어지고,그렇게여러겹을통과해도착한이야기는현재지연의삶에어떤식으로든변화를일으킨다.그러니『밝은밤』을이렇게말할수있을까.어떤삶은왜이야기를통해우리에게전해질수밖에없는지에대한최은영의아름답고진지한대답이라고.최은영은소설이지닌고유의힘을깊이신뢰하는정공법으로한걸음한걸음을신중하게내디디면서,한번도만난적없는사람들에게로흘러가는마음의물길을그려나간다.책을덮는순간완성되는그물길의모양은사람마다다르겠지만,한가지만큼은확실하다.그물길은,“그곳이가시덤불”(56쪽)일지라도아주적은사랑이고여있기만한다면그곳으로흘러가리라는것.햇볕에데워진돌멩이를만질때전해지는온기처럼,최은영이발견해우리에게건넨사랑은이토록따듯하고단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