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재밌는걸그동안퀴어들만보고있었단말이에요?”
공연할때마다나는관객이모두퀴어라고상정하고퍼포먼스를한다.왜냐면내가그렇게느끼기때문이다.물론세상에는성정체성에관한여러가지구분과분류가있고,그것이인권운동적인측면에서나사회담론의측면에서는엄청나게유효할수있지만,‘사람간의개별적관계’의맥락으로들어왔을때는그게그렇게확고한경계를지을수있는것인지잘모르겠다.오히려나는개개인의개별성과저마다의다양한관계맺음을훨씬더피부에와닿게경험한다.나는그런면에서퀴어와헤테로를대립구도로보지않는다.그냥우리는다‘퀴어’라고,실상은헤테로가퀴어의하위범주라고인지한다.우리는모두개별적으로이상한변태들일뿐이고,그것은헤테로역시마찬가지다.세상에는얼마나다양한변태헤테로들이많은가.그들의헤테로실천은얼마나다각각별스럽게다양하고잡스럽고문란한가.헤테로는충분히퀴어하다.예나지금이나.(53~54쪽)
Art,Life,Legend예술,삶,전설…
이반지하는왜이렇게웃긴가
이반지하라는이름은‘이반’인그의성정체성과‘반지하’방에서삶을지탱하며‘위대한노래’를만들어낸그의지난시간이고스란히담긴이름이다.젠더문제와주거문제는그를평생끈질기게쫓아다닌숙명이었다.짐짓농담처럼들리는책제목‘이웃집퀴어이반지하’를통해그는온세상을향해선언하는듯하다.이거대도시의땅아래쪽‘반지하’에도사람이깃들여살고있듯이,누군가는끊임없이부정하고지우려하는‘퀴어’도당신가까이,이사회곳곳에포진해있다고.그러니‘똑똑히보라,나는여기이렇게당신들과함께살아있노라’고말이다.
그의퀴어친구들은자신의장례식에서는비건친구들이굶지않게끔비건육개장을준비해달라는농담같은유언을평소에툭툭내뱉는다.그들에게‘죽음’은너무나가까이있다.퀴어들의압도적으로높은자살률앞에서,여성들에게가해지는온갖폭력앞에서,그는감히행복하게잘살자고부추기지않는다.그냥‘일단생존부터하자’고말한다.
언제부터였을까.미디어에등장한누군가를보며‘저사람,저정도상황이면죽고싶겠다’라고생각하면,별안간그사람이정말로죽은채떠올랐다.‘죽을만큼괴롭겠다’혹은‘힘들겠다’는생각이들면,며칠혹은몇달후,그는정말로죽음이되어버리곤했다.‘어,맞아’라고답하듯곧맥없이죽어버리는것이었다.
‘죽을만한일에실제로죽어버리는것’을이렇게계속목격해도되는걸까.(…)
애도,삼가고인의명복.
나는이제그런걸하기가싫어졌다면.
고인,죽음,의미.
나는이제그런걸찾기도싫어졌다면.(70~72쪽)
일단생존하기위해서는몸을누이고맘편히먹고잘터전이필요하다.하지만그는인간으로서의생존을유지하면서도예술가로서의미래를포기하고싶지않다.그래서호텔조식뷔페직원,인구주택총조사조사원,영어강사,편의점알바등각종알바에닥치는대로뛰어든다.
해가아직남아있을때퇴근하고싶어서이른새벽조식뷔페로출근해보지만,이사회는그가햇살아래예술을하도록그리호락호락내버려두질않는다.휴가철성수기에는업무를마치고호텔유니폼을벗어도그자리에서꼼짝도할수없어두루마리휴지를목뒤에받치고침을질질흘리며휴게실에서자다가저녁무렵에야간신히몸을끌고집으로돌아올수있었다고그는담담하게말한다.또편의점에서온갖다양성으로점철된이들의소소한난동을목격할때,은근한성희롱을당할때,계속이러다가는영혼이파먹히리라는것을,창작에남겨둘체력이라고는조금도남지않을것을예감하면서도,그는알바전선에서쉽사리빠져나오지못한다.목숨값을벌어야했기때문에.그리고‘예술하고자한죄’를감당해야했기때문에.
그렇게죽어라일해도그의주거요건은썩나아지지않는다.‘집주인친구들’과의실랑이정도는사소한문제다.악기를다루고노래를만들고그림을그리는그에게는필연적으로좀더큰공간이필요했다.습한반지하방에서캔버스에곰팡이가슬까봐괴로워하고,아직팔리지않은자신의그림을스스로내다버려야할지,아니면그래도이고지고일단견뎌봐야할지고민하며이반지하는가끔운다.
가장고통스러웠던것중하나는화장실타일과벽지였다.가장견디기힘들었던것이정말로화장실타일과벽지였다.왜싫었나,왜견디지못했는가묻는다면,사실그것을정확하게어떤이유다,라고설명하긴힘들다.당시엔할수있었을지도모르겠는데,지금은시간이많이지나서정확히어떤무늬와색감,텍스처가미칠것같았는지가잘기억나지않는다.그냥화장실타일과벽지가나를매일절망하게했다는것만을기억하고있다.(…)
화장실타일과벽지를보면서울곤했다.그리고작게딸려있는베란다에비가올때마다물이차서큰캔버스그림들이젖을때마다몸에차곡차곡절망이쌓이는것을느꼈다.캔버스를뽁뽁이로싸두긴했지만,결국이것이그림에곰팡이를만들거라는생각에비가올때마다초조하고화가났다.나는그때집을관리한다는게무엇인지도몰랐고,미술작가로서작품을이고지고사는것이무엇인지도아직잘몰랐다.(166~167쪽)
이반지하,당신괜찮아요?
2021년이반지하의팬들은왜여전히‘빵’에가는가
“유머러스하다……제가웃긴가요?전혀아닙니다.단한번도웃기려고한적없습니다.만약에이런저에게조금이나마세상을기쁘게하는능력이있다면,그런작은불씨라는것이있다면,그것의중심에는고통과억압이있다,라고말하고싶습니다.고통없는웃음은없는겁니다.
집안이화목하면웃길필요가없지.나와서광대짓을왜하냐?내가뭘해도엄마아빠가웃어주는디?우린눈치보고애를쓰는거지……
유머러스해지고싶다,그러면어린시절부터큰고통을겪으면서사춘기때크게방황하고,그러면서내살길찾아서단절도경험해보고,다양한(성적)경험과……차별과억압을통해서어떻게든웃을일을만들기위해서……그렇게살아온사람이있다고합니다.
들은얘기예요.”(224쪽)
클럽하우스가한국사회를뜨겁게달구었던시기,그는가끔홍길동처럼‘클하’에불쑥나타나서사람들을미친듯이웃기고는사라졌다.사람들은그의유머에열광했고,그는농담처럼혹은진담처럼자신의유머는‘고통과억압’에서비롯된것이라고말했다.이책에는이반지하가최초로고백하는폭력의연대기들이촘촘히기록되어있다.한때그는몸에멍을뒤집어쓴‘보라색인간’으로살았던적이있다.글「탄생설화」에실린그림연작시리즈는그가오랫동안헤어나올수없었던‘폭력의밤’을묘사한작품이다.그는한동안여성쉼터에머물기도했고,여전히정신과에다니고있으며,지금도죽지않기위해안간힘을다하고있다.
퀴어이반지하의삶을위협하는것은이렇듯노골적이고실질적인폭력들뿐만이아니다.그는오랫동안한국사회의검열에시달려왔다.그는서울대미대동기가운데유일하게졸업작품을제출하고도통과하지못해한학기를더다녀야만했던학생이었다.페미니즘과퀴어담론이활성화되기도전에그것을똘똘뭉치고단단히벼려폭발물처럼터뜨린그의설치미술작품은강렬했고,어디서듣도보도못한것이었으며완전히새로웠지만,교수들은그를졸업시키길거부했고졸업은유예되었다.그의서울대선배이자공연예술인인이자람은책말미의추천글에서‘이반지하’의이충격적인졸업작품을둘러싼당시의묘한공기를증언하고있다.
교수들은다른학생들의완성되지않은그림을보고도“어,전시날까지완성해”라는식으로심사를봤지만내작업에대해서는갑자기아주엄격한태도를취했다.몇몇은얼굴이벌게져뭔가에엄청나게화가나있었다.나는‘설마’라고생각했던것같다.그러니까,정말당신들이그런이유로이작업을거절하고있다고믿을수가없었다.내안의모범생은교수들이그렇게구릴수있다는가설을믿으려하지않았다.그들이그런이유라고말해주지않았기때문이기도했다.
나는그때까지만해도‘검열’에는‘검열의언어’를따로쓸거라생각하고있었다.듣는순간바로‘이건검열이다!’라고눈치챌수있을만한언어말이다.나는내가그정도는알아볼수있을만큼똑똑하다고생각했다.하지만검열의언어는그런것이아니었다.그것이나의대단한착각이었다.(...)
검열을당한다는것은생각이많아진다는것을의미한다.여기서생각이라는것은대단히생산적이거나발전적인무엇이아니라,나자신의머리부터발끝까지,그속의장기와세포하나하나까지를양말까뒤집듯이의심하는것을의미한다.그래서검열은잔인하다.검열하는쪽은간편하되당하는쪽에서는정말로내가당당한피해자인지를,내쪽에정말로한점의원인제공도없었는지를지속적으로생각하게하는것,이것이잔인함의핵심이다.검열은저쪽에서시작되었으나,결국그걸지속하는것은이쪽,나자신이된다는것말이다.(44~47쪽)
이것은단지성인지감수성이떨어졌던옛날옛적의일일뿐인걸까.하지만이반지하를‘압지’라부르며절대적으로따르는이반지하의팬들은요즘도‘빵’에갇힌다.국내최대메신저오픈채팅방에서그들은이반지하의무대와작품들을오마주하는팬아트를창작하는데,그들의팬아트는수시로‘청소년유해매체’로분류되고,계정정지를당한팬들의입은틀어막히고만다.이반지하의팬들은이를‘빵에간다’고표현한단다.‘일반적이지않은’퀴어에대한검열은아직도서슬퍼렇게살아있다.
괜찮아,웃기면돼―유머리스트(Humorist),
헤테로사회를뒤집어놓은퀴어,그리고생존자이반지하
이책이가장좋은것은이토록지독한온갖폭력과차별을견뎌낸자가징징거리지않고,하소연하지않고,굳이남을애써설득하려고도하지않으며,탁월한유머와재기발랄함으로이시대를살아버티는퀴어예술가의삶을생생하게풀어낸다는것이다.이반지하라는걸출한광대는세상앞에이렇게포효하고있다.
“세상아,너는두려워해야할거야.나는생존자거든.”
세상모든것이그냥포기하라고,너는그저그런인간일뿐이라고,너따위는예술가로살수없다고,너는‘일반’적이지않고이세상에어울리지않는다고압박할때,반지하방에서,편의점카운터에서,작지만단단한자기만의무대에서살아버텨서튀어나온아티스트가있다.
세상모든인간은각자의방식으로‘퀴어’하다고주장하는이독보적아티스트의문장들앞에당신은탄복하게될것이다.
생존자이반지하,그가살아서쓴첫책이우리앞에왔다.
생존자는살아남은자다.
그들은무엇이든할수있는사람들이다.
“그애는생존자야.애초에질생각이없어.”
생존자조심해라.(15~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