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넓고 조용해 왜 노래를 부르지 않니 (김기형 시집)

저녁은 넓고 조용해 왜 노래를 부르지 않니 (김기형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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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당신은 목소리로 불길을 세워요.”
뒤로 걸어서만 만날 수 있는 ‘아주 착한 혼자’들의 세계,
두 손에 ‘절대 자두’를 붉게 쥐고서
문학동네시인선 159번째 시집으로 김기형 시인의 첫번째 시집을 펴낸다. “작은 지점들을 통과해나가면서 큰 무늬를 그려내는 확장”(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평)이 돋보였다는 평을 받으며 데뷔한 이후 김기형은 작은 디테일에 머무르면서도 읽는 이에게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목소리를 드러내왔다. 등단작 「손의 에세이」에서는 ‘손’에 복종하고 싶기도 하고 손을 배반하고 싶기도 한 복잡한 양가감정 가운데서 어떠한 억압과 관습으로부터도 자유롭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돋보인 바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확장된 첫 시집에서 시인은 ‘나’와 ‘나’ 바깥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환대와, 말하고 듣는 이가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과감한 발화를 길러낸다.
저자

김기형

2017년동아일보신춘문예로등단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돌과나의훈련
자두f/돌을던졌다/어지러운마음이내려가는모양/놀라운목소리/숲속에있어요/누구의빛이었나/등을구부린사람/반성/나는신의손을본적이없다/내가춤을추는동안/폭격/나는사라졌어요/벤치에서하는일/소라속에,게/너의왼팔로창문을열어두고/어디에서이아이는/매일잘못되는삶

2부변복하는이야기
손의에세이/나는긴여행을못가요/계속된불/꿈/질병에서났으므로뚫고가는세계가있으리라/뺨때리지말아요/슬픈얼굴/거기저녁바람은차고/봐,까만벌레를낳았어/빛이지나가는우주/반으로갈라진돌을보십시오/같은신발을신었던건지도모른다/내려오세요,산길/당신은알고있습니다만/철로를지난다는것/높은목소리

3부무서운산책
의자공장의중심/호수의숙녀/손의행방/수프통의사람/오늘의눈금까지/오늘의제물사람에게생기는질병/뒤집힌월요일/정오의의식/나비가날개를말리고있다1/나비가날개를말리고있다2/말할수있는것이다까마귀다/천사들이나타난것일까/결국이렇게강력해지는것이다/밤마다초를/나의작은이집트/9월생

발문|기형의시
|안희연(시인)

출판사 서평

“당신은목소리로불길을세워요.”
뒤로걸어서만만날수있는‘아주착한혼자’들의세계,
두손에‘절대자두’를붉게쥐고서

문학동네시인선159번째시집으로김기형시인의첫번째시집을펴낸다.“작은지점들을통과해나가면서큰무늬를그려내는확장”(2017년동아일보신춘문예심사평)이돋보였다는평을받으며데뷔한이후김기형은작은디테일에머무르면서도읽는이에게거침없이뻗어나가는목소리를드러내왔다.등단작「손의에세이」에서는‘손’에복종하고싶기도하고손을배반하고싶기도한복잡한양가감정가운데서어떠한억압과관습으로부터도자유롭고자하는시인의의지가돋보인바있다.이러한문제의식이확장된첫시집에서시인은‘나’와‘나’바깥의경계를무화시키는환대와,말하고듣는이가스스로자유로워지는과감한발화를길러낸다.

왜자두냐고물으면
그것은자두가보았으므로
삼천원어치의자두가
나뒹굴었으므로
계단을타고다터지면서나타났으므로

울지

다리없는것이몸전체로힘을주니
안으로근육을일으키니
그것이야말로

절대자두여야만한다
_「자두f」부분

이시집의첫시인「자두f」는‘두려움’에대해말하며시작된다.그러니이시집은‘두려움’을말하며시작되는것이기도하다.그러나시인은‘두려움’이“자두의힘”이라고말한다.여기서자두는“계단을타고다터지면서나타”난자두다.“나뒹”군자두는울지만,“다리없는”자두는“몸전체로힘을주”며“안으로근육을일으”킨다.그러니그것이야말로‘절대자두’여야만하는것이다.두려움과울음을힘과가능성으로전환시키는시인의시작은주목을요한다.‘절대’라는수식어를통해용기를부여하는시인의손을지켜보자.

누가이런생각을하며밤을새우겠어요.누가자신을앞에두고잃어버린것이무엇인지알려고하겠어요.앞은본적없고뒤를돌아볼때마다두발을질질끌며가고있었던것일텐데.한바퀴를돌고온것인지,내앞으로붙어버렸으니까.어디서돌아왔을까.문신처럼앞이나타났으니각자앞을얻었다고해요.서로의옷자락을붙잡고뒤를지켜봐주기로해요.
_「매일잘못되는삶」부분

‘절대’라는수식어가필요한삶은그만큼절실한삶일터이다.언제나무엇인가잃어버리고잘못되어간다고느끼는사람은자꾸만뒤를돌아볼것이다.흘리고말아버린지금들을다시줍지도거두지도못한채전전긍긍하며.그렇다면너무나도많은슬프고잘못된것들에도불구하고우리가뒤를어떻게긍정적으로바라볼수있을까.바로이곳에서시인의전환이빛난다.뒤를보며걸을수밖에없다고하더라도한바퀴를돈다면앞을볼수있고,앞으로갈수있다.아무리걸어가도앞으로나아가기가버거운이들에겐소중한발견이아닐수없다.

둥근저위를푹하고찌른다
고된밤과흰눈의안

테두리가바삭하고으깨지는
아주착한
혼자
_「나는신의손을본적이없다」부분

모두같은모습으로다녀요
엎어져서이동하는무리
투명한뱃속을가졌으니대화는필요없습니다
가벼운물방울안에둥둥떠서는
팔과다리로원을찢듯휘젓습니다
나도같이가요
물방울이서로끌어당기면
나는차렷자세로기다리겠습니다
몇개의팔쯤은잃어도될것처럼
_「등을구부린사람」부분

앞서,뒤로걷던‘나’는이윽고‘나’바깥의‘너’를발견하기에이른다.홀로있는‘나’들은자기안으로만파고들기쉬울터이나,김기형의‘나’는“둥근저위를푹하고찌른다”.‘아주착한혼자’의‘테두리’가“바삭하고으깨지는”시간이다.김기형의시는자신을열어다른존재를맞이하는동시에상대를“푹하고찌른다”.“이것보세요/들리지않는소리를내가들었어요”(「반성」).그는“작은것들의목소리를대신해서”“적막에가까운말”을듣고말한다.행동하는수동성,또는기다리는적극성의태도라고한다면어떨까.화자는작게머무르는존재들을기쁘게환영하는가운데,그들이걸음을내디딜수있도록먼저“조용히흔들”(「9월생」)리고있다.

굴뚝
솟는불이
지워내는하늘을
보라
보라고
으스러질자기몸을
이길에

(……)

주먹안에흰빛
말을시작하면
붉은눈
_「어디에서이아이는」부분

‘붉음’은대개피와눈물,불같은것을연상하기마련이다.눈물을터뜨리기직전의눈.주먹을꽉쥔탓에모세혈관이터져붉어진손,그리고자두의색.이처럼붉어진존재들은어떤행동을야기할결심을세우고있다.무언가달라지기바로직전의세계에서횃불을피우듯이다음국면이예고되는것이다.“보라/보라고”말하며직접가닿는발화와심상이결합하여듣는이로하여금행렬에동참하지않을수없게끔한다.“비록작은목소리지만세계를향한분명한응전이다.”(안희연발문,「기형의시」)김기형에게서목소리는이제‘불길’이된다.듣고읽는이는화자의말에이어서“단단한발음으로”말하게될것이다.김기형의권유는화자의일방통행적인권유에서그치지않는다.‘나’의손에이끌린당신은뒤로걷는연습후에‘나’의앞에서나를이끌게된다.그런당신이나타나기를김기형은기다리고기대한다.“저녁은넓고조용해/왜노래를부르지않니”(「천사들이나타난것일까」).그러니누구에게나시작은혼자였겠지만,걸어가는것은모두다.“혼자호명한다/일순간여럿이간다”(「나의작은이집트」).

시인이내민것이그러하니이쪽의우리들도그것을느낄수밖에없다.아,여기울고있는영혼이있구나.불을갈망하는목소리구나.이모든건살아있다는뜻이구나,아프구나.다시강조하지만이모든시는기형의손으로쓰였다.이모든게기형의이름으로이루어진일이라는게좋다.세상이정의하는기형의의미를비껴나는방식이어서좋다.매순간간절하고최선을다하고있어서좋다.기형의시는기형의시.당신도이좋음을함께느꼈으면좋겠다.
_안희연발문,「기형의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