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

$14.00
Description
“내가 원하는 건 산책이나 도시라는 말을 중심으로 잠재되어 있는 무언가를 건드리는 것이다.”
도시 속에서 걷기, 건축 속에서 걷기, 예술 속에서 걷기,
사유의 리듬에 맞추어, 소설가 정지돈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소설가의 산문을 엮어 책으로 내는 방식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여러 매체에 실은 시의적 에세이들을 정리한 책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콘셉트 아래 써내려간 에세이.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소설가 정지돈이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을 담은 일종의 ‘도시 산책기’로, 2020년 2월부터 9월까지 문학동네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 밀도 높게 연재된 원고를 바탕으로 한다. 원고지 30~50매 분량의 글 스물세 편이 묶여 있으며 짤막한 단상에서는 다 펼쳐 보일 수 없는 확장된 사유를 하나의 주제 아래 넉넉하고 촘촘하게 담을 수 있었다. 정지돈은 젊은작가상 대상, 문지문학상 등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2018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여할 만큼 건축·미술계의 관심도 받고 있는 작가이다. 이 책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에는 그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예술과 사상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방식이 산책이라는 행위와 함께 담겼다. “계획은 모두 망상에 불과하지 않은가. 산책은 이럴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어디로도 향하지 않으며 걷고 머무는 것.” 건축과 혁명, 영화와 문학, 우연과 리듬, 연결과 확장… 사유의 리듬에 맞추어 서울과 파리를 오가다보면 272쪽이라는 페이지수를 능가하는 여러 층위의 시공간과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북 트레일러

  • 출판사의 사정에 따라 서비스가 변경 또는 중지될 수 있습니다.
  • Window7의 경우 사운드 연결이 없을 시, 동영상 재생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어폰, 스피커 등이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 하시고 재생하시기 바랍니다.
저자

정지돈

2013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및에세이,비평등을쓴다.여러권의책을냈다.젊은작가상대상,문지문학상,김현문학패를수상했다.

목차

-들어가며
-말이되는도시
-자본주의와사회주의의차이는무엇인가?“자본주의에서는인간이인간을착취한다.”그러나사회주의에서는그반대다①
-자본주의와사회주의의차이는무엇인가?“자본주의에서는인간이인간을착취한다.”그러나사회주의에서는그반대다②
-결국쇼핑말고는할일이별로없을것이다①
-결국쇼핑말고는할일이별로없을것이다②
-파리의벤치들
-결국쇼핑말고는할일이별로없을것이다③
-어디에도머물지않고어디로도향하지않으며
-샛길:코로나19시대의산책
-인생에서두번저항하기란어렵다①
-인생에서두번저항하기란어렵다②
-두사람이걸어가
-라이드시작전에브레이크를확인합니다
-내가팔을들어올릴때,내팔이올라간다는사실을제거하면남는것이무엇인가?
-죽어서승리를거둔사람들이살아서승리를거두었다면①
-죽어서승리를거둔사람들이살아서승리를거두었다면②
-시카고는아무곳도아니었다.정해진장소가아니었다.그저미국이라는공간을향해방출된무엇일뿐이었다①
-시카고는아무곳도아니었다.정해진장소가아니었다.그저미국이라는공간을향해방출된무엇일뿐이었다②
-시카고는아무곳도아니었다.정해진장소가아니었다.그저미국이라는공간을향해방출된무엇일뿐이었다③
-남북조시대의예술가①
-남북조시대의예술가②
-당신을위한것이나당신의것은아닌

출판사 서평

서울의구보,파리의플라뇌르
시작은‘구보씨’였다.‘「소설가구보씨의일일」의21세기버전에세이’를써보는것이어떻겠냐는편집자의제안.그소설의내용이나구보씨라는인물보다는문장의세련된리듬감이그가걷는경성의풍경과만나빚어내는분위기가정지돈작가를떠올리게하는데가있었다.특히주요했던것은구보씨가자연이아닌도시를걸었다는점이다.고요한산책이가져다주는목가적인사유와는다른,도시를걸을때동반되는일종의산만함이불러일으키는심상이있다.21세기의도시산책자는무엇을보고어떤생각을할까.과거와현재,픽션과논픽션을넘나들고미술과건축,역사를소재로작품활동을해온정지돈작가이기에가능한글이있으리란생각에서시작된책.무엇보다그가산책을좋아하기도하고말이다.
구보씨는플라뇌르flaneur의한국형버전이기도하다.플라뇌르는보들레르에서시작되어발터벤야민에의해중요한개념으로자리잡았으며‘도시산책자’‘만보객’으로번역된다.때마침파리에서석달간체류할기회가생긴정지돈작가는서울의구보와파리의플라뇌르를연결해사유해볼수있었다.그러나낭만적인도시를걷는고독한예술가의이미지로이어지리라기대할순없으리라.‘정지돈을읽는다’는것은그런것이아니므로.작가는“파리의도시문화에서연유한플라뇌르는이성애자무직(또는학자나예술가같은얼빠진직업을가진)남성도시산책자”이며“상품과여성을소비문화로누리면서도산업화의속도를거부하고도시의숨겨진가능성을발굴하는저항적인태도”를보인존재로의미화하는건억지스럽고따분한일이라쓴다.1960,70년대소설과영화속서울을걷던이들도마찬가지다.“영상매체가길위에서이루어지는여성들의일과대화,일상을다룬것은얼마되지않은일이다.남자들이주체인영화에서는거리를배회하는장면이일상이다.반면여성의경우에는소수에불과하며거리가배경이되면언제나성적인요소가따라다녔다.”더불어“작가에게는시대를말해야한다는(외부의)요구와그와무관하게움직이고자하는(내부의)욕망이존재한다.구보씨는이러한요구와욕망이문학이라는장르안에서특정사조와연결될때등장할수있는최선의형상중하나”라는관점은“예술가를경계에선인물로,그리하여플라뇌르로만들지만여전히특정한종류의이분법에사로잡혀있으며주체로서의예술가를상정하기때문”에한계에봉착했음을분명히한다.“구보씨는‘나’의고뇌에서벗어나지못한다.‘나’의고뇌가중요한고뇌라는믿음또는이데올로기가자연화되어있기때문이다.구보씨는작가로서세계와자기자신을관찰하지만그러한관찰을관찰하진않는다.”
이런식으로정지돈작가는자신의산책길역시낭만화될것을애초에거부하고경계한다.산문곳곳에삽입된작가의지인들과의에피소드는흡사블랙코미디의한장면처럼연출되기까지한다.금정연,오한기,이상우작가가실명으로,그러나얼마간변용된캐릭터로등장하여함께서울과파리를걷는다.문학과영화를비롯해다방면의지식과소양을가진그들의대화는넓은스펙트럼을자유로이오가지만,그대화가“검은색롱패딩을입은삼십대아시아인남성문학인세명”이라는젠더/인종적정체성을뚜렷이한위에이루어지기에위트와유머로이어진다.

경험의역설,여행의역설
‘예술가가도시를걷는다’라는콘셉트에서가지게될기대하나를상기한바와같이빗겨갔다.그렇다면서울과파리에서의이경험들이일종의여행담으로분류될수도있을까?하는기대는어떨지.보고느껴본나라의숫자와그곳에서체류한기간,들러본곳들의목록이그가진짜로해본‘산경험’인것으로여겨지곤하는시대에맞춤하지않을지.그러나작가는여기에도역설적인측면이있다고지적하나니.“경험은상상력을제한한다.(…)동시대가흥미롭지않은건모든게개방되고평평해져버렸기때문이다(또는그렇게착각하기때문이다).언제든지여행할수있고경험할수있으며그경험을이야기할수있게된세상,그리고그걸산경험으로받아들이는사회.”요컨대“사람들은뭔가를겪고나면자신이그걸아주잘아는것처럼군다”는것이다.“그러나그럴리가없다.서울에서태어나고자란정연씨가나보다서울을더잘안다고할수없는것처럼.중요한건어떤종류의경험이냐는것(어떤서울이냐는것)이다.추상적인의미에서의경험은백해무익하다.”

프라하?별로야.관광객들만바글바글해.베를린?이제끝물이지.아이슬란드?시규어로스가탈세로재판받은거몰라?심지어욘시는로스앤젤레스에살고있다구……멕시코시티가짱이야.아니면트빌리시.트빌리……뭐?조지아,그루지아라고도하는데거기수도,트빌리시.……미술관도루브르나테이트모던같은곳은경험의축에도못낀다.현지인들이가는곳(현지인맛집),심지어현지인들도잘모르는곳을발견해야한다!(왜그래야하는지는모름)그러나외지인과현지인이모두잘모르는곳은그럴만한이유가있다.여기서발생하는것이여행의역설이다.평평해진세계에서진정깊이있는경험을원할때발생하는역설.그러므로우리에겐두가지역설이있다.
1.경험의역설
2.여행의역설
진정한여행의달인은이두가지역설을모두뛰어넘는,또는개의치않으면서통과하는사람이다.아니면플라뇌르처럼본인이역설그자체이거나.(57~58쪽)

버지니아울프와로베르트발저의산책
도시의밤거리를걷는낭만적인예술가의무드도,여행자로서내몸으로직접감각하며여기저기를돌아보는무드도아니라면작가가말하는걷기와산책은무엇일까.작가는버지니아울프와로베르트발저의산책을예로든다.정체성으로부터의탈출이자주어진역할에서벗어나는것,의미를부여하기보다는불확실하고모호한상태로“우리를잠시나마일종의무한속으로밀어넣는”것으로서의산책.

산책은거창한의미이전에우리가할수있는유일한일이다.아름다운자연과세련된숍과산책로가없어도우리는걸을수있다.돈이없고친구가없고연인이없을때할수있는가장훌륭한일은걷는것이다.막차가끊긴서울시내를걷고,가끔은한강다리를걸어서건너기도하고,퇴근후에집에가기싫어정처없이쏘다니기도한다.울프와발저의산책이좋은이유는그들이걷는일에서의미를찾지않았고우울해하지도않았다는사실때문이다.그들의산책은정체성을잃고헤매는것이었지만멜랑콜리해지거나심각해지지않는다.그들은오로지걸을때만진정으로쾌활해진다.그리고그것이어쩌면산책과글쓰기가가진유일한공통점인지도모른다.우리는언젠가집으로돌아가거나결말을맺어야하지만그모든것을상실한어느지점에서,주제와의도,인과와의무를망각한지점에서만진정한글쓰기의기쁨을느낄수있다.(94~95쪽)

픽션과논픽션을뒤섞는작업방식,아이디어와우연성이확장돼나가는것을관찰하는그의글쓰기와도맥이닿아있는대목이다.“내가매력을느끼는것은언제나특정대의가아니라―대의에공감할때조차―대의들사이의틈새였다.대의를실천하면서도대의로부터(거의)자유롭게생활하고사유하기,상충하는대의를함께유지하기,대의들사이에공유되는공간에머물기.믿음없이살기,하지만어떠한믿음속에서”라는작가의말을빌리자면이책은‘예술없이살기,하지만어떠한예술속에서’,‘삶없이살기,하지만어떠한삶속에서’,‘걷기없이걷기,하지만어떠한걷기속에서’에가까울지모른다.겹겹의레이어와촘촘한레퍼런스를양껏누리며,책한권이어디까지팽창될수있는지경험해보는일,삶과세계를소설가로서접근하여새로운(논)픽션을써나가는작가의리듬에나의리듬을겹쳐보는일,그것이바로작가가말한‘상실의지점’‘망각의지점’‘틈새’에머무는자유이리라.요컨대어디에도머물지않고어디로도향하지않으며걷고머무는것.


<책속에서>
언어를배우고나면반어,아이러니,유머,농담,현학적인표현부터줄임말까지모든게가능해진다.그러니까도시를가로지르고표류하고발견하고점거하고걷기위해서는도시를배워야하고배우기위해서는발화?보행해야한다.(…)발화의교차와변환이자유롭게유통되는도시를만드는것,발화행위를통해매순간새롭게발명되는도시풍경을만드는것.그런데이런도시가가능할까?_16쪽

사실플라뇌르는한번도실제로존재했던적이없다.파리라는도시에서난립했던특정한종류의걷기와걷기를기록한텍스트에서발견한아이디어를작가들이재창조한것뿐이다.존재했던건걸음을걸었던사람들이며나머지는모두구성된것들이다._83쪽

코로나19로인해여행,관광,산책등의여가가중단되거나침해되는상황에서기대치못한호황을누리는게있다면넷플릭스나왓챠같은스트리밍사이트나인터넷쇼핑몰일것이다.다시말해,실제세계에서산책을못하게된사람들은웹에서산책을한다.
산책을너무아무데나갖다붙이는거아닌가싶을수도있지만,디지털산책은이미많이쓰이는개념이다.2018년있었던서울시립미술관삼십주년전시의제목은<디지털프롬나드>다.프롬나드는불어로산책이라는뜻이다.미디어이론가레프마노비치는웹서핑(그의용어로내비게이션)을두가지유형으로나눈다.산책자형과탐험가형.산책자형은플라뇌르가도시를산책하며아케이드와백화점,쇼핑몰에이끌리듯,웹을떠돌며각종플랫폼과인터넷쇼핑몰에이끌린다.반면탐험가형은게이머로지칭할수있는데이들은목적과성취가뚜렷하다.아메리카를발견한콜럼버스처럼이들은뭔가를얻기위한곳으로인터넷을이용한다._100~101쪽

나는백인이되고싶다는생각은하지않았다.이미오래전부터백인(남성)이되고싶었거나아니면한국에사는동안스스로를백인(남성)으로착각하고있었는지도모르기때문이다.백인(남성)의정의는다음과같다.세계가자기집앞마당이라고생각하는사람.그들은두려울게없고두려운게있다면그것은잘못된것이다,라고믿는다(그런의미에서플라뇌르적산책을실천하는데가장최적화된것은백인(남성)이다)._128~129쪽

지하철은독서하기가장좋은공간이다.픽션에서픽션으로갈아타기.사회는픽션의커뮤니케이션을통해,픽션트랜스퍼로유지된다.사람들은대부분지하철에서책이아니라스마트폰을보지만스마트폰도픽션이다.지그프리트질린스키는비디오가발명된오십년전부터시청각의서적화가진행되기시작했다고말했다.스마트폰은그연장이다.폰으로유튜브를보건틱톡을보건웹툰을보건핵심적인사실은같다.사람들은픽션을환승하고있으며픽션에의해운반되고있다는사실이다._167~168쪽

상우씨는얼마전미술작가김희천과부산비엔날레토크에서‘도시는겹쳐있다’는의미의이야기를했다.도시는하나가아니다.인간이하나의단일한주체가될수없는것처럼,서울안에는수많은도시와도시안의도시가있다.놀라운것은이렇게겹치고분리된시간과공간을하나의도시또는신체가끌어안는다는사실이다.그런의미에서공간은잠재력이크다.어떤것도동시에하나이상의존재일수없다.그러나특정공간안에두존재가있는것은가능하며우리는그렇게과거와현재,미래를구분한다.시간은우리를속박하지만―그래서존재에의미가부여되지만―공간은우리를해방시킨다.시간이공간화되면서문명이생겼다고할수있지않을까?물리학자리스몰린의관점에서시간은자연의근본성질인데반해공간은발생적성질이다.시간안에서우리에게는선택의여지가없다.시간의앞으로갈지뒤로갈지선택할수없다.하지만우리는공간에서어디로움직일지선택할수있다.이차이가우리의경험전체를빚는다.라이프니츠는말했다.“공간은다른무엇도아니며그질서또는관계다.”_233~2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