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 (이윤설 시집)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 (이윤설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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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리는 왼팔과 오른팔처럼 나란한 신의 어깨높이에서 흔들리며
어찌되었든 걸어가는 것일 것이라고”

울며 웃으며 세상에게 너에게 하하하
눈물어린 미소로 보내는 첫인사이자 작별인사
2006년 조선일보와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로 시와 더불어 연극과 시나리오, 드라마에서 활기차게 작품활동을 펼쳤던 이윤설 시인의 첫 시집을 펴낸다. 시인의 첫 시집이지만 2020년 10월 10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시인의 1주기에 맞춰 펴내는 유고시집이기도 하다. 등단 후 15년에 이르는 동안 시인이 오래 다듬었던 시편들은 갑작스레 닥친 불행을 직면하여 언어화하는 가운데, 불행이 끝내 꺾지 못한 의지를, 세상과의 작별을 앞두고 남은 미련을, 사랑하는 존재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그리고 다음에 대한 기약을 담고 있다. 그러니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는 이윤설이라는 한 시인의 삶이 그대로 응축된 시집이자 삶이다.
저자

이윤설

1969년경기도이천에서태어났다.명지대철학과를졸업하고중앙대대학원문예창작과에서석사를수료했다.2004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희곡이당선되었고,2006년조선일보와세계일보신춘문예에시가당선되었다.희곡집으로『불가사의숍』이있다.2020년10월10일지병으로세상을떠났다.

목차

시인의말

1부슬프면비린게먹고싶어져요
나무를맛있게먹는풀코스법/굴뚝청소부소녀/성난여자/예약된마지막환자/상속/프랑스풍남과여/우리는죽어요곧/작은사람들/음향효과만으로된비/그집앞/노래이듯이/구름의벗/구름의천렵/물의서가(書架)/가설무대

2부작게죽자작게
작게작게,하마/개미와나/꽃밭속에서하하하/나체자들/천사걸작선/엄마/인어경매/외톨이들은다그래/남몰래수영장/내생일쫑파티/판촉소년/호두아닌어떤곳/당나귀까닭/마부탄생/배우의역설

3부어찌하여서운하지는않고
불가리아여인/롤웨하스세트/흔들릴흔들림/놀리는논리들/혼자서배워보는재밌는마술놀이/이밤이새도록박쥐/이리듬은/빗방울소식/반의반의/내가슴에서지옥을꺼내고보니/이햇빛/우리는안다고할수는없다/혹시너와나사이오랫동안소식이끊긴다하더라도/어느별의편지

4부나는나로부터떠나온것이다
오버/베이비숍/빵과사과/이층침대의날들/자줏빛방/비의오로라/눈,이라는세상/기차생각/라벤더베개/초대/어린이집/일생/나는너를잊었다/재에서재로/가장멀리가는귀향

해설|꽃밭속에서하하하
박상수(시인ㆍ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비린게무지하게먹고팠을뿐이어요
슬펐거든요울면서마른나무잎을따먹었죠전어튀김처럼파삭부서졌죠
_「나무를맛있게먹는풀코스법」부분

시집의시작부터슬픔은눈물을닦을새도없이웃음으로전환된다.시인의등단작이기도한「나무를맛있게먹는풀코스법」에서화자는슬펐기에“울면서마른나무잎을”먹는다.그순간화자가가장먼저느끼는감상은“전어튀김처럼파삭부서”진다는식감이다.바로“슬펐지만슬픔을연료로길을내는활기찬상상력”(해설부분)으로,이윤설의시에는다양한존재들이활발하게생동한다.환자와의사의역할이뒤바뀌어일종의부조리극을펼쳐보이거나(「예약된마지막환자」),멀리서들려오는“악다구니여자목소리”에서“고려청자도이조백자도들까부수는/저암팡진본데없는”(「성난여자」)에너지를발견하고,“세작은사람들의”(「작은사람들」)질주를따라가듯이내내역동하는동안,“불가리아!”하고“벽력처럼외쳐지는”(「불가리아여인」)생명력이감출수없이비져나온다.이처럼시인이재바르게내딛는언어의힘찬발걸음은희곡과드라마,방송작가등으로야심차게활동을벌여나갔던시인의자신감에서기인할것이다.
이윤설의언어는특히리듬의측면에서고유하다.온점이없이,쉼표와느낌표,물음표만이‘캉캉춤’을추듯이휘몰아쳐시집을짜놓는다.차를타고“달려요달려우주의끝을보고야말”것처럼나아가는동안“어지러운시간의회전이우리를돌게할거”(「호두아닌어떤곳」)라고장담하고,‘천사의집’에서하느님을대신해소악마같은아이들을보살피는천사의설움을단번에풀어내는호흡(「천사걸작선」)은마치씻김굿을벌이는것만같다.전애인을“오리처럼뙤뚱뙤뚱따라다니”다“꺼지라”떠밀어져차에치여죽은‘나’가박쥐로환생해전애인을“퐁당퐁퐁당”놀래키고“쿡,쿡,쿡,”짓는웃음은어떠한가.“칼날”같은“눈빛”의“사랑을원하는삐진표정”(「이밤이새도록박쥐」)이내뱉는사랑스럽고치명적인의성어는읽는이를사로잡고놓지않는다.

하마가웃고있다물먹은가슴이왈칵터질것같아
우리둘이산책가자햇볕이따가운그늘없는거리로
너랑나랑출렁대는엉덩이를좌우로
호른협주곡같은방귀소리뿡뿡울리며나란히걸으면
먼밀림에선외로운마음의사냥꾼들이밧줄을버리고
악어들은우울했다가배를움켜잡고껄껄웃겠지
언덕을타오르는초록잎들과
꽁무니터질듯용쓰는마을버스사이로
바람의혀가습습하게얼굴을핥는우기도
열대치어같은종아리하얀여자애들이어머어머길을멈춰서도
우리둘이정류장앞에서탈듯말듯
운전수아저씨헷갈리게끔멀찍이서있는거참웃길거야슬퍼서
_「작게작게,하마」부분

리듬에맞춰어깨를들썩이며등장하는다양한존재들과그들을어루만지는고운언어는곧이윤설이라는이름과동격을이룬다.“작게작게”죽기를바라는‘나’와하마가산책을떠날땐총천연색작고귀여운존재들이자신을뽐내고‘우리’를웃기지못해안달이다.이윤설은슬픔을슬픔에머무르게하지않는다.가슴에가득한“푸른슬픔”을“이따만한푸른수영장”으로,터져나오는“울음”을“버들치나송사리들을닮은조그만물고기”(「남몰래수영장」)로바꾸어바다로놓아주는시인.‘나’의가난이벽을가볍게넘어옆방의사람에게닿는동안그가“너무착하게뒤척이는”것을헤아리는‘나’는,그리고‘우리’는누구인가.바로가난과슬픔의“노래가흘러들어”오는것만으로“죽을듯이”(「노래이듯이」)되는이들이다.타인의슬픔을너무나도예민하게감각하여마음에깊게아로새기는시인은“문득사랑하는습관은//서로나눈피의맑은원액,앙금이가라앉고뜨는맑은눈물을나누어마셨기때문일지도모르겠다”고말한다.서로멀리있는우리들이“어딘가에서하나의심장으로꿰어져이어지는날이올것이”(「개미와나」)라는다정한예언은이윤설에게자연스러운귀결인것이다.

왜그렇게쥐었다폈다꼬깃꼬깃해지도록사랑했을까오버
사랑해서주름이돼버린얼굴을버리지못했을까오버
엔꼬다오버

(……)

태어나참피곤했다
벌어진입을다물려다오오버
내손에쥔이편지를부치지마라오버
희망이없어서개운한얼굴일거다오버
코도안골거다오버
눅눅해지는늑골도안녕이다오버
미안해말아라오버
오버다오버
_「오버」부분

이윤설의따스한시선은분명사라지고스러지는것들을향한애틋한마음이지만,스스로의스러짐을앞두고시인은삶에대한애증을시로승화시킨다.그에게삶의모든것은원망스럽고저버리고싶은것이지만,그럼에도인간에대한희망과애정을떨쳐낼수없다.시집의후반부에선긴호흡마저버거운듯짧은호흡의시들이비탄처럼짧게이어지는‘이층침대’위의순간들이이어진다.“조용히멸망”하자며,“사람처럼은/더는살지말자구요”(「어린이집」)말하는목소리와,행의끝마다“오버”가반복되는가운데“오버다오버”(「오버」)로끝나는시의리듬은서럽고처연한슬픔을띤다.이시집에서유일하게온점이찍혀있는시인의말은시집을여는동시에삶을향한마지막소감을남긴다.“온것이안온것보다낫다./허나다시오고싶지는않다.”
하지만이윤설은삶과,삶에서만났던이들을지독히사랑했던만큼남은이들에게정답고눈물어린처음이자마지막인사를건넨다.“나는너를숨죽이며죽은체한다네가어서나를통과해버리길”(「나는너를잊었다」)바라는‘나’에게‘너를’하고부르는단어가자꾸만문장의정서법을위반하며튀어나올때,시인은도리어‘너’를잊지못한다는것을증명하고만다.“밤하늘북극성아래내가누워/이렇게너를기다려도좋겠다”(「어느별의편지」)고말하는시인은언어의몸을빌려최선의인사들을건넨다.삶을너무나사랑해삶의위에서‘캉캉춤’을추던시인은이렇게나웃으면안된다고느끼면서도내내“까맣게탄얼굴로좋아서입을가리고하하하”(「꽃밭속에서하하하」)웃는다.그토록눈물젖은미소를남기고시인은떠났지만시인이남긴말은그가그렸던세상을이곳에떠올리고,그리하여세계를새롭게만드는계기가될것이다.

아무래도저는싱그럽고유쾌한이윤설을잊지못할것같아요.(……)사람들이여.여기‘이윤설시인’의작품을소개합니다.하느님이보낸어린돌고래등에올라타고서태어나처음웃을때처럼하하하,웃으며꽃밭을헤엄치는사람.콧잔등과발가락이간지러워요.한결씩씩해진버들치와송사리가날고,어리둥절당나귀와칼날눈빛박쥐가날고하마는아직무거워서열심히달리고있어요.이층침대도양탄자처럼날아가네요.그리고이렇게천진하고사랑스러운사람이우리곁에있어요.
_박상수해설,「꽃밭속에서하하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