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가 있고 (이동욱 시집)

나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가 있고 (이동욱 시집)

$12.00
Description
“불을 밝히자 어둠이 저만치 물러난다
우리는 그만큼 나아간다”
말과 사물들이 스치며 피어나는 불꽃들
슬픔에서 섬광을 발견해내는 그윽한 시선
문학동네시인선 164번째 시집으로 이동욱 시인의 첫번째 시집을 펴낸다. 2007년 서울신문에 시, 2009년 동아일보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2019년에 먼저 소설집 『여우의 빛』을 펴낸 바 있다. 이동욱이 십여 년간 한 편 한 편 써내려온 64편의 시는 삶과 말, 사물이 스치는 찰나에 발생한 작은 빛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존재들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섬광을 시인은 마치 예민한 감광판처럼 감각해내고, 그러한 감각들이 감정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담담한 시적 언어로 형상화한다. 불을 밝혀 어둠이 물러난 만큼 우리는 나아간다는 그의 시구처럼, 시인이 일상에서 발견해낸 빛으로 빚어낸 시를 통해 우리의 영혼도 조금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이동욱

2007년서울신문신춘문예에시가,2009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이당선되며등단했다.시집『나를지나면슬픔의도시가있고』,소설집『여우의빛』이있다.수주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우리는서로마음에든다
꽃을키우는내성/준비물/포스트잇/바이러스/앵무새와나는/프레임,프레임/
장미의이름으로/거미의집에는창이많다/왜편지는항상그목적지에도착하는가/
齒/피스트-주먹에대한개인적고찰/랠리/젖은티셔츠의밤/사춘기/분홍색연구

2부귀를유린하는메아리
백지위를횡단하는/코너의사랑/소극장/관심밖의영역/책상은부드러워/
시간,불면,증후/胞子/野生/봉인/외계의탄력-그날우리는/
나를지나면슬픔의도시가있고/창공의파인더/간단한일/내가죽어누워있을때/
두개의손가락이서로알아보는것처럼

3부믿을수없는것들을
정전기양식/나는만개하여/마스터키/출생/여름의끝과가을의시작/게스트북/도어스/
연금술사의수업시대/그녀가고개를숙이네/너는이교도처럼차가운방에누워/
톱사슴벌레/갈피/혜화/표류

4부허공에슬픔을맡긴적이있다
BuenaVista/은박지/순종적인이별/발라드/전령/커밍아웃,장미/첫사랑/
너는지금전속력이니까/ChristmasSeal/위독한스케치북/사과깎기/짐작할뿐이야/
코인세탁소/싱글체어/트럼펫/刺/공작/최후의토르소/간신히몸을이끌고/洗手

해설|감각의연금술과미지에서의소요|신철규(시인)

출판사 서평

기억위로알약이떨어지면
꽃이핀다
나는그중에서아는꽃을꺾는다
끊어진자리가환하다
금방다른꽃이필것같다

쓰러진병에서계속물이나온다
빠져나온물의양만큼
내몸의공기가
자진해서병속으로들어간다
_「꽃을키우는내성」부분

시집을펼치면처음으로만나게되는이시는사물을통해감각을형상화하는이동욱의시적내러티브를잘보여준다.불면증에걸린화자는세계를보통사람들과조금다른질감과속도로인식하는데“기억위로알약이떨어지면/꽃이핀다”“빠져나온물의양만큼/내몸의공기가/자진해서병속으로들어간다”와같은문장들은그미세한감각과의식의변화를치밀하게기록하고있다.이와같은시적전략으로화자의고통은읽는이에게실체가되어다가온다.

세상에서가장낡은한문장이아직나를기다린다

(……)

마개를열어놓으며나는방금씻어낸글자들이닿고있을생의한구절을생각한다햇빛을피해구석으로몰린잠속에는오랫동안매몰된광부가있어수맥을받아먹다지칠때면그는곡괭이를들고좀더깊은구멍속으로들어가곤했다그가캐내온,이제는쓸모없는유언들을촛농을떨어뜨리며하나씩읽어본다어딘가엔이것이책을녹여한세상을이루는연금술이라고쓰여있을것처럼그리하여지금나는그세상에서오래도록낡아갈하나의문장이다언젠가당신이나를읽을때까지목소리를감추고시간을밀어내는정확한뜻이다
_「연금술사의수업시대」부분

등단작인「연금술사의수업시대」는특별히주목할만하다.이동욱은연금술사처럼현실세계의법칙을뛰어넘는어떤새로운물질의변화과정에집중하고있다.그를기다리는것은“세상에서가장낡은한문장”이다.태초의신비를간직하고있는,이세계의모든것을아우르는유일한진리를담고있는문장은오래전에누군가에의해쓰인적은있지만사람들의관심밖으로밀려나면서한없이낡아간다.이러한현실에서연금술이라는행위는시쓰기에대한시인의인식과밀접하게관련되어있다.일상에서맞닥뜨리는신비주의적경험과정신적고양은하나의순간적인이미지로구체화되었다가사라질뿐이지만,자신만의고유한발화와표현을통해창조를이루어내는것이시인의역할이라는자의식이바로그것이다.

내게아직
허기진빛이있어
미신처럼
나를두고
머리를꼬며
외로떨어지는
목련이다
_「포스트잇」부분

창가에놓인빈유리병
햇빛이지층처럼쌓여있다
오전과오후,
저녁연기와밤의호흡이다녀갔다

빛의수심속,
미지의생물이
간혹나를올려다보는

복숭아조각이있던자리에
손을오므려넣어본다
?_「두개의손가락이서로알아보는것처럼」부분

초식동물목덜미를파고드는송곳니처럼
담장위로박혀있는병조각이햇빛과첨예하다
_「齒」부분

그와같은찰나의반짝임에대한인식은빛의이미지로주로구현된다.이시집에서는유난히빛의이미지가자주등장하는데그것은그의눈길이자신도모르는사이에반짝이는곳을향하기때문일것이다.그는지극히일상적인사물들에서눈부신빛을발견해낸다.그것은어쩌면“가망없는것들은/왜이다지도무성할까”라고말하며서도“암실의수심속에서/믿을수없는것들을밀어올”리고자하는그의마음의표상일것이다.
단테의『신곡』에서빌린「나를지나면슬픔의도시가있고」의한구절인“붉을밝히자어둠이저만치물러난다/우리는그만큼나아간다”는그런면에서의미심장하다.시인이일상에서발견해내는것은그러한찰나의순간,우리에게어떤번뜩임이나섬광으로보일그러한순간이기때문이다.존재와존재가부딪히는순간,사물과사물이스쳐가는순간에발생하는불빛은한밤중발생하는스파크처럼미약하며순식간에소멸해버린다.하지만조르조아감벤이“모든문학은불의상실에대한기억”이라고말한것처럼,모든신화가사라진이시대에잠시잠깐일어나는불씨는우리를밝혀주는모든것이되기도하는것이다.그래서일까?그의시집을덮은뒤에도오랫동안눈앞에빛의잔상이어른대는듯하다.

이동욱은외계의탄력또는반동을충실하게기록하는데탁월한시적능력을보여준다.(……)그는보는주체와보이는대상의공현전성을바탕으로‘있음’그자체의현전에집중하면서자신이관찰하는자리인‘지금여기’에있는것을독자가대면하게한다.그것은때로냉혹할정도로비정한관찰자적거리에의해나타난다.그거리는외부의대상뿐만아니라시적주체의내면에도그대로유지된다.마치코엔형제의영화처럼그것은잔혹하면서도이상하게아름답다.
_신철규시인,해설「감각의연금술과미지에서의소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