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에게 미소를 (이경 소설)

비둘기에게 미소를 (이경 소설)

$13.00
Description
“수빈은 불행이 어떻게 오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확률 너머의 세계에서 밀어닥친다.”
발 둔 곳이 무너져내려 향할 곳은 아래뿐일 때,
그럼에도 잿빛 너머의 희미한 빛을 본다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군더더기 없는 활달한 힘, 소통의 문제를 다루는 시선과 방식에 있어서의 개성과 건강성”(소설가 오정희, 전상국) “인간과 삶에 대한 애정과 통찰”(문학평론가 김미현)을 지녔다는 평과 함께 제13회 김유정소설문학상, 제2회 『세계의문학』 신인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작가 이경의 두번째 소설집 『비둘기에게 미소를』이 출간되었다. 화려한 도시의 응달에 도사린 불온과 비참을 강렬하게 묘파한 첫 소설집 『표범기사』(민음사, 2011) 이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시대의 변화된 모습을 공들여 관찰해온 이경은 이번 소설집을 통해 청년 홈리스, 배달 플랫폼 노동자, 미혼모 등 오늘날의 현실에 발 딛고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려내며 그 바탕을 이루는 시스템의 문제를 직시한다.
저자

이경

2007년김유정소설문학상,2008년『세계의문학』신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표범기사』,장편소설『소원을말해줘』가있다.

목차

비둘기에게미소를_007
스튜디오베이비_033
당연히_057
재난수령인_081
기부왕_105
수태고지_131
A28_163

해설│김녕(문학평론가)
모두가낭떠러지를걸을때_191

작가의말_211

출판사 서평

부러진날개를움켜쥐고
아래로아래로걸어내려가는인물들

이경의소설속인물들은제각기자리할곳을찾지못하고낭떠러지까지내몰려있다.표제작이자소설집의문을여는「비둘기에게미소를」의‘나’는대학을졸업하고비정규직을전전하다병원에서아르바이트직원으로일하고있다.“한달로치면평균임금에훨씬못미쳤지만최저시급보다는높”(11쪽)은시급을받는자리를구한것을‘나’는‘행운’이라여긴다.그러나얼마지나지않아‘나’는공간낭비를줄인다는명목으로지하로쫓겨나듯내몰리고,그곳에서도더욱좁은곳으로떠밀리며‘숨쉴공기’마저빼앗긴듯느낀다.그러던어느날옆사무실의‘류계장’이‘나’에게비둘기한마리를떠맡긴다.날개다친비둘기를몰래거둬치료하는중인데,자신의사무실천장을돌아다니는길고양이때문에비둘기가겁을먹어치료가늦어진다는것이다.‘나’는간호사들의눈을피해비둘기를돌보기시작하지만,금방찾아간다던약속을지키지않는류계장때문에점점곤혹스러워진다.
이어지는「스튜디오베이비」에서‘신우’와‘영안’의처지역시별다를바가없다.사대보험혜택조차없는박봉의베이비스튜디오에서사진작가로일하는신우는‘사람냄새’가나지않도록흔적없이지내는조건으로스튜디오에서숙식을해결하며생활한다.어시로일하는영안또한“어딜가도최저임금에계약직이니까그게그거예요.한두해일하고잘릴까조마조마한것보다여기있는게낫죠”(45쪽)라고말하며열악한처우를감내한다.이런그들이일하는스튜디오한편에는“남들사는것처럼세트장에서사진이라도찍어보”(53쪽)고싶었던부모들이촬영을마치고도비용을지불하지못해찾아가지않은앨범과액자들이쌓여있다.
「재난수령인」의‘나’는대학등록금을마련하기위해배달플랫폼노동자로일한다.국가장학금을받으려면가족구성원모두의동의가필요한데,서류상에만존재할뿐오년전가출하고없는아버지의동의를구할길이요원한탓이다.엎친데덮친격으로국가에서는의료급여를신청한아버지의부양의무자,즉‘나’에게가족관계해체사유서까지요구한다.그‘사유’를물으러찾아간아버지의병실에서구청관계자는“자식된도리로부양의책임이있지않겠”(100쪽)느냐고묻는다.문학평론가김녕이짚은것처럼,국가는“완전무결한단절이나완전무결한부양,둘중에하나를택하기를강요”(해설,201쪽)할뿐,그사이의가능성을헤아려주지않는다.
이경은이처럼개인을보호하고포용해야할시스템이외려개인을떠밀고배척하는부조리의면면을사실적인필치로드러내보인다.이속에서개인의존재는‘낭비’로여겨지고,‘사람냄새’는지워야마땅한것이되어버리고만다.시스템은그저개인을저울위에올려놓고받아들일지내칠지가늠할뿐이다.



울타리도,파수꾼도부재한
그낭떠러지를걸을때

「기부왕」과「수태고지」는국가시스템의연장선상에서가정내의질서,즉가부장제의실패를조명한다.「기부왕」의‘나’는자식을돌보기는커녕비상식적인기부만을거듭하는‘기부왕’아버지를떠나독립해살고있다.재수학원비를마련하기위해편의점아르바이트등을구해보지만그벌이로는생활비를충당하기에도모자란다.결국공부를그만둔‘나’에게어느날피차일반인친구‘창새기’가“사람이그래도미래가있어야”(115쪽)한다며클럽의푸싱아르바이트를제안한다.그러나당연하게도그것은미래를보장해줄수없고,‘나’는‘가정’에대한희망의끄나풀을잡고집으로돌아간다.하지만그곳에서마주하는건완전히무너져내린‘가장’의모습뿐이다.
가부장제의실패는「수태고지」에서더욱통렬하게묘사된다.어느날불쑥임신해온열일곱살‘소마’는채근하는아버지에게“홀로잉태를했”(136쪽)다며아무렇게나둘러댄다.그런데이토록허무맹랑한거짓말을들은아버지는소마를‘성모마리아’로내세워부흥회를열고신도를모은다.그는소마와관계를맺은장본인이나타난뒤에도끝내진실을외면한다.
앞의작품들과달리「당연히」는중산층의삶에편입해본적있는인물들을화자로내세운다.그러나그들또한자리할곳을찾지못한처지이기는마찬가지다.‘수빈’과‘제영’부부는투자의담보로살고있던아파트를내놓고임시거처를얻는다.좁아진집에둘수없는짐은이삿짐업체에임시로맡겨둔다.그러나투자는실패하고,석달뒤찾아가려던짐은삼년이지나도록찾을수없다.그럼에도그들은계속해서보관료를지불하며현재를받아들이지않고유예한다.짐이어딘가에보관되어있다는사실이일상을되찾을수있는증거라도되는것처럼여기던그들의믿음은이삿짐업체의트럭을실은배가물밑으로가라앉았다는소식과함께무너진다.세월호참사를떠올리지않을수없게하는이결말은개인을보호해주지않는붕괴된시스템의이미지를선명하게드러낸다.


미약한날갯짓에일기시작하는바람처럼
저너머에서비쳐오는희미하고도분명한빛

이처럼내몰린인물들이마지막으로향할곳은어디일까.소설집의끝에놓인「A28」에서‘그녀’는개발에대한풍문에전재산을끌어모아K지구로향한다.포클레인만가득한살풍경한창밖을바라보던‘그녀’는어린시절공사현장에서생활하다시피하던아버지와그의밑에서포클레인을몰던‘천기사’를떠올린다.과거둘은한여자에게나란히마음을빼앗겼지만여자는천기사에게마음을내주었고,아버지는곧“알맹이가홀랑빠져”(186쪽)버리고말았다.어린‘그녀’는아버지의집채만한포클레인을움직이려천기사에게서열쇠를훔쳐내고,그것을끝내지켜야만한다고,포클레인을움직여야한다고믿는다.
이경의소설은“좁은틈속으로스며들기위해애쓰는,쓸쓸한존재들”(‘작가의말’,213쪽)을내버려두지않고그들쪽으로한걸음더다가간다.「비둘기에게미소를」의‘나’는병원에비상상황이발생하자혹처럼여기던날개다친비둘기를품에안고움직인다.「스튜디오베이비」의신우는아이의사진을보기만이라도하고싶다는한아이엄마의전화를받은날밤,미출고사진이쌓여있는창고벽에서빛이새어나오는틈을발견한다.「당연히」의수빈과제영부부는배가가라앉는사건이후광장에나가인파속에서촛불을밝힌다.이경의소설은이처럼희미하지만분명히존재하는빛을그려보인다.마치그럼에도불구하고그‘너머’가있다고말해주는것처럼.잿빛너머의희미한빛을본다면,이야기는결코낭떠러지에서끝나지않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