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입술들은말한다
자신의이름과고향과사랑하는이에대해
절망과분노와슬픔과죽음에대해
오늘저녁먹은음식과
산책길에만난노을빛에대해
기후위기와정부의부동산대책에대해
생일과장례,술과음악,책과영화,개와고양이에대해
마을을휩쓸고간장맛비에대해파도소리에대해
(……)
오늘도잠못드는이유에대해
왜자신이이야기를멈출수없는지에대해
복용해온약에대해
또는피흘리는말,다른입술들에대해
_「입술들은말한다」에서
그러나나는톨스토이를
고슴도치가되지못한여우가아니라
오히려고슴도치에서여우가되려고했던작가라고생각해
아니,고슴도치이자여우인존재가되려했다고
세상잡사를그려내는손과
종교적열망에사로잡힌머리사이에서
믿었던것과믿고싶었던것과믿어야만하는것사이에서
이미존재하는것과당연히존재해야하는것사이에서
정치적사건과정신적사건사이에서
전쟁과평화사이에서
지적오류와도덕적오류사이에서
고슴도치의머리와여우의손을지녔던작가라고말이야
차라리톨스토이의위대함은
고슴도치와여우중어느하나가될수없었던고뇌에있지
(……)
토막난말과표정들을놓치지않으려애를쓸뿐,
온전히믿을수도내칠수도없는
여우의고민을
고슴도치의지혜보다열등하다고할수는없겠지
내가변호하고싶은건
톨스토이가아니라나자신인지도모르겠지만말야
_「고슴도치와여우」에서
내가돌을보는게아니라
돌이나를물끄러미바라보고있다고느낄때
돌을집어드는것은
돌의시선을피하는방식인지도모르지
특별할것없는그돌은
나에게로와서비로소돌이되었다
이름을붙이거나부르는일따위는하지않았다
돌은나의바깥,차고단단한
돌은주머니속에서조금씩미지근해졌다
(……)
나의돌이아니라그냥돌이될때까지
나를더이상바라보지않을때까지
그때까지만곁에두기로한다
_「그조약돌을손에들고있었을때」에서
여행에서돌아오자
미루어둔불행이일제히들이닥쳤다
벽장문사이로쏟아져내리는잡동사니들처럼
예외적인날들은끝났다고
그것보라고
이게바로도망칠수없는네몫의삶이라고
누군가귓가에속삭이는것같았다
(……)
여행은끝나고,이제
쓰디쓴풀과거친빵을삼켜야하는시간
물을긷고또길어야하는시간
구멍뚫린독에
끝없이물을길어부어야했던다나이드처럼
_「여행은끝나고」에서
그럼에도불구하고,
아직무언가가능하다고말하는사람이되는것은
어떤어둠에기대어가능한일일까요
어떤어둠의빛에눈멀어야가능한일일까요
세상에,가능주의자라니,대체얼마나가당찮은꿈인가요
_「가능주의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