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주의자 - 문학동네 시인선 167

가능주의자 - 문학동네 시인선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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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나희덕

1966년충남논산에서태어나연세대국문과와동대학원박사과정을졸업했다.1989년중앙일보신춘문예에시「뿌리에게」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현재서울과학기술대학교문예창작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김수영문학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현대문학상,이산문학상,소월시문학상,임화예술문학상,미당문학상등을수상했다.

시집으로『뿌리에게』,『그말이잎을물들였다』,『그곳이멀지않다』,...

목차

시인의말

1부벽의반대말은해변이라고
붉은거미줄/입술들은말한다/그날이후/다락방으로부터/조각들/찢다/꿰매다/벽의반대말/흐르다/퇴비의공동체/거대한빵/누룩의세계/길고좁은방

2부얼룩을지우는얼룩들
유령들처럼/지나가다/토리노의말/허기가없으면/줍다/허삼관매혈기/선위에선/묻다/이덕구산전/너무늦게죽은사람들/어떤목소리도들리지않는것처럼/피투성/저바위는언젠가

3부두려움만이우리를가르칠수있다
어떤부활절/사라지는것들/숙과홀/홍적기의새들/곰의내장속에서만/북극의나눅/빙하장례식/장미는얼마나멀리서왔는지/젖소들/매미에대한예의/검은잎사귀/저낙엽이돌아오지않는다면/피난의장소들

4부달리는기관차를멈춰세우려면
가능주의자/달리는기관차를멈춰세우려면/차갑고둥근빛/고슴도치와여우/수탉한마리/얼굴을갈아입다/사과를향해/그조약돌을손에들고있었을때/백운에서다산생각/그들의정원/이별의시점/여행은끝나고/건너다

해설|가능주의자,불가능한미-래의시학
최진석(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입술들은말한다

자신의이름과고향과사랑하는이에대해
절망과분노와슬픔과죽음에대해
오늘저녁먹은음식과
산책길에만난노을빛에대해
기후위기와정부의부동산대책에대해
생일과장례,술과음악,책과영화,개와고양이에대해
마을을휩쓸고간장맛비에대해파도소리에대해

(……)

오늘도잠못드는이유에대해
왜자신이이야기를멈출수없는지에대해
복용해온약에대해
또는피흘리는말,다른입술들에대해
_「입술들은말한다」에서


그러나나는톨스토이를
고슴도치가되지못한여우가아니라
오히려고슴도치에서여우가되려고했던작가라고생각해
아니,고슴도치이자여우인존재가되려했다고

세상잡사를그려내는손과
종교적열망에사로잡힌머리사이에서
믿었던것과믿고싶었던것과믿어야만하는것사이에서
이미존재하는것과당연히존재해야하는것사이에서
정치적사건과정신적사건사이에서
전쟁과평화사이에서
지적오류와도덕적오류사이에서
고슴도치의머리와여우의손을지녔던작가라고말이야

차라리톨스토이의위대함은
고슴도치와여우중어느하나가될수없었던고뇌에있지

(……)

토막난말과표정들을놓치지않으려애를쓸뿐,
온전히믿을수도내칠수도없는
여우의고민을
고슴도치의지혜보다열등하다고할수는없겠지

내가변호하고싶은건
톨스토이가아니라나자신인지도모르겠지만말야
_「고슴도치와여우」에서


내가돌을보는게아니라
돌이나를물끄러미바라보고있다고느낄때
돌을집어드는것은
돌의시선을피하는방식인지도모르지

특별할것없는그돌은
나에게로와서비로소돌이되었다
이름을붙이거나부르는일따위는하지않았다

돌은나의바깥,차고단단한
돌은주머니속에서조금씩미지근해졌다

(……)

나의돌이아니라그냥돌이될때까지
나를더이상바라보지않을때까지
그때까지만곁에두기로한다
_「그조약돌을손에들고있었을때」에서


여행에서돌아오자
미루어둔불행이일제히들이닥쳤다
벽장문사이로쏟아져내리는잡동사니들처럼

예외적인날들은끝났다고
그것보라고
이게바로도망칠수없는네몫의삶이라고
누군가귓가에속삭이는것같았다

(……)

여행은끝나고,이제
쓰디쓴풀과거친빵을삼켜야하는시간
물을긷고또길어야하는시간

구멍뚫린독에
끝없이물을길어부어야했던다나이드처럼
_「여행은끝나고」에서


그럼에도불구하고,

아직무언가가능하다고말하는사람이되는것은
어떤어둠에기대어가능한일일까요
어떤어둠의빛에눈멀어야가능한일일까요

세상에,가능주의자라니,대체얼마나가당찮은꿈인가요
_「가능주의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