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소년의 외출 (김근 시집)

뱀소년의 외출 (김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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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그리운 마음일 때 ‘I Miss You’라고 하는 것은 ‘내게서 당신이 빠져 있기(miss) 때문에 나는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뜻이라는 게 소설가 쓰시마 유코의 아름다운 해석이다. 현재의 세계에는 틀림없이 결여가 있어서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한때 우리를 벅차게 했으나 이제는 읽을 수 없게 된 옛날의 시집을 되살리는 작업 또한 그 그리움의 일이다. 어떤 시집이 빠져 있는 한, 우리의 시는 충분해질 수 없다.

더 나아가 옛 시집을 복간하는 일은 한국 시문학사의 역동성이 드러나는 장을 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나의 새로운 예술작품이 창조될 때 일어나는 일은 과거에 있었던 모든 예술작품에도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 시인 엘리엇의 오래된 말이다. 과거가 이룩해놓은 질서는 현재의 성취에 영향받아 다시 배치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빛에 의지해 어떤 과거를 선택할 것인가. 그렇게 시사(詩史)는 되돌아보며 전진한다.

이 일들을 문학동네는 이미 한 적이 있다. 1996년 11월 황동규, 마종기, 강은교의 청년기 시집들을 복간하며 ‘포에지 2000’ 시리즈가 시작됐다. “생이 덧없고 힘겨울 때 이따금 가슴으로 암송했던 시들, 이미 절판되어 오래된 명성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시들, 동시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젊은 날의 아름다운 연가(戀歌)가 여기 되살아납니다.” 당시로서는 드물고 귀했던 그 일을 우리는 이제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저자

김근

1998년『문학동네』를통해등단했다.시집『뱀소년의외출』『구름극장에서만나요』『당신이어두운세수를할때』『끝을시작하기』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개정판시인의말

1부
사랑/밤마다축제/어제/헤헤헤헤헤헤,/오래된자궁/죽은나무/우물/오래된아이/江,꿈/어느날봄이내게로와서/뱀소년의외출/벌써오래전,지금

2부
그림자밟기/강변/골목/어미들/너는자전거를탄다/어느날아침/어두운,술집들의거리/모래바람속/바깥1/바깥2/담벼락사내/공중전화부스살인사건/늙은오후/종점근처/무서운설경(雪景)

3부
이월/마음속폐가한채/잘접어만든종이인형처럼/봄밤/검은손톱/늙은왕/저녁/거울/작은방/읽다만책/섬이거기있었다는사실을/연애편지

4부
햇볕좋은날/비야비야비야/흰꽃/바리데기/홀딱벗는이할애비좀보아요/할미는하루종일꽃뱀과논다/길,그하루무덥던/비오는바다가시커멓게/입을다물수없는노래

출판사 서평

■기획의말

그리운마음일때‘IMissYou’라고하는것은‘내게서당신이빠져있기(miss)때문에나는충분한존재가될수없다’는뜻이라는게소설가쓰시마유코의아름다운해석이다.현재의세계에는틀림없이결여가있어서우리는언제나무언가를그리워한다.한때우리를벅차게했으나이제는읽을수없게된옛날의시집을되살리는작업또한그그리움의일이다.어떤시집이빠져있는한,우리의시는충분해질수없다.

더나아가옛시집을복간하는일은한국시문학사의역동성이드러나는장을여는일이될수도있다.하나의새로운예술작품이창조될때일어나는일은과거에있었던모든예술작품에도동시에일어난다는것이시인엘리엇의오래된말이다.과거가이룩해놓은질서는현재의성취에영향받아다시배치된다는것이다.우리는현재의빛에의지해어떤과거를선택할것인가.그렇게시사(詩史)는되돌아보며전진한다.

이일들을문학동네는이미한적이있다.1996년11월황동규,마종기,강은교의청년기시집들을복간하며‘포에지2000’시리즈가시작됐다.“생이덧없고힘겨울때이따금가슴으로암송했던시들,이미절판되어오래된명성으로만만날수있었던시들,동시대를대표하는시인들의젊은날의아름다운연가(戀歌)가여기되살아납니다.”당시로서는드물고귀했던그일을우리는이제다시시작해보려한다.

문학동네포에지4차분리스트

031김승희『태양미사』
032고운기『밀물드는가을저녁무렵』
033양애경『불이있는몇개의풍경』
034윤희상『고인돌과함께놀았다』
035조용미『불안은영혼을잠식한다』
036유강희『불태운시집』
037조말선『매우가벼운담론』
038박지웅『너의반은꽃이다』
039김경인『한밤의퀼트』
040김근『뱀소년의외출』

■시인의말

초판시인의말

노래를위한흐물거리는각주

1)태몽은모른다.돌아가신할아버지가태몽을꾸었다고어머니가전하지만,그꿈에닭이노닥거렸단것밖엔들은바없다.잉어가품안으로달려들었다거나곱상하고신비로운아이하나가복숭아를전해주었다거나마른못에서용한마리가솟구쳐하늘로올라갔다는이야기따위야모두남의이야기다.할아버지의뗏장을들추고물어볼수도없으니태몽따위야있어도그만없어도그만인,살면서옷에붙은티끌처럼생각해버리고말법도하지만그럴수없어지는것이희한하다.내가태몽을꾸미게된연유다.이렇게도꾸미고저렇게도꾸몄다.없었던기억이있었던기억이되어버렸다.남의기억이내기억이되고내기억이남의것처럼낯설어져버리기도하고두기억이또한얼크러설크러지기도했다.태몽이야설령안다고한들본래내기억일리도만무하지만,꾸미다보니내가내태몽을꾼것처럼생각되고말기까지하는것이다.해서나는수백가지태몽을갖게되었다.한데,그것참곤혹스러운일인게,가만보니,그것은수백사람의태몽이기도하다.애초에그자리가비어있었으므로수백사람이그빈자리를채운들,나는아무불만도없지만,채우고채우고또채우고보면,나는어디있단말인가,하는개뿔같은의문만밤새고개를쳐드는것이아닌가.그러나기억도그럴진대없었던내가수백사람으로인해있어진들어떠랴,해도또생각해보는것이다.수백사람의태몽이라면수천사람의태몽은못될것인가,수만사람의태몽은못될것인가,그수만사람은또한수만가지얼굴을한모든나는아닐것인가.생각의꼬리하나를잡고흔들리고흔들리다.

2)태어난집은사라졌다.몇해전몹쓸놈의길이집을뒤덮고갔다.길이뒤덮기전에우리황급히빠져나왔다.세간도살았던모양그대로둔채오로지몸만빠져나와새로살집으로기어들어갔다.그집에는뒤란이있고항아리가하나묻혀서된우물이있었다.뒤란에선징그러운붉은열매들이열리고축축한바닥으로우산이끼가자라났다.붉은열매들은항상내잇속을붉게물들였다.장독대도하나있었는데,독안에서무슨장이발효되는지알수없었다.얼만큼구더기가꿈틀거리는지도알길없었다.한번도스스로그장독들의뚜껑을열어본적없다.우물에는이따금뱀이기어들어가빠져있곤했다.그뱀을꺼내는것은늘할아버지의몫이었는데,어머니가그때어떤표정을지었는지는아무리해도생각나지않는다.아버지는그집에거의없었다.아버지없이도,였는지,뱀이자꾸우물에빠진뒤였는지,그건모르겠고,어머니는그집에서자주유산을해댔다.생겨나지못하고죽은아기들은어디로갔나.술에취해주렁도버리고돌아오는길섶에쓰러져있던증조할아비와얼굴이반이나큰점에뒤덮여오래벽에똥칠을하던증조할미와할아비의끝나지않는징용간이야기와할미의때마다행해지는비손과측간어둠속에눈을빛내던구렁이한마리와애장터쪽에서몰아오던비같은것들은사라졌다.사라져없으니기억하기도어렵다.기억하려고애에애를보태써보지만온전하지않다.온전하려고아예애쓰지도이젠않는다.그렇대도그것이또없었다고누가말할까.아버지가태어난집은물속에있다.어느해여름물빠진저수지를헤집고다니다가뼈다귀하나를발견했는데,그것은아버지가오래전에버린기억의허연해골이었더랬다.새로이사간집은촌수도헤아리기힘든고모김덕룡씨가죽어사흘동안장대비에젖어불어있던집이다.

3)뛰며놀며자랐던서울변두리의판잣집들과골목들은사라져없다.배꽃흩날리던자리엔고층아파트들이우뚝우뚝일어서흔들리고있었던것인데,말해무엇하랴.사라지는것들은다어미다.사라진것들은그러므로다신화다.

4)자연으로옛날로돌아갈수있다고믿는자들이있는모양이다.그들이야말로세계가아직도견고하다고믿는자들일것이다.어느틈에부드러운피부에싸여있는세계가제피부에생채기를내어시뻘건속살을보여줄때그들은기절초풍하고만말것인가.어미에게돌아간들이미쭈글쭈글천만개주름을단자궁일밖에.어하리넘차어어허.

5)『삼국유사』의해편,「蛇福言不」.사복(蛇福)이외출을했는지도확인할길없지만,죽은어미를장사지내기위하여원효에게찾아간것만은분명한듯보인다.열두살이될때까지,아비없이과부의몸에서태어난이아이는오직바닥에누워만있었다.한데그가원효에게찾아가는길은구렁덩덩신선비가제아내에게허물을맡기고과거를보러가는길같지않았겠는가.시간이나공간따위가거기정해져존재한다고말할수없다.그가끈적거리는폐수처럼사람들이흘러다니는종로바닥을와보지않았다고누가얘기할것인가.그때모든사물과세계가제본디형상을갖추고있었는지도알수없다.사복이죽은어미를지고띠풀을뽑아연화장으로마침내들어가기전까지,구렁덩덩신선비가뒤늦게찾아온본처와함께구멍속세계에서행복하기전까지,딱그전까지만,시다.

6)노래로가는길은멀다.온통흐물거린다.

2005년9월
김근


개정판시인의말

너로부터,

너를향해

눈부셔도

부서져도

너를향해

나무수히

스러지며

다시살며,

2021년11월
김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