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맥도날드 : 한은형 장편소설

레이디 맥도날드 : 한은형 장편소설

$14.50
Description
‘맥도날드 할머니’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뒤바꾸는
실제보다 더 사실적인 소설의 탄생
인간과 사회의 본모습을 날카롭게 간파하는 소설가 한은형의 두번째 장편소설 『레이디 맥도날드』가 출간되었다. 무모하고 비논리적이고 불완전한 것만이 갖는 아름다움을 돌출시킴으로써 “소리 없이 내부의 치명적 균열을 야기”(소설가 정이현)하는 단편들을 선보인 첫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출생의 비밀’과 ‘자살’이라는 화두를 오가며 “지극히 탐미적인 형식과 지극히 사색적인 내용”을 “화가의 문체와 철학자의 상상력”(문학평론가 정여울)으로 표현해낸 첫 장편소설 『거짓말』 이후 내놓는 반가운 신작이다.

『레이디 맥도날드』는 한은형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를 성공적으로 완수해낸 유의미한 작품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맥도날드 할머니’로 알려진 한 실존 인물의 삶을 복원하고 다시 쓰는 일에 몰두한다. 맥도날드 할머니는 매일같이 트렌치코트를 차려입고 정동 맥도날드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던 노숙인으로, 2010년대 초 언론에서 그녀를 취재해 소개한 후 거센 반향이 일어난 바 있다. 부족한 생활비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방송국 PD에게 호텔에서 음식을 대접해달라고 부탁하는 그녀의 모습은 ‘허영심에 빠져 현실 파악을 못한 채 자존심만 세우는 여성 노숙자’ 그 자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실 그녀는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일상을 아름답게 일궈나가고자 했던, 우리와 다르지 않은 한 사람이었던 것은 아닐까? 한은형은 『레이디 맥도날드』에서 세간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방송 화면 속 맥도날드 할머니를 작가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누군가를 이해 가능한 인물로 재조명하는 이 작품은 소설이라는 장르만이 지닌 힘을 되짚어보게 하는 귀중한 팩션이다.
저자

한은형

소설가.2012년문학동네신인상으로등단해2015년한겨레문학상을수상했다.장편소설『레이디맥도날드』,『거짓말』,소설집『어느긴여름의너구리』,경장편소설『서핑하는정신』과산문집『당신은빙하같지만그래서좋다고말하는사람이있어』,『우리는가끔외롭지만따뜻한수프로도행복해지니까』,『오늘도초록』,『베를린에없던사람에게도』,『영롱보다몽롱』(공저)등이있다.

목차

벤치009…친구들015…레이디022…새벽다섯시030…여자040…뉴센추리홀048…정동맥도날드056…트렌치코트063…릴리미용실075…뉴스페이퍼085…제안093…탑골공원100…옷110…노인들118…안국맥도날드124…커피132…시청자게시판141…기도152…광화문스타벅스160…블루베리치즈케이크172…랍스터178…오늘의수프189…나인스게이트199…김윤미212…헝그리보이221…밥229…최신양241…돈247…새해262…목욕278…기적288…메시아294…민수경301…운307…오늘320

작가의말324

출판사 서평

“나는이왕이면멋있고아름다운게좋아요.
선생도그렇지않아요?”

어쩌면당신의미래가될수도있었던
한여성노숙인의마지막일년

『레이디맥도날드』의주인공은맥도날드할머니가맞지만,소설에등장하는그녀는작가가만들어낸가상의인물이다.작가는기존의방송내용을토대로그녀의사소한발언과행동까지철저히묘사하는한편,그녀의삶에개연성있는허구의서사를부여한다.그결과지금껏우리가알고있던맥도날드할머니보다더욱입체적으로살아움직이는‘김윤자’라는인물이탄생하게되었다.
김윤자는길위를떠돌지만노숙인의전형에서벗어나있기에눈에띄는가십거리가된다.“길에서자지도않고구걸하지도않고흐트러지지도않는다.동정을바라지도않고,도움을줘도탐탁지않아한다.”(224쪽)‘할머니’가아니라‘레이디’로불려야마땅하다고여겨질만큼어려운환경에서도고고한태도를잃지않는그녀에게서는고집을뛰어넘은강인한정신력이느껴진다.소설은그녀의강인함을극적으로보여주는장면에서시작된다.

벤치에앉아죽었다.그랬다.길에쓰러진채로죽은게아니었다.칠십대의여자노인이벤치에앉아죽었다는뉴스를전해들은사람들은뭐라말할수없는복잡한기분을느꼈다.
(…)
잘은몰라도죽음에동반된다고들어왔던증상들,그러니까경련,광증,공포,환시는자신의것이아니라는듯그렇게꼿꼿하게앉아죽을수있다니.그건그야말로용기있는행동이었다.강한정신을가진사람이아니라면할수없는일.(10~11쪽)

숨을멈춘후에도쓰러지지않고기어이꼿꼿이앉아있음으로써‘길거리에누운’모습을보이지않으려한이죽음은김윤자의깔끔한성정을극명하게드러낸다.그후김윤자가생전에교류했던몇사람에게부고가전해지는데,그중한명이바로김윤자를취재해방송으로알렸던‘신중호PD’이다.부고를받은신중호는김윤자를처음만난일년전어느날을시작으로김윤자와함께했던기억을회상해나간다.

“나를보고있던거는맞죠?나의착각이아닌거죠?혹시마이미스테이크?”
따지거나하는목소리가아니다.작은목소리지만발음이또렷하고음색이젊다.그런데마이미스테이크?말을특이하게하는분이다.
(…)
레이디는팔짱을낀채신중호를노려보고있다.신중호는이런타입의취재원은겪은적이없었다.
“궁금해해서요.”
신중호가한참뜸을들이다이렇게말한다.
“아니,누가요?나를요?”
그녀가묻는다.
“사람들이요.”(60~62쪽)

소설은김윤자와신중호에게번갈아초점을맞추며김윤자가사망하기직전일년간의삶을되짚어나간다.맥도날드와스타벅스와교회를오가는루틴을유지하고,전직장이위치한서울중구와정동일대를맴돌며,신문을손에서놓지않고때로는일본문화원에서예술영화를감상하는그녀.이러한행적에서드러나는김윤자의정체는그녀의말년을이해할열쇠가된다.그녀는과거에는더욱귀했던여성인텔리이자예민한안목을갖춘미식가였던것이다.
그래서카메라의뷰파인더를통해들여다보듯현실감있게그려지는김윤자의움직임을지켜보다보면그녀의기행이나름의이유를지닌행위로달리보이기시작한다.계절을막론하고트렌치코트를입고다닌것은자신의뛰어난미감에위배되지않는행색을갖추려는단정함으로,영어단어를섞어가며현학적인어투를구사한것은배움에대한긍지를잃지않고언제든새로일할기회를얻기위한노력으로,호텔에서분에넘치는식사를하고싶어한것은죽기전꼭한번마지막만찬을즐길수있기를바랐던애처로운욕망으로다시읽힌다.
높은이상에점점가까이다가가는듯했던삶이무너져버린후,이가여운‘레이디’는하루를살더라도원하는대로‘멋있고아름답게’살고자매순간가능한최선의선택을내렸던것이아닐까.그렇게버티며곧예전의삶으로되돌아갈수있으리란희망을붙드는것만이그녀의생존방식이되었던것은아닐까.그렇다면그런그녀가세간의비난을받아야할이유는과연무엇이었을까.


타인의추락을즐기는사회에서
한명한명의삶을아름답게바라보는우아한시선

소설에서김윤자의일상을담은방송은신중호의의도와상관없이‘불행포르노’로소비되고만다.소설밖현실에서도한인물이약자의지위를갖게되는서사,특히여성의삶이걷잡을수없는불행에말려드는이야기는때때로인간의폭력적인본성을자극하며주목받아왔다.이처럼개인의삶이자극적으로소비되는현실에한은형은나직이경종을울린다.작가는그어느때보다감정을배제한건조한문장으로맥도날드할머니가간직했을법한감춰진이야기를상상해풀어놓는다.그결과“이소설속에서‘맥레이디’는조소나동정의대상으로납작해지는대신한송이의백합처럼향기롭게피어난다”(소설가백수린).
맥도날드할머니의말년은기실현재를살아가는모든청년세대가한번쯤예감해보았을미래이기도할것이다.저축을착실히해나갈희망을가질수없고,젊음을전부쏟아부어도머물집을소유할수없고,가정을이루지않으면안정된생활을꾸려나갈수없을것만같은불안감의끝에맥도날드할머니와별반다르지않은우리의모습이있다.한은형은우리보다앞서이불안을묵묵히견뎌나간김윤자의의연하고독립적인삶의태도를조명하며,행복에대한자신만의기준에충실함으로써경제적한계에도불구하고진정한풍요로움으로삶을채워나가는일의가치에대해이야기한다.
『레이디맥도날드』는다수로부터별종으로여겨지던존재들을더욱세심히들여다보게해줄뿐아니라,각각의삶에서아름다운모습을발견하는귀한시각을보여주는뜻깊은작품이다.개개인의삶의궤적은타인이이해할수없고,이해할필요도없는사유들로그려진결과라고작가는말한다.그리고일상속에서소소한풍요로움을누리고자했던한인물의밝고따뜻한웃음을소설속에되살려놓는다.아름답지않은삶은없다는이소설의메시지만큼인간에게적실한위로가또있을까.




그전까지소설을쓴다는것은즐겁고흥분되는일이었는데이소설을쓰는동안은그렇지못했다.‘작가의말’을쓰고있는지금은알겠다.그건내가그토록피하고싶은불안속으로,자청해서걸어들어가야하는일이었기때문이다.각오가필요한일.용기도있어야하는일.둘다부족했다.각오도,용기도.
하지만,내게는할일이있었다.그녀를잘보내드리는일.단정하고,깨끗하고,화사하게.그러기위해서는아직해야할것들이있었다.다시‘레이디맥도날드’폴더를열시간이었다.
정동맥도날드는이제없다.경찰박물관도,서머셋팰리스스타벅스도,스타식스영화관도,씨넥스도모두사라져버렸다.하지만이소설속에는있다.그리고정동에는더이상그녀,‘레이디맥도날드’도없다.하지만여기에는있게되었다._한은형,‘작가의말’에서

미디어를통해알려진‘맥도날드할머니’는워낙에도개성있는인물이지만그녀의인생을모티브로쓴『레이디맥도날드』를읽고내마음이움직인건그녀를바라보는작가의시선때문이다.이소설속에서‘맥레이디’는조소나동정의대상으로납작해지는대신한송이의백합처럼향기롭게피어난다.그녀는주거지와가족을잃었으나스스로에대한예우와우아한삶의태도를잃지않으며,자기자신에게충실하기위해매일매일을수행하듯살아간다.나는이잘읽히는소설을아끼는사탕을녹여먹듯천천히읽어야했다.그녀가못내사랑스러워서.그녀의삶이너무애틋해서.어떤이의눈에는과거에갇혀사는허영심많은여자일뿐이겠지만,그녀의특별함이“평범하다고일컬어지는삶의방식”만강요하는이폭력적인세계에굴하지않고자기자신을지키며사는일의어려움과귀함을아는독자들의마음에가닿기를바란다._백수린(소설가)

2010년12월,트렌치코트하나로추위를견디며커다란유명백화점쇼핑백을들고거리를걸으시던할머니의모습이생생합니다.다른누군가가호기심에말을걸면욕을하시던할머니는제가처음정중하게말을건넸을때너무도상냥하고우아하게,영어단어를섞은특유의어투로대답을하셨습니다.할머니에게유명호텔레스토랑에서식사대접을했던날도잊지못합니다.할머니는식사전화장실에들러자신의옷매무새와흐트러진머리를정리하고나오셨습니다.비록밑바닥삶을살고있지만인간으로서기본예의는지켜야된다는,아니그마저지키지않으면자신도걷잡을수없이무너지리라는것을아마도할머니는알고계셨을겁니다.
제가취재중에떠올렸던할머니에대한여러가지생각들이놀랍게도책속에다들어있었습니다.소설을읽으며할머니를다시만난듯기뻤습니다.이책을통해주어진삶을꾸려가는각자의움직임이모두아름답게느껴지기를바랍니다._조완현PD(SBS‘궁금한이야기Y’연출)


<본문중에서>

이일을하면할수록상식에대해생각하게된다.상식이라는단어는상대적이고,파괴적이고,기만적이다.모두의상식이다르다는말이다.(24~25쪽)

신중호는오늘새로운사실을또하나알았다.맥도날드는밤이돼도조명의조도를낮추지않는다는것.이게정신을매우피곤하게만든다는것.그래서결국은오래있지못하게만든다는것.명백한의도라는것.하지만밤의거리에서이곳만큼안전해보이는곳도없다는것.불이환하게밝혀진이곳으로들어오고싶게만들기도한다는것.(35쪽)

당당하게대응할수있을지확신이없었다.하지만이대로돌아가는것,그것만은하지말아야한다는생각이들었다.그건,패배다.내존엄을스스로해하는일이니까.김윤자는이렇게움츠러든자신이속상했지만속상한티를내지않으려고애썼다.그래서허리를세우고,어깨를더펴고로비로걸어갔다.(42쪽)

누구나젊었을때는타인의삶을단순화한다.김윤자도그랬다.누군가노년의그녀를그저곱게미쳐버린맥도날드할머니로만들기도하고그러는것처럼.(80쪽)

사람들은자기들이살고있는방식,그러니까흔히평범하다고일컬어지는삶의방식말고는잘상상하지못했다.따지고보면평범하게살고싶어하는사람은아무도없으면서말이다.(113쪽)

김윤자는기분이상한이유를알았다.커피를주면서햄버거광고가인쇄된종이를깔아주는게마음에들지않았던거다.아무리천오백원짜리커피를마시는손님이라고해도손님은손님인데……
(…)
좀더섬세할수는없을까?아이스크림이나커피를주문한사람한테는햄버거가아니라커피나아이스크림이인쇄된종이를깔아주면안되나?(135~136쪽)

김윤자가인생에서잃는게많아질수록인생에거는기대는커졌으므로그기대가충족될확률은점점줄어들었다.(255쪽)

무슨일이있더라도스스로를죽이는것은하고싶지않았다.김윤자는자기가평생에걸쳐매일같이자신을죽여온사람이라고생각했지만그건살고싶기때문에그런것이기도했다.
살고싶지않다면죽을필요가없었다.김윤자는더살고싶지않았으므로더는계속죽고싶지않았고,그랬기때문에영원히죽고싶다고생각했다.(290~2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