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된 밤 (권희철 평론집)

정화된 밤 (권희철 평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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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문학은, 그리고 삶은 그런 무해한 것이 아니다.”

차가운 관능으로 타오르는 착화(着火)의 글쓰기
권희철 두번째 평론집
“단정짓지 않고, 해결하지 않고, 공언하지 않는”(시인 김혜순), “너무나 많이, 정확하게 읽는”(평론가 서영채) 평론가 권희철. 예외적으로 탁월하고도 믿음직한 평론가의 탄생을 알린 그의 첫 책 『당신의 얼굴이 되어라』를 수식한 저 문장은, 9년 만에 선보이는 두번째 평론집 『정화된 밤』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현실과 문학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바탕으로 쓰인 더욱 단단하고 깊어진 글을, 한 젊은 평론가가 명실상부 한국문학장의 주춧돌로 조형되어가는 과정을 우리는 『정화된 밤』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정화된 밤』에 실린 글은 단 한 편도 허투루, 가벼이 쓰이지 않았다. 이는 함부로 비약을 허락하지 않는 문장과 논거로 하여금, 충분한 것만으로 불충분하기에 쉬이 해소하고 화해하려 들지 않는 자세로 하여금, 텍스트를 대하는 그의 성결한 태도로 하여금 모든 글이 구성되었기 때문일 터. 그는 기존의 유행하는 담론에 복무-복창하는 대신 차라리 불가능성의 진창과 대결해 문학을 문학의 자리로 되돌려놓는다. 그는 불화를 격화하고 또 감당함으로써 문학을 더 먼 곳으로까지 나아가게 하는 사람이다. 쉬운 찬미를 선택하기보다 텍스트와 자신을 한계 역량까지 밀어붙여 텍스트의 체험을 체험으로 되돌려주는 작가이다.
그의 고투-쓰기는, 이번 책의 제목 ‘정화된 밤’은,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출발하였다. “매혹적이지만 해명되지 않은 불충분한 것(밤)을 끝까지 밀고 나가서 넘어서고자(정화)” 하는 것으로서의 비평, 현실과 자신의 허위마저도 직시하며 도약하기 위한 쓰기, 그리고 이를 거의 관능적으로 느껴지는 문체와 독창적인 목소리로 전달하기. 어떻게? “신비로운 밤의 왕국이 잔혹한 낮의 왕국을 구제하리라는 망상을 경계하면서, 밤의 비진리를 망상으로 끌고 가려는 해석의 욕망을 절제하고 텍스트 안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는 객관적인 장치들을 끄집어내면서, 그런 장치들로 낮과 밤의 대립을 해체하고자 하면서.”(「책머리에」에서)
저자

권희철

1978년전북고창에서태어났다.서울대학교국어국문학과와동대학원을졸업했으며,『문학동네』2008년가을호를통해평론을발표하기시작했다.현재계간『문학동네』편집위원이며한국예술종합학교서사창작전공교수로재직중이다.평론집『당신의얼굴이되어라』가있다.2019년젊은평론가상을수상했다.

목차

책머리에

1부
시의음악
음부(陰部/淫婦)의입술이세계의성기性器를삼킬때-김언희론
재난장치고안자-배수아의『어느하루가다르다면그것은왜일까』
무와형상사이에서주사위던지기-공시네론
개에관한명상
빛에관한시론-강성은의『단지조금이상한』
오늘의날씨-임솔아의『괴괴한날씨와착한사람들』

2부
착화(着火)
다시쓰기,받아쓰기,이어쓰기
복자에게
아이러니와아날로지-박형서론
나,문학권력은이렇게말했다
제로-『문학동네』100호를펴내며

3부
소설은사랑을무엇이라고생각하는걸까?
김남숙소설어작은사전,혹은불가능한사랑-김남숙의『아이젠』
한낮의우울-이주란의『한사람을위한마음』
미뤄지지않는것-김금희의『나의사랑,매기』
욕망의글쓰기
사랑의글쓰기-김봉곤의『여름,스피드』

4부
한줌의불
우리가인간이라는사실과싸우는일은어떻게가능한가?-한강론
사드-붓다의악몽-김영하의『살인자의기억법』
‘우리’의확장
살아남는법을배우기
부디너의젊음이한시바삐지나가기를-이해경의『사슴사냥꾼의당겨지지않은방아쇠』
아무것도아닌것,아무것도아닌것-김홍의『우리가당신을찾아갈것이다』

에필로그
지금마시고있는그술잔이마지막잔인지아닌지를
셉티머스의컵

출판사 서평

문학과철학,그사이에서섬세하게진동하는비평
불화에서착화로,그리하여정화된밤으로

『정화된밤』은총4부로구성되었다.
1부에는시적인것과그것의유동성-역동성을담은글을모았다.배수아의『어느하루가다르다면그것은왜일까』를다룬「재난장치고안자」는‘텍스트-체험’이라는차원에서,앞서말한체험을체험으로되돌려주는예로아쉬움없는글이다.「개에관한명상」은시와소설그리고영화를자재하게넘나들며‘시적인것’에대한해묵은오해와속박을해방시키는데까지나아간다.
2부에는여러텍스트가얽히고짜여,보다거대한텍스처가되어가는과정을분석하는글을담았다.특히「착화」와「나,문학권력은이렇게말했다」는이책속에서도가장도발적이자과감한글이다.“삶의다양한요소들가운데하나가모순인것이아니라,바로이모순이삶을살아있는삶으로만드는것”임을,“삶의운동을보다격렬하게다시겪고그것을가속화하려는욕망에불을지피는(…)문학의‘체험’은다른무엇보다바로이착화(着火)에있다"(「착화」)는사실을그는감동적으로설득해낸다.더불어박형서의소설을밀도높게분석한「아이러니와아날로지는」2019년젊은평론가상수상작이기도하다.

그러므로삶의운동을가속화하려는욕망에불을붙인다는것,그러니까문학의체험이라는것에는불안과혼란,기쁨과흥분만이들어있는것이아니다.거기에는수치심과복종이함께들어있다.문학의체험은,모순의그밀고나가는힘을감당한다는것은우리를찢어버리는힘에우리자신을내맡기는일이기도한것이다.문학의체험은뜨겁게빛나는불의관능과함께그것이주는꾸짖음과수치심을감당하는것이다._「착화」에서(137쪽)

3부는“사랑이라는진부하면서도까다로운그럼에도얽힘을향한열망과구분하기어려운주제에접근하고있는글”로구성되어있다.권여선,김금희,최은미등우리에게반갑고도익숙한작가의작품을새로운질감으로끄집어내는3부의글들은,‘사랑’이라는관념역시빈약한“언어의진창”(바르트)으로부터구해내새롭게재정의한다.특히「소설은사랑을무엇이라고생각하는걸까?」에서드니드루즈몽과쥘리아크리스테바를경유해‘문학과사랑과정치적무의식의관계’를상정해보는한가설은독자들에게도신선한환기가될것이다.
4부는한강,김영하,황정은의소설을통해“윤리적인것,정치적인것,인륜적인것을부분적으로함축하는”글을담았다.2015년에발표된「한줌의불」은한치앞도낙관하기어려운혐오의시대인2022년에도작동하는듯읽힌다.“‘필연’에굴복하기를거부하고‘필요한것’을창조해내기위해글쓰기라는시련을견뎌낸다고도생각한다.그것이세계가한자리에머물러있지못하게끔그생성적힘을자극하는위대한거짓말,예술이라고말해보고싶다”라는문장앞에서오래머무르게되는까닭도그때문일것이다.

성실한비평은이해불가능하고전달불가능한영역에육박해들어가는고유한문학적체험을,그러나함께그작품을읽은독자들이라면누구나어렴풋하게라도느낄수는있었을그체험을,이해가능하고전달가능한문장과담론으로번역하기를시도한다.이때비평은이해불가능하고전달불가능한체험쪽에다가가는한에서그자신이문학작품에가까워지고,그것을이해가능하고전달가능한문장과담론으로번역하는한에서철학에가까워진다.정확히그사이에서의진동위로비평은걷고있는것이다._「나,문학권력은이렇게말했다」에서(210~211쪽)

경건하고겸허한자세로,때로는과감하게타협하지않는자세로,그는기꺼이불화하고흔들린다.이것은모순이아니다.그의표현으로말하자면“그모순이발생시키는‘긴장’이외에문학의체험은아무것도아니”므로,“바로이모순에의해,삶은결코멈춰있을수없고끊임없이새롭게자기자신을재조정해가며무한히풍부하고다양한상태들을겪어내게”(「착화」)되는것이므로.이모순을충실히감당하고있기에그는진동하고떨고불화하기를주저하지않는다.그런한에서-그러하기에,그의글안에서‘작품’과‘비평’이라는해묵고도불필요한위계와대립은무화되어신비롭게결속하기도하는것이다.읽고쓰는자에의한,읽고쓰는자들을위한문학에대한탁월하고도근사한한응답이『정화된밤』에있다.그떨림의궤적을,차갑게타오르는불꽃의일렁임이만들어내는아름다운무늬를부디함께체험할수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