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다시 사랑이 (천희란 소설)

우리에게 다시 사랑이 (천희란 소설)

$14.50
Description
“이제는 악몽이 두렵지 않다. 이 사랑은 모두의 유산이 될 것이다.”
_강화길(소설가)

이지적인 문장, 광휘 어린 사유, 야심찬 서사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던 우리를 향한 천희란식 응답
삶과 죽음, 예술에 대한 문제의식을 여성의 시선에서 깊이 있게 천착해온 천희란의 두번째 소설집 『우리에게 다시 사랑이』가 출간되었다. 첫번째 소설집 『영의 기원』과 경장편소설 『자동 피아노』를 연이어 출간하며 대체할 수 없는 문장과 매혹적인 자기 세계를 펼쳐내는 데 두각을 드러낸 천희란은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로 2017년 제8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면서 걸출한 신예 작가의 저력을 보여준 바 있다. “여성의 언어를 복원해내는 일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으며 문학과지성사의 ‘이 계절의 소설’(2019년 가을)에 선정된 「우리에게 다시 사랑이」, 2020년 현대문학상 수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카밀라 수녀원의 유산」 등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천희란은 믿고 읽는 작가로 거듭났다. 『우리에게 다시 사랑이』는 그러한 천희란이 삼 년 만에 펴내는 신작 소설집으로, 유려한 문장과 절묘한 내러티브의 솜씨가 한껏 발휘되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상처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불신으로 고통받았던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천희란식 응답이 여기 도착했다.
저자

천희란

2015년『현대문학』신인추천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영의기원』,경장편소설『자동피아노』가있다.2017년젊은작가상을수상했다.

목차

카밀라수녀원의유산ㆍ007
기울어진마음ㆍ037
우리에게다시사랑이ㆍ079
피아노룸ㆍ111
살인자의관ㆍ149
잃어버린것ㆍ181
천진한결별ㆍ199
숨ㆍ211
지속과유예ㆍ243

해설|이지은(문학평론가)
상속자의프롤로그ㆍ275

작가의말ㆍ301

출판사 서평

허를찌르는강렬한이야기를통해
통념을비트는매혹적인여성서사

소설집의문을여는「카밀라수녀원의유산」은세계최초의여성뱀파이어‘카르밀라’를그린소설『카르밀라Carmilla』를현재의시각에서다시쓴작품이다.갈곳없는여성들의안식처‘카밀라수녀원’을배경으로펼쳐지는이고딕소설은‘카르밀라’(여성·퀴어·괴물)의처형을통해가부장제를공고히하는원작의고루한결말을전복한다.어머니에게서끊임없는감시와착취를당해온딸라우라가어떻게“가부장으로부터고통받는불쌍한아내/어머니의운명”(해설,294쪽)에서벗어나는지를놀라운반전으로보여주는이흡인력있는작품은새로운여성상을발견해내는여성서사이다.
이처럼허를찌르는강렬한이야기를통해통념을비트는여성서사의발견은이번소설집을관통하는천희란의커다란주제이다.천희란의소설에등장하는또다른여성들을살펴보자.「피아노룸」의주인공은유명한피아니스트를남편으로둔여자로,남편이참혹하게살해된현장에있었던유일한목격자이다.충격에빠진그녀는트라우마로인해그당시의기억을상실하고사건은곧미궁에빠진다.그러나평생남편의곁에서이른바‘내조’를해오고‘영감’을불러일으키는사람으로지내온그녀가지니고있던남모를상처가드러나는이야기의절정부에서다시금팽팽한긴장이감돈다.끝내그녀가누설하지못한남편의죽음에대한비밀은무엇이었을까?
「피아노룸」이역사에서,사회에서여성의목소리가어떻게지워져왔는지를보여준다면,표제작인「우리에게다시사랑이」는과거를딛고현재의목소리를생생하게드러내는야심찬여성서사이다.주인공‘나’는한때스무살많은남자를사랑했다.‘나’는그러한과거의자신을‘그녀’라는3인칭으로호명하면서감정을철저히배제한채남자와의관계를복기해나간다.이러한형식은만남과헤어짐을일방적으로주도하고자신을정신적으로착취함으로써감정의극단을오가게했던남자의가스라이팅방식과그자체로반대지점에있는것처럼보인다.‘나’는과거의자신을어리석었다고단정하지않고그남자를사랑했던마음의진실함을부정하지도않는다.이자기확신은“고통에끝이있다는희망”(해설,289쪽)과함께감동적인여운을전한다.

이희망은또다른절망이찾아왔을때혼자내버려진게아니라는단단한믿음이되어줄것이다.그러니자신을불신하고사랑을두려워하게된‘우리’에게다시사랑이올것이라낙관할수있다.이때낙관의원천이‘그의진심’으로부터오는위안이아니라,‘내사랑의확신’에서발원하는당당한자기서사라는것을기억해야한다.(해설,같은쪽)

내사랑이진심이었는지더는저울질할필요가없었다.그가나를한순간이라도진심으로사랑했었는지는더욱궁금하지않았다.내가사랑한것이그였는지그가내게준고통이었는지도되묻지않았고,내사랑이자기기만의결과였는지광기였는지도중요하지않았다.나는아무것도의심하지않았다.그것은사랑이었다.다만그사랑을인정하자내가그에게했던말을거두고싶었다.나는이제그가생이끝나는순간에절대로내얼굴을떠올리지않기를바랐다.(109~110쪽)



여성으로서,인간으로서,그리고한사람의작가로서
천희란이남긴사랑의유산

앞선소설들이다름아닌자기자신을발견해나가는여성의안간힘과의지를보여주었다면,현실과환상을오가며눈내린산장주변에서낯선남성으로부터반복적으로위협을느끼는여성의모습을그린「살인자의관」,익숙한일상을의심하고잃어버린것을찾는와중에또다른‘나’의목소리의틈입을겪는「잃어버린것」은문학적실험을통해자신과타자를무대로세우는도정의순간을그린듯하다.
「천진한결별」은사십주년결혼기념일에아내로부터이혼을요구받는노인남성‘나’의이야기이다.‘나’는겉으로보기에꽤괜찮은남편이었지만,아주오래전부터마음깊은데에서는자신의성정체성을여자로인식해왔다.아내또한그것을알고있는듯보인다.오랜시간입밖으로꺼내지못한비밀,그리고그비밀로부터비롯된고요한파국은사람이사람을이해한다는것이란무엇인지에대해생각할거리를던져준다.「천진한결별」이끝내어긋나버린관계의‘막다른길’을보여준다면「숨」은육십대‘해옥’과칠십대‘정희’라는두노년여성의우정과사랑을그려낸다.한시도자식걱정을놓지못하고가족에매여사는해옥과여자를좋아하는여자로서평생을홀로살아온정희의모습을통해현실에서들여다보기어려웠던노년여성들의삶과이두사람의이름붙이기어려운관계를섬세하게살필수있는작품이다.특히해옥과정희가수영장에서서로에게의지해발장구를치며수영을하는모습은이소설에서가장아름다운장면중하나로꼽을만하다.
한편,「기울어진마음」은자식처럼기른조카‘기호’의여자친구‘혜원’의혼전임신소식을들은‘승은’의이야기이다.승은은이제이십대초반밖에되지않은혜원의처지를걱정하지만뜻밖에혜원이아이를낳겠다고선언하자당혹감을느낀다.그일은오래전에승은자신이임신중절을선택했던과거를환기시키고,혜원이오래전의자신과같은선택을해주기를,그럼으로써과거의자신이틀린선택을하지않았음을알아주기를바라는쪽으로마음이기운다.세대가다른두여성이지닌입장차이,그마음의결을세세하게따라가는이소설은여성연대란갈등없이매끈한이해로봉합되는해피엔드만은아님을보여준다.서로를향한정답없는질문을괄호로남겨둠으로써양쪽의선택을그자체로존중해주는이야기는감동적인여운을남긴다.

서스펜스스릴러,알레고리부터리얼리즘을오가는다채로운서사,이십대부터칠십대까지다양한세대를생생하게되살려내는목소리,성차별과같은폭력적인사회문제를대면하는깊고너른시선을보건대『우리에게다시사랑이』는그간에천희란이얼마나진지하고도치열하게글쓰기를해왔는지를보여주는하나의증거이다.“여성으로서,인간으로서,그리고한사람의작가로서”(강화길소설가)천희란이남긴사랑의유산이어디로가닿을지지켜보는것은새로운봄을맞이하는이시기에더욱설레지않을수없는일이다.

“허구를쓰고있는자신의존재를설득하기위해쓰지않는시간의존재를허구라몰아붙여야만했던내삶의아이러니를생각한다.이제나는쓰지않고살아가는자신을상상할수있고,비로소내가맞서왔던욕망이야말로허구였다는것을안다.나는더는글쓰기가두렵지않다.”_‘작가의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