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로(Escape Routes) (나오미 이시구로 소설)

탈출로(Escape Routes) (나오미 이시구로 소설)

$15.00
Description
나오미 이시구로 극찬의 데뷔작!
구병모 ㆍ 닐 게이먼 추천!

“이 소설을 읽는 이들이 가능한 한 작가의 아버지에 대해 떠올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후광에 가려지기엔 아까운 작품들이다.”

지금 이 자리에 머물러보겠다고 열성을 다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떠날 마음을 먹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일상에서 돌연 우리 앞에
마법처럼 열리는 저마다의 탈출로에 대하여

★ 구병모 색상환의 곳곳을 망설임 없이 넘나들며 누비는 소설들은 때로 기이한 두통을 일으키는 셔벗 같았다가, 어느 순간 강력한 자성을 띤 핀 무더기처럼 의식을 찔러온다. 당혹스러운 블랙유머와 섬뜩하고도 낯선 그로테스크를 양날개로 달고 활주로를 따라 뻗어나가는 작가가 이제 막 이륙한 참이다. 이런 규모와 깊이를 지닌 텍스트의 숲이라면, 그 안을 헤매다가 아무데서든 발을 헛디뎌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을 읽는 이들이 가능한 한 작가의 아버지에 대해 떠올리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코끼리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더욱 코끼리만 생각나는 법이기에 애초의 실패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그런 후광에 가려지기엔 아까운 작품들이다. 미지와 기지 사이의 긴장감을 즐기며 자유자재로 현을 타는 작가에게 사로잡힐 시간이다.

★ 닐 게이먼 정교한 거미줄로 시작해 질긴 올가미로 끝나는 이야기들.
저자

나오미이시구로

영국소설가.1992년런던에서태어났다.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에서영문학학사,이스트앵글리아대학교에서문예창작석사학위를받았다.서점미스터비스엠포리엄(Mr.B’sEmporium)에서서적판매원및독서요법치료사로일했다.2020년데뷔작『탈출로』를발표하고문단과독자의주목을받으며작품세계를구축해나가고있다.그의아버지는2017년노벨문학상수상자가즈오이시구로다.

목차

쥐잡이꾼I
심장마비
양털깎는계절

쥐잡이꾼II:국왕
속도를높여!
납작지붕
마법사들
쥐잡이꾼III:새국왕과선왕

감사의말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나오미이시구로,스토리텔링의위력을증명하는신인작가
떠돌고맴도는존재들에게깃드는환상같은순간에대한아름다운데뷔작

나오미이시구로는이십대에영국바스의한서점에서서적판매원및독서요법치료사로일했다.그곳에서책을통해사고와감정의폭을넓히고고통을이겨내는손님들과교감하며스토리텔링의위력을실감했다.그의데뷔작인단편소설집『탈출로』는이시기의경험에서비롯되었는데,익숙한삶의풍경들에비범한상상을덧칠해현실과환상이절묘하게공존하는아홉편의이야기를묶은것이다.
2017년노벨문학상을수상한가즈오이시구로가그의부친이다.나오미이시구로는가족이일상적으로서로의글을읽고의견을나누는환경에서자랐고,성장기에쓴습작들에는부모의냉철한의견이쏟아지기도했다.시대를대표하는작가의딸이라는이름이어쩌면양날의검과도같겠지만『탈출로』의아홉작품은나오미이시구로가자신의이름만으로우뚝서기에충분한,아니그이상의재능을가진작가임을증명한다.


탈출을갈망하는이들의정체된일상,그속에서요동치는내면
「심장마비」「곰」「마법사들」

『탈출로』의등장인물들은현재자신이처한상황으로부터탈출,구원,새로운전환을꿈꾸지만,막상똑같은일상을반복하며용기를내지못하고속으로만요동치는마음을품은채괴로워한다.「심장마비」는대도시런던에도저히적응하지못하고아일랜드바닷가의고향집을그리워하는인물의이야기다.그는런던을떠나려고여행가방을싸고푸는일을매일반복하지만정작공항까지나서지못하고,그저시가지를배회하며정확한원인을알수없는자신의이상상태때문에아프고혼란스러워한다.

여행가방을싸고다시싸는게몇번이나가능할까요?무엇을할지,어디로갈지,아니그보다애초에떠날필요가정말있기는한지아직도결론짓지못했다는데번번이놀라면서,그저놀랄뿐이면서말입니다.런던은나를미치게만들기시작했습니다.(…)상황이이렇게된데는런던의엄청난인파도한몫합니다.거리를걷는일에마저수반되는의지의투쟁.출퇴근시간지하철에서경험하는낯선자와의육체적근접성.그러니까옆에있는여자가짜증을내며쌀쌀맞은표정으로당신을밀치고자리를옮기는건,조금전그녀와등을대고선키큰남자가자기도모르는사이에그녀를배낭으로내리눌렀기때문입니다.(59p)

내게뭔가불길한일이벌어지고있습니다.가슴한복판에서시작해팔을타고손가락으로이동하고다리로전해져발가락까지이어지는불길한것이요.하품이나구토증을억누르는사람처럼지금이순간에도내가억누르고있는이느낌.별일아닐수도있습니다.아무일도아닐수있어요.병원에가서뭐가문제인지설명하라면제대로할수있을지모르겠거든요.그런데도떨쳐버릴수없을듯합니다.말하자면바싹말라버린듯한이느낌,내육신을이어붙여온전한상태로유지해주는점토가어째선지점점바닥나는듯한느낌을요.(78p)

「곰」은아내가원해서집에들인거대한곰인형을두고묘한감정에사로잡힌남편의이야기를그렸다.크기가비정상적으로컸지만한낱봉제인형일뿐인그것이이상하고도절묘하게부부의일상에서존재감을키워나가자남편은어째선지옹졸해지는자신을발견하고,그이유를찾기위해꼬리에꼬리를무는생각을거듭하다아내와자신들의부부생활에대한작은진실을깨닫게된다.「마법사들」은자기몫을훌륭히해내는어엿한한사람으로서인정받지못하고되는대로살아가는듯보이는성인남자와,자식을극도로과잉보호하면서도자식에게상처주는말또한서슴지않는부모로부터얼른자유로워질수있는날을고대하는남자아이의운명같은조우를그린작품이다.


그럼에도돌연마법처럼열리는구원의순간들에대하여
「쥐잡이꾼ⅠㆍⅡㆍⅢ」「양털깎는계절」「속도를높여!」「납작지붕」

『탈출로』에서특히눈여겨볼작품이있다면「쥐잡이꾼」연작이다.총3부짜리작품이다른작품들에섞여띄엄띄엄배치되어또다른읽는재미를준다.『탈출로』의수록작대부분이현실과일상에마법적색채가가미된이야기라면,「쥐잡이꾼」연작은한편의그로테스크한동화같은작품이라고할수있다.쥐가들끓는도시에서실력가로소문난쥐잡이꾼이국왕의부름을받고왕궁의쥐떼소탕에나섰다가극악한진실을마주한다.

휑뎅그렁한궁에는실상새국왕만이남아홀로살아갈뿐,옛왕조의고관대작과그곁을어슬렁거리던시중은점차줄어이제터무니없이하찮은수준이되었다.그럼에도국왕의웅장하고유구한처소내부를들쑤시고다닌다는데약간의호기심도느꼈음을굳이부인하지는않겠다.더나아가그일이도시업무로부터떨어져근사한휴식이될수도있으리라생각했다.쥐떼가날로기승을부리면서내노동의강도가그어느때보다심각했으니까.도랑의쥐떼,부엌마다넘쳐나는쥐떼,거리에서행인의발목주변을깡충거리며도는쥐떼.놈들은음식을망치고주부를놀래고어린애를괴롭히고질병을퍼트렸다.(12p)

나는언제나덫을만드는내기술에어느정도자부심을가져온사람이다.가령내가만드는덫에는시그니처기술이들어간다.덫에걸린쥐가죽기전마지막으로보는게별이빛나는하늘의이미지가되도록설계하는것이다.살아있는영혼이우주를떠나기직전에그안의광활한가능성과기회를되새기는장면,내생각에는그보다더시적인것은없다.(25p)

「양털깎는계절」은대자연의섭리와계절에맞춰살아가야하는양떼목장에서자라왔지만나중에커서우주비행사가되고싶다는꿈을품은소년이자신의꿈을이뤄줄수있을지도모르는하숙인을만나경험하는신비롭고충격적인이야기다.「속도를높여!」는회사일에집중하지못하던한인물이과거에는싫어했던커피의맛을새로알게되면서슈퍼파워를얻고그야말로폭주하게되는날들을그렸다.「납작지붕」은어떤상처를아직극복하지못한인물이매일납작지붕에올라시간을보내다가지붕을찾는새들에게위로와구원을받는다는가슴먹먹한이야기를그리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