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이재훈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이재훈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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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수도원에서 거리로 나온 실재계의 시인”(원구식) 이재훈의 첫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를 문학동네포에지 48번으로 다시 펴낸다. 1998년 『현대시』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2005년까지 7년에 걸쳐 묶어내었던 시편들이 17년 만에 마땅한 자리에 돌아왔다. “연금술사의 고뇌”(김유중)이자 “순례자의 언어”(오형엽)로 옮기는 이 보고서는 곧 “잃어버린 시원(始原)의 언어를 회복하고 다시 시원으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하는 시인의 내적 고백”(송승환)이다.
저자

이재훈

1998년『현대시』로등단했다.시집으로『내최초의말이사는부족에관한보고서』『명왕성되다』『벌레신화』『생물학적인눈물』이있다.한국시인협회젊은시인상,현대시작품상,한국서정시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개정판시인의말

1부
순례/사수자리/빌딩나무숲/수선화/내최초의말이사는부족에관한보고서/기타가있는궁전/나는기적을믿지않지/나스카평원을떠난새에관한이야기/어느꿈길/마라의오아시스/일식/참이상한꿈이있었단말입지/공중정원/공중정원2/공중정원3

2부
황홀한잠/도시의물관(管)/또다른제국/BigBang/아마도일상적으로돌아갈아침의영광/에관하여/아마도일상적으로돌아갈한얼굴의죽/음에관하여/까마귀속에나의시간이있다/햇살의집/신촌,우드스탁,가면놀이/거리를훔치다/세일즈맨의오후/숲/빗소리/바람의배/눈

3부
병든미아/마루/순례2/시인셰에라자드/황홀한배회/바다/황홀한떨림/수염/예쁜똥/당신은가짜다/붉은주단의여관/쓸쓸한날의기록/수레바퀴지나간길/결별의노래

출판사 서평

■편집자의책소개

“수도원에서거리로나온실재계의시인”(원구식)이재훈의첫시집『내최초의말이사는부족에관한보고서』를문학동네포에지48번으로다시펴낸다.1998년『현대시』신인상으로등단하여2005년까지7년에걸쳐묶어내었던시편들이17년만에마땅한자리에돌아왔다.“연금술사의고뇌”(김유중)이자“순례자의언어”(오형엽)로옮기는이보고서는곧“잃어버린시원(始原)의언어를회복하고다시시원으로되돌아가기를갈망하는시인의내적고백”(송승환)이다.

밤이되면말을타러갔었지
잠속으로들어가는입구는
깊은동굴이었지
따뜻한물흐르는동굴에서
서둘러어둠을껴입었지
찰박찰박,어둠사이로붉은등을내비치는탯줄
그고요의심지에불을댕기고
입술을오므려휘파람을불었지
나는말을부르는소리부터배웠지
탯줄이사위를밝히고말발굽소리를들으며
나는편자를갈고있었지_「사수자리」부분

이재훈시인이돌아가려는,혹은회복하려는시원(始原)은최초(始)의공간이면서동시에‘말’들이사는들판(原)이다.어둠속에서“말을부르는소리부터배웠”다는‘나’를계속해서따라다니는“말발굽소리”는말이끄는수레소리,풀무질소리,쇠망치소리그리고다시말발굽소리로변주되며시집전반에끊임없이흐른다.그무수한소리속에서꽃이피고아이가태어나는것이다(「수레바퀴지나간길」).만돌린과나팔,노랫소리로가득한이들판이란풍경도면회오는이도,그저아무도없는빌딩숲(「빌딩나무숲」),곧도시의반대말이기도하다.때로는도저한절망,때로는간절한울음으로이환멸을벗어나려는시인의시선은야생과원시,신화의세계로향한다.“모든시간은무너지고/가없는기억의언덕도무너”질때,태초의벽화앞에선시인은마침내“잠든말,묵상도없는말들”을깨워스스로추장이,기꺼이기수가되어오래된노래를부른다.

잠든말,묵상도없는말들이벽에붙어있다너의소리를들으려고널만진다그제야너는벽화가된다널만지면황소가되었다가사슴이되었다가초원을가로지르는말이되고나는말위에올라타노래를부르는추장이된다

(……)

말이쏟아져내린다초원에내려거칠게달려나간다내가지겹게머무는도시의거리까지와서내머릿속을후드득후드득내달린다_「내최초의말이사는부족에관한보고서」부분

『내최초의말이사는부족에관한보고서』는최초의말(馬)이자최초의말(言)을찾아나선시인의순례기이면서,더없이귀한언어의사료(史料)다.시인은신화가바로최초의시,‘최초의말’이라밝힌바있다.그렇다면시를쓰는일이곧새로운신화의창조이기도할것이다.첫시집에서이미처음의처음,그태곳적기원을성실히답사해한편의‘보고서’로엮어내었던시인은여전히시라는안장위에있다.그촘촘한기록을다시펴냄에,시원(始原)이자시원(詩原)으로의여정이다시시작될것이다.

맨발로유리밟는소리를듣는다.유리의머리가내발바닥을찢는수런거림을듣는다.수행자처럼온땅을모두밟아보고싶었다.하지만이땅은너무넓어.내온기가기댈곳은건물과건물사이,그사이의위태로운희망,그리고낯선꿈들뿐.

(……)

맨발로유리밟는소리를듣는다.유리가내몸을돌고돌아검붉은내장을모두만난다면,늦은밤가냘프게흔들리는마음까지싹둑잘라버린다면,나는백치가되리.내몸이된유리.너의촉감밖에,소리밖에모르므로나는불구다.저기저쪽,나처럼맨발로유리밟으러가는젊음들.땡볕아래꽃들이붉은햇살을게워내고있다.절정이다,_「순례」부분

■기획의말

그리운마음일때‘IMissYou’라고하는것은‘내게서당신이빠져있기(miss)때문에나는충분한존재가될수없다’는뜻이라는게소설가쓰시마유코의아름다운해석이다.현재의세계에는틀림없이결여가있어서우리는언제나무언가를그리워한다.한때우리를벅차게했으나이제는읽을수없게된옛날의시집을되살리는작업또한그그리움의일이다.어떤시집이빠져있는한,우리의시는충분해질수없다.

더나아가옛시집을복간하는일은한국시문학사의역동성이드러나는장을여는일이될수도있다.하나의새로운예술작품이창조될때일어나는일은과거에있었던모든예술작품에도동시에일어난다는것이시인엘리엇의오래된말이다.과거가이룩해놓은질서는현재의성취에영향받아다시배치된다는것이다.우리는현재의빛에의지해어떤과거를선택할것인가.그렇게시사(詩史)는되돌아보며전진한다.

이일들을문학동네는이미한적이있다.1996년11월황동규,마종기,강은교의청년기시집들을복간하며‘포에지2000’시리즈가시작됐다.“생이덧없고힘겨울때이따금가슴으로암송했던시들,이미절판되어오래된명성으로만만날수있었던시들,동시대를대표하는시인들의젊은날의아름다운연가(戀歌)가여기되살아납니다.”당시로서는드물고귀했던그일을우리는이제다시시작해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