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서효인 시집)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서효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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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나를 닮은 것들은 나를 닮아 슬프다”

세계와 나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격렬한 내분
후회하는 시, 고백하는 시, 대답할 수 없어 쓰는 시
김수영문학상, 대산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수상 시인 서효인 신작 시집
문학동네시인선 171번 시집으로 서효인 시인의 네번째 시집을 펴낸다.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들을 경유하는 시간에 대해 쓴 시편들의 모음 『여수』로 대산문학상과 천상병시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신뢰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입증한 이후 5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 시집이다. 첫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에서 분노를 통해 도시의 들끓는 삶을 생생히 그려내고,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두번째 시집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에서 세계의 폭력을 구조적으로 형상화했다면,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에서는 세계와 충돌한 나의 내부에서 발생한 격렬한 내분을 거침없는 시적 언어로 담아냈다. “지껄이고 후회하고 고백하는 삶에 시가 끼어들어 자꾸 묻는”데 “대답할 수 없어 썼다”는 시인의 말은 그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설득하고자 했던 치열한 난전의 시간을 짐작케 한다. 발문을 쓴 소설가 정용준의 말처럼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응시하며 모든 분노를 자기 쪽으로 끌고 와 샤워하듯 끼얹은” 시편들. 차마 받아들일 수 없던 외부 세계를 향하던 분노를, 이제는 자신에게 향함으로써 시인은 한 발 더 깊이 나아간다. 동시에 그는 쉽사리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각자의 자기 자신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해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온다. 그가 내밀한 진심을 담아 써내려간 50편의 시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슬프게도 서로 조금은 닮았다는 사실, 그리고 또한 그게 아주 슬픈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저자

서효인

2006년『시인세계』로등단했다.시집으로『소년파르티잔행동지침』『백년동안의세계대전』『여수』,산문집으로『이게다야구때문이다』『잘왔어우리딸』『아무튼,인기가요』『읽을것들은이토록쌓여가고』(공저)가있다.김수영문학상,대산문학상,천상병시문학상을수상했다.‘작란(作亂)’동인이다.

목차

시인의말

1부나를닮은것들은나를닮아슬프다
서른몇번째아이스크림/버건디/고등학교동창들을서울에서만나면/김치담그는노인/7년동안/휴가지에서의아버지/수도권은돌풍주의보/함박/마라/붕어찜/닭의갈비/소의살/걱정스러운개소리/이물스러운입맛/허벅지위로/육교에서의친구들/딸바보/두번자는인간들/눈알에지진/교육관/회사언어/가족력/반으로/귀향안함

2부질투는로맨스같은구석이있다
북클럽에서의만남/종각에서의대치/습지/명절의질문/아빠들/부음1/부음2/부음3/부음4/다이하드-길위에서1/졸음운전-길위에서2/추돌-길위에서3/코어근육/개에게묻는다/축사듣기/인증/화/무등산수박/그릇은필요없어/선배,페이스북좀그만해요/로맨스/파고다/휴화산/파트장과성가부르기/드라마틱

발문|이야기의바깥으로|정용준(소설가)

출판사 서평

나를닮은것이태어나는날에나는
그녀의머리맡에있었다포도껍질처럼
쭈그러진모습으로벌레가
꼬이듯지은죄들이떠올라무서워허공을
휘저어보았다
_「버건디」부분

시집의문을여는시는「서른몇번째아이스크림」이다.동료의조모가돌아가셨다는문자를받은뒤자신의아이에게줄아이스크림을사며시인은이렇게독백한다.“내가좋은아빠다죽지않는아빠다”.“남의삶전반이가늠되지않는/나이”에접어든화자는“삼가,/열심히녹”는드라이아이스를바라본다.이제막세계에발을들인아이를기쁘게할아이스크림을온전히유지하게하는것이“30년의장례를준비”하듯녹아가는드라이아이스이며,그것을바라보며‘녹지않음’이아니라‘죽지않음’에대해생각하는시인의모습은이시집을관통하는결정적인장면이라할수있다.
그리고이어지는시「버건디」에서는‘나를닮은것’이태어난날맞닥뜨려야했던알수없는두려움과슬픔을그리고있다.나를닮은아이가태어나기전에는기도를하고누굴때리기도하던손에단지포도의과즙이묻은것만으로“용서를빌며싹싹/물티슈로/손을모아”죄를닦는것은어떤마음일까?
이시집에는나를닮은많은존재들이등장한다.그들은‘나’의자식들이기도하고(“나는화들짝놀라고말았는데내가/아비가되어있는것이었다/고기국숫집에서꿍얼꿍얼대는딸에게/화는나는데화를못내고/끙끙앓았다”,「휴가지에서의아버지」),같은고향을가진사람들이기도하며(“죽이고죽여도/되살아나는빌어먹을사투리여/염병할뉘앙스여괘씸한톤이여공동체여”,「고등학교동창들을서울에서만나면」),나와같은성을가진사람들이기도하다(“나랑같은성씨의인간들의김치씹는턱을생각하면/화가머리끝까지치민다고”,「김치담그는노인」).그들은마치존재의스펙트럼처럼각자의방식으로‘나’를해체시키고가시화한다.시인은그러한자신을닮은사람들,또는자신이닮은사람들을통해도망치고싶었던자기자신을목격하고,결국피하지못한분노와슬픔을느낀다.

이자리에모인사람들을
사랑하던날도
있었다친족의울음이귀뒤로
떨어진다
(……)
이자리에사랑하는사람이
없어도사랑하던날이
있던적도있어서덜덜덜몸을떨며
울었다
_「부음2」부분

그런데과거에는사랑했지만지금은사랑하지않는다는사실을깨닫고몸이떨리는슬픔을느낀다면거기에사랑이완전히부재한다고말할수있을까?사랑의부재에강한슬픔을느끼게하는것은역설적이게도아마사랑일것이다.그렇다면“바다처럼넓은마음으로안그런척하는데나는/나때문에괴롭고나는/나를어찌해야할지를모르겠”(「로맨스」)다고말하는시인의말이이해가되는듯도하다.내가‘나’를사랑해서혐오하듯,‘나를닮은것’들을사랑하기에분노하는것이아닐까?사랑하고싶어서,사랑할수밖에없어서,사랑해버려서누군가를도저히견딜수없게되는마음을우리는한번쯤경험하지않았던가.
그러니서효인의시를읽는일은어쩌면견딜수없는무언가를정면으로마주하는일일지도모르겠다.이토록내밀하게적힌마음들이기에,이토록선명하게잘라내보인인간의단면이기에.물론거기에는이글을읽는‘당신’도그리고‘당신을닮은것’들도들어있을것이다.그리고그는“실패하는마음의한가운데에서”(‘시인의말’)자신을돌아보는일을계속해나갈것이다.“지금이순간에도벽에머리를찧으며모순을이겨내는일상의한시절처럼시가나를,내가시를,적고있다는것을알기때문”(정용준)이다.그렇게우리는우리를닮은또다른존재들과의만남을예비하게된다.


◎서효인시인과의미니인터뷰

Q1.안녕하세요.이번이네번째시집입니다.세번째시집『여수』가대산문학상과천상병시문학상을수상하고독자들에게도큰사랑을받았던기억이있는데요,그게벌써5년전이네요.오랜만에시집을출간하게된소회가궁금합니다.

시에있어서늘자신이없는편입니다.최선을다하지못한것같고,세상에내어놓기에어딘가부족해보이고그렇습니다.그저눈딱감고낸다,하는표현이적절할것같아요.그눈을감을찰나의용기를얻는시간이필요했습니다.그렇다고지금굉장히용감해진상태라는건아닌데……그럼에도시집을내는건여러모로좋은일같습니다.밥벌이에고통받고살림살이에몸과마음을다내주면서도시를쓰는사람이있고,시를읽는사람이그보다많다는건거대한행운처럼느껴집니다.행운의세계에아무쪼록더머물고싶습니다.

Q2.시집의제목이독특하다고해야할까요?그동안의시집들(『소년파르티잔행동지침』『백년동안의세계대전』등)과조금은결이다른느낌입니다.어떻게이러한제목을정하게되었나요?

몇몇시집제목후보를두고고민중일때,김민정시인이힌트를주었습니다.어느시의구절에서따온제목인데요,처음듣고는그런구절이있었던가싶을정도로거리감이있었어요.현실에서저는저를그다지사랑하지도,그렇다고혐오하지도않으니까요.그냥살아가는것이죠.그런데그냥살아가는게바로사랑하는것이고,또한살아가다보니혐오하지않을수없는거예요.시집에서내내사랑했다미워했다청기들어백기들어하고있었는데,딴청피울게아니라그걸그렇다고고백하는문장이필요했던듯해요.선배시인의감각과친애의힘을빌려저로서는조금낯선제목을갖게되었는데,제시나삶에모두제격인듯하여감사한마음입니다.

Q3.2006년『시인세계』로등단하신후16년째꾸준히작품활동을이어오고계신데요,첫시집에실린시를쓸때와이번시집을쓸때의마음이달라졌는지,그렇다면어떻게달라졌는지궁금합니다.

첫시집에서는시쓰기가그렇게나즐거웠어요.첫눈오는날목줄풀린강아지같았다고나할까.지금은눈이오면길이막힐까봐예민해지고,목줄대신생활이라는넥타이를맨개……는아니고인간이되었습니다.이제는즐겁다기보다는부끄럽습니다.첫시집에서지금시집에이르기까지시가먼곳으로부터차근차근저에게온것같습니다.제가쓴것들이타인을바라보고세계의모순을궁리하는듯했지만시는결국돌고돌아저에게왔습니다.궁금한곳,더알고싶은곳에카메라를들이대는자세로시를썼는데,이제는무한의CCTV앞에발가벗은자세가된셈이죠.가릴데는가리고못가릴데는못가리고있습니다.좀추운것도같네요.

Q4.제목부터그러하듯이번시집에는자기자신을긍정할수도부정할수도없는내면의격렬한갈등이느껴집니다.과거를끊어내고싶어하면서동시에노스탤지어를느끼기도하고요.쉽사리지금의자신을받아들이지못하는화자를보니도리어궁금해지는것이있는데요,작가님은어떤순간에기쁨을느끼시나요?

일이잘될때기쁨을느낍니다.그리하여일에종속되었다느낄때슬픔을느낍니다.지금의저를자랑스러워하면서그런자랑을징그러워합니다.다른기쁨은아무래도아이들이겠죠.아이들을보는순간이기쁘다가도그순간과순간이시간이라는타래에엮여별수없이자라고말아이들이이세계에서느낄좌절이나분노,고단함과지리멸렬함을상상하면한낱기쁨은잘게부수어집니다.가루가된그것들을정성스레두손으로모아녹여붙이고,그렇게겨우한조각이된기쁨을다시빻아버리고하길반복하고있습니다.사랑과혐오의반복이지요.

Q5.끝으로이시집을읽을독자들에게당부하고싶은것이있다면말씀해주세요.인사말을남겨주셔도좋고요.

대체어쩌다시를읽고계신가요.어떤삶을살아오신겁니까?다행입니다.당신이있어서.쓰는사람만있다면얼마나외롭고억울했겠어요.읽는당신이있어서외롭지않고억울하지않습니다.독자여러분도외롭지않고억울하지않았으면좋겠습니다.어쩌면시와시집이도움이될지도모를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