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 문학동네 시인선 171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 문학동네 시인선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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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나를 닮은 것들은 나를 닮아 슬프다”

세계와 나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격렬한 내분
후회하는 시, 고백하는 시, 대답할 수 없어 쓰는 시
김수영문학상, 대산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수상 시인 서효인 신작 시집
문학동네시인선 171번 시집으로 서효인 시인의 네번째 시집을 펴낸다.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들을 경유하는 시간에 대해 쓴 시편들의 모음 『여수』로 대산문학상과 천상병시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신뢰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입증한 이후 5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 시집이다. 첫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에서 분노를 통해 도시의 들끓는 삶을 생생히 그려내고,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두번째 시집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에서 세계의 폭력을 구조적으로 형상화했다면,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에서는 세계와 충돌한 나의 내부에서 발생한 격렬한 내분을 거침없는 시적 언어로 담아냈다. “지껄이고 후회하고 고백하는 삶에 시가 끼어들어 자꾸 묻는”데 “대답할 수 없어 썼다”는 시인의 말은 그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설득하고자 했던 치열한 난전의 시간을 짐작케 한다. 발문을 쓴 소설가 정용준의 말처럼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응시하며 모든 분노를 자기 쪽으로 끌고 와 샤워하듯 끼얹은” 시편들. 차마 받아들일 수 없던 외부 세계를 향하던 분노를, 이제는 자신에게 향함으로써 시인은 한 발 더 깊이 나아간다. 동시에 그는 쉽사리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각자의 자기 자신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해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온다. 그가 내밀한 진심을 담아 써내려간 50편의 시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슬프게도 서로 조금은 닮았다는 사실, 그리고 또한 그게 아주 슬픈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저자

서효인

서점그림책코너에머무는시간이부쩍많아졌다.처음에는아이들과함께하기위해그림책을읽다가,언젠가부터혼자서도잘읽는다.그림책의다정한팬이된것이다.팬이된걸다행으로여긴다.이다행함을오래간직하고싶다.이다정함을널리나누고싶다.

2006년《시인세계》로등단해시집『소년파르티잔행동지침』『백년동안의세계대전』『여수』『나는나를사랑해서나를혐오하고』『거기에...

목차

시인의말

1부나를닮은것들은나를닮아슬프다
서른몇번째아이스크림/버건디/고등학교동창들을서울에서만나면/김치담그는노인/7년동안/휴가지에서의아버지/수도권은돌풍주의보/함박/마라/붕어찜/닭의갈비/소의살/걱정스러운개소리/이물스러운입맛/허벅지위로/육교에서의친구들/딸바보/두번자는인간들/눈알에지진/교육관/회사언어/가족력/반으로/귀향안함

2부질투는로맨스같은구석이있다
북클럽에서의만남/종각에서의대치/습지/명절의질문/아빠들/부음1/부음2/부음3/부음4/다이하드―길위에서1/졸음운전―길위에서2/추돌―길위에서3/코어근육/개에게묻는다/축사듣기/인증/화/무등산수박/그릇은필요없어/선배,페이스북좀그만해요/로맨스/파고다/휴화산/파트장과성가부르기/드라마틱

발문|이야기의바깥으로|정용준(소설가)

출판사 서평

◎서효인시인과의미니인터뷰

Q1.안녕하세요.이번이네번째시집입니다.세번째시집『여수』가대산문학상과천상병시문학상을수상하고독자들에게도큰사랑을받았던기억이있는데요,그게벌써5년전이네요.오랜만에시집을출간하게된소회가궁금합니다.

시에있어서늘자신이없는편입니다.최선을다하지못한것같고,세상에내어놓기에어딘가부족해보이고그렇습니다.그저눈딱감고낸다,하는표현이적절할것같아요.그눈을감을찰나의용기를얻는시간이필요했습니다.그렇다고지금굉장히용감해진상태라는건아닌데……그럼에도시집을내는건여러모로좋은일같습니다.밥벌이에고통받고살림살이에몸과마음을다내주면서도시를쓰는사람이있고,시를읽는사람이그보다많다는건거대한행운처럼느껴집니다.행운의세계에아무쪼록더머물고싶습니다.

Q2.시집의제목이독특하다고해야할까요?그동안의시집들(『소년파르티잔행동지침』『백년동안의세계대전』등)과조금은결이다른느낌입니다.어떻게이러한제목을정하게되었나요?

몇몇시집제목후보를두고고민중일때,김민정시인이힌트를주었습니다.어느시의구절에서따온제목인데요,처음듣고는그런구절이있었던가싶을정도로거리감이있었어요.현실에서저는저를그다지사랑하지도,그렇다고혐오하지도않으니까요.그냥살아가는것이죠.그런데그냥살아가는게바로사랑하는것이고,또한살아가다보니혐오하지않을수없는거예요.시집에서내내사랑했다미워했다청기들어백기들어하고있었는데,딴청피울게아니라그걸그렇다고고백하는문장이필요했던듯해요.선배시인의감각과친애의힘을빌려저로서는조금낯선제목을갖게되었는데,제시나삶에모두제격인듯하여감사한마음입니다.

Q3.2006년『시인세계』로등단하신후16년째꾸준히작품활동을이어오고계신데요,첫시집에실린시를쓸때와이번시집을쓸때의마음이달라졌는지,그렇다면어떻게달라졌는지궁금합니다.

첫시집에서는시쓰기가그렇게나즐거웠어요.첫눈오는날목줄풀린강아지같았다고나할까.지금은눈이오면길이막힐까봐예민해지고,목줄대신생활이라는넥타이를맨개……는아니고인간이되었습니다.이제는즐겁다기보다는부끄럽습니다.첫시집에서지금시집에이르기까지시가먼곳으로부터차근차근저에게온것같습니다.제가쓴것들이타인을바라보고세계의모순을궁리하는듯했지만시는결국돌고돌아저에게왔습니다.궁금한곳,더알고싶은곳에카메라를들이대는자세로시를썼는데,이제는무한의CCTV앞에발가벗은자세가된셈이죠.가릴데는가리고못가릴데는못가리고있습니다.좀추운것도같네요.

Q4.제목부터그러하듯이번시집에는자기자신을긍정할수도부정할수도없는내면의격렬한갈등이느껴집니다.과거를끊어내고싶어하면서동시에노스탤지어를느끼기도하고요.쉽사리지금의자신을받아들이지못하는화자를보니도리어궁금해지는것이있는데요,작가님은어떤순간에기쁨을느끼시나요?

일이잘될때기쁨을느낍니다.그리하여일에종속되었다느낄때슬픔을느낍니다.지금의저를자랑스러워하면서그런자랑을징그러워합니다.다른기쁨은아무래도아이들이겠죠.아이들을보는순간이기쁘다가도그순간과순간이시간이라는타래에엮여별수없이자라고말아이들이이세계에서느낄좌절이나분노,고단함과지리멸렬함을상상하면한낱기쁨은잘게부수어집니다.가루가된그것들을정성스레두손으로모아녹여붙이고,그렇게겨우한조각이된기쁨을다시빻아버리고하길반복하고있습니다.사랑과혐오의반복이지요.

Q5.끝으로이시집을읽을독자들에게당부하고싶은것이있다면말씀해주세요.인사말을남겨주셔도좋고요.

대체어쩌다시를읽고계신가요.어떤삶을살아오신겁니까?다행입니다.당신이있어서.쓰는사람만있다면얼마나외롭고억울했겠어요.읽는당신이있어서외롭지않고억울하지않습니다.독자여러분도외롭지않고억울하지않았으면좋겠습니다.어쩌면시와시집이도움이될지도모를일입니다.



<책속에서>

나를닮은것이태어나는날에나는
그녀의머리맡에있었다포도껍질처럼
쭈그러진모습으로벌레가
꼬이듯지은죄들이떠올라무서워허공을
휘저어보았다
(……)
게으른자여
이미가진자여저지른
자여휘젓던손으로뺨을때린다내뺨을
나를닮은것들은나를닮아슬프다
_「버건디」에서

매순간최선을다하지못해
다행스러웠다
아무것도연결되어있지않아서
아무것도기억하지않아서
아무것도보여주지않아도되어서
?_「육교에서의친구들」에서

지구는아이스크림처럼녹아
멸망하여도좋을것이지만
녹은하드의막대처럼남은
아이를안고돌아간다
아이의고향은
이곳일터였다
_「귀향안함」에서

이자리에모인사람들을
사랑하던날도
있었다친족의울음이귀뒤로
떨어진다고모와고모의오라비와고모의아들과
고모아들의처와그들의아들과아들의고모
눈알이돌아간다눈알이도니눈이
충혈된다하필주말이라니
우리는장례음식들처럼
그게그것인양닮았다
?_「부음2」에서

지구대에잡혀와
엊그제해동된굴처럼흐느적거리며
아름다운굴처럼흐느적거리며
아름다운문장을적어본다
굉장히멋진말인데이를테면
잘못했습니다,앞으로그러하지않겠습니다,같은거
더이상의
그릇은필요없었다
새로이무엇을담을지
모르겠어서
?_「그릇은필요없어」에서

질투는드라마에서처럼
누군가를좋아해서생기는감정은아니다그것은
제가저를너무나좋아해서생기는습기같은것이라
해수욕장의발바닥이다털어도모래가붙는다
(……)
푸르고깊은몸곳곳에해변의모래가들러붙어서
사무실에까지왔다질투는
로맨스같은구석이있다
?_「로맨스」에서

드라마는없다
지금으로부터10년정도지난
어느날에나는드라마로부터구원되어큰딸과손을잡고공원을산책하고면식요리를하며현관의신발을정리할것이다딱10년만큼늙어서마지막이없는마지막회를찍으면좋겠다나의신이여,당신은
이제막곤히잠들었고,나는너의
작디작은손톱을살짝문다
드라마에서배운생각들이
어슷하게잘려나가고있었다
?_「드라마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