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하나 (고정희 시집)

아름다운 사람 하나 (고정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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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문학동네포에지 49권. 고정희 시인의 마지막 시집. 시인은 1990년 말 들꽃세상에서 이 시집을 펴낸 후 이듬해 취재차 나선 산행에서 실족하여 자신의 정신적 고향이자 시혼의 본거였던 지리산의 품에 안겼다. 32년 만의 복간임에 그의 31주기에 맞추어 펴낸다.

시인은 이 시집을 두고 ‘연시집’이라 일렀다. 사랑을 향한 부름, 사랑이라는 연습, 사랑을 위한 조문... 사랑으로 써내었거나 ‘사랑’ 그 자체인 시편들이 시집 속에 빼곡하다. 그가 떠난 후 출간된 유고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창비, 1992)를 제외하면 이 책이 그의 생전 마지막 시집이니, 그가 우리 곁에 마지막으로 남긴 이 여백을 ‘사랑’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저자

고정희

1975년『현대시학』을통해등단했다.시집『누가홀로술틀을밟고있는가』『실락원기행』『초혼제』『이시대의아벨』『눈물꽃』『지리산의봄』『저무덤위에푸른잔디』『광주의눈물비』『여성해방출사표』『아름다운사람하나』,유고시집『모든사라지는것들은뒤에여백을남긴다』등이있다.대한민국문학상을수상했다.1991년6월9일43세를일기로생을마감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다시무정한이여
서시/아파서몸져누운날은/왼손가락으로쓰는편지/무너지는것들옆에서/상처/북한강기슭에서/지울수없는얼굴/집으로돌아오며/강물에빠진달을보러가듯/날개/장미꽃이불/포옹/전보

2부쓸쓸한날의연가
쓸쓸한날의연가/당신가슴에내목을묻을때/약탕관에흐르는눈물/더먼저더오래/두우주가둥그렇게/파도타기/희망의시간/하늘원고지에그대가/동해안에서일박

3부꿈꾸는가을노래
처서무렵,시베리아/입추/꿈꾸는가을노래/가을편지/가을밤/가을을보내며/만추/삼각형사랑/다시왼손가락으로쓰는편지/쓸쓸함이따뜻함에게/흩으시든가괴시든가

4부하늘에쓰네
아득한길/그대생각/물과꿈의노래/하늘에쓰네/그대생각/그대생각/그대생각/강가에서/비내리는가을밤에는

5부사랑의광야에내리는눈
네가그리우면나는울었다/사랑의광야에내리는눈/대흥사행/너를내가슴에품고있으면/눈내리는새벽숲에서쓰는편지

6부따뜻한동행
편지/따뜻한동행/가리봉동연가/어머니나라/오월어느하루/노여운사랑/젊은날의꿈/임진강누각에서

출판사 서평

“여성해방의전사”(장석주)이자“여성들의배후”(김정은)고정희시인의마지막시집『아름다운사람하나』가문학동네포에지49번으로다시돌아왔다.시인은1990년말들꽃세상에서이시집을펴낸후이듬해취재차나선산행에서실족하여자신의정신적고향이자시혼의본거였던지리산의품에안겼다.32년만의복간임에그의31주기에맞추어펴낸다.「시인의말」에서밝혔듯시인은이시집을두고‘연시집’이라일렀다.사랑을향한부름,사랑이라는연습,사랑을위한조문……사랑으로써내었거나‘사랑’그자체인시편들이시집속에빼곡하다.그가떠난후출간된유고시집『모든사라지는것들은뒤에여백을남긴다』(창비,1992)를제외하면이책이그의생전마지막시집이니,그가우리곁에마지막으로남긴이여백을‘사랑’이라부를수도있겠다.

살아있는날의가벼움으로
죽어있는날의즐거움으로
마음을비운날의무심함으로
우리를지나온생애를덮어
만리에울연한백두영혼,
사랑의모닥불로타오르라네_「사랑의광야에내리는눈」부분

고정희는“자신의‘이전과이후’로그사회를변화시켜놓”았다(김승희)할1세대여성주의시인의대명사이기도하다.문학의안과밖으로고루손을뻗으며우리시사의초석이자기둥으로서,또한여성운동사의부름이자물음으로서생생히살아있는이름일테다.『아름다운사람하나』는들꽃세상에서출간된후푸른숲(1992)에서수록시와그순서를달리하여재출간된바있다.이후2011년그의20주기를맞아시인을기억하고그리는친구들이모여다시한번그의모든작품을『고정희시전집』(또하나의문화)으로묶어내었고,이번문학동네포에지는이전집의순서를따랐다.문학동네포에지는그의30주기에첫시집『누가홀로술틀을밟고있는가』를다시엮은바있으니,이로써고정희시인의처음과마지막을한데나란히두는일이다.고정희시인이우리곁을떠난지어느덧31년이되었으나잊힐수없고잊혀선안되는그값짐,비워둘수없으므로여전한기억의자리에이시집을다시올린다.

그대보지않아도나그대곁에있다고
동트는하늘에쓰네
그대오지않아도나그대속에산다고
해지는하늘에쓰네_「하늘에쓰네」부분

생전시인은『지리산의봄』(문학과지성사,1987)을펴내며“아무리우리사는세상이어둡고고통스럽고절망적이라할지라도여전히우리가하루를마감하는밤하늘에는그리운사람들의얼굴이별빛처럼아름답게떠있고,날이밝으면우리가다시걸어가야할길들이가지런히뻗어있습니다.우리는저길에등을돌려서도안되며우리가그리워하는이름들에대한사랑을멈출수는없습니다”라는소회를남겼다.‘여성해방문학’의선구자이자최전선의척후로서시인을이끌고나아가게한힘은결국멈추지않는사랑,고단할지라도부단한사랑이었으리라.시인은자신이가장사랑하던품인지리산으로돌아갔으나고정희라는그이름,‘아름다운사람하나’되어여전히우리곁에있다.

제삶의무게지고산을오르다
더는오를수없는봉우리에주저앉아
철철샘솟는땀을씻으면,거기
내삶의무게받아
능선에푸르게걸어주네,산

이승의서러움지고산을오르다
열두봉이솟아있는서러움에기대어
제키만한서러움벗으면,거기
내서러운짐받아
열두계곡맑은물로흩어주네,산산

쓸쓸한나날들지고산을오르다
산꽃들꽃어지러운능선과마주쳐
제생애만한쓸쓸함묻으면,거기
내쓸쓸한짐받아
부드럽고융융한품만들어주네,산산산

저역사의물레에혁명의길을잣듯
사람은손잡아서로사랑의길을잣는것일까
다시넘어가야할산길에서서
뼛속까지사무치는그대생각에울면,거기
내사랑의눈물받아
눈부신철쭉꽃밭열어주네,산,산,산_「서시」전문

[기획의말]

그리운마음일때‘IMissYou’라고하는것은‘내게서당신이빠져있기(miss)때문에나는충분한존재가될수없다’는뜻이라는게소설가쓰시마유코의아름다운해석이다.현재의세계에는틀림없이결여가있어서우리는언제나무언가를그리워한다.한때우리를벅차게했으나이제는읽을수없게된옛날의시집을되살리는작업또한그그리움의일이다.어떤시집이빠져있는한,우리의시는충분해질수없다.

더나아가옛시집을복간하는일은한국시문학사의역동성이드러나는장을여는일이될수도있다.하나의새로운예술작품이창조될때일어나는일은과거에있었던모든예술작품에도동시에일어난다는것이시인엘리엇의오래된말이다.과거가이룩해놓은질서는현재의성취에영향받아다시배치된다는것이다.우리는현재의빛에의지해어떤과거를선택할것인가.그렇게시사(詩史)는되돌아보며전진한다.

이일들을문학동네는이미한적이있다.1996년11월황동규,마종기,강은교의청년기시집들을복간하며‘포에지2000’시리즈가시작됐다.“생이덧없고힘겨울때이따금가슴으로암송했던시들,이미절판되어오래된명성으로만만날수있었던시들,동시대를대표하는시인들의젊은날의아름다운연가(戀歌)가여기되살아납니다.”당시로서는드물고귀했던그일을우리는이제다시시작해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