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타유에게는과잉의원리,반反경제로서의죽음에대한통찰이있다.그로부터사치/과잉,곧죽음의사치/과잉적성격이라는은유가나타난다.삶이그어떤대가를치르고라도지속될필요에불과하다면,반면무화無化는대가없는사치/과잉이다.삶이가치와유용성의지배를받는체제안에서,죽음은무용한사치/과잉이되는데,이것이야말로유일한대안이다.”
_장보드리야르
“학문적글쓰기로서의일반경제는주권자체가아니다.게다가주권그자체라는것은없다.주권은의미,진리,사물-자체-의-포착등의가치들을와해시킨다.주권은불가능이기에,그것은존재하지않으며또한존재한다.바타유의비非신학은또한비非-목적론이자비非종말론이다.”
_자크데리다
“바타유를어떻게분류할것인가?그작가는소설가인가?아니면시인?에세이스트?경제학자?철학자?신비주의자?그대답은지극히당혹스러운것이어서,문학교과서에서는일반적으로바타유를망각하는편을더좋아한다.실상바타유는텍스트들을,어쩌면지속적으로하나의유일하고동일한텍스트만을썼다.”
_롤랑바르트
바타유의가장체계적이고이론적인저서
조르주바타유GeorgesBataille(1897~1962)는프랑스현대사상의원천이된독보적인작가/사상가이다.그는철학,문학,사회학,인류학,종교,예술을넘나든위반과전복의사상가이면서‘20세기의사드’라칭할만한에로티슴의소설가이기도하다.다방면에걸쳐방대한양의글을남긴바타유를두고롤랑바르트는『텍스트의즐거움』에서‘분류할수없는’작가로규정한바있다.또한바타유는특유의난해하고시적이며무질서하고수수께끼같은문체탓에,다른언어로번역하기에가장까다로운작가/사상가의한사람으로널리알려져있다.
『저주받은몫』을비롯한바타유의사유는이후프랑스현대사상가들에게지대한영향을미쳤다.미셸푸코의저작에나타나는광기와비이성등‘저주받은몫’의영역에대한관심은말할것도없고,자크데리다의탈구축/해체deconstruction작업과‘불가능성’이라는주제도바타유에게빚진바가많다.또한장보드리야르의‘소비consommation’개념은직접적으로바타유의영향을받은것이며,르네지라르의폭력과성스러움에대한논의역시성聖과속俗에대한바타유의논의를떠나서는제대로이해될수없다.그밖에조르조아감벤의‘호모사케르Homosacer’와‘주권적권력’‘벌거벗은생명’같은개념들도바타유의자장안에있다고할수있다.
바타유가생전에출간한주저로는『내적경험』(1943),『저주받은몫』(1949),『에로티슴』(1957)등을꼽을수있으며,그중표면적으로‘정치경제학’을표방한『저주받은몫』은단연가장체계적이고이론적인저서에속한다.바타유사유의핵심을이루는‘소진/소모consumation’‘넘침/과잉exub?rance’‘주권souverainet?’같은개념들이문화사와정치경제학,인류학의관점에서비교적정연한체계를갖추고등장하기때문이다.
무엇이‘저주받은몫’인가?
바타유는일반경제의관점에서“생명체와인간에게근본적인문제들을제기하는것은필요n?cessit?가아니라바로그반대인‘사치/과잉luxe’”(16쪽)이라고강조한다.그리고이과잉의에너지,곧부富의‘소진/소모’가‘저주받은몫lapartmaudite’을이룬다.
바타유는생산/축적의활동이필연적으로과잉을수반한다고본다.즉살아있는유기체는,특히인간은자신의삶을유지하는데필요한것보다더많은에너지를생산하고축적한다.이에너지는일정시점까지는어떤체계(유기체부터경제/사회체제까지)의성장에사용되지만,더이상성장할수없는상태에다다르면그에너지의과잉,잉여분은자발적이든아니든어떠한이득도없이무용하게상실되고소비되어야한다.파국적인전쟁은이런소진/소모행위의정점이다.또한과시적이고경쟁적인증여행위인북미인디언사회의‘포틀래치’(마르셀모스가『증여론』에서중요하게다루었던증여교환의풍습)나인신공희까지이루어지던고대의희생제의도유용성과대비되는무용한소진/소모라는맥락에서고찰할수있다.
“희생제물은유용한부의총량에서취해진어떤잉여surplus이다.그리고희생제물은아무런이득없이소진/소모되기위해서만,그러므로오직그렇게완전히파괴되기위해서만,출현할수있는것이다.희생제물로선택된순간,그것은폭력적인소진/소모가예정된저주받은몫이된다.”(99쪽)
아무이득없는소진,완전한파괴의몫은우리가일반적으로어둡고불쾌하게느끼는것이며그렇기에언제나회피와제거의대상이된다.‘저주받은’몫인것이다.생산/축적에대비되는소진/소모는바타유가『에로티슴』에서더욱본격적으로논하게되는금기/위반과도짝을이룬다.‘위반’은‘금기’를전제할때에만유의미하며,바타유에게위반은금기의파괴가아니라금기의완성이듯,소진/소모는단지생산/축적의거부가아니라생산/축적을전제로한초월이자위반이다.
책의부제에도등장하는‘일반경제’는바타유에게있어‘유용한’생산/축적뿐아니라소진/소모로서의‘무용한’소비,낭비,탕진을모두포괄하는개념이다.바타유는때로파괴와상실로도이어지는무용한소진/소모를유용한생산활동과더불어인간성과인간문명의근간을이루는중요한두축으로간주한다.또한이는성聖과속俗의대립과도연결된다.생산,축적,노동,소유등은일상적인‘속’의세계에해당하며,반면에종교,희생,낭비,소진등은비일상적인‘성스러움’의세계에해당한다.그러나바타유의관점에서,순수한탕진과남김없는파괴의몫,비정상적인‘저주받은몫’인소진/소모없이는생산/축적이라는정상성도성립할수없는것이기에,‘저주받은몫’이라해도단지저주인것만은아니며,비정상과비일상자체도‘일반적’인것으로수렴된다.그렇기에바타유의사유는역설의반反철학으로규정할수있다.
『저주받은몫』의현재성과주권의의미
이책은바타유의다른글들이그렇듯문화사,인류학,철학,문학,예술,비평이혼종적으로교차하는잡종의텍스트이다.그중에서도바타유가코제브를통해학습한헤겔철학,마르크스의정치경제학,조르주뒤메질의신화학,마르셀모스의인류학은이책의주요한원천을이룬다.물론소비에트의산업화와미국의마셜플랜을다루는5부의내용에서알수있듯이책이처음출간된시점(1949년)의시대적배경도중요하게작용하고있다.하지만냉전시대와소비에트의붕괴를거쳐,미국이주도하는신자유주의적자본주의가유일무이한체제로군림하는듯하다가,그정점에서(성장이정체된)세계화시대의종언을나타내는사태들이벌어지고있는현시점에바타유의사유는더욱의미심장하게다가온다.
바타유는문화사,사회사,경제사의다층적맥락에서아즈텍문명과북미인디언부족의포틀래치,끊임없는정복전쟁을통해제국을건설한이슬람세계와티베트의비무장라마교사회,기독교종교개혁과자본주의의결속을다루고있지만,이는모두낭비와탕진이라는순수한소비와소진/소모의개념을렌즈로삼아인간의삶과역사를조망하기위한예시들이다.
바타유는근본적으로“세계에노동이도입되면서그즉시노동이인간의내재성을대체했다”(93쪽)고말한다.내재성은주체가그자신과동일한것이되는주권의상태를뜻한다.노동과생산으로대변되는속俗의세계에서인간은사물에종속되고물화物化된다.이렇게‘타락’한인간은끊임없이잃어버린내재성을찾아헤매며,온갖신화와제의,종교적세계는그런탐색의산물이다.
노동과생산에예속된노예상태의인간이일시적으로주권적내재성을경험하는것은바로소진/소모를통해서이다.“주체는노동에속박되지않는한에서소진/소모인것”이다.
“만약내가‘앞으로그렇게될것’[미래]을더이상염려하지않고단지‘지금그러한것’[현재]에만신경을쓴다면,무슨이유로내가어떤것이라도남기려고간직하겠는가?바로그럴때나는내가소유하고있는재산전체를,무질서상태에서,곧바로순간적인소진/소모를위해모두써버릴수있을것이다.다음날에대한염려가사라지자마자,이러한무용한소진/소모는나를즐겁게하는것이다.”(96쪽)
내재성의경험은언제나순간적일수밖에없다.이러한내재성의경험은곧순수한소비,과잉과넘침의광기,낭비와탕진,희생과소진/소모,파괴적상실,에로티슴,신성의경험이된다.이러한주권적경험은오직현재만을생각하는것이며,이에비해생산/축적,소유,이성,성장과보존,생식행위로서의성행위,노동과사물,속俗의세계라는일상의경험은현재보다미래를우선시하는초월성에의지하는것이다.
바타유가강조하는‘자기의식’은“내재성에대한충만한소유”이지만그충만한소유는결국“속임수에가닿는”다.(317쪽)그렇기에문제는“의식이더이상어떤것에대한의식이기를그만두게될순간에도달하는것”,다시말해“성장(즉,어떤것의획득)이소비로해소될어떤순간의결정적인의미를의식하는것,그것이야말로정확히자기의식인것”이다.(319쪽)자기의식이란무無이외의것을대상으로갖지않는의식이다.
“역설적이게도,자기자신의주인이되지않음으로써비로소주인이되기,지양되지않는인간의노동과노예상태라는생산과사물의지위를그자체로받아들이면서동시에바로그한계내에서금기의확인으로서위반을끝없이찰나적으로수행하기,바로이것이주권개념의요체이며,또한이것이바로뒤집힌자기의식,곧이성이나의식철학에기반하지않는또다른형태의자기의식,곧반反헤겔적이며반이성적인자기의식이자반反철학으로서의철학적비非주체인것.”(「해설」중에서)
바타유에게주권적자유란,노예상태를극복하여도달하게되는상태가아니라무한히예속을반복하게되는인간의무용한한계경험이다.금기를확인하는순간적인위반을통해절정에도달했다가다시추락하기를반복하는한계의,불가능성의경험인것이다.그러나일시적인주권과일상적인노예상태,성과속의이런대립과공존은인간삶의본질이자근원적인에너지에다름아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