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시인인 건 아는데 시가 뭐야? (정재학 시집)

아빠가 시인인 건 아는데 시가 뭐야? (정재학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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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숨쉬는 글자를 알려줘!”
모든 것이 시가 되고, 시는 모든 것이 되는 경이
세계의 사물과 언어에서 시를 추출해내는 마법적 리트머스
문학동네시인선 174번으로 정재학 시인의 네번째 시집을 펴낸다. 1996년 『작가세계』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정재학은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광대 소녀의 거꾸로 도는 지구』에서 환상적 상상을 구체적 이미지로 형상화하며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모더니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아빠가 시인인 건 아는데 시가 뭐야?』는 그런 그가 언어가 가질 수 있는 음(音)과 색(色)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시집 『모음들이 쏟아진다』 이후 8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 시집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번 시집을 통해 시가 무엇인지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간 그는, 세계의 사물과 언어에서 시가 될 수 있는 것을 추출해내는 방식을 통해 보다 깊은 시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1부 ‘아빠, 돼지곱창 음악이 왜 이렇게 아름다워?’에서는 이제 막 언어를 익힌 아들의 세계 인식을 통해 언어의 기저에 존재하는 미학을 발견해내고, 3부 ‘떨리는 것들은 악기가 될 수 있다’에서는 일상의 소음들에서 언어적 선율을 포착해내며, 4부 ‘주춤주춤 춤춤’에서는 샤먼의 몸짓에서 시적 진동을 감지하고, 6부 ‘어떤 시간은 나에게 공간입니다’에서는 공간을 통해 시간을 감각하는 식으로 시라는 언어 형식을 재구성한다.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해 정재학은 시의 외부로 나가, 다각도에서 시 내부로의 재진입을 시도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러한 모색의 결과로서 이 시집 안에 혼재하게 된 다채로운 목소리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언어에 근본적으로 내재한 시적 아름다움을 새삼스럽게 재발견하는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저자

정재학

1974년서울에서태어났다.1996년『작가세계』로등단했다.시집으로『어머니가촛불로밥을지으신다』『광대소녀의거꾸로도는지구』『모음들이쏟아진다』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아빠,돼지곱창음악이왜이렇게아름다워?
나비차원/글자의생/달팽이잠자리물고기/여름글자필요없어/그공룡에게산타의선물을!/캔버스/놀이터에간아빠/바이올린사줘/지맘대로생각하긴/내손바닥보다큰달팽이/종이접기시대/돼지곱창미스터리/반시(反詩)

2부오랫동안고통을받은사람들은눈두덩만보인다
택배로온아리랑/집시/블루스,악마와함께-로버트존슨/물고기은행을조심해라/화이트크리스마스/전화벨이확대되는방/알코올,발없는새/라면이있었던초현실아침/말과한숨사이/검은하늘은하수/흰머리길러볼까?/어쩜그렇게젊어보여요?

3부떨리는것들은악기가될수있다
실내악(?內樂)-무채색과이별2중주/실내악(?內樂)-중3아이둘의욕설과선풍기3중주/실내악(?內樂)-냉장고소리와빈꽃병2중주/실내악(?內樂)-비,기침소리,두더지3중주/실내악(?內樂)-세탁기,TV,진공청소기3중주/광장의불들/불,티베트/불,모하메드부아지지/불,틱꽝득스님/불,전태일

4부주춤주춤춤춤
제주-히말라야샤머니즘의만남-신들의땅/제주-히말라야샤머니즘의만남展-심방/제주-히말라야샤머니즘의만남展-잔크리/제주-히말라야샤머니즘의만남展-칠머리당/제주-히말라야샤머니즘의만남展-푸르바/제주-히말라야샤머니즘의만남展-신칼/제주-히말라야샤머니즘의만남展-북/제주-히말라야샤머니즘의만남展-요령/제주-히말라야샤머니즘의만남展-새부리뼈/Exit-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

5부시몇편을쓰고자저는아버지를선택했고요
시계를고정시키기위한각주/정지한시간을고정시키기위한각주1/정지한시간을고정시키기위한각주2/정지한시간을고정시키기위한각주3/장미를묻고아버지를묻고/그장미도죽어버리고/그장미도죽어버리고2/내게고향별이있다면/불타는집은연기를뿜어대는입처럼숨기는것이있다

6부어떤시간은나에게공간입니다
1월/2월,까마귀와트럼펫/3월,미술시간과서커스/4월,윤슬/5월,별과벽의사이는가까워지고/6월,오후6시/7월,침묵과바닥은꽤친해지고/8월,책파도고래/9월,태양이비워진날/10월,붉은술/11월,회고전/12월,괄호속으로

출판사 서평

나비가꽃대를기어올라
말랑말랑한허공을걸어간다

날개를움직이지도않고
빈곳이아니라는듯
편안하게

점점날개가커지는데
마음껏걷고있다

저아래땅바닥이보이지만
그아래또하나의땅바닥도보인다

가볍게겹쳐지는
나비차원
_「나비차원」전문

시집을열면첫장에서만나게되는시「나비차원」에서는허공을나는나비의몸짓을아름답게그려내고있는데,이는시인이일상언어에서시를추출해내는메커니즘을이미지화한것처럼보인다.날개를팔랑거리며부드럽게날아가는나비의모습에서시인은나비가“빈곳이아니라는듯/편안하게”딛고걸어가는‘허공의바닥’을본다.맨밑땅바닥위에따로또존재하는나비의바닥.그가‘나비차원’이라고명명한그것은다층적인언어의스펙트럼에서시인이딛고걷는시적언어의층위라고도볼수있다.그러니까시인은다른이들은일반적으로허공이라고인지하지만분명히존재하는“말랑말랑한”무언가를눈으로보고만지며,그것을시화(詩化)하는사람인것이다.
이와같이허공,즉언어의공기라고할수있는일상언어에서시적인것을포착해내는작업은1부에서주를이루는방식이다.이제막한글에흥미가생긴아들과의대화에서“숨쉬는글자를알려”달라고말하는아들에게“심장박동을크게만드는멋진말들은시가”(「글자의생」)된다고대답하는시인.이는언뜻어린아이를이해시킬만한쉬운말로보이지만,다른한편으로는시의본질을꿰뚫는말이라고할수있을것이다.“여름글자를써달라고”하는아들에게‘여름’이라고써주자아들이“무성한푸른잎을거느린나무그림을보여주며여름글자필요없어.이게여름이니까”라고말하는부분은자못의미심장하기까지하다.
‘실내악(?內樂)’연작에서는일상적소음에서시를발견해내기도한다.「실내악(?內樂)-중3아이둘의욕설과선풍기3중주」에서“선풍기가욕설들을창밖으로밀어내자/운동장에서는진화한신종욕설들이회전하고”뒤이어“선풍기는반복해서예각의짧은고갯짓을하며/분쇄된까치의뼈를뱉어낸다”고표현한부분은소리에서시작해그소리에묻은감정까지를,손에잡힐듯감각적이고선명한이미지로구현해낸좋은예라고할수있겠다.

어머니의물
공기의어머니

밥공기의아버지
아버지의달

달이낳은태양
춤이낳는춤

함께울어주는신
_「제주-히말라야샤머니즘의만남展-심방」전문

4부‘주춤주춤춤춤’에수록된‘제주-히말라야샤머니즘의만남展’연작도주목할만하다.무속,즉어떤종류의믿음에서비롯된몸짓은허공에서보이지않는무언가를디뎌내는시인의몸짓과닮았다.“모든소리는음악이되고/어떤시간은공간으로창조된다”고말하는「신들의땅」을지나면“함께울어주는신”(「심방」)을마주하게된다.그신은“춤이낳는춤”이라는표현에서엿볼수있듯언어를낳는언어,시를낳는시를써내려가는시인이이윽고마주할존재,어쩌면또는시인그자신일것이다.
마지막으로이시집을닫는시「12월,괄호속으로」를보자.지금까지의흐름을본다면“시계의초침소리사이마다”“무한히길어”지는‘괄호’가무엇을의미하는지는쉽게짐작할수있을듯하다.시인은초침처럼무심히앞으로나아가는세계의모든존재들사이에존재하는‘무한히긴괄호’로서의시를발견해내고있었던것아닐까?괄호는“가면같고,계단같고,관(棺)같고,때로는천권의책을지닌거대한도서관”같으며,그속에는“노여움의침묵,서먹함의침묵,무시하는침묵들”이있지만그럼에도그는끝내“괄호속으로”들어가길주저하지않는다.이는그가시인의말에서“어차피평생써야하는데”라고말하는일종의각오와도연결이되어있을것이다.이세계에존재하는‘허공의바닥’,연속되는시간과시간사이에존재하는‘무한한괄호’로서의시를발견해내는일,그것이바로시인의일이고,그안에이시집의제목이품고있는질문의대답이들어있을것이기때문이다.

◎정재학시인과의미니인터뷰

Q1.안녕하세요.시집으로는오랜만에독자들을찾아뵙게되었는데요,2014년『모음들이쏟아진다』이후8년만의신작시집입니다.이번시집을내는소회를들려주세요.
네번째시집이꽤오래걸렸네요.시집‘시인의말’에서썼듯이제가매우게으릅니다.하지만느리고게을러야쓸수있는시들도있지요.8년동안쓴시들을책으로내니기쁘고마음이편안합니다.오랜만에내는시집이라설레기도하고요.

Q2.이번시집에서는자신보다타인을향한시선이눈에띕니다.이시집의첫부에놓은시들은대부분아들과의대화로이루어져있고,3부의‘불’연작등에서는타인이되어목소리를내고있는데요,이와같은형식을택한이유가있을까요?
『모음들이쏟아진다』의「태동」에처음등장했던,엄마(작년문학동네에서시집『얼굴이얼굴을켜는음악』을낸김향지시인)뱃속에있었던아들이지금은열살입니다.아들이어릴때부터해준말랑말랑한말들에많은영감을받았고,아들이읽어도이해할수있는시를써보고싶었습니다.그렇게쓴시들이1부를이루고있습니다.
3부의〈불〉연작은처음에는티베트독립을위해많은스님,시민들이‘분신(焚身)’한것에대해느낀슬픔과분노가계기가되어쓰게되었습니다.인간이느끼는가장큰육체적고통이화상입니다.그것을감수한‘공적(公的)인죽음들’은우리가기억해야할의무가있다고생각합니다.‘공적(公的)인죽음’이기에‘분신자살’은잘못된표현이라고생각합니다.티베트의저항적분신을계기로다른분들의분신도연작으로쓰게되었습니다.

Q3.제목에서도느껴지듯이번시집에서는시라는표현양식에대해고민한흔적이엿보입니다.작가님에게시란무엇인가요?질문이너무크다면,시를쓸때작가님은어떤마음이되는지궁금합니다.
첫번째질문에대한답은이번시집에있으니말을아끼겠습니다.하하……
등단한지26년이넘었습니다.뭐든지26년을했으면달인,숙련공이되어야하는데저는시를쓸때마다처음쓰는듯막막합니다.시쓰는법을매번까먹나봐요.며칠동안한글자도못쓸때도있습니다.그럴때는혼자저를다독입니다.괜찮아,괜찮아,평생쓸거니까지금은못써도괜찮아.막막함이늘우선이고,잘풀리면해피엔딩입니다.

Q4.시외적인부분도궁금합니다.최근작가님이일상에서가장자주,혹은가장크게느끼는감정은무엇인가요?조금심리테스트같은질문인것같습니다만……요즘일상의관심사와함께이야기해주셔도좋겠습니다.
(질문에대한정확한답은아닐수있습니다만……)
비애,슬픔,우울함보다는기쁨,행복,빛에집중하려고노력합니다.작년에문득‘내가슬픔,우울함을느끼기위해태어난것은아닐것이다’라는생각이들었습니다.시집에서도다루었지만,‘윤회’를믿게되었습니다.종교를믿는것은아닙니다.사실어떤종교도믿지않습니다.불교조차도믿지않습니다.샤머니즘도믿는것이아니라,예술적인측면에서접근한것이고요.『모음들이쏟아진다』에서도「샤먼의축제」라는연작을쓴적이있습니다.이번‘제주-히말라야샤머니즘의만남展’연작도그연장선상에있습니다.샤머니즘은그자체로상당히아방가르드한측면이있지요.단번에돌파하고초월하는.
예전에는실존주의자로서‘언젠가죽을수밖에없는나는한번뿐인삶을어떻게살아야할것인가’가화두였다면,요즘에는윤회론자로서‘내가계속몸을벗으며영원히산다면,지금이生에나는어떻게살아야하는가’로화두가바뀌었습니다.

5.끝으로이시집을읽을독자들에게당부하고싶은것이있다면말씀해주세요.인사말을남겨주셔도좋고요.

시를사랑하고아껴주시는독자분들정말감사합니다.여러분들덕분에한국은아마도전세계에서가장시집을많이출간하는국가일겁니다.글로써다른사람들에게울림과확장을준다는것은무척어려운일이지만한사람의시인으로서여전히마음이설레는일입니다.제가오랜시간천천히쓴시들이듯이여러분들도지치지않고천천히읽으셨으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