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자연적 3D 프린팅 (황유원 시집)

초자연적 3D 프린팅 (황유원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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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바야흐로 머릿속에 무한이 해방되었는데
깨고 나니 꿈이었고
어느새 다시 꿈속이었다”

나선으로 중첩되는 꿈과 현실의 프린트
시가 인간을 끝내 해방하는 경지
문학동네시인선 177번으로 황유원 시인의 두번째 시집 『초자연적 3D 프린팅』을 펴낸다. 2013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한 시인은 첫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고, 앤 카슨, 압둘라자크 구르나, 허먼 멜빌 등의 작품을 왕성히 번역하며 이름을 널리 알린 바 있다. 이번 시집에서 황유원은 한없이 반복되며 인간을 억누르는 현실로부터 솟아오를 수 있는 무한대의 밤을 펼친다. 쉬운 감상과 환상이 아닌 정직하고 곧은 심성으로써, 내면에 고인 슬픔과 공허를 끌어안고 인간 존재의 자율을 실현시키는 길을 내보인다.

그 밤을 묻힌 붓은 이미 붓을 초과하는 무엇이고
그 붓 지나간 자린 모조리 한밤중 텅 빈 골목이 되어
누군가 밤새 그곳을 서성이며 불어오는 바람 속에 서 있게 된다는 사실만큼은

거기 놓인 문진의 무게만큼이나
확고
부동한 밤
_「검고 맑은 잠」 부분
저자

황유원

2013년『문학동네』를통해등단했다.서강대학교종교학과와철학과를졸업했고동국대학교대학원인도철학과박사과정을수료했다.시집『세상의모든최대화』,소시집『이왕관이나는마음에드네』가있다.김수영문학상,대한민국예술원젊은예술가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밤의행글라이더는밤의행글라이더
검고맑은잠/한산(寒山)에서/짧은술자리/무덤덤한무덤/밤의행글라이더/밤의벌레들/표절/밤의병실/다리와물/이중주/가슴에한병두병/문어대가리의악몽/우리반애들/대륙적기상/밤다운밤이아닌밤/자유로운뇌활동

2부여몽환포영
학림(鶴林)/흙부처가강을건너다/절전화/만져본빛/땡중처럼/MUSICFORAIRPORTS-위험물운송제한/안내/공/송림(松林)/포대화상의잠버릇/사이키델릭/총림(叢林)/음소거된사진/비에젖은개/흑백/사자두개골-HICSVNTLEONES/대가리가없는작은못/turnthisoffplease/여몽환포영/너의베개

3부모두가모든걸한다
새호루라기/윙컷/존재감/백안작/학익동/초록거미가말한다/괴수영화/모조새/당나귀와나/빗소리재방송/모두가모든걸한다/새들의아침운동연구/상승기운/잠언집/가을모기/고구마의말/그게블루스지-블루스맨최상우에게/침대벌레/최대치의기쁨/지껄이고있다/마흔

4부무한대의밤
needleinthehay/초자연적3D프린팅/소나무야소나무야/밤섬의저음-성기완형께/무한대의밤

발문|선언된낭만성혹은현재적인것에대한반동
김상혁(시인)

출판사 서평

황유원의화자들은자주꿈에드는데,꿈은현실을초월할수있는동력을제공한다.그들은낮의세계이자,발을구속하는땅으로부터떠올라“끝없이펼쳐지는밤의언덕”(「밤의행글라이더」)을비행한다.꿈의세계는빈틈이없어도리어인간을옥죄고마는정합의논리로부터자유로운곳으로“내가저기도/여기도/있게”(「표절」)하는세계이기에,시인은우리에게“겨우휴대폰알람소리에벌떡깨어날잠”(「밤다운밤이아닌밤」)이아니라결코되돌아오지않는깊은잠에빠지기를권한다.
이들이현실에서부유하는이유는현실이슬픔으로가득하기때문이다.그러나황유원의슬픔은그것의존재자체가아니라슬픔의움직임을발견하고있기에주목을요한다.격정적이며타오르는슬픔이아니라“꽉찬슬픔사라진자리”에남아있는“텅빈슬픔”(「가슴에한병두병」)이있다.“그냥그대로/고여있”어“끝내고요한울음”은그저조용히“내안에서네안으로”“옮겨”(「짧은술자리」)간다.슬픔을품은황유원의화자들은때로자신들이“그저양말이나벗고/시린맨발이나보여줄수있을뿐”이라고,“밤새미친놈처럼맨발로혼자/겨울산에나오를수있을뿐”(「한산(寒山)에서」)이라며시집내내현실에서기우뚱거리는불협화음으로웃음을자아내기도한다.다만그들의자조는“속에꺼지지않는웃음”(「무덤덤한무덤」)으로,“자신이누운곳을온몸으로덮어주는”포대화상의푸근한웃음처럼“얌전한한장의이불”(「포대화상의잠버릇」)이되어현실의속박을무화한다.

세상이라는공장에서찍어낸천편일률
세상의입장에서보자면무엇하나새로울것없는
모든것이극히자신의일부인세상에서
모두가모든걸한다
_「모두가모든걸한다」부분

현실로부터자유로워진화자들은본격적인여정을떠난다.황유원의시를읽는것은다른존재를받아들이는경험이기도하다.시를통해텅비워낸내면의공간에점차들어오는것들이있다.새호루라기와모조새,당나귀영혼과고구마를바라보고그들의말을듣는동안“한참을들어주고도/아무들은말이없”(「고구마의말」)지만,괜찮다.시끄러운속내에서시선을돌려대상을향하면서“하강하는내안의/존재감을느”(「존재감」)끼는이들은“밖에서나를기다리고있는일들이/강력해지”(「백안작」)는것을깨닫는다.비록‘나’와현실을덜어내고남은것이조그마한“기둥위”의공간일지언정그때에야“하늘만큼숨통이트여하늘의말을마구마구/지껄여댈”(「지껄이고있다」)수있을것이므로.

초자연적인밤-
나는늘뭘잘모르고
뭘잘모르는내가그것에대해품는생각은늘
실제의그것을초과한다
_「초자연적3D프린팅」부분

4부‘무한대의밤’은황유원의도약이실로한없이중첩되며나아가는공간이다.화자들은다시꿈에들어“건초속에서바늘을찾을수있어좋았다”(「needleinthehay」)라는기쁨에도달한다.그러나황유원의귀결은달콤하게무책임한감언이설이아니다.아무래도시인은“무한성을믿을만큼순진하지도,그것을아예거부할만큼냉담하지도못하”(발문부분)기때문이다.그는“그래봤자우리가어제의인간에서한치라도벗어날가능성따윈,아무래도없다고봐야겠지만”이라고정직하게단서를달면서도“어쨌거나오늘”에집중하며“내위에서쓰러지는”“너의엄청난힘”(「초자연적3D프린팅」)을있는그대로기꺼이받아안는다.
마지막시「무한대의밤」는“깨고나니꿈이었다”는구절을중심으로꿈과깨어남이반복되는구조를가진다.꿈에서깨지않고그대로살아가고싶은마음과현실을잘살아가고싶은마음은서로구분되지않을터이다.장시의보폭을따라걷던독자는웃음과슬픔과공(空)과꿈과‘너’가되는과정이어느새현실을살아가는한걸음한걸음을마침내긍정하는경지로이끌었음을깨달을것이다.황유원이아리아드네의실처럼굽이굽이풀어놓는길을한없이따라가던독자는이해에이른다.이실타래는빛이드는출구가아닌더깊은곳으로안내하고있음을,자신에게필요했던것이낮의현실이아니었음을.세상을훑어내리는그여정은슬픔과공허를비로소품게했고,‘나’를탐사하는무한한비행이되어주었음을.

저본래내용-형식이주장하는바시는필요도아니며없어지지도않을것이다.‘마음이없으면시도없어진다’는맥락은여전하나그건크게신경쓰지않아도될듯하다.실제로시는감각적·윤리적필요와무관해서우리는시없이도잘살아간다.하지만마음이있는한시는없어지지않고거기에그대로있다.그렇게시인이조금은낭만적으로말해주는것같다.그래서좋다.
_김상혁발문,「선언된낭만성혹은현재적인것에대한반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