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자전 (정은우 장편소설)

국자전 (정은우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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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19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한 소설가 정은우의 첫 장편소설. 정치적으로 엄혹했던 한국의 근현대를 배경으로, 특별한 능력을 타고난 이들이 겪는 사랑과 투쟁의 이야기를 담은 〈국자전〉은 강력한 이야기의 힘으로 장편소설 연재 전문 웹진 『주간 문학동네』의 첫 투고 선정작이 되었다.
특히 〈국자전〉은 '손맛'으로 사람의 생각을 바꾼다는, 전에 없던 유니크한 캐릭터의 한국형 여성 히어로를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시크하면서도 귀여운 매력을 지닌 주인공 '국자'를 통해 삶을 긍정하는 유머와 세계를 대면하는 진지한 태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사로잡는 데 성공한 〈국자전〉은 가장 특별한 능력 이야기가 가장 보통의 존재에게로 귀결되는, 가장 인간과 닮은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미지'는 담임을 맡은 반에서 왕따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받고 휴직한 상태다. 복직을 앞둔 그녀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첫 독립부터 이뤄내고자 엄마 '국자'와 식탁에 앉았다. 이상하게도 그동안 독립이라는 말만 꺼내면 국자의 휘황찬란한 밥상이 그녀의 의지를 녹여버린 바 있다.
그런데 이번 독립 선언의 양상은 조금 다르다. 자신이 기능력직 공무원이며 음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비틀 수 있다는 국자의 고백에 미지의 머릿속은 새하얘지는데…… "혹시 나한테도 쓴 적 있어?" 묻는 미지에게 국자는 태연히 그렇다고 대답하고, 아연실색하는 미지의 표정 너머로 국자의 이야기가 비로소 시작된다.
저자

정은우

1989년서울에서태어났다.2019년창비신인소설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국자전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정신없이읽었다.마지막까지신나게읽고책을탁덮자마자작가에게다음권을내놓으라고하고싶은심정이되었다.”_김겨울(작가)

“오미(五味)를조화롭게갖춘한상의판타지.간이나볼까하고가볍게든숟가락이어느덧바빠지게될것이다.”_박서련(소설가)

당신을사로잡을신인의등장,
『주간문학동네』첫투고선정작

2019년창비신인소설상을받으며등단한소설가정은우의첫장편소설이출간되었다.정치적으로엄혹했던한국의근현대를배경으로,특별한능력을타고난이들이겪는사랑과투쟁의이야기를담은『국자전』은강력한이야기의힘으로장편소설연재전문웹진『주간문학동네』의첫투고선정작이되었다.특히『국자전』은‘손맛’으로사람의생각을바꾼다는,전에없던유니크한캐릭터의한국형여성히어로를탄생시켰다는점에서주목을요한다.시크하면서도귀여운매력을지닌주인공‘국자’를통해삶을긍정하는유머와세계를대면하는진지한태도라는두마리토끼를사로잡는데성공한『국자전』은가장특별한능력이야기가가장보통의존재에게로귀결되는,가장인간과닮은이야기이다.
『국자전』에는따뜻한유머뿐만아니라서늘한비판의식도담겨있다.인간을쓸모의유무로나누는이분법적사고와억압에도불구하고자기자신으로살아가고자하는사람들의분투기는인간에게너그럽지못한사회상을아프도록꼬집는다.대중을분열시킴으로써유지되는한국의정치현실은,영웅과반동의격전지가재개발의현장이되는등의무차별적인사리사욕의추구와맞물려인간을착취할수있는도구로만간주하는시선을강요한다.그러므로우리에게너무나도익숙한비인간적인세태가통쾌하게풍자될때다음을향하는길이비로소보일것이다.



“입에들어가서소화되는거라면무엇이든가능해.”
‘손맛’으로승부하는한국형여성히어로의탄생

초등학교교사인‘미지’는담임을맡은반에서왕따사건이발생해충격을받고휴직한상태다.복직을앞둔그녀는새로운마음가짐으로첫독립부터이뤄내고자엄마‘국자’와식탁에앉았다.이상하게도그동안독립이라는말만꺼내면국자의휘황찬란한밥상이그녀의의지를녹여버린바있다.그런데이번독립선언의양상은조금다르다.자신이기능력직공무원이며음식으로사람의마음을비틀수있다는국자의고백에미지의머릿속은새하얘지는데……“혹시나한테도쓴적있어?”묻는미지에게국자는태연히그렇다고대답하고,아연실색하는미지의표정너머로국자의이야기가비로소시작된다.

국자는아홉살에첫사랑을만났고,열살에고아가되었다.순식간에모든걸잃어버렸다.오랜시간이흐른후에도그녀는그순간을잊지않았다.잊을수없었다.그래서기억하기로했다.가능하면빠짐없이.(22쪽)

소설의배경인1980년대한국은사람들사이에초능력자가있다는사실이널리알려진대체세계이지만,세계의작동논리는오늘날의현실을쏙빼닮았다.정부는능력자들을통제하기위해그들간에‘영웅’과‘반동’이라는구별을조장한다.초능력을타고난이들은‘다중능력검사’로검증되어국가에고용되고,높은등급을받으면대중에게서‘영웅’이라불리며선망의대상이된다.반면능력을지녔어도공직에부적합하다는판정을받으면국가와민중을위협할‘반동’으로몰린다.어린시절능력자가일으킨사고로가족을모두잃은국자는그저남의눈에띄지않고조용히살아가는것이남은삶의목표다.그러나그녀가능력을지녔다는것이밝혀지면서의도치않게기능력직공무원이된다.
좋아했던오빠는부적합판정을받은뒤능력을제어하지못해마을사람들을몰살시키고,홀로살아남은국자에게미래란그저예정된형벌과다르지않다.훈련원입소식,세상을향해무감한얼굴을한국자의뒤편에맴도는이들이있다.서로둘도없는친구가될거라며손을내미는화려한차림새의글로리아는미래를예언하는천리안의능력을지녔고,누구보다빠르게움직일수있으며맥가이버를닮아멋을부리기좋아하는최훈은자꾸만국자의곁에서알짱거린다.염력능력자로훈련생들을능수능란하게다루는강수자교관과,무뚝뚝한성격에누구든털끝이라도닿을라치면곧바로메쳐버리는괴력난신김숙녀까지.말그대로“날고기는사람들천지”에서국자의운명은어떻게흘러갈것인가.

“아빠도엄마가기능력직공무원인거알아?”
“모를걸.말한적없으니까.”
“왜말을안했어?”
“규정이그래.”
“지금나한테는말했잖아.아빠도가족인데,왜말안했어?”
(……)
“너희아빠가반동이라서.”
“반동?”
“아,이건아빠한테비밀로해라.”국자는입만뻐끔거리는미지에게신신당부했다.“알겠지?”(134~135쪽)

국가의도구가되는굴레에서벗어나자유롭게살고싶은국자는글로리아와모의해심사위원을속여최하등급을받는다.그러나어찌된일인지안기부는영웅과반동이수시로오가는김포국제공항레스토랑에국자를배치한다.그곳에서그녀는마치역병을이끄는귀신처럼사람들이모두두려워하는반동인윤수일을만나고,조금씩그에게끌리면서일은뜻하지않은방향으로나아간다.

“아니,국자씨는뉴스도안봐?”
“기숙사는텔레비전이휴게실에만있어서요.”
“저사람윤수일이잖아.반동!말만해도사람들이픽픽죽어나간대.”
주방직원이손으로목을긋는시늉을했다.방금도머리를쪼개버린다고하지않았어?윤수일이했던손짓까지따라하는모습에국자는고개를저었다.(140쪽)

최훈이윤수일의식탁을날려버려도,부적합판정자를인간으로대우할것을국가에요구하다윤수일이큰부상을입어도국자와윤수일의관계는흔들리지않았다.그러나그들은가는곳마다범국가규모의분쟁과유혈사태를일으키며“전장의악령들”로불리는능력자남매의방한이라는위기를피해갈수는없었다.전세계언론이한반도를주목하고전쟁의위협이가시화되는가운데정부는이를김포국제공항주변반동들을소탕할기회로삼는다.어느날국자에게비밀리에걸려온전화의목소리는철수령을내린다.공항에폭탄을설치한뒤모든희생을반동세력의탓으로몰고자하는정부의음모를알게된국자는자신이그간고수해온평안에대한갈망과이루어질수없는사랑사이에서선택의기로에놓인다.

목소리가언급한날짜는보름뒤였다.그날은휴가를내고공항에서벗어나야했다.국자가알수있는건그게전부였다.전부이나가짜전부,전부의일부에불과했다.진짜전부는자신의삶을짓뭉갤만큼더거대하고위험할테지만,그녀는알고싶었다.(288~289쪽)



초능력자들을통제하는20세기대한민국,
‘영웅’과‘반동’이라는이분법을거부했던사람들

희망과절망은한장의종이였다.먼저읽는쪽이앞면이고,나중에읽는쪽이뒷면이었다.단면만읽고구겨서버리는건일시적인도피였다.절망과희망중어느쪽을먼저읽어야할는지는알수없었다.언젠가는남은면도읽어야했다.묵묵히다읽어낸후받아들여야만남은시간을살아갈수있었다.(241쪽)

갓훈련원새내기를벗어난국자와친구들에게들이닥친아파트붕괴사고는그간한국에서벌어진인재(人災)들을그자체로상징한다.올림픽유치에혈안이되어‘영웅’들을해외로순방보낸국가,자신의능력조차잘알지못하는아이들을방패막이로내세우는어른들.그반대편에는친구를잃은사고에대한자책에서벗어나지못하고자신마저사지로이끄는공무원,잦은좌절에닳아버렸지만여전히세상을향한미약한희망을놓지못하는기자,초능력을지녔지만재난앞에서한없이인간적일수밖에없는이들이있다.구조작업이길어질수록국가의실패가명확해지므로,실패의흔적위에새건물을세워성공에대한열망만을가득채우겠다는계산앞에서소설은되묻는다.“성공이란건실패를완벽하게지우는걸까.지우고또지우면결국뭐가남을지국자는궁금했다.”
국자와윤수일의이야기는어려운질문을정직하게마주하고나름의길을찾아가는순간이며,그와함께막다른길에서사랑을길어내는장면이다.부적합판정자였던외삼촌의억울한죽음에복수한윤수일을어떻게정의할것인가.소설은국가가지시하는영웅과반동,피해자와가해자라는이분법으로부터비껴서서사람의다양한면모와,그러한사람들이빚어내는다채로운감정의색채를있는그대로재현해낸다.

아직도의문투성이였다.가령자신의손을힘껏뿌리칠엄두도내지못해서번거롭게손가락을하나하나조심스럽게떼어내는윤수일이어떻게중령의뇌를터뜨릴수있었는지.
“나는당신을잘모르겠어요.”국자는솔직하게말했다.그러고는윤수일의손을잡았다.“대체어떤사람인지도무지감이잡히지않아.하지만……”(337~338쪽)

현재와과거가교차되는소설의형식은능력자이자기성세대인국자와,아직자신의능력을알지못하는자식세대미지의대화이기도하다.세대를아울러똑닮은사건과고민은우리에게여전히해결되지않고남아있는질문이야말로가장시급한선결과제임을깨우친다.그리고풀리지않는문제를해결할능력은정말로‘능력’이아니라미지(未知)를가능성으로치환하는‘의지’에달려있음도.“이제선택은우리몫이고우리가감당할거니까.”그럴때우리에게남은시간은고통의연속이아니라삶이차려내는밥상을오롯이맛보는여유의누림일것이며,그것이인간에게소설이선사할수있는확실한선물일테다.유머와눈물,진지함과사랑이잔뜩버무려진한상의식탁앞에숟가락을들고앉은독자들은감탄도잊은채한바탕국자의이야기에빠져들어자리를떠날줄모르게될것이다.

그날국자는평소와달리계속이야기했다.커피를여러잔마시고간식을먹으면서이야기의끈을놓지않았다.가끔말을멈추고빼먹기라도한부분이있을지가늠하듯이리저리눈을굴렸다.그리고다시시작했다.국자의삶은나름의답에대한해설지라볼수있었다.물론그해설지는완벽하지않았다.오판과비약이있고,모순된부분도보였다.그러나국자가아는한제일나은답이었다.(388~3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