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 - 문학동네 시인선 180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 - 문학동네 시인선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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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그 눈빛들이 나의 말이다”
‘순간의 발행인’에게서 펼쳐지는 세계의 다정한 뒷면
문학동네시인선 180번으로 손택수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가 출간되었다.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한국 서정의 특별한 이름으로 자리해온 그가 자신의 감수성과 세계관을 더욱 넓힌 끝에 도달한 자리를 선보인다. 시집의 첫 시 「귀의 가난」에는 이번 시집의 태도가 집약되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찾아온 “귀의 가난”이 도리어 스스로 “자상해”질 수 있는 기회로 반전될 때, “상대방의 표정과 눈빛에 집중”하는 시집 속의 화자들은 세계의 잊힌 자리들을 조금씩 밝혀 보인다. 그 자리 안에서 모든 외롭고 괴로운 존재들이 마침내 안온해질 터이다.
저자

손택수

전남담양에서태어났다.1998년『한국일보』신춘문예(시)와『국제신문』신춘문예(동시)에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호랑이발자국』,『목련전차』,『나무의수사학』,『떠도는먼지들이빛난다』,동시집『한눈파는아이』,청소년시집『나의첫소년』등을냈다.

목차

시인의말

1부그눈빛들이나의말이다
귀의가난/머뭇거릴섭/저녁숲의눈동자/한모금물방울을붙들고/연못의연인/11월의기린에게/푸른말/먼집/바닷가수도원/김형영스테파노의초/광화문네거리에서/바다무덤/지붕위의바위/모래인간/나무의장례/수목장/釜山/서해까지밀리는방(房)―호석에게/흰바위산의약속/밥물눈금/먼지의이사/죽음이준말/거시기,/이력서에쓴시

2부우리는해지는너른벌판을함께보았다
모과의방/권정생의집/ㅁ자마당에물발자국/세잔의방/반고흐생각/지베르니/기분과기후/의자위에두고온오후/풀잎으로별을당긴다/비단길/대나무/단도/녹색평론/함평/피아노와폭격기―매향리/광기는어떻게세계에복무하는가/어떤슬픔은함께할수없다/난민의말/오달만/북벽향림/바다로간코뿔소―朴鹿三에게/모슬포/철원/그림일기/눈사람

3부겨울은지상의가장오래된종교
동백에들다

4부순간의발행인
제비집―동탄1/입춘첩―동탄2/노작(露雀)공원에옥매를심고서―동탄3/기계의마음―동탄4/눈물봉분―동탄5/배롱나무아래요가를―동탄6/아가미호흡―동탄7/자귀나무속눈썹―동탄8/인어의추억―동탄9/고군산군도/참치의아가미/완전한생/왔다간시/요점없는인간/심심파/잎이쓰다/귀룽나무의말/춘양한수정에달뜨면만나자던약속/숨은꽃/석류/돌멩이의말/방의모험/순간의발행인

해설|해양동물이창공비행을꿈꾸며쓰는육상일기
신형철(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한동안가지않던바다에간다상처라는게흔적이남아야치료도되지둘사이의금기였던아이들이야기를나눈다
_「바다무덤」부분

일찍이자연을이루는존재들로자신의시를가꾸어온시인은“하늘과숲이만나뜨는/저수만의눈을마주하기위하여/더깊은숲속으로들어간다”(「저녁숲의눈동자」).그러나이번시집에서사뭇남다르게도드라지는것은자연속에서의자족이아니라외려통렬한자기반성이다.시인은“낙엽의소유권과실용성을발견”하는“지상”을겨냥하다가도,“반성도중독성이되어덕지덕지살이오”(「11월의기린에게」)른스스로의모습을뼈저리게토로한다.광화문에서칼럼을쓰던시인은용산참사와세월호사건을생각하며묻는다.“왜이고통의느낌마저가공된것만같은것인지,/재주라곤슬퍼하는능력밖에없건만/이슬픔마저왜모조품같은것인지”(「광화문네거리에서」).그래서시인은세상에게,그리고자신에게‘안부’를묻는다.“당신의안부이자플라타너스의안부이고나의안부이자이시대의안부이며,결국사라지는중인모든고귀한것들의안부”(신형철,해설부분)는그동안외면해왔던상처가비로소가시화되는처방일것이다.
여기잠시만앉았다가세요혹시알아요
누가당신을바짝당겨앉기라도할지,
이게무슨향인가하고요
그때잠시모과가되는거죠
_「모과의방」부분

이어지는2부는시인의처절한반성이세계를새롭게덧칠해내는공간이다.듣고보는이가되어타인의모습과목소리를내재해보는시인은세잔의그림으로부터“실내를자신의의지로조금씩흔들고있는꽃”(「세잔의방」)을보고,“감나무”“그늘”아래서“기상을바꾸고있는중인가한다”(「기분과기후」)며풍경속대상들과호흡을맞추어보는경지에이른다.“하늘을베개로삼은자”인“누에”(「비단길」)와,“자신이자신의첨단이된자”(「대나무」)에게서삶을오롯이누릴수있는태도를길어내는시인은너무나도익숙해천시되었던작고약한이들에게주어지지못했던공간을마련해낸다.“역전에가면볼수있던광인들”(「광기는어떻게세계에복무하는가」),“혼자서중얼거리는사람”(「어떤슬픔은함께할수없다」)은사회가강요하는정상성으로부터비껴서있는이들이홀로떠받쳐온슬픔과,그들의순진함이드러내왔던세계의균열을명확히가리킨다.“바다에서모든섬은중심”이듯이이들에게합당한자리를내어줄수있을때에야빠듯하게삶을살아내고있는현대인들도“황홀한분리주의자”(「바다로간코뿔소―朴鹿三에게」)로서자신의자리를찾게될것이다.

어쩌면스스로빛을뿜어내는것들은모두자신만의카랑카랑한절벽을갖고있는지도모른다별이수직상승을통해닿을수있는섬이라면섬은끝없는수평이동을통해닿을수있는별
_「동백에들다」13부분

3부를채운장시「동백에들다」는자연과세계를향하는시인의시선이그대로시(詩)화된하나의절경이며,한사람의이력이시가될수있다는것을보여주는구체적인실천이다.꽃잎의개화가“사랑을나누는연인”의모습이되는것으로시작되는이시가바라보는대상이동면에서깨어나는뱀,물위로튀어오르는빙어,시인의상갓집을찾아온노숙자에게로점차이어지는동안어느새시인의시선은자신의삶으로향한다.“사랑할사람도이별할사람도없이불어터진어묵같은날들,가늘게들썩이는저만수위속으로나도첨벙뛰어들수있”기를바랐던심정은지나온과거에대한회한과미련을압축하지만,“단한번만이허락되는이별을통해서만간신히다가갈수있는사랑”을직시하는시인은삶의막다른길에서도미래를향한긍정을주조한다.“지상의가장오래된종교”인겨울은소망을배태하는시간이다.겨울에꽃을피우는동백처럼미약한숨과더불어무한한가능성을머금은모든이들을위해시인은인생의희로애락을한편의시로풀어낸다.

나란늘엇결같은것인가
엇결의불일치로결가부좌를튼것이나인가
조금씩은늘허전하고,부끄럽고,불만스러웠으나
조금씩은어긋나있는생을자전축처럼붙들고회전하면서
_「완전한생」부분

시집의4부에서시인은점차앞으로걸음을내디딘다.그러나시인의걸음은왕성한움직임이아니라단어와단어를차츰차츰놓아보는것에가깝다.“숨을각성해야하는비애를축복으로”삼은참치가“숨을끊고서숨을잇”(「참치의아가미」)듯이,“섬을잃고마침내나는/섬이되었다”(「고군산군도」)는시인의고백은고독과비애에도불구하고스스로를포기하지않겠다는의지의표명이기도하다.“무얼고집않고도이미/자신인너”(「심심파」)가될수있다면“생면부지에도친근한것들”(「귀룽나무의말」)의말을들을수있고,“자기자신밖에가진게아무것도없으면서도”“자신너머에있”(「돌멩이의말」)는‘돌’과같은경지에다다를수있다.그때에우리는서로이끌리는,“이유를몰라도좋은이유”를품고“풀고풀어도풀수없는비밀을함께/간직하”게될것이다.석류가“석류로서투명하고석류로서충만”(「석류」)한것처럼.
그러므로시집의제목‘어떤슬픔은함께할수없다’는어떤슬픔도함께할수있기를바라는,그래서우리가어떤존재도포용할수있게되기를바라는시인의마음이응축된문장이다.손택수에게서포용은희생이아니라스스로를넓히는배움의과정이므로.주변을통해진정한‘나’를발견하는‘순간의발행인’손택수는독자로하여금자신의세계를확장하도록,그렇게스스로의순간을집필하도록,마침내새로운삶을시작하도록권유한다.

칼샌드버그는시를두고“해양동물이창공비행을꿈꾸며쓰는육상일기(thejournalofaseaanimallivingonland,wantingtoflytheair)”라고정의한적이있다.나는내가쓰지도않은이문장을그에게주고싶다.그의시에는타고난성품,내던져진현실,추구하는이상사이에서벌어지는고투가끌어내는아름다움이있기때문이다.이력서를뜻하는프랑스어‘resume’는다시시작한다는뜻의영어‘resume’과한통속이다.언제나과거를정리하는일은다시시작하는일이다.시인손택수도이책과함께다시시작할것이다.그게무엇이든,그다운방식으로.
_신형철,해설「해양동물이창공비행을꿈꾸며쓰는육상일기」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