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

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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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21 노벨문학상 수상

떠났으되 떠나지 못한 이들의 초상을
연민어린 시선으로 복원해내는 걸작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일곱번째 장편소설 『배반』이 출간되었다. 아프리카 출신 작가로는 네번째로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주요 무역 거점으로서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공존해온 잔지바르에서 태어나 1968년 영국으로 이주했으며,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을 소재로 20세기 조국 잔지바르의 정치적 환란과 그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디아스포라의 삶을 연민어린 시선으로 탐구해왔다.

2005년 발표한 『배반』은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짙어지던 1899년, 그리고 독립과 혁명의 광풍이 사회를 휩쓸었던 20세기 중반에 각각 싹튼 비밀스러운 열정을 중심으로 인종의 차이를 초월한 사랑, 그것을 압도하는 전통의 굴레와 시대의 격랑, 그리고 삶을 이어가게 하는 이야기의 힘을 그린 작품이다. 기묘한 운명으로 얽힌 연인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그가 평생에 걸쳐 천착해온 ‘떠남’과 ‘단절’의 주제를 가족, 조국과의 관계로까지 자연스럽게 확장시켜나가는 이 소설은 작가의 여러 작품 가운데서도 특히 높은 평가를 받으며 커먼웰스상 최종후보에 올랐고, “강렬한 내러티브를 쌓아나가는 능력과 가족 간의 역학관계를 포착하는 섬세한 시선, 인간 정신을 좀먹는 식민지배에 대한 이해를 완벽히 장악한 기량이 정점에 오른 작품”(〈시애틀 타임스〉) “구르나의 묘사는 마에스트로의 경지에 이르렀다”(〈가디언〉) 등의 찬사를 받았다.
저자

압둘라자크구르나

저자:압둘라자크구르나
2021년노벨문학상수상자.1948년12월20일영국보호령잔지바르섬에서케냐와예멘출신부모사이에서태어났다.
포르투갈식민지에서오만제국의속국을거쳐영국식민주의보호령이되었던잔지바르는1963년12월술탄을지도자로하는독립군주국이되었으나불과한달만인1964년1월잔지바르혁명이발발하며이슬람왕조가전복되었고,혁명을주도한흑인정권이탕가니카와의합병을주도해,같은해10월수립된새로운국가탄자니아의일부로편입된다.이혁명의여파로아랍계엘리트계층및이슬람에대한박해가거세지자구르나는1968년잔지바르를떠나학생비자로영국에도착한다.페르시아어로‘검은해안’을뜻하는잔지바르는전통적으로아프리카와아라비아와인도를연결하는무역항이자세문화의교차점역할을해왔는데,이러한혼종성은구르나가잔지바르를떠나기전까지그의정체성을확립해나가는토양이되어주었으며,기독교와백인이중심인영국사회에서아프리카인이자이슬람으로살아가게된그가겹겹의억압과차별속에서역설적으로자신만의시각을갖추고문학과삶을대하는것을가능하게해주었다.
1968년캔터베리크라이스트처치칼리지에입학했으며,이듬해부터영어로소설습작을시작했다.1976년런던대학교에서교육학학사학위를받고(당시크라이스트처치칼리지는런던대학교에서학위를수여)1982년켄트대학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1980년부터교수임용전까지나이지리아바예로대학교에서강의했으며,1983년켄트대학교영문학및탈식민주의문학교수로부임해2017년퇴임하기까지34년간재직했다.2006년영국왕립문학회펠로에추대되었고2016년에는부커상심사위원에위촉되었다.“식민주의의영향과대륙간문화간격차속에서난민이처한운명을타협없이,연민어린시선으로통찰했다”는평과함께2021년노벨문학상을수상했다.
1987년장편소설『떠남의기억』을시작으로『순례자의길』『도티』『낙원』(부커상및휫브레드상최종후보/문학동네출간)『침묵을기리며』『바닷가에서』(부커상후보,로스앤젤레스타임스도서상최종후보/문학동네출간)『배반』(커먼웰스상최종후보/문학동네출간)『마지막선물』『괴로운마음』『그후의삶』(월터스콧상후보,오웰상최종후보/문학동네출간)까지10편의장편소설을출간했다.이밖에7편의단편소설을발표하고다수의에세이와비평을집필했으며2편의에세이를편집했다.
영어를주집필언어로사용하면서도모국어인스와힐리어와아랍어,독일어등을작품에그대로노출시키는것을꺼리지않는다.작품대부분이동아프리카연안을배경으로하고있으며,잔지바르가원경으로등장하는경우가많다.노벨문학상수상이전에도부커상과휫브레드상최종후보에오르는등비평가들로부터좋은평가를받았다.
1984년아버지의임종을지키기위해17년만에잔지바르를다시찾았고,가족과친지들은여전히거주하고있는탄자니아에대해“나는그곳에서떠나왔지만,마음속에서는그곳에산다”고말한바있다.현재켄트대학교영문학및탈식민문학명예교수이며,캔터베리에거주하고있다.

역자:황가한
서울대학교에서불어불문학과언론정보학을복수전공한후출판사에서편집자로근무하였으며이화여자대학교통역번역대학원에서한영번역학으로석사학위를받았다.옮긴책으로『상실에대하여』『여자를위한도시는없다』『숨통』『보라색히비스커스』『울지마,아이야』등이있다.

목차

1부
1하사날리…9
2프레더릭…46
3레하나…81
4피어스…120
중지…159

2부
5아민과라시드…177
6아민과자밀라…222

3부
7라시드…279
8아민…326
계속…359

해설|고향을향한구르나의“한숨과그리움”…367
압둘라자크구르나연보…379

출판사 서평

그어느작품과도비할수없는아름다움과기쁨으로가득하다.
구르나의묘사는마에스트로의경지에이르렀다.
-가디언

시대의격랑속에서싹튼비밀스러운열정과전통의굴레
어디에도속하지못하는디아스포라의삶

1899년어느이른아침,작은상점의주인하사날리는기도시간을알리기위해모스크로향하던중길에쓰러져있는백인남자를발견한다.의식을잃은상처투성이백인의등장에마을에서는소동이벌어지고,하사날리는곤경에처한이에게은혜를베풀어야한다는이슬람의교리를지키기위해서,그리고경외와호기심의대상인백인을독차지하고싶다는마음에그를자기집으로데려가보살핀다.소식을접한그지역의영국인관리프레더릭터너는문제의백인을관사로데려가고,그곳에서정신을차린남자는마틴피어스라는이름의영국인임이밝혀진다.유럽문명의우월성을믿으며아프리카인을정복과계몽의대상으로여기는여타백인들과달리순수한호기심으로아프리카의“풍경을보고언어를들어보고싶”어하는그는대륙여행에대한기대를품고백인관광무리에합류했지만,동물을도륙하는일행들을견디지못하고무리와헤어졌다가길안내를맡은소말리아인들에게모든소지품을빼앗기고버려진것이었다.마틴은하사날리가그의목숨을구해주었음에도소지품을훔쳤다는근거없는의심을받았다는사실에죄책감을느끼고,건강을회복하자마자감사의마음을전하고부당한대우에대한사과를하기위해하사날리의집을찾는다.그리고그곳에서하사날리의누이레하나에게알수없는이끌림을느끼고,결혼에실패한뒤체념속에서하루하루를견디듯살아가던레하나역시미지의존재마틴에게강렬한매혹을느낀다.

그리고이야기는반세기후,독립을앞두고혼란스러운1950년대후반의세남매에게초점을맞춘다.공부에소질이없는맏이파리다는몇번의시도끝에진학을포기하고집안일을돌보며마을의여자들을대상으로옷을지어판다.반면어린시절부터바깥세상을향한호기심이왕성해이탈리아어를독학하며식민교육에빠른속도로적응한막내라시드는영국유학을위한장학생시험을준비한다.그리고둘째아민은부모님처럼교사의길을걷는한편이루어질수없는은밀한사랑에빠져든다.상대는파리다의고객이자마틴과레하나의손녀자밀라로,인도인과유럽인의피가섞인데다이혼경력이있으며유력정치인과교제를한다는소문이돌아눈총을받는여성이다.두사람의밀회를알게된아민의부모는자밀라의배경과과거,추문을이유로둘의관계를반대하고,어린시절부터순종적이던아민은사랑을포기하고늙어가는부모를돌보며살아간다.한편이모든혼란을뒤로하고마침내영국으로유학을떠난라시드는그동안너무도잘안다고생각해왔던세계에진입하는것이불가능함을깨달으며이방인이자혐오스럽고열등한존재로삶을이어간다.떠나온조국에서는혁명의소용돌이가가족의삶을송두리째바꿔놓았지만,검열을거쳤을편지와뉴스를통해단편적으로전해지는소식으로만그곳의실상을짐작하며두고온이들에대한부채감을느낄뿐이다.그리고마침내라시드는자신이함께하지못한고통을조금이나마이해하기위하여,미처알아차리지못했던형의아픔을헤아리기위하여과거의시간을되살리고자한다.

단절과떠남으로기록되는크고작은개인의역사들
그리고삶을이어가게하는이야기의힘에대한증언

제목에서도유추할수있듯이작품은‘관계의단절’‘떠남’이라는주제를연결고리로끝내파국을맞은사랑이야기와잔지바르의역사를한데엮는다.제국주의가본격화되어가는19세기말사랑에빠진연인은인종의장벽을맞닥뜨리고,반세기후비슷한관계에놓인두사람역시격렬한반대에부딪혀결국이별을맞는다.단절과떠남의주제가반복되는가운데가장주목해야하는인물은후반부의주인공라시드로,떠나온곳과지금살고있는곳어느쪽에도속하지못한채이중의소외를겪는그외부자의삶은작가인구르나자신의개인적삶의궤적을떠올리게한다.망명자가되어고국에서일어나는정치적박해를그저“머나먼곳에서일어난비극”으로관찰할수밖에없는라시드는“영국에살며나는그런문제들로부터멀리떨어져있었지만여전히마음속으로는큰고통을받았다”는작가자신처럼“트라우마로부터도망치고,자기만스스로의안전을찾아떠났다는마음의짐”을품고살아간다(노벨문학상연설문).동시에지금살고있는곳에도완전히동화되지못하고유럽인의눈을통해,즉“혐오스럽고불만족스러운시선으로자신을바라보기시작”하면서지금까지쌓아온정체성과도단절된채과거와현재를오간다.

이렇듯연인과가족을,그리고조국을떠났으되떠나지못한이들의초상을그리면서도작가는향수와비애에매몰되는대신그고통을이해하고삶을이어가게하는이야기의힘에대해역설한다.전반부가마무리되는시점에1인칭화자‘나’가등장하면서이모든이야기는라시드가기억과상상을동원해과거를재구성한것이라는사실이드러난다.고국의혼란스러운상황과거리를둔채할수있는일이라고는“잃어버린것들에대한슬픔과죄책감”으로우는것뿐이었던그는떠나온가족을,특히형을이해하기위해그가겪었던인생의비극을기록하기로한다.그과정에서자신이함께하지못한형과누나의삶을재현하려는시도는오십년전의두연인과그들주변의인물에대한관심으로까지확장된다.라시드의이야기속아민역시사랑을포기한자신의선택에수치와회한을,혁명정부의정치적탄압에무력감을느끼면서도“나자신에게내가살아있다고말하기위한행위”이자“잊지않기위한방법”으로끊임없이스스로의이야기를남긴다.결국반세기의시차를두고반복된비극으로만보였던연인들의운명은이러한이야기를통해새로운생명을얻고,더나아가또다른이야기의출발점이될가능성을암시한다.

작가는라시드의입을빌려말한다.“이이야기에는‘나’가있지만이것은나에관한이야기가아니다.이것은우리모두에관한이야기”라고.거대한서사는포착하지못하는평범한이들하나하나의삶을기억하고이야기함으로써크고작은역사를복원해내는것,그를노벨문학상수상자로호명하게한힘은바로여기에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