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기 - 문학동네 시인선 181

회복기 - 문학동네 시인선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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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사람을 먹여 살리는 미음 같은 마음
그 순정한 서정이 전하는 다음을 위한 당부
문학동네시인선 181번으로 허은실 시인의 두번째 시집 『회복기』를 펴낸다. 첫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로 사람의 설움을 언어화하며 너른 사랑을 받은 시인이, 이제는 우리가 설움에서 회복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간곡한 소망을 담아낸 시집이다. 2020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 안팎에는 숱하게 난 생채기가 있다. 너무 많은 죽음과 절망으로 인간의 삶이 버거워진 지금, 시인조차 서정을 용납할 수 없는 시대에 『회복기』는 다시 서정을 회복하기 위한 기록이자, 우리의 다음을 기원하는 기도가 된다.
저자

허은실

1975년강원도홍천에서태어나서울시립대학교국문과를졸업했다.다수의라디오프로그램과팟캐스트‘이동진의빨간책방’의작가로활동했고,2010년실천문학신인상에당선됐다.대학3학년무렵,선물받은최승자의시집『내무덤,푸르고』를읽고시에눈뜨게되었다.백석,김수영,파블로네루다,최승자를시적스승으로생각한다.청각,후각,미각이예민하고,계절의변화에민감하다.동음이의어개그...

목차

시인의말

1부나는너무급하게늙었다
반려/새/회복기1/물려입은잠/보칼리제/귀래/부추꽃처럼웃어서/不歸/폐사지/회복기2/흔/병어1/병어2/노래는나를문밖에세워두고

2부헛되도록진심이었어
소수―지리/소수―화학시간/하지/칼과신/십일월/이즈음내서글픔은/흰뱀/초/羅/꾸다만꿈/우리는풀베인저녁을헤매었다―헛꽃/그것

3부차가운연필심을혀에대보면
개를끌고다니는여자/내파/가믄장아기에게헤카테가/저수지/간증/타인의고통은먼바다의풍랑주의보가아니다―mute/마이스위트밸런타인/영두의난간/Ω,패턴과방향/충주휴게소/폴리/Kommos:바람타는섬

4부귤꽃하영와서나는잘도쓸쓸해져요
사월/순례자/개/동백동산/목격한나무들은죽지않는다―늙은불칸낭/송애기/폭넓은치마/배후/합동분향소/타임라인―bombing:blooming:blooding/지나가는사람―광장혹은시장/초―겨울파종/설움이나를먹인다/회복기―연고

5부세상에는이런것이아직있다
춤추는별/귤/무릎/스윙바이/여름밤/후라보노/우리의가장나종지니인/힐스테이트/유물/눈물은늙지않는다―얼음새꽃/모음/첫눈

해설|설움기록
선우은실(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이제우리는서로의눈빛에책임이있어요

거친여울저무는기슭에서
서로의눈에스민계절을헤아리며
표정이닮아갈날들

그리하여어느날
세상에지고돌아온당신이
웅크려누울때

적막한등뒤에
내몸을가만히포개고
우리는인간의말을버리기로해요
_「반려」부분

시집의첫시「반려」는서로의존재가벅차서로를책임지지못하는시대에용기있게독자에게건네보는,경계를건너보는시다.세계가인간을더욱엄혹하게다루어“세상에지고돌아온당신”들이가득해질때,당신을보듬는손이더욱긴요해진다.서시의첫구절이기도한“이제우리는서로의눈빛에책임이있어요”가시집이앞으로꺼낼염원들을예고하며마치부제처럼자리하는동안,돌아누운등뒤에얹어지는손길이있다.시인은우는“밤새”로부터“나모르게/곡을하고있는”“내얼굴”을발견하며,“나를얼러주는”“어린참나무잎”덕분에“비로소연한것들의/이름을쓰기시작한”(「회복기1」)다고말한다.숨을내쉬는모든존재에게서위안을길어내며“후회를모르는얼굴로/이해없이사랑하고싶”(「회복기2」)다고분명히말하는순정한마음이다.
회복이필요하다는것은상처받았다는뜻이다.시인은이를꽉무는습관으로부터“내것일리없”는“새로태어난이누대의피로”(「물려입은잠」)를찾아낸다.영문도모르는채로고통받고있는이들이늘품고있는,도대체왜이렇게힘들어야하느냐는질문으로부터밝혀지는것은인간이과연홀로존재하지않는만큼홀로고독하지도않다는사실이다.시인에게슬픔은타인의고통을헤아리는이의어쩔수없는기질에서기인한다.그기질은“내몸에동거하는/다른혼의숨소리”(「보칼리제」)를듣는자의운명이기도하므로누대에걸쳐이어진인연을돌아보는것이곧‘나’의슬픔을돌보는길이될터이다.

아서,그건귀신의것이란다
기억하지않는다면
슬픔도없을것을

나비한마리맨발로칼을건넌다
_「칼과신」부분

기억은누군가의현존을두눈으로확인할수없는이가평생을이고갈과거의장면들이겠다.물론때로는일상을살아가기위해슬픔을벗으며“삭제는간단하고속죄는편리하다”고느끼는스스로를발견하지만,시인은“불안이나를걸어가게한다”(「이즈음내서글픔은」)는것을분명히자각한다.잊은채로살아간다는것은결국도피가아닐수없다는깨달음이다.그래서그는“필사적인초여름헛꽃들”이“향기도없이얼마나/아름다웠”는지말하기로한다.“헛되도록진심이었”(「우리는풀베인저녁을헤매었다―헛꽃」)던이들을기억하는일,곧‘쓰기’로되살리는일이다.
시집내내시인은스러진존재들을수면위로떠올린다.에어컨설치기사의장례식장(「영두의난간」),팔레스타인가자지구(타임라인―bombing:blooming:blooding」),5·18민주항쟁(「배후」)과세월호참사,그리고제주4·3사건까지.“살아있기에발딛고있는이물리적환경들,그리고구축된제도와사회의유지란어떤이들의죽음을담보한것임을드러내는강력한고요”(선우은실,해설부분)이므로시인에게타인의죽음은현재라는토대를빚은물리적인전제가되며,동시에자신의삶을가능케한정신적인근거이기도하다.시인이개의눈과입을빌려말하듯이“지켜내는것”으로서의“사랑”을알려주는인간은“슬픔으로창자가녹아버리”는,“소중한것을땅에묻는종족”(「순례자」)이며,“울음의연대”에도리어“부향순전복죽,컵누들우동맛,마스크세트”라는“당신것으로연명”(「설움이나를먹인다」)하도록화답하는존재라는사실이간절히전해진다.

노인은이제서러운노래를들려주며우는데
나는학살도전쟁도모르는
새파란육지것
말모르는사람처럼그저
손이나잡고있어보는데

아이고손이왜이렇게차요
그의다른손이나의손을덮어준다

(……)

울다말고
내찬손을덮어주는
이마른손때문에
_「눈물은늙지않는다―얼음새꽃」부분

『회복기』에서봄은숱한죽음을야기한,마치“고지서처럼”(「하지」)오는계절이지만서도시인은그봄으로부터“햇노란나비들”(「회복기―연고」)을확인한다.“모든죽음을등에업고/가장급진적반대진술을하러”(「사월」)오는봄의역동성으로부터애도이후에도이어질삶을마련해보는것이다.죽음을직접겪어보지않은이들이그럼에도느끼고마는슬픔의기원을헤아리고,그슬픔의승화를도모하는시인은마음이불어오는(「모음」)봄의기운을우리에게전한다.시집의마지막시「첫눈」속“곡기를끊고/누운사람”의이거칠거칠하고황량한등뒤에심상히건네지는손과말,그리고음식이있다.이것이사람을살게한다.그리고“세상에는이런것이아직있다”고말하는시인은그말간낙관으로사람을살아보게끔한다.

이런방식으로나눠지는마음과베풀어지는설움들,서로가서로를위로하고자‘-되기’를시도하는이매번의부딪는순간들에빚져생은살아지며연대는그렇게작동한다.그러니허은실이오래도록붙잡고있는이설움이란,결코완전한‘-되기’가되지못한다는간극인동시에그럼에도찰나의‘-되기’들이이어져서로가서로를끌어안을것이라는믿음에대한정서다.우리는이제,허은실의이런작업들을설움기록이라불러도좋겠다.
_선우은실,해설「설움기록」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