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연인, 환자, 시인, 그리고 너 | 양장본 Hardcover)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연인, 환자, 시인, 그리고 너 | 양장본 Hardcover)

$16.50
Description
“나는 시로는 쓸 수 없었던, 어떤 진술들을 여기에 다 풀어놓았다”
금지와 금기를 부수는 위반의 언어, 김혜순 시론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1979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40여 년간 세계의 지배적 언어에 맞서는 ‘여성의 언어’ ‘몸의 언어’로 한국 현대시의 미학을 갱신해온 김혜순 시인, 그가 20년 전 펴낸 첫 시론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의 개정판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여성의 글쓰기에 대한 김혜순 시인의 천착과 그의 작품세계 본령이 밀도 높은 산문으로 처음 정리된 책이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이었다. 이 책에서 그는 “문학적 보편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남성적 원전에 부대끼면서도,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서양적 담론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사는 제3세계의 여성시인”으로서, “이 이중 삼중의 식민지 속에서 나는 여성의 언어로 여성적 존재의 참혹과 광기와 질곡과 사랑을 드러내는 글쓰기에 대해 말해야 한다. 이것이 나에게 시를 쓰게 하고, 이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다”(6쪽)라 설파했다. “나는 매번 발명해야 한다, 언어를. 나에겐 선생님도, 선배도 없다. 나에게 모국어의 여성적 전범은 없다. 당연히 내 몸의 내재적ㆍ파동적 원리에 따라 새로 발명한 언어가 뛰어놀 수 있는 장(場)도 없다”(181쪽)고 여긴 김혜순 시인은, ‘바리데기’ 신화에 기대어 여성시를 완전히 새롭게 들여다보는 작업에 착수하였고, 여성시인의 다양한 발성을 ‘거부와 위반의 시학’으로, ‘고유한 사랑과 치유의 형식’으로 새로이 위치 지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바리데기’는 버려지고 던져지고 다시 살아난 여성시인의 화신으로서 새로이 호명된다. 바리데기의 이야기는 문자 기록이라는 권력의 편이 아닌 구술 세계에서 보존되어온 특성 탓에 연희 공간에서 매번 새로운 텍스트로 짜일 수 있었다. 비실재적인 현실과 실재적 현실이 만나 새로이 구축되는 연희의 장에서 김혜순 시인은 “여성적 텍스트의 수용, 독해의 새로운 방향성”(22쪽)을 가늠해본다. 매번 탄생하는 이본들 속에서 새로운 여성 주체가 솟아오르고 “그 노래가 불리는 현장에서 여성적 담론의 실천을 은밀히 도모하게 된다”(45쪽)는 것이다. 바리데기와 마찬가지로 여성시인은 “타인의 현실로만 존재하는 현실을 인지하는 순간”을 경험한 뒤 “자신이 병들었다는 것, 그 병과 함께하는 죽음을 명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아픈 몸으로 죽음과 삶의 소용돌이를 치러낸다. 그런 어느 시간의 지점에서, 여성시인은 여성성에 들린다. ‘들림’의 순간 여성시인은 자신의 이제까지의 경험들을, 상징적인 치름의 순간들을 환기할 수 있게 되고, 그 과정의 기록이 여성시인의 시편들이 된다.”(24쪽)
김혜순 시인은 쫓겨난 바리데기의 여정을 따라 여성적 글쓰기의 신비한 원천과 욕망에 대해, 여성이라는 이름의 병에 대해, 전복적인 욕망에 대해, 머무름 없이 떠나고 스미지만 소유하지 않으며 편재하는 물의 이미지에 대해, 여성의 몸속에 죽음으로써 현존하는 어머니에 대해 가없이 써간다. 이는 결국 김혜순 시인을 표상하는 상징적 표현 ‘시하다’로 귀결되는 진술에 다름 아닐 것이다.
저자

김혜순

1978년 <동아일보>신춘문예평론부문에입선했고 1979년 <문학과지성>에시를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1989년서울예술대학교문예창작과교수로임용되어 2021년까지학생들을가르쳤다.시집『또다른별에서』『아버지가세운허수아비』『어느별의지옥』『우리들의음화』『나의우파니샤드,서울』『불쌍한사랑기계』『달력공장공장장님보세요』『한잔의붉은거울』『당신의첫』『슬픔치약거울크림』『피어라돼지』『죽음의자서전』『날개환상통』『지구가죽으면달은누굴돌지?』『김혜순죽음트릴로지』,시산문집『않아는이렇게말했다』,산문집『여자짐승아시아하기』,시론집『여성이글을쓴다는것은』『여성,시하다』등을펴냈다.김수영문학상,현대시작품상,소월시문학상,미당문학상,대산문학상을수상했다.『죽음의자서전』으로캐나다그리핀시문학상을수상했고,2021년스웨덴시카다상,2022년삼성호암상예술상을수상했다.『날개환상통』으로미국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2023최고의책시부문을수상했으며,『죽음의자서전』으로독일 HKW국제문학상등을수상했다.
사진ⓒ정멜멜

목차

초판책머리에
개정판에부쳐

1부
들림의시─여성성이란무엇인가
ㆍ뻐꾸기와잠수함의토끼

여성적발화─버려진여자가버려진여자를쓰다
ㆍ바늘로만드는조각

장소─그여자가서역으로간까닭은
ㆍ태양지우개님이싹싹지워주실나의하루

어머니─시의모성에대하여
ㆍ연애와풍자

형식─여성으로서의치름
ㆍ0시의부에노스아이레스

어머니로서의시텍스트─거꾸로의출산을위한
ㆍ여자들의가슴속엔무엇이들었을까

물─물의언술
ㆍ당신의꿈속은내밤속의낮

병─여성이라는이름의병
ㆍ처참한메시지

증후─죽음을껴안고뒹구는말
ㆍ현대서정시를읽는독자의자세

사랑─내가사랑을멈출수없는이유
ㆍ혼란에빠진아버지들

몸말─몸으로시를쓴다는것은
ㆍ여성성,모성,환유

2부
어머니와처녀라는허구─演技?煙氣!延期?緣起!

있는가하면없고,없는가하면있는─시의몸

여성의몸─흐르는,더러운,점액질의

소용돌이─KissoftheSpiderWoman

프랙털,만다라─그리고나의시공화국

Mr.Theme,WhereareYou?─그리고시적현실이란?
ㆍ창조자의구도(構圖)

몸으로말한다는것─죽음이라는유한성과삶이라는무한성속에서

시는시다─지금,여기의시

출판사 서평

여성이쓰는시는쓰인것이아니라행해진것이다.그것은경험한것이고,몸으로한것이다.시는쓰는것도,짓는것도아닌,‘하는’것이다.존재‘하는’것과마찬가지로,사랑‘하는’것과마찬가지로시‘하는’것이다.시는시인인내가생산한것이아니라삼라만상이시‘하는’것과마찬가지로내몸이시‘하는’것이다.내몸이라는감각의환영이,내마음이라는콘텍스트가삼라만상의시‘하는’자태와함께어우러졌을뿐이다.삼라만상의시‘하는’자태는자신들의있음을가지고,자신들의없음을현현하는것이다.나또한시‘하는’순간엔내안에내재한죽음이그들의죽음과어우러진다.나는그들과어우러지는이미지속에서없음의유희를한다.감은눈으로보고,만지는것이다.나는나를써(使用)버림으로써,시쓰게(創作)되는것이다.
_122쪽,「병─여성이라는이름의병」에서

한편의글안에는바리데기의여정과직간접적으로이어지는김혜순시인의단상이상자에담겨‘글속의글’로실려있다.큰물줄기와다채로운작은물줄기가뒤엉켜발생하는새로운의미와이미지들을두루누려주시기를바란다.
20년전김혜순시인은‘왜여성이쓴시는소통의장에서소외되어있는가,왜여성의언어는주술의언어인가,왜여성의상상력은부재·죽음의공간으로탈주하는궤적을그리는가,왜여성의시적자아는그렇게도병적이라는진단을받는가,왜여성의시는말의관능성에탐닉하는가’와같은질문을던지고답을구했다.다시선보이는이책이그때만큼급진적으로읽힐지,그사이여성시는여성의형식을충분히발명했을지,전사(前事/前史)를이어받아우리는어떤논의를이어갈수있을지,꾸준히이책을찾아주고읽어온독자들의새로운회신을기대하게된다.문학과여성학에관심이있는독자에게여전히이책은형형히빛나는이정표이자삶과앎의해상도를높이는렌즈가되어줄것이다.

무엇보다도여성시는여성의형식을발명한다.면면히내려오는말하기방법말고다른말하기방식말이다.무엇을말하는가도중요하지만어떻게말하는가가여성주의적발성의창안이라고할수있다.여성의말하기방식바깥에는면면히이어져내려온,자기를강화하고권력을산포하는시적발명물들이포진해있다.나는이와는다른여성의시적발화를‘들림’이라고도불렀는데,이것은여성적들림이여성이라는이유로거절,버려짐,죽음을당해본경험의집적속에서터져나온하나의다른,언어를넘어선목소리이기때문이었다.이목소리의형식은무너짐,부숨,흘러내림같은‘물의움직임’을닮은투명하고둥글며물렁물렁한구축이다.들림의고통만큼큰것은없다.우주와같은것이들어와신체화되는고통은사람이짐승(몸)이되는고통만큼이나힘들다.이렇게‘여성적들림’으로여성은다른방식의발화자가된다.
_12쪽,「개정판에부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