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여성 잔혹사

흡연 여성 잔혹사

$17.00
Description
『영초언니』의 작가, 제주올레길을 낸 여자 서명숙의 연煙애담
“담배는 우리가 순종적인 여성이 아님을 드러내는 표식이었고,
남자들에게 ‘엿 먹어라’ 내지르는 감자주먹이었고,
영혼을 해방시키는 해원의 깃발이었다.”
“그녀는 담배를 피웠다.”
모든 사건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이 책은 27년간 담배 없이는 한시도 못 살았던 골초 여성이 한국에서 흡연하며 보고 겪고 듣고 당하고 ‘해댄’ 일들에 대한 자서이다. 담배는 백해무익 나쁜 것인데, 그 담배를 피우는 ‘여자’는 더 나쁘다는 굴레를 가뿐히 씌워놓는 세상에 맞서 오기와 끈기로 취재하고 탐구한 ‘담배와 여성’에 대한 성실한 르포이기도 하다. 이 여자의 끽연사는 지독한 블랙코미디와 부조리한 시대극을 오간다. 대학 시절 담배 때문에 남학생들과 패싸움에 휘말리고, 급기야 경찰에게 따귀까지 맞았으며, 돌연 감옥에 가서는 기적처럼 얻은 ‘돗대’를 몰래 피우다 혼절 지경에 이르고, 결혼식날에는 식전式前 기념 담배를 피운답시고 흰 장갑을 벗어놓았다가 맨손으로 신부 입장을 하고 만다. 당당히 담배를 빼물고서 이 엄혹하고도 웃기는 시대를 건너온 여성은 바로 서명숙 작가. 그는 자신이 담배를 피우며 겪었던 엽기적이고 울화통 터지는 일뿐만 아니라, 각계각층 여성 명사들과 지극히 평범한 여자들의 흡연 에피소드를 통해 ‘담배 피우는 여성’들에 대한 우리 안의 공고한 편견을 돌아보게 한다.

과거 김일성과의 단독 인터뷰 자리에서 담배를 꺼내 물어 주위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지만, 정작 (당시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김일성이 조용히 담뱃불을 붙여주게 하여 일동을 더 놀라게 한 전설적인 여성 기자 이야기, 하루 담배 두세 갑을 피워대던 체인스모커였지만 퍼스트레이디가 된 후로도 백악관에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타인에게 담배 피우는 모습을 들키지 않도록 철저히 스스로를 감춰야 했던 재클린 케네디까지-국경과 시대를 초월하고 금연과 끽연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흡연 여성들의 서사가 서명숙 작가의 발랄한 입담에 실려 전해진다.

이 책은 서명숙 작가가 2004년 처음 출판한 뒤, 한동안 절판 상태였다가 새롭게 펴내는 것이다. 출간 당시 여성 독자들의 비상한 호응과 공감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절판시킨 이유는, 이 책의 첫 집필 기간 동안 저자가 금연에 성공했고, 끽연만큼이나 짜릿했던 금연 체험으로 인해 마치 금연 전도사라도 된 양 책 말미에 장문의 금연 예찬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그는 다시 흡연자가 되었고, 『흡연 여성 잔혹사』를 언급하는 사람을 만나면 얼굴이 붉어져 도망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다.

2022년 지금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어느덧 다시 금연 7년 차, 새로 펴내는 『흡연 여성 잔혹사』는 그가 다시 못 말리는 흡연자의 길로 들어섰다가 2015년 재차 담담하게 담배를 끊어낸 ‘겸손한’ 금연기, 그리고 제주올레길 위에서 만난 한 외국 여성이 한국에 정착해 흡연 여성으로 살아가며 겪은 황당한 일들을 받아 적은 챕터를 더해 펴내는 개정증보판이다. 새로운 『흡연 여성 잔혹사』에는 그간 ‘안경 쓴 여자들’ 시리즈 등 사회의 부당한 편견 속에서도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모습을 간직한 여성들을 강렬한 붓그림으로 그려온 ‘엄주’ 작가의 ‘담배 피우는 여자들’ 그림을 본문에 수록해, 책장 넘기는 즐거움을 더했다.

저자

서명숙

대한민국에‘올레신드롬’을불러일으킨주인공.걷기여행의열풍을일으킨,걷는길내는여자.1957년제주도성산읍고성리출생으로,서귀포초등학교,서귀여자중학교,신성여자고등학교를거쳐고려대학교교육학과를졸업했다.프리랜서기고가로일하다1983년기자생활을시작했다.1983년부터1989년까지월간[마당],[한국인]의기자로일했고,이후[시사저널]정치부기자,취재1부장,편집장,...

목차

추천글|담배는슬프다_김훈(소설가)005
서문|담배와의사랑,그리고이별009
개정증보판서문|여자한테하지말라는게왜이리많아!013

1부27년열애사를고告함
영초와연초023
팥으로메주를쑨대도033
쌍권총찬아들과마술부리는여친045
캐나다성화봉송대작전049

2부아름다운여자들의연煙애담
혼자가되고싶었던퍼스트레이디들059
김일성앞에서담배피운‘간큰여자’068
한손엔붓을,한손엔담배를074
니네엄만담배도못피우니?080
새우깡백봉지와담배한갑086
조선여인흡연사092

3부어둠속에피어오른담배연기
산으로떠난그녀103
지옥에서보낸한철110
생리대속에숨겨들여온담배124
석수아파트습격사건133

4부흡연여성잔혹사
비정한모정141
21세기의마녀들150
스스로감옥에갇히는여자들160
그들의의자에앉아서169
누군가날지켜보고있다172
현모양처도섹시파도“담배는NO”185
‘마지막선비’의며느리사랑191
두갑이나두개비나매한가지196
나죽으면담배와함께살라주오199

5부신新중독일기
변절을꿈꾸다209
상습금연자들의세계218
담담하게헤어지기223
그녀는예뻤다233
한번해볼만한도전239
서장금,미각을되찾다246
나는달린다251
올레마마,한국은왜이래요?259
다시사랑에빠지다265

참고문헌279

출판사 서평

담배를통해세상의부조리를알게되고가부장의질서에저항했던여자들,
그녀들의이야기가다시펼쳐진다.

왜,왜,왜.시대와나라와계층을불문하고여성들에게만유독무엇을하지마라,무엇을하라는강요가공공연히자행되는걸까?때로는종교의이름으로,때로는건강을위하여,때로는전통문화와미풍양속이라는미명아래.지구상에서오로지여자라는이유로가해지는그모든억압과차별,금기와강요,잔혹한범죄가사라지는날이오기를간절히소망하며,이책을감히세상에다시내보낸다.
_서문에서

“온몸의체중을실은채허공을향해날리는담배연기는
그녀에게는영혼이내쉬는한숨이나다름없었다.”

서명숙작가가담배를처음피운것은대학시절‘영초언니’의자취방에서였다.당시운동권의전설이자그에게롤모델이되어주었던천영초는이름마저‘연초’와닮아서,갓입학한새내기명숙은언니와세상에대한사랑만큼담배에대한애착에하릴없이빠져들었다.위수령으로입막음당한군부정권시대의청춘들은그렇게담배연기에시름을날려보냈다.그러나그는돌연긴급조치9호위반혐의로끌려가취조를받는과정에서소지품중담뱃갑이나오자‘담배나피우는갈보같은년들’이라며여학생들의따귀를치는경찰들을만나게된다.경찰이남학생들에게는협박반회유반으로넌지시담배를권하는모습을보면서담배가남자와여자에게얼마나다르게작용하는지처절하게깨달았다.잔혹사의시작이었다.

맞으면서나는깨달았다.
이땅에서남녀는얼마나다른존재인가를,여자가이땅에서담배를피우면어떤대가를치르게되는가를.그건뺨의통증보다더쓰라린깨달음이었다.
군사정권은정치적권위주의와함께근엄한가부장의얼굴까지지니고있었다.
(「어둠속에피어오른담배연기」,116~121쪽)

한편,그는이책에서놀라운이야기를털어놓는다.사람들의비난을각오하고말하건대,지난날두아이를임신하고있던기간에도끝내담배를끊지못했다는것이다.대부분의사람들이임신을하면흡연여성도자연스럽게담배냄새가싫어지거나저절로금연하게되리라생각하지만,현실은그렇지않다.그는임신후에도담배를끊지못하는자신을저주하며기형아를출산할공포에미쳐가고뱃속의아이를아예떼어야하는지고민하는임신부들의상담사연을보고경악하여어려운고백을하기로결심했다.여성의몸을‘아이를잉태할매개체’로바라보고‘모성의힘으로무엇이든지극복해낼것’을강권하는사회에서임신중금연하지못하는여성은철저히고립되고만다.그는유경험자로서임신중흡연문제로고민하는이들에게자책과좌절외에반드시해야만하는일에대한실질적인조언을건넨다.

이세계의끈질긴모성신화는담배피우는여성을공공연하게망신주는데쓰이기도한다.지난날한유명스포츠선수가국민배우인아내와이혼하고싶다며소동을벌였을때그는“자신의아내가한아이를키우는엄마이고둘째아이를가진임신부인데도여전히담배를피웠고,말렸지만듣지않았다”(187쪽)는사실을들었다.또한지금까지도예능의단골웃음거리는걸그룹이나어린여성연예인에게실은몰래담배를피우지않느냐며손모양을유도하거나놀려대는것이다.이렇게공고한사회의올가미는아직도수많은흡연여성들을옭아매며‘몰래흡연’의구덩이속으로밀어넣고있다.

최근에는남녀공히금연이권유되고담배의해악이강조되면서,언뜻여권신장과여성의흡연권을나란히놓는것은다소시대에뒤떨어진일처럼보이기도한다.그러나서명숙작가는담배에대한각종연구를촘촘히예로들며,여성인권과흡연권사이의밀접한관계를드러낸다.전쟁같은비상상황에놓인정권일수록,가부장적인사회일수록여성의흡연을적대시한다는연구가있다.또한『담배는숭고하다』를쓴코넬대학교리처드클라인교수는“한사회에서여성이어느정도흡연권을누리고있는가는보편적평등의지표이자시민사회내에서여성이전임회원인가여부를가늠하는시금석이다”(107쪽)라고주장했다.

이책은문학적인담배예찬론도,담배를권하는책도아니다.심지어저자는지금은몸을해치는부정적중독에서걷기라는긍정적중독으로이행한금연인이다.‘아마도’이번이생애최후의금연일것이라고생각한다.그러나확실하지는않다.분명한것은그는더이상여자들에게담배를피우라마라하고싶지않다는것이다.여자들에게유난히하지말라는게많은이세상에서서명숙은선언한다.“여자가자유롭게담배를피우는것과담배를끊는것모두담배로부터의해방이다.”가장잔혹한것은여자도,담배도아니었다.남성에겐젊은날의훈장이나무용담으로기억되는흡연의기억이여성에겐수치심과죄책감으로버무려진‘흑역사’로남게하고,담배피우는여자를마녀로몰아가는이세상이었다.

그들은오늘도
차안에서,아파트층계참에서,
옥상에서,베란다에서,
부엌한귀퉁이에서,다용도실에서
푸르른봉홧불을피워올린다.
외롭고상처받은영혼의봉홧불을.
(「스스로감옥에갇히는여자들」,168쪽)

어디에서고쉽게구할수있는담배라는기호품을선택한순간부터삐딱선을타고지켜보는주위의시선과관념으로부터결코자유로울수없었던여성들의흡연은한마디로도전이었지요.누구나살수있는진열장의담배지만보이지않는금녀의선이그어져있다는것과,그것을넘었을때결코녹록지않은인식들과싸우거나아니면감추어야하는이중의압박감을감수해야했습니다.담배가처음에는탈출구인줄알았는데중독성으로여성들에게또다른족쇄가되었다는선배의말씀이맞습니다.그러나여기에서또저는인간이결코의지할대상이될수없었던팍팍한여성들의삶을역설적으로느끼고있습니다.

다른상품처럼손쉽게살수있는물건에여자들이부여하는의미가뭐그렇게주렁주렁많은지.남자들에게담배가지닌의미가무언가생각해보니심플,그자체예요.담배피운시기며피운동기가그들에게는즐거운무용담이되지만,여자들에게는흡연시작으로부터지금까지현재진행형으로흡연사실을밝히길망설이게합니다.그것부터가흡연은남성전유권이라는묵시가이미존재하고사회적으로늘통용되면서여성들에게는몇겹의장치를걸어놓았음을의미합니다.

별것아닌담배하나에의미를두게만든한국사회의복잡하고이상스러운생리에울컥하면서도,만일의공격에대비해방어용으로제나름의담배예찬론을준비한것또한저역시담배로부터자유롭지못한것이겠지요.“그냥피웠어.난담배가좋아.”이런심플한대답을하거나아예사건거리도되지않는,담배에대한그런사유를바랍니다.
(「나죽으면담배와함께살라주오」,205~2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