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사계절 (자발적 은둔자의 명랑한 도예 생활)

숲속의 사계절 (자발적 은둔자의 명랑한 도예 생활)

$14.00
Description
씨를 뿌리고 물을 주자
그리고, 기다리자!

흐드러진 봄날도 눈 내리던 겨울밤도
정원을 가꾸며 도자기를 빚던 나날
자연 속에서 땀흘려 일하며 발견한 아름다움
부족할수록 넉넉하다. 고단해도 뿌듯하다. 계절의 호흡에 따라 사는 한 해 한 해의 순환은 땅에 단단히 발 딛고 살아가는 실감을 주었다. 스물세 해가 흘렀다. 도예가는 숲속에 작업실을 짓고 땅을 일구며 산다.
『숲속의 사계절』은 도예가 지숙경이 23년 동안 경기도 칠장산 아래에서 도자기를 빚으며 사시사철 정원을 일군 기록을 담은 산문집이다. 그는 흙과 씨름하고 흙을 달래다 흙을 닮아간다. 산속 집을 둘러싼 그의 정원은 1000여 평이 넘어 밭에 가깝다. 양귀비, 작약, 히아신스, 튤립, 벚나무. 철철이 피고 지는 꽃을 돌보고 잡초 뽑고 채소를 가꾸다보면 하루해가 짧다. 운명처럼 이끌려 시작한 도자기 작업도 흙의 일이다. 빚고 굽고 유약을 발라 오묘한 색을 기다리는 일은 거듭할수록 미묘하고 매번 마음 떨리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고집 센 듯해도 결실을 안겨주는 흙의 마음을. 조급해하며 보채지 않아도 싹을 틔워 올리는 땅의 약속을.
그는 조금 고집스레 땅을 일구고 땔감을 패고 손으로 도자기 작업을 하며 자립의 삶을 이어나간다. 스물세 해 동안 그래왔으니 이제 실험이라기보단 지속 가능한 정착이다. 그가 보여주는 삶은 ‘이렇게 살아도 됨’의 작은 증명이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바쁘고, 채우기도 전에 보여주고 전시하느라 자꾸 가난해지는 우리에게 시원한 샘물이 된다. 굳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호수로 떠날 필요가 있을까.
저자

지숙경

숙명여자대학교정치외교학과를졸업하고,미국애리조나대학에서국제정치학으로석사학위를받았다.한국으로돌아와영문경제월간지에서기자로활동하다가평소좋아하던클래식음악을널리알리고자공연기획자로일하며요요마,안네소피무터,키리테카나와등유명음악가의공연을국내무대에올리는데힘쓰기도했다.자연속에살면서할수있는일을갈망하던중,도자기와운명적으로조우해현재는경기도칠장산아래에서전통장작가마를박고‘지요(jiyo)’라는이름으로도자기를만들며정원을가꾸는자연주의작가로활동중이다.

목차

겨울
숲속의겨울준비
눈길산행
칡덩굴크리스마스리스
흙을닮아가는나,자연을닮고싶은나
내려놓아야덜불행하다
장작더미를바라보며
눈구경말고눈치우기?


그래도봄은온다
고라니의습격
새순채집
마침내4월!
봄식탁
라면두상자의보은
작가는모름지기풍요로워야한다

여름
양귀비,양귀비,양귀비!
오이텃밭가꾸기
문득고요한한낮
장맛비
감나무연정
흙밟기
“다임자가있다!”

가을
너푸리와친구들
그때는그때고지금은지금이다
토마토수프를먹는밤
가을가마소성하는날
도자기무덤
가을식탁
밤나무잎에가을을담다

출판사 서평

계절이주는선물,
보채지않아도
순리대로산다.절기를따르며계절과함께산다.오지않은열매를보채지않고내할일하며기다린다.넘치지도부족하지도않게사랑한다.
자연속에서는이런원칙이미사여구가아니다.먹을것을얻고꽃을피우기위해선따를수밖에없는생활의습관이다.급한마음에씨앗심고물잔뜩준다고당장내일꽃피는게아니지않은가.기다려야한다.햇살과온도와비와시간을.
저자는처음,숲속에집을짓고텃밭을마련하며자급자족에가까운생활을꿈꾸었다.푸성귀를심고봄에는나물을채집하고오죽하면땔감까지산에서간벌한나무를끌고올정도였다.덜어낼수록풍요로워지는삶을믿었다.
자연에기대어살려면기다림을배워야했다.사람들은쉽게말한다.“다때가있다”고.도시인에겐한낱수사에지나지않을수도있는이말이땅을일구는그에겐진실이다.때가되면씨앗심고풀뽑아야한다.어느하나때를놓치면안되기에거무튀튀한촌부의얼굴이됐지만하나억울하지않다.땅은시간이지나면때맞춰선물을돌려준다.

산에서의삶이란지극히단순명료하다.물질문명사회가만들어낸그얽히고설킨경쟁속의복잡미묘한인간관계도에서벗어난단순한삶.오롯이자신의북소리에귀기울이며나의길을내뜻대로걸어간다.이때삶의한가운데있는것이자연의섭리이다.자연의흐름에맞춰,즉절기에맞추어그때그때필요한일을놓치지않고하면된다.(…)
그러나이단순한시간의순리는이런저런이유로때를지키기가쉽지만은않다.자칫마음만앞서서두르면배추는속이차지않고고구마는잎만무성할뿐아무리땅을파도흔적을찾기힘들지도……이정직한육체노동의신성한결과물을제대로즐기려면무엇보다절기의명료한질서에순응해야한다.해가뜨면일어나고지면쉬고,바깥일이많은봄여름부터초가을까지부지런히움직이고겨울이오면잠시쉬어가는것이다.바쁘고힘든절기끝에여유롭고편안한절기가오는법인가!(29∽30쪽)

이렇게오매불망기다리지않아도새싹은하릴없이올라오건만왜그리안달을내는지……그냥가만히있으면좋을텐데.그래도봄은온다!(56쪽)

씨는겨울이오기전에발아해추워지기전에싹이땅밖으로머리를내민다.환경이잘맞는곳에서는제법뿌리를내리고손가락한마디정도혹은그이상자란채겨울을맞는다.그위에눈이내려이불처럼덮이고낙엽이떨어져포근하게겨울찬바람을막아주면그대로봄을맞고자라서다시꽃을피우는윤회의고리에들어간다.꽃하나피우는것도그저되는게없다.하기야무엇인들,이정도정성없이제대로되는게있겠는가!(102∽103쪽)

흙을빚다
도자기를굽다
그는버튼하나만누르면작업에알맞게흙이반죽되는토련기대신직접흙을밟아서꼬막을밀어서쓰고,디지털설정으로온도를조절하는전기가마나기름가마대신도끼로장작을패고그장작하나하나를집어넣어작업자의눈과경험으로가마온도를결정하는장작가마를땐다.
매년10월가을가마소성(도자기를가마에넣고불을때는일)은어쩌면1년도자기농사를마무리하는의식에가깝다.가마안에요철이생기도록도자기를하나하나놓은다음패놓은소나무장작을가마칸에던져넣으며서른시간동안뜬눈으로도자기곁을지킨다.가마를열어완성된도자기를보면흡족할때도있고마음에차지않을때도있지만모든게예측대로되지않는다는것도자연의이치아닐까?대신작가인내마음엔안들어도다른누군가에겐마음에쏙드는작품이나올수있다는점!

토마토수프를먹는밤
자발적은둔자의위트넘치는숲속생활
홀로있지만적막하지않다.숲속생활엔어려움도있지만대개생기와위트가넘친다.너푸리,나비,짝눈이……함께하는개,고양이가나눠주는온기로포근하다.눈내린겨울산비탈에서썰매도무엇도없이엉덩이로폭신한눈을미끄럼타고내려오는재미는숲속생활자만아는즐거움아닐까?
서로의지하고도울수밖에없는이웃의이야기도정겹다.나보다더풀매기를독려하는지연이할머니는내가잠시허리라도펼라치면“아니,그래가지고언제다할겨,사장님!해떨어지기전에빨리빨리혀야지”꾸지람이호되다.알고보면홀로자식들건사하며쉼없이일해야했던사연있는속깊은분이다.손끝매운앞집장금이김명자선생도막역한이웃사촌.종종손야문그분의협찬을받아식탁을차려낸다.김치에서떡볶이까지정말끝내준다.고추김치와초여름참외장아찌는그분레시피다.
때로는고립이주는기쁨을마음껏누린다.눈이무진내린어느새해에는폭설을핑계삼아고향방문도취소하고집에서홀로따끈한떡국을먹었다.숲에산다고인간보편의근심이어찌없을까.그러나눈치우고정원일하고하루종일물레와씨름하며육체노동을하고나면맛있게밥먹고이내잠든다.
처음,도로가포장돼있지않아길도분간하기힘든이곳에집을지어홀로살겠다고나섰을때어머니는걱정하셨다.어느날해질녘걸려온전화.“좋으냐?행복하니?”엄마의나직한음성이었다.“내가복이참많은가봐요,이런곳에서살고있으니말이유.”엄마는전화를내려놓으며말했다.“그래,그럼됐다.니가행복하면됐다.”

이렇게망중한의절기가가져다주는호젓함은점점더줄어들리라.하지만여전히살을에는눈보라치는겨울날,두꺼운장갑끼고털모자눌러쓴채다니는길에쌓인눈을쓸어내고난로에쓸장작을패고나르는번거로움을즐긴다.스위치만누르면뜨끈뜨끈해지는보일러의편리함을모르지않지만더러,내려놓아야불행하지않다.다가질수는없지않은가.언몸을녹이는난로위엔노란밤고구마가아주맛있게말라가고있다!(37쪽)

지난밤부터내리기시작한비가한낮이되도록그칠줄을모른다.봄비치곤비바람이매섭다.지난주부터피어오른작약이며아이리스를걱정하느라작업에몰두하기가힘들다.이제피기시작한여린꽃대들이이난관을어찌버틸지……마음같아서는우산들고나가붙들고서있고싶다.작약의연분홍꽃망울이이번시련을견디고더멋지게피어오를수도있을까?어쩜,비그친후,색은더선명해지고꽃망울은더커질수도.나도시련앞에더강하고명료해질수있을까?통제하기힘든현실의벽을,좀더자유롭고명쾌하게마주할수있다면좋을텐데말이다.(90쪽)

이런생각들로마음이무겁고먹먹할때면밖으로나가하염없이잡다한일거리를찾는다.그러나오늘처럼날이궂으면기다리는것말고다른방도가없다.올봄은루꼴라뿐아니라바질도씨를뿌려파스타에생바질을추가해볼작정이다.갤러리앞,히아신스가너무다닥다닥붙어있으니분도해주어야겠네.정신없이움직이다보면어느새해가넘어가고지친몸으로작업실로들어가손하나까닥하기싫어져다잊은채잠을청할수있을터.(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