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 문학동네시인선 185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 문학동네시인선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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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장옥관

1987년『세계의문학』을통해등단했다.시집으로『황금연못』『바퀴소리를듣는다』『하늘우물』『달과뱀과짧은이야기』『그겨울나는북벽에서살았다』와동시집『내배꼽을만져보았다』가있다.김달진문학상,일연문학상,노작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우리에겐우리가알수없는이유가따로있어서
항아리/무릎/노래의눈썹/호수를한바퀴/일요일이다/입술에말라붙은말/밤에도새들은/흰빛하나/달도없는먹지하늘―미카엘하네케<아무르>/봄밤이다1/내의/눈동자/봄밤이다2/우물도아니고우울/잠이잠을잔다/미끄러지다/가려움/바라보다/유적지/옥수수밭에서

2부비스듬히
노무현/돌의탄생/무논에백일홍을심다/감주/홍에앳국/메밀냉면/얼룩말이야기/몽돌약전(略傳)―김양헌(1957~2008)에게/여행/불러보다/소금쟁이/흰,흰빛속으로/비스듬히다만비스듬히/절한다는것―원태에게/뽕나무가있는마당/계단/목화를심었다/꽃의입술/숫돌

3부어안이벙벙하다
없는사람/그림자가많은날/물로된뼈/하지만벌써버릴수없는/우기/빙하/달팽이가지나간끈적임처럼/질문들/제압하다/청금석/안되겠지예/호두/내아름다운녹/그분이손바닥을펴실때/친애하는바이러스/1987/꿈―짐자무시<패터슨>/유무(有無)/어안이벙벙하다

해설|명멸하는것들을위한증언
소유정(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등단35주년을맞은장옥관시인의여섯번째시집『사람이없었다고한다』가문학동네시인선185번으로출간되었다.“남달리능숙한미문이섬세하고화사하며(…)발상의전환과사물의이면을더듬는감각의촉수“(노작문학상심사평)가돋보이는시인의이번시집에가장먼저두드러지는것은죽음의이미지이다.숱한죽음과상실의경험이새하얀뼈를연상시키는시집의표지부터스며들어있지만,시인은그비애를동터오는새벽의연무로전환해낸다.살아숨쉬는모든것을무화시키는시간의위력을절감하면서도생을끝끝내탐구해내려는의지의발산이며,새로터져나오는미지의목소리를계시하는순간이다.

네가내뱉은말들,허우적거리며소용돌이쳐가라앉는네말들,소금처럼,물에녹는소금처럼아아,그러나햇빛들면다사라질말들,막막한시공간을헤매는중음신의말들,입술에허옇게말라붙은말들,그예말들은살아오지못하고그격렬했던꿈의말들,되돌리지못할꿈자리가죽은꽃나무같아서
_「입술에말라붙은말」부분

『사람이없었다고한다』에서는삶의가운데서미끄러지거나심연으로굴러떨어지는이들이있다.“우리가알수없는이유”(「밤에도새들은」)로침몰하고,“예감도예고도없이우리자빠질때짚고일어날바닥도없이푹푹빠져들기만하고”(「미끄러지다」)있다는감각은그연유를모르면서도낯설지않은것이다.그러나몰락을타개할상상력뿐만아니라의지마저도부재한암담한상황속에서‘말’과‘언어’를대하는시인의태도가돌올하게솟는다.보이는정경에대해“물에갇힌눈이라고”“호수를그득채운눈동자라고도하지않겠다”고결심하는시인은세계를낭만화하는시선을벗고“아픈몸”(「호수를한바퀴」)을직시하고자한다.그간자신이“한번도피나도록긁어본적없었”다는걸자각하고“손없는손으로”“내일의얼굴”(「가려움」)을긁어보겠다는불가능으로의여정이시작되는순간이다.

꽃이입술벌려들려주는노래를
모쪼록웃음의가려움을
시들어가는내몸에서새어나오는노을의목소리는머뭇머뭇,
아직쓰이지않은노래로피워올리느니
_「꽃의입술」부분

숱한죽음을마주하며“형광등처럼껌뻑이다가마침내암전으로”가는인간들의운명을생각하던시인은“그럴때내가켜놓은사랑은다어디로가는걸까”(「여행」)묻는다.그러나그의물음은해답없는비관에멈추지않는다.“한번사라지곤다시오지않았던이름들//내가사라지면영영파묻히고말/그이름들을”(「불러보다」)불러보는시인은없어진존재들이기거하던공간을손으로짚어본다.이들을없는채로두지않겠다고다짐하면서.그런시인에게,다른존재를매개체없이마주하는언어의조탁은“순간이탄생”(「돌의탄생」)하고,‘나’스스로가“나에게로찾아오는”(「얼룩말이야기」)시간을가능케한다.

단지그는갑갑했을뿐이다
갑갑함이저스스로몸부풀려이웃집현관문을노크한것일게다
경계를벗어나공기를장악한그는원래부터
바람이었다
_「없는사람」부분

한사람의고독사를바라보는시인은죽음이더이상소멸이아니라세상에남는또다른가능성의방식일수있음을환기한다.“경계를벗어나공기를장악한그는원래부터/바람이었다”라는발상의전환은사라진이를기억하는남은자들의세계에회색조우울함대신생기와색채를부여한다.시집곳곳에돌뿌리처럼새겨져읽는이가걸려넘어지게하는“내머물던자리엔/무엇이남을까”(「달팽이가지나간끈적임처럼」),“나없을그때,/내딸의뺨이떠올릴뼈는문득무엇일까”(「물로된뼈」)와같은묵직한질문과사색들을통과해나가던시인은비로소“명멸하는것들”이“내손에쥐어지는순간”(「우기」)을발견하기에이른다.

응결된슬픔이거나모세가걸어간바닷길이라고여기는건오로지내몫의부지(不知)문자로짠천입고춤추는수피의영혼혹은바람의넋
‘있음’으로만날수밖에없는
아무리두드려도들어가지못하는종교앞에서침묵할수밖에없는그돌
_「청금석」부분

시인에게있어시간의흐름은사람의떠남만을되새기게한다.누군가가떠난자리에는미련을품은이가남고,미처하지못한말이여전히자신의형체를갖추지못한채있다.그러나남은이가떠난사람을떠올리며오늘을영위하는한뒤이어질미래는더이상허전하고황량한풍경이아니라기억들로풍성해질수있다고시인은역설한다.그러므로시집의마지막에서“예순몇해를지금소환해물어보거니와/생/그한마디가그저어안이벙벙할뿐이다”(「어안이벙벙하다」)라는의문은인간을천연덕스레삶의막다른곳으로몰아넣는이모든생의순환과굴레가꺾지못하는의지,도리어궁지에몰렸을때에자신의온생을걸어빚어내고마는한가닥의지의존재감을역설적으로드러내고있다.

부재로현존하는이들과자기자신의현존에대한증명으로장옥관의시는계속해서벼려질것이다.“생/그한마디가그저어안이벙벙할뿐”이지만,그순간에도“무심코찾아온이말이정작어디서온건지왜떠올랐는지”(「어안이벙벙하다」)기원을궁금해하는건오직시인뿐이기에,거친숫돌로반짝날을세운언어로하여금우리에게‘돌의탄생’과같은시적인순간을선사할것이다.“아직도납득할수없는일들이남아있는/기적같은날들”(「하지만벌써버릴수없는」)이있으므로,지금여기에서장옥관의시는감은눈을뜬다.
_소유정해설,「명멸하는것들을위한증언」부분

책속에서

배고픈오후,
허기속으로새는날아가고가난하여맑아지는하늘
가는발가락감추고날아간새의자취
좇으며내눈동자는새의메아리로번져나간다
_「노래의눈썹」부분

일렁이는거품이굳어생긴것이라했다
눈물이끓어굳은것이라
했다그열대의빛에눈먼나는감정도때론만질수있다
는걸비로소알았다
하지만그빛아래선무엇이든다휘발된다는걸밝을수록더어둡다는걸
물이얼마나딱딱한지위험한지찔려본사람만안다는걸비로소알았다당신떠나고
_「흰빛하나」

부고날아드는어제오늘하루
두그루뽕나무

마당너머수로사라진지이미오래
얼굴컴컴한뽕나무두그루늙어가고있어
_「뽕나무가있는마당」부분

내속의숫돌너무거칠어불꽃만일으키고이순(耳順)이되도록시를써도
숫돌은다듬어지지않네
이거친숫돌로무엇을벼릴까
틈만나면피어오르는검은구름끝내주저앉힐수도없으면서
_「숫돌」부분

있다가없어진자리
어떤질문을얹어놓을까요

(…)

온다던사람온적없다는걸

당신의의자에앉아
오지않는오후를하염없이

반드시오지않아야한다는
_「질문들」부분

나는지금녹물든사람
링거수액스며드는혈관속무수한계절은피어나고거품처럼파꽃이피고
박새가부리비비는산수유가지에노란부스럼이돋아나고

두꺼운커튼드리운병실바깥의고궁처마에매달린덩그렁당그랑
쉰목소리
파르라니실핏줄돋은어스름속으로
누가애터지게누군갈부르나니,그종소리
_「내아름다운녹」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