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 문학동네시인선 184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 문학동네시인선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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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당신은 시와 정통으로 눈 맞은 사람. 시에 꿰뚫린 사람. 당신의 언어는 팽이처럼 저를 곤두선 채 돌고 싶게 만듭니다.” _박연준(시인)
가장 투명한 부위를 맞대는 일의 눈부심,
말갛고 밝은 죽음과 사랑의 세계
“우리 삶의 절망과 희망이 교직되는 순간순간을 절실하게 잘 드러내었다”는 평을 받으며(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데뷔한 고명재 시인의 첫 시집을 문학동네시인선 184번으로 펴낸다. 당선소감에서 시인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이야기가 남습니다. 몸이 사랑이 됩니다. 또한 그 이야기와 사랑조차 시간에 녹아 다 사라진대도 우리가 함께했다는 것, 눈부신 그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아요”라 말한 바 있다. ‘사라짐/죽음’과 ‘몸/사람’ 그리고 ‘이야기/시’에 대한 이 지극한 마음이 43편의 시편들에 켜켜이 배어 있다. 그리고 사랑, 사랑이 있다. ‘사랑은 육상처럼 앞지르는 운동이 아닌데’ ‘귤을 밟고 사랑이 칸칸이 불 밝히도록’ ‘자다가 일어나 우는 내 안의 송아지를 사랑해’로 부제목을 달아 시편을 나누어 엮은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 고명재 시인의 시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사랑’이다.
저자

고명재

2020년조선일보신춘문예를통해등단했다.시집으로『우리가키스할때눈을감는건』이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사랑은육상처럼앞지르는운동이아닌데
청진/수육/환/아름과다름을쓰다/왜이집에왔니/우리가키스할때눈을감는건/포드이후/너를태우고녀석이불을핥으려한다/뜸/선/시와입술/왜잠수교가잠길때당신이솟나요/연육/미더덕은아름다움을더달라는것처럼/페이스트리

2부귤을밟고사랑이칸칸이불밝히도록
비누/한정식/어제도쌀떡이걸려있었다/일흔/귀뚜라미/둘/우리의벌어진이름은울음에서왔다/소보로/북/물수제비/여름하면두꺼비가쏟아져내리지/지붕/엄마가잘때할머니가비쳐서좋다/사랑을줘야지헛물을켜야지

3부자다가일어나우는내안의송아지를사랑해
비인기종목에진심인편/송아지/몸무게/바이킹/그런나라에서는오렌지가잘익을것이다/경주사는김대성은/노랑/등/초록/사이새/보라/우리는기온이낮을수록용감해진다/얼얼/자유형

발문|미친말들의슬픈속도-박연준(시인)

출판사 서평

“불쑥떠오르는얼굴에전부를걸어요”
사랑은어떻게생겨나는가

매일사랑하는사람의유골을반죽에섞고
언덕이부풀때까지기다렸어요
물려받은빵집이거든요
무르고싶은일들이많아서
사람이강물이죠눈빛이일렁이죠
사랑은사람속에서흐르고굴러야사랑인거죠

(…)

나는안쪽에서부푸는사랑만봐요
불쑥떠오르는얼굴에전부를걸어요
오븐을열면누렁개가튀어나오고
빵은언제나틀밖으로넘치는거니까
빵집문을활짝열고강가로가요
당신의개가기쁨으로앞서달릴때
해질녘은허기조차아름다워서
우리는금빛으로물든눈에손을씻다가
흐르는강물에서기다란바게트를꺼내요
_「페이스트리」부분

안쪽에서부푸는것,틀을넘치며태어나는것,기쁨으로앞서달리는것,금빛으로물든눈에손을씻는것.고명재시세계속사랑의속성들이다.그리하여빵처럼말랑하고부드럽고향긋해지는것.반죽에“사랑하는사람의유골”을섞는다는것이인상적인데,떠나간존재들에대한애틋한숙고는이시를비롯해시집전반에별처럼박혀있고,그들에대해생각하기를피하거나멈추지않는것,오히려전부를거는것으로시속화자들은“매일”사랑을배워간다.상실과허무의그림자를거두어낸자리에서만나는말갛고환한볕안에서사랑은되살아나고(「환」),시인은그사랑을쥐고조금더용감하고겸허한마음으로새로이시를써나간다.“엄마가잘때할머니가비쳐서좋다떠난사람이캄캄하게보고싶어서/가슴속의복숭아를반으로가르는/과육의슬픔도과도도향기도모두가좋다”(「엄마가잘때할머니가비쳐서좋다」)고,오롯한사랑의주체가되어써나간다.

“우리는함께사랑으로시간을뚫었다”
사랑은무엇을가능하게하는가

“연의아름다움은바람도얼레도꽁수도아니고높은것에연결되어있다는느낌”,서시「청진」의첫구절이다.발문을쓴박연준시인은이구절의‘연’을‘시’로바꿔읽어보자제안한다.“얼레를풀어시가바람을타고솟아오르도록놓아주면서우리스스로놓여나는일”(박연준)이시쓰기와시읽기의아름다움이아닐지.사랑을쥐고종종높은것에연결돼있는느낌을소중히여기는이시인은귀로시를쓰는사람이기도하다.“누가울때그는캄캄한이국(異國)입니다/누가울때살은벗겨집니다/누가울때그사람은꽃이됩니다/꽃다발을가슴에안아야겠지요”(「그런나라에서는오렌지가잘익을것이다」)눈에보이는것을타자화하거나,입으로속단해말하는일을삼가고귀에들어온것을은은히섬겨시로구축하는것역시사랑의한방식일것이다.“어둠의입장에서는빛이밤의구멍이고그요란한빛의구덩이를메우기위해(…)충분히슬퍼할시간을위해존재의품위와부드러운꿈결을위해침묵을위해”(「어제도쌀떡이걸려있었다」)온몸을던지는나방처럼말이다.
이시집을잘표현하는시구가운데“우리는함께사랑으로시간을뚫었다”(「연육」)를빼놓을수는없으리라.과거-현재-미래라는선형적인시간감각을벗어난자리에뚫(리)거나(치)솟는사랑의이미지들이힘있게자리하며시인이그리는진실한생의시간을예감하게한다.

그때나는빵을물면밀밭을보았고
그때나는소금을핥고동해로퍼졌고
그때나는시를읽고미간이뚫렸다
그때부터존재할수있었다

그리고가끔그때의네가창을흔든다
그때살던사람은이제흉부에살고
그래서가끔양치를하다가슴을쥔다
그럴때나는사람을넘어존재가된다
_「소보로」부분

반지하가차오르며쥐들이달리고
아이들은신이나서양말을던지고
나는복사뼈를깨트려서나누어주리
새들이물고멀리까지날수있도록
음악과귀로종달새로껍질을뚫고
너희집앞에치솟는복숭아나무가되리
_「왜잠수교가잠길때당신이솟나요」부분

사랑을줘야지헛물을켜야지등불을켜야지예민하게코끝을국화에처박고싶어다음생엔꽃집같은거하고싶다고겁없이살때소나기그칠때구름이뚫릴때엄마랑샛노란빛의입자를후루룩삼키며
_「사랑을줘야지헛물을켜야지」부분

“눈귀코로사랑이바글대고있는데/솟고싶다헤엄치고싶다”(「시와입술」)쓰는시인.무엇하나누구하나허투루흘려보내지않는너른품으로삶과죽음을단정히안는그의사랑은잔잔하기만한것이아니다.앞서인용한시에서처럼그의사랑은사람속에서흐르고구르는것,역동적이고생기있으며얼마든지크고강해질수있는것이기때문이다.이토록힘이센다정함,이토록용감한사랑의세계가새로운독자를기다린다.사랑속에서우리몸의가장연하고투명한부위를맞댈때,가만히눈을감고서로의존재가얼마나아름다운지되새길때터져나오는빛이이시집에담긴시들과독자들이마주했을때설핏드리워지기를기대한다.

고명재시인과의미니인터뷰

Q1.안녕하세요,작가님.첫시집이나왔습니다!출간소회부터여쭙고싶어요.

너무너무행복해요!울렁울렁신나요!첫눈을보는것처럼마음의창이활짝열려서기쁘고기쁠뿐이에요.쌀알한톨만큼의후회도아쉬움도없어요.만들어주신분들의지극한사랑덕분이에요.정말많은분들의손길을거쳐시집이태어났는데요.그많은손과애정어린정성이너무감사해서‘드디어태어났구나!아유예뻐라’이런마음뿐이에요.말랑말랑한아기가태어난것처럼요.저는책을만드는일이이렇게아름다운일이란걸처음경험해봤어요.책이야말로공동체의산물,그자체구나.그런생각을했어요.그래서기뻐요.‘나의첫시집’이라서가아니라‘함께만든첫시집’이라서.정말시집이너무너무예뻐보여요!매일아침눈을뜨면사랑이와요.귀기울이면그게모두새소리예요.

Q2.죽음과사랑의시가많다고느껴집니다.어둡고무겁기보다는말갛고깊은느낌으로요.상실과부재그다음에가능한어떤초월적인세계를엿본것도같습니다.아마도시속의화자가너무나열심히,온마음으로그대상을생각하고또생각하기때문인것같아요."불쑥떠오르는얼굴에전부를걸어요"라는시구가작가님을잘드러내지않을까짐작도해보고요.작가님께서보시기에이시집엔무엇이담겨있나요?

최선을다해사랑하고기억하는마음.도시락에밥을꾹꾹눌러담는마음.고양이머리를쓰다듬는손끝의마음.죽은사람들의아름답고빛나던마음.그들의품위.부드러운몸짓.보고싶은마음.볼수없지만용감하게살고싶은마음요.사랑하는사람들을떠나보내고용감하게애도를하고싶었어요.감히밝게,환하게,사랑을쥐고빛으로가득한장례를치르고싶었어요.그래서쓰다보니자꾸만사랑시가나왔고말갛고밝게그린죽음이나왔어요.이유는모르겠어요.계속보고싶으니까요.길걷다가도펑,울며환해졌어요.내안에‘받은사랑’이이렇게나많아서곡진하게슬픈거구나싶었어요.차곡차곡제가받은그사랑을초를켜듯써보고싶었어요.죽어도계속되는게있잖아요.살아도계속살고싶은마음이있잖아요.텅빈채로향기롭고가득한것.저를키워준사람들의빛나는사랑을자꾸자꾸말하고싶었어요.

Q3.빵이나떡,수육등먹을것과관련된시편도눈에띕니다.특별한이유가있을까요?

그이유는아주단순한거같아요!저를제외한가족구성원모두가요식업에종사하고있어서그래요.저희집은온갖요식업을해왔고동생은동네에서작은베이커리를하고있답니다.매일매일갓구운바게트를꺼내고치아바타를척척쌓고어깨를주무르죠.그러니안보고싶어도집안왼편에는빵,베란다에도빵,냉동실에도빵.그런데참신기한게빵은보고또봐도질리지않는밝은힘이있더라고요.과연‘서양의쌀밥’이라부를만해요.어머니아버지는반찬가게를수십년째하고있어요.반찬가게는‘한식의절정’이에요.매일보는게멸치,순두부,더덕,갈치,수육,달래,냉이,파김치,녹두전이거든요.온갖생명의반찬화(?)를보고있으면눈부시게아름답고슬퍼져요.또할머니와함께먹은숱한음식들.비구니들의사랑을받으며크기도했어요(명재,떡먹을래?).그아름다운사람들이보고싶어서자꾸빵과떡과찬이튀어나오나봐요.곡물처럼밝은말을쓰고싶어요.

Q4.이시집에서특별히아끼는시가있다면무엇인지궁금합니다.그이유도요.

콩국수를먹는내용의시,「사랑을줘야지헛물을켜야지」를좋아해요.왜냐하면저는엄마를많이좋아하기때문이에요.엄마는저의가장친한친구며,가장귀한연인이며,저의세부,그리고삶의궁극이에요.엄마는몸이아프기도했었고매우혹독한시간을지나살아냈어요.‘사랑을결코포기하지않기.’저는엄마에게이놀라운태도를배웠어요.그런엄마에게해주고싶은게너무많아요.삶으로시로얼굴로손길로물질로마음으로,해주고싶은것들이많아요.이시는순전히엄마를위한시예요.어느여름날엄마가게에서엄마를데리고나와콩국수를같이먹으러갔던날의기록이에요.가게니,매상이니,다치워버리고둘이서콩국수가게로도망치듯달려갔는데그때얼마나속이시원하고행복했는지.뭔가엄마와함께자유를‘쟁취’한듯한기분이들었어요.엄마랑후루룩면발을먹고있는데나지금,눈부신사랑을지나고있구나.환한음식을먹으며그렇게생각했어요.

Q5.이시집으로작가님을처음만나게될독자분들께인사한말씀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이렇게첫시집을통해인사를드리게되어서무척반가워요.저는늘시집을사는입장이었는데독자분들께인사를드린다는게얼떨떨하고신기해요!시집은참이상한책인것같아요.저는시집사는걸정말좋아하는데요.가만히시집을보고있으면‘책의최소단위’라든가‘책의최장거리’같은엉뚱한개념들이떠오르고는해요.시집은때로가장작은책이기도하고,가장길게울리는노래이기도하고,가장어렵게느껴지는늪이기도했어요.그모든모험이항상‘다르게아름다워서’자꾸만손이가나봐요.그런시집을집어주신독자분들께진심으로감사하다는말씀을드려요.이책은사랑하는마음으로쓴책이니까.독자분들이읽으시고마음안쪽에사랑의볼이빵빵하게부풀면좋겠어요!

■시인의말

어느여름날,나를키우던아픈사람이
앞머리를쓸어주며이렇게말했다.

온세상이멸하고다무너져내려도
풀한포기서있으면있는거란다.

있는거란다.사랑과마음과진리의열차가
변치않고그대로있는거란다.

2022년12월고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