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비상구 (이희중 시집)

푸른 비상구 (이희중 시집)

$10.00
Description
동행하는 이는 적지 않으며
떠나는 역과 내리는 역이 저마다 달라
황망히 제 길들을 찾아 멀어지나니
천장에서 하늘에서는 너도
역 하나를 골라 내려라 재촉하는데
이제 삶을 위해 살아가라고 윽박지르는데
이제 살아남기 위해 사랑하라고 속삭이는데 _「순환선」 부분

높이에는 알지 못할 바람이 불고 있어
지상의 손끝에 흔들림으로 살아 오고
손가락으로 연습한다
사랑하면서 헤어지기 헤어져서도 사랑하기
사랑하지 않으면서 만나기 만나면서도 사랑하지 않기 _「연(鳶), 내가 피울 목이 긴 연꽃」 부분

1987년 광주일보, 1989년 『현대시학』을 통해 시를 발표하고 1992년 경향신문 평론이 당선되어 평론가로도 활발히 활동한 이희중 시인의 첫 시집 『푸른 비상구』를 문학동네포에지 56번으로 새롭게 복간한다. 1994년 7월 민음의 시 62번으로 첫 시집을 묶었으니 그로부터 꼬박 28년 만이다. 총 4부 64편의 시를 실었다. 초판 해설을 쓴 이경호 평론가에 따르면 이희중 시인의 첫 시집에는 어제의 풍경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이 저미어 있다. 규칙적으로 종이 울리고 시간 또한 반듯하게 잘라지는 시절, 살아 있는 것들을 모두 이름표를 달고 있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명징한 세계에서 시인은 벗어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이름 없는 사물과 이름 많은 사람들의 세상으로 간다. 어떤 것은 영원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하여(「교과서 나라」). 시인이 살고 있는 이 별은 한번 저지른 일을 되돌릴 수 없다는 독특한 원리를 강조하는 학교다. 한번 가면 절대로 돌아올 수 없는 이 별에서 불쌍한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며 살아간다. 눈물로 바다를 이루며, 그 물살에 가슴을 다치며 죽어가는 세상에서 시인은 노래한다. 다행스럽게도 “이 별을/일주하는 사람들은 단 한 번 죽을 기회가 있다네”(「후진금지」)

눈앞에 펼쳐지는 사철의 꽃들
늘 새로운 듯해도 오래도록 되돌아오는 것일 뿐
한자리에 앉아 목이 굳도록 보고 있어
서서 할일을 알고 태어난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돌아오는 꽃들의
색깔에 고개 돌리지 못해 하냥 보면서
날씨가 바뀌면 옷을 갈아입고
다시 그 자리에 묶인 듯이 앉아
사위를 둘러볼 뿐, 너른 방 침침한 구석에서
밝은 거짓들에 마음 뺏기어
속없이 울며 웃으며 즐길 때 너는
푸른 비상구를 열고 나타나 손전등으로 내 이마를 비출까
일으켜 굳은 관절을 깨워줄까
더듬거리는 손을 이끌어 바깥으로 데려 나갈까
세상 안으로 끌고 나갈까 저 낯설게 밝디밝은

─「푸른 비상구」 전문
저자

이희중

1960년밀양에서태어났다.1987년부터시를,1992년부터문학평론을써발표하면서시집『푸른비상구』『참오래쓴가위』『나는나를간질일수없다』,문학평론집『기억의지도』『기억의풍경』『삶〉시』등을펴냈다.

목차

시인의말
개정판시인의말

1부
파랑도(波浪島)/교과서나라/두드리면열린다는문,또는기다리면온다는고기/손톱발톱머리카락털/풍화를위하여/아침의선택/우기의놀이터/계근장부근/태풍/후진금지/감물/연필의노래/수난하는안경/사냥꾼/연체동물/여주인공/풀매듭/풍장/기억/개처럼만나는

2부
순환선/푸른비상구/지하철신천역에서/겨울산기(山記)/저돌들모두젖으면/산상(山上)의벗/탈옥기/너에게갇힌가을/우중공원/객석의너/너에게/네가태어나지않았으므로/너없는날/날씨속의너/새벽에서울을떠나다/나의달시계/사과깎기

3부
씨앗을묻으며/서곡/겨냥/겨울활천리(活川里)에서/오월의숲/마장동의코스모스/연(鳶),내가피울목이긴연꽃/가을구도(構圖)/묶인밤안개꽃에게/학사주점외사/다시바다로/흔들리지않는나무의이름/마른엉겅퀴잎새에내리는비/초가을산행/도하의서/젖은나무의노래/천기/비가/처음꽃을보는아이처럼/걸어가는사람의느티나무/편지를챙기며

4부
증인/고별/해거름의허사/춤,누항을떠나기위한/누항을떠나며1/누항을떠나며2

출판사 서평

그리운마음일때‘IMissYou’라고하는것은‘내게서당신이빠져있기(miss)때문에나는충분한존재가될수없다’는뜻이라는게소설가쓰시마유코의아름다운해석이다.현재의세계에는틀림없이결여가있어서우리는언제나무언가를그리워한다.한때우리를벅차게했으나이제는읽을수없게된옛날의시집을되살리는작업또한그그리움의일이다.어떤시집이빠져있는한,우리의시는충분해질수없다.

더나아가옛시집을복간하는일은한국시문학사의역동성이드러나는장을여는일이될수도있다.하나의새로운예술작품이창조될때일어나는일은과거에있었던모든예술작품에도동시에일어난다는것이시인엘리엇의오래된말이다.과거가이룩해놓은질서는현재의성취에영향받아다시배치된다는것이다.우리는현재의빛에의지해어떤과거를선택할것인가.그렇게시사(詩史)는되돌아보며전진한다.

이일들을문학동네는이미한적이있다.1996년11월황동규,마종기,강은교의청년기시집들을복간하며‘포에지2000’시리즈가시작됐다.“생이덧없고힘겨울때이따금가슴으로암송했던시들,이미절판되어오래된명성으로만만날수있었던시들,동시대를대표하는시인들의젊은날의아름다운연가(戀歌)가여기되살아납니다.”당시로서는드물고귀했던그일을우리는이제다시시작해보려한다.

문학동네포에지6차분리스트

051이규리『뒷모습』
052진이정『거꾸로선꿈을위하여』
053허영선『추억처럼나의자유는』
054유하『나의사랑은나비처럼가벼웠다』
055안정옥『붉은구두를신고어디로갈까요』
056이희중『푸른비상구』
057유진목『연애의책』
058김홍성『나팔꽃피는창가에서』
059김명리『적멸의즐거움』
060권대웅『조금쓸쓸했던생의한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