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들 순간들

작별들 순간들

$16.00
Description
“그러므로 한 사람이 두 번 다시 같은 빛 속에 있지 못하리라.”
한국문학의 가장 낯선 존재, 배수아 신작
독일의 시골 정원에서 쓰인 ‘읽기-쓰기’의 생활 산문
한국문학에서 ‘배수아’라는 이름은 낯설고 이국적인, 매혹과 비밀스러움이 그득한 영토의 푯말로 쓰인다. 신작 『작별들 순간들』은 읽기와 쓰기, 작가로 존재하기에 대해 쓴 산문으로 그 영토를 여행하는 데 가장 적합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작가의 문장을 따라 조금씩 그 땅을 디디다보면 어느 순간 빽빽한 투야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오두막을 만나게 될 것이다. 외부와 단절된 그곳에는 정원의 삶과 읽고 쓰는 삶만이 있다. 목가적인 것과는 다르다. ‘벗어난 것’에 가깝다. 익숙한 고통과 근심에서, 언어에서, 나 자신에서 벗어났을 때 새로이 느낄 수 있는 순간들, 그것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화음들.

배수아 작가는 베를린 인근 한 시골 마을의 정원 딸린 오두막을 15년 가까이 오갔다. 처음에는 시차를 두고, 그러나 점점 더 오래 그곳에 머물게 되었고 마침내 살게 되었다. 자신에게 중요해지리라 짐작하지 못한 채 중요해지는 장소가 있다. 특히 배수아 작가는 한국에 체류할 때는 번역을, 독일 오두막에 머물 때는 본인의 작품을 쓰는 식으로 작업해왔기 때문에 이곳은 더욱 특별해진다. 작가는 자신이 ‘정원에 속한 사람’이 되어갔으며 그것은 자신의 글쓰기의 성분과 정신, 철학을 모두 포함한 글쓰기의 양태가 오두막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뜻한다고 전했다. 더불어 이 산문집은 특정 ‘장소’에 관한 글이라기보다 ‘내가 어떤 장소에 있었음으로 인해 쓸 수밖에 없는 글’이라고도.

소설가의 산문을 엮어 책으로 내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여러 매체에 실은 시의적 산문들을 정리한 책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콘셉트 아래 써내려간 산문집.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읽기와 쓰기, 작가로서 존재하기에 대한 배수아 작가 특유의 세계가 베를린과 인근 시골마을의 오두막 정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긴 호흡의 산문으로, 2022년 5월부터 10월까지 문학동네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 밀도 높게 연재된 원고를 바탕으로 한다. 연재 당시 제목은 ‘순간들 기록 없이’였다.

우리가 평화롭게 정원의 흙 위로 몸을 기울인 동안, 당신의 몸 위로 빛과 그늘이 어지럽게 얼룩지는 그 순간에도. 작별은 바로 지금, 우리의 내부-숲안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궁극의 사건이었다. 배추흰나비의 애벌레가 몸을 구부리면서 당신의 목덜미 위를 느리게 기어간다. 나는 손가락 끝으로 그것을 집어올린다. 평화와 고요. 오직 빛과 호흡만이 있는 순간. 지금 당신이 불타고 있다는 증거인가? 글쓰기는 작별이 저절로 발화되는 현장이다.(83쪽)

가을에서 겨울이 지나갈 때까지 나는 두 권의 책을 번역하기로 되어 있었다. (“모든 언어는 외국이다.”) 글쓰기는 언어를 만들어가는 일이었다. (“나는 무성영화와 같은 글을 쓰고 싶어.”) 나는 스스로 만든 언어 안에 거주하기를 원했다. 존재는 거주이다. 내 거주는 글쓰기 안에 있었다. (“내 언어는 무너지는 집이다.”) 어린 시절 이후 나는 어디에서 살아왔던가? 항상 나는 내 최초의 집을 생각한다. 내게 최초로 말과 글을 가르쳐준 이는 누구였을까? 글을 쓸 때, 나는 종종 눈앞에서 허물어지는 화가의 아틀리에를 상상한다. (232~233쪽)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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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배수아

소설가이자번역가.1965년서울에서태어나서이화여대화학과를졸업했다.1990년대에등장한젊은작가가운데에서도그녀는독특하다.이화여대화학과에입학한배수아는국어과목을아주싫어했다.그러던어느날20대후반으로접어들었다는자의식으로인해소설을쓰게됐다.1993년서점에서단지표지가이쁘다는이유로우연히집어든문학잡지[소설과사상]에「천구백팔십팔년의어두운방」이당선되면서...

목차

프롤로그
연인
일곱번째아이
낙엽을헤치며걷는사람
WG,그리고개구리를먹는자
작별들
누가우리에게자연을암시하는가
최초에새를가리킨여인
내가가진넝마를팔고
영혼의서쪽벽
9월의황무지에서
고통
고요.회색.
멀리
헝가리화가의그림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배수아작가는베를린인근한시골마을의정원딸린오두막을15년가까이오갔다.처음에는시차를두고,그러나점점더오래그곳에머물게되었고마침내살게되었다.자신에게중요해지리라짐작하지못한채중요해지는장소가있다.특히배수아작가는한국에체류할때는번역을,독일오두막에머물때는본인의작품을쓰는식으로작업해왔기때문에이곳은더욱특별해진다.작가는자신이‘정원에속한사람’이되어갔으며그것은자신의글쓰기의성분과정신,철학을모두포함한글쓰기의양태가오두막으로옮겨졌다는것을뜻한다고전했다.더불어이산문집은특정‘장소’에관한글이라기보다‘내가어떤장소에있었음으로인해쓸수밖에없는글’이라고도.
소설가의산문을엮어책으로내는방식에는크게두가지가있다.여러매체에실은시의적산문들을정리한책과,처음부터끝까지하나의콘셉트아래써내려간산문집.이책은후자에속한다.읽기와쓰기,작가로서존재하기에대한배수아작가특유의세계가베를린과인근시골마을의오두막정원을배경으로펼쳐지는긴호흡의산문으로,2022년5월부터10월까지문학동네웹진『주간문학동네』에밀도높게연재된원고를바탕으로한다.연재당시제목은‘순간들기록없이’였다.

우리가평화롭게정원의흙위로몸을기울인동안,당신의몸위로빛과그늘이어지럽게얼룩지는그순간에도.작별은바로지금,우리의내부―숲안쪽―에서일어나고있는가장궁극의사건이었다.배추흰나비의애벌레가몸을구부리면서당신의목덜미위를느리게기어간다.나는손가락끝으로그것을집어올린다.평화와고요.오직빛과호흡만이있는순간.지금당신이불타고있다는증거인가?글쓰기는작별이저절로발화되는현장이다.(83쪽)

가을에서겨울이지나갈때까지나는두권의책을번역하기로되어있었다.(“모든언어는외국이다.”)글쓰기는언어를만들어가는일이었다.(“나는무성영화와같은글을쓰고싶어.”)나는스스로만든언어안에거주하기를원했다.존재는거주이다.내거주는글쓰기안에있었다.(“내언어는무너지는집이다.”)어린시절이후나는어디에서살아왔던가?항상나는내최초의집을생각한다.내게최초로말과글을가르쳐준이는누구였을까?글을쓸때,나는종종눈앞에서허물어지는화가의아틀리에를상상한다.(232~233쪽)

“마침내는아마도일생이,오직하나의문장이반복되는한권의책처럼
그렇게흘러가는지도모르겠다”
배수아식읽기에대하여

『작별들순간들』은‘나’와‘베를린서가의주인’두인물의생활과여행과대화로채워져있다.‘베를린서가의주인’은누구인가.작가의말에따르면그는“글속의대화체를위한장치이며‘듣는사람’으로위장한‘말하는사람’의역할이고,실질적으로는‘말을암시하는사람’이자‘말을불러일으키는사람’”(249쪽)이다.일평생단하나의헌책방도그냥지나치지못한사람이며방은물론욕실과주방까지책과원고들,편지와쪽지,스케치와콜라주로그득채운사람이다.여름에는글을쓰다가호수에뛰어들어수영을하고밤에는작은발코니의자에앉아별을올려다보는사람이며,무엇보다‘계속해서쓰는사람’이다.요컨대상상의인물이자한권의책이자문학그자체인존재가아닐지.언젠가배수아작가는자신에게영감을주는대상으로문학과사람을꼽으며종종둘이명확하게구분되지않는다말했다.그것이실체화된것이이번산문집속‘베를린서가의주인’이라짐작하는것이과한해석은아니리라.그들의대화가주로책과글,유년의기억과행복에대한것이기도하기에.
세계절에걸쳐쓰인산문의내용을궁금해하는‘베를린서가의주인’에게배수아작가는‘읽기에대하여’쓰고있다말한다.그것은‘읽은책’에대해쓰는것과는다르다고.“왜냐하면나에게독서란한권의책과나란히일어나는동시성의또다른사건이지책을기억속에저장하는일은아니기때문이다.그러므로누군가이글이무엇이냐고묻는다면나는읽기에대한글이라고대답할수밖에없다고.”(250쪽)마르그리트뒤라스와W.G.제발트를비롯해이니셜로만표기된여러작가와그들의작품이다수언급되지만배수아식읽기란그내용을기억하고의미를해석하고감상을정리하는것과는다르단것을짐작할수있는대목이다.

내가그녀의책을읽는방식은물리적으로읽거나읽지않는모든상태를포함한다.이미읽었다는사실을알지못한채자꾸만같은페이지를되풀이해서읽게될까봐무의식적으로모든문장에연필로밑줄을그으면서,하지만읽은것으로부터빠르게빠져나오는방식으로사로잡히면서.어떤문장은읽기를통해불현듯무한대로확장되었고,마치거대한날개에실린듯,나는읽는다는사실을거의의식하지못하는,심지어망각하는읽기를계속한다.어휘들의래디컬한배치.혁명과형이상학.문장과어휘단위의해체.사랑의해체.(…)한권의책을이해한다는것은무의미하다.책의마지막페이지를닫는순간나는그책에담긴모든것을잊기때문이다.처음부터다시읽기위하여.(30~31쪽)

자신의몸으로한권의책을통과한다는것이어떤의미인지,그것이자신을어떻게확장시키는지,어떤자유가그곳에있는지,배수아작가의강렬하고인상적인문장들을따라읽다보면문학에대한애정과고양된마음들이찬란한빛으로그의땅을감싼것이느껴진다.“그리하여마침내,자기자신으로부터아무것도남지않은자,작별하는자”(188쪽)가되는여정이여기펼쳐진다.

“우리가일생을맡기기로한그런일들”
배수아식쓰기에대하여

산문전반에배음으로드리워진이국의정취는작가와‘베를린서가의주인’이꾸려가는시골생활의구체적인묘사에서비롯된다.그들은펌프로물을긷고장작불을피우고소박하게빵을구워‘최소한의생활’을영위한다.계절에맞게핀꽃과열매로시럽이나잼을만들고,호수에서수영을하고,낙엽송숲과밀밭을거닐며도시의그것과는다른고독에자연스레침잠한다.

우리는서로읽거나쓰는척하고있지만,사실은거의아무것도하지않는다.정원은아무것도하지않는데가장적절한장소이다.잠시동안빛이넘실대는정원을내다보고있었을뿐인데,어느새우리는밤의정원에있다.밤새도록나이팅게일이운다.잠속에서도꿈속에서도나는그소리를듣는다.잠시동안나이팅게일의소리를듣고있었을뿐인데,어느새우리는수많은세월을늙어버린다음일것이다.그것이환희라면.(37~38쪽)

그들은너도밤나무숲을통과해걸어서두시간거리의이웃마을로바흐연주를들으러간다.정원낭독회를열기도한다.친구들,작가들과교류하고먼곳으로여행을떠나기도한다.그러나기본적으로투야나무울타리쳐진정원오두막에서의고요함을소중히하며그곳을어느곳보다더‘집’같은장소라여긴다.비밀스러운기쁨의순간들로충만한장소.작가가은둔에가까운생활방식을취한곳에서밝히는‘작가로서내가원하는글쓰기’에대한긴고백은그러므로더욱더의미심장하게느껴진다.

나는아름답거나감동적이거나스며들거나지적이거나훌륭하거나압도적인글을쓰기를원하지않는다고,좋은글이나기억에남는글을쓰기를원하지않으며심지어매혹적이거나독특하거나소름끼치거나아찔한글도아니라고,문장단위로이루어지는글을쓰고싶지않으며,개념과철학으로쓰기를원하지도않고,그렇다고전체와통일과조화의글도원하지않는다고,나는연속성과이야기의문법을피해가기를원하며,구조와플롯의글을쓰고싶지않다고,나는그무엇도,심지어내용이나아름다움조차도완성하거나구축하기를원하지않는다고,모든것은파편이었다,단지속삭임,몸에서울려나오는숨과같은속삭임,물처럼들어올리는속삭임,글이호흡하는속삭임,글을해체하는속삭임,몸없이환하고불완전한사물과같은,하지만속삭이는사물인,혹은모순되고파편적인몸을가진소리…(134쪽)

배수아작가는자신이읽고쓰는자로서잘아는어느세계로우리를데려간다.종종‘몽환적’이라는불충분한말로표현되는그의문장들이실은불충분한말로밖에다말해지지못하는그세계를가장정확하고분명하게그리고있음을새삼깨닫게한다.『작별들순간들』을함께읽을우리.“고요.회색.숲에서,우리는비밀의책을가질것이다.우리,깊이매혹당했고,아무도알지못했다.”(2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