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틀을 찾아서

빵틀을 찾아서

$14.50
Description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를 멈춰 세우며
주위의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김도연 신작 소설집
1991년에 등단한 후 삼십 년 넘는 동안 소설집, 장편소설, 산문집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부지런히 작품활동을 이어온 김도연 작가의 다섯번째 소설집 『빵틀을 찾아서』가 출간되었다. 화려하거나 값나가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작고 가벼운 콩을 보듬어가며 일상을 꾸려가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낸 『콩 이야기』(문학동네, 2017) 이후 오 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소설집은 한 해 동안 숨가쁘게 달려온 연말의 우리에게 더없이 적절하게 느껴진다. 손때가 묻은 빵틀, 낮은 집, 커다란 눈동자의 말 등 김도연은 이 아홉 편의 소설을 통해 마치 오래된 사진을 복원하듯 쉽게 지나치기 쉬운 풍경을 다시 찬찬히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그 풍경은 때로는 밤낮으로 탁구에 깊이 몰두해 있는 인물을 코믹하면서 진지하게 담아내는 모습으로(「탁구장 근처」), 때로는 투자한 친구의 사업이 실패하는 바람에 엉뚱하게 투자금 대신 셰퍼드 두 마리를 건네받고는 속수무책으로 셰퍼드와 함께 산길을 헤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셰퍼드」) 나타난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덜컥 화를 내거나 따지기보다는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인물의 모습은 각자의 시간을 통과해 한 해의 끝에 다다른 우리에게 애틋한 울림을 줄 것이다.
저자

김도연

강원도대관령(평창)에서태어났다.고향에서중학교까지마친뒤춘천으로유학을떠났다.고등학교때읽은단한권의소설인조지오웰의『1984』는충격적이었다.강원대불문학과에들어가시와소설을저울질하다가경쟁률이약해보이는소설을쓰기시작했다.졸업후주물공장,아파트공사장에서막일을했다.강원일보(1991년)와경인일보(1996년)신춘문예에소설이당선되었지만청탁이오는곳은없었다....

목차

빵틀을찾아서_007
전재와문재_025
탁구장근처_059
말벌_091
셰퍼드_123
OK목장의여름_157
말머리를돌리다_189
마을에서제일가는사나이_225
겨울잠_259
작가의말_289

출판사 서평

“뭘찾으러왔다고?”

동그란칸에담긴밀가루반죽이서서히부풀며빵이구워지듯
빵틀을찾아이집저집을방문하는사이피어오르는
고소하고애틋한아홉편의이야기

표제작인「빵틀을찾아서」는이번소설집에서유일하게어린아이의시점에서전개되는작품이다.그치지않을듯비는끊임없이내리고누나들은자신을따돌리고놀러나간탓에‘나’는혼자서는할수있는게아무것도없다.심심해하며시간을죽이던중문득아이디어가떠오른‘나’는엄마에게소리친다.“엄마,빵구워먹자!”(10쪽)하지만웬걸.빵틀을누가빌려갔다는것이다.‘나’의집은마을에서유일하게빵틀을갖고있기때문에겨울철이나농한기면이집저집에서서로줄을서가며빵틀을빌려갔다.그렇다보니한번빌려준빵틀은여기저기를전전하다가어떨때는한달만에돌아오기도했다.어떤집에서빌려갔느냐는‘나’의물음에엄마는확신없이“누구더라?월남집에서빌려갔나?”(같은쪽)라고말한다.그리고그말을시작으로비오는날‘나’의‘빵틀찾기’가시작된다.과연‘나’는무사히빵틀을찾을수있을까?

이어지는여덟편의소설은지방을배경으로중년의화자가가족과생활을곰곰이곱씹으며그동안의삶을반추하는전반부의작품과꿈과현실의경계를넘나드는김도연특유의환상성이발휘된후반부의작품으로나눌수있다.전반부의계열을대표하는「전재와문재」는열흘이나되는긴추석연휴동안일어나는일들을그리는동시에작가로살아가는일의만만찮음을은근히내비친다.소설가인주인공은날마다작업을하기위해향하던도서관이연휴를앞두고문을닫자무슨일을하면서긴연휴를보내야할지고민한다.그런와중에추석전날에‘소설심사’를맡게되면서그는집에늦게가도될핑계하나가생겼며다행스러워한다.하지만그렇게생각한것도잠시,여러권의책들가운데단하나의수상작을선정하는일은어쩐지그를불편하게만든다.“똑같이책을냈는데상을받는사람과받지못하는사람으로만세상이나뉜다는생각이밀물처럼쳐들어”(45쪽)오면서그간자신이어떤작품을써왔고어떤평가를받아왔는지돌이켜생각해보지않을수없게되었기때문이다.하루도허투루보내지않고늘애써서살아왔지만막상뚜렷한결과물을손에쥐고있지않다는생각은그가심사를마치고전재터널과문재터널을넘어집으로가는동안더짙어진다.하지만막상집에도착해오랜만에가족과친척들과둘러앉아옛이야기를나누면서그는자신안에어떤평안함과애틋함이뭉근하게피어오르는걸느낀다.

중년화자를내세운또다른작품인「말벌」은주말농장을배경으로일어나는한편의소동극이다.박과장과강은각각배추와고추와고구마를키우며가까워진사이이다.여기에빠질수없는건바로술.세사람은일을하다가지치면슬그머니박의원두막으로모여들어중년의고됨과부침을안주삼아술판을벌인다.그날도세사람은평소처럼원두막에앉아한창술을마시던중이었다.뜻대로풀리지않는인생을한탄하다가박은얼떨결에손에들고있던막걸리병을내던졌고,막걸리병이원두막천장에매달린말벌집을때리는순간허공이노랗게변하더니말벌들이달려들기시작한다.박은허겁지겁원두막에서뛰어내려달려나가지만그사이벌에쏘였는지그만의식을잃고쓰러지고만다.그런데정신을차리고다시눈을떴을때,박은무언가이상한낌새를눈치챈다.무엇인가에묶여있는듯손과발이제대로움직여지지않는데다마치자루속에갇혀있는듯답답함이느껴졌기때문이다.게다가밖에서는구슬픈울음소리가들려오기까지한다.곰곰이생각하던박은그소리가바로자신의죽음을슬퍼하는아내와자식들의곡성이라는걸깨닫는다.그러니까박은지금관속에들어있는것이다.그런데“죽은사람도소리를듣고생각을하고가려움을느끼나”(「105쪽」).자신이지금생각을할수있다는건아직죽지않았다는의미가아닌가.그생각이든순간박은온힘을다해힘차게이마로관뚜껑을들이박기시작한다.박은과연관밖으로나올수있을까?박은정말죽지않은게맞을까?

후반부에놓인네편의소설은여기에서한발더나아가꿈과환상을적극적으로작품에녹여낸다.「OK목장의여름」은흰구름아파트에거주하는인물이어느날집행관으로부터문서를받으며시작된다.문서의내용은이렇다.집주인이집을경매에내놓았다는것.그는곧바로집주인에게연락을하지만집주인은전화를받지않는다.쿵덕거리는가슴을진정시키고다른방법이있는지찾아보지만좀처럼뾰족한수는떠오르지않는다.그도그럴것이걸어서십분거리에있는‘OK목장’에다니는그에게는흰구름아파트만큼살기에좋은집도없기때문이다.사면초가에처한그의답답한심정을대변하듯그는어느순간부터자신이근무하는OK목장으로수상한사람이찾아오는묘한꿈을꾸기시작한다.

「말머리를돌리다」에는양떼대신말한마리가등장한다.성공해고향으로내려와말목장을운영하는초등학교친구Y가오랜만에동창회를하자며친구들을자신의목장으로불러모으고,젠체하며으스대는Y의말을듣기싫어그는슬그머니밖으로나와목장을기웃거리다가마방에들어선참이다.그리고그곳에서윤기가자르르흐르는갈색말한마리를마주한다.그가조심스럽게말의눈을쳐다보며볼을긁자말은순순히그의손길에볼을맡긴다.용기가생긴그는한발앞으로다가가말의등에안장을얹고등잔에왼발을올려놓은후훌쩍뛰어오른다.난생처음말위에올라타게된그는심호흡을크게한뒤등자에얹어놓은발로말의옆구리를차며소리를친다.말을타며충만한자유로움을느끼던것도잠시,아무리해도말이멈추지않고끊임없이앞으로달려나가기시작한다.마치꿈속과현실의경계를가르듯이.인간관계와직업,거주환경등어느한문제로부터도자유로울수없는우리에게『빵틀을찾아서』는이처럼아무렇지않은듯쾌활하게환상을부려놓으며잠시그곳에서벗어날수있게해주는활로로,또는핍진하게일상을그려내어삶을제대로마주할수있는기회로다가온다.

이번소설집에수록된아홉편의소설을다시들여다보니등장인물들은,아니나는덩치만커졌지아직도빵틀을찾아찢어진우산을쓴채마을의집들을방문하는소설속소년에게서벗어나지못했다는생각이들었다.그러니까이소설들은소년이미처예상하지못한,어른이되어서도빵틀을찾아떠도는사람들의이야기다.그표정과풍경은지난하기이를데없다.그런데……대체빵틀은어디에있는것일까.
_‘작가의말’에서

책속에서

그게세상의순리란생각이들었다.장강(長江)의뒤물이앞물을밀며바다로흘러가는것.멈추고
싶어도멈출수없는인생사였다.
(「전재와문재」,54쪽)

그역시이낯선도시로이사온지이제사년이되어가고있었는데어디에서도아는사람을만난적이없었다.그만큼이도시는그와는아무런인연이없는곳이었다.그가이곳을거주지로택한이유역시아는사람이없으니부대끼지않고조용하게살아갈수있겠다는판단에서였다.
(「탁구장근처」,63쪽)

이젠노안때문에돋보기없인자그마한글자는읽을수도없었다.차라리멀리있는게보이지않고가까이있는게보였으면좋겠다는생각이수시로들었다.한때는가까이있는건무시해버리고멀리있는것들을좇느라세월을탕진했다.그세월을건너오면서그래도깨달은게있다면,멀리있는것은아무리달려가도언제나신기루처럼멀리있어잡을수없다는것이었다.한때는잡을수있을거라고집했는데그건착각이었다.
(「말벌」,102쪽)

부모님의농사일을이어받겠다는생각은단한번도한적이없었다.그런데왜나이들어,비록자그마한밭이지만도시의한귀퉁이농장에서농사를시작했는지스스로도납득하기힘들었다.농장에들이는시간과돈,힘이라면차라리시장에서사서먹는게낫다는걸모르지않음에도말이다.정말이상했다.그런데농장에오면왠지마음이편해졌다.숨통이트이는기분이었다.
(「말벌」,114쪽)

“끌어주는사람없이초보자가무모하게타는건대단히위험해.까딱잘못하면말에서떨어질수있거든.어떤사람은말에서떨어져전신이마비된경우도있다니까.타는방법도제대로배워야하지만그보다는잘떨어지는방법을먼저배워야돼.그래,낙법!뭐랄까……우리네인생도그런거잖아.”
(「말머리를돌리다」,195쪽)

“야야,달리는말은달리게놔두는게세상사진리야.억지로멈추게만들면탈나는것도세상사진리고.”
(「말머리를돌리다」,215쪽)

우공이산(愚公移山),그래,우공이산을옮기는일을자신이직접하고있다는자부심마저들었다.우공이삽과곡괭이를사용해집앞의산을옮기려했다면봉태는포클레인의운전석에앉아묵묵히산을옮기는거였다.그런깨달음에도달하게되면서비로소대학에간친구들이부럽지않았고넥타이를매고회사에다니는사람들앞에서도떳떳하게행동할수있었다.언젠가부터봉태는처음만나는사람들이무슨일을하냐고물으면산을옮기는일을한다고말한뒤수줍은미소를지었다.
(「마을에서제일가는사나이」,2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