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wall

월 wall

$14.50
Description
“필요 없는 건 버려지지. 하지만 버려지는 게 꼭 나쁜 걸까?”

위트 넘치는 질문들로 가득찬 최정나식 메타버스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최정나 첫 장편소설
201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등단 이듬해에 발표한 단편소설 「한밤의 손님들」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최정나 작가의 첫 장편소설 『월wall』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젊은작가상 수상 당시 “대화의 힘”과 “사실적 현실과 상상적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기교”(문학평론가 신형철)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최정나 작가는 첫 소설집 『말 좀 끊지 말아줄래?』를 통해 위트 넘치는 대화와 연극적인 장면들로 구축된 개성적인 세계를 선보였다.
2021년 4월부터 9월까지 〈주간 문학동네〉를 통해 독자들에게 처음 공개된 후 섬세한 퇴고를 거친 『월wall』은 현실과 환상을 묘하게 섞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 환상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하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제목인 ‘월wall’은 ‘인터랙티브 미디어 월’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랙티브 미디어 월은 주로 빌딩 외벽에 설치되어 대형 광고판으로 기능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용자의 동작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하나이기도 하다. 즉, 미디어 월은 현대 도시의 소비주의를 보여주는 동시에 사용자가 몰입하여 감상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미디어 월이 제공하는 광고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우리의 행동에 따라 미디어 월에 나타나는 화면을 바꿀 수도 있다. 최정나 작가는 이런 이중적인 특징을 가진 미디어 월을 소설 속에 적극적으로 들여와 자유롭게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거대한 미디어 월 앞에 선 인물들은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까? 인물들이 미디어 월을 통해 아무렇지 않게 시간과 공간을 옮겨갈 수 있는 것처럼, 『월wall』은 우리에게 최정나 작가의 작품세계로 깊이 빠져들 수 있는 하나의 문이 되어줄 것이다.
저자

최정나

1974년생.2016년문화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전에도봐놓고그래」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단편소설「한밤의손님들」로2018년제9회젊은작가상을수상했다.

목차

월wall_007
작가의말_279

출판사 서평

“그곳에서는누구든될수있었고,어디로든갈수있었고,
모든시간을살수도있었다.”

아무것도아닌존재에서무엇이든될수있는존재로,
미디어월의빛을건너펼쳐지는가장현실적인환상

소설은우여곡절끝에공항에도착한용수를비추며시작된다.용수는자신이사랑하는연수와함께여행을떠났다가어쩔수없는이유로이별하고혼자한국으로귀국한상황이다.그런용수를기다리는건이복형제인쌍둥이자매다.쌍둥이자매는추운날길거리한복판에서용수를기다리느라무척지쳤다며어서오라고다그친다.용수는자신을자주골려먹는쌍둥이자매와만나고싶지않지만어쩔수없이울며겨자먹기로택시에올라탄다.그런데웬걸,안그래도약속시간에늦어초조한데택시기사의장광설이이어진다.택시기사는대뜸자신의과거를늘어놓더니,갑자기끼어든화물차에보복하기위해원래의목적지가아닌다른곳으로차를몰기시작한다.말릴틈도없이한동안도로에서의추격전이이어지다가택시기사가불쑥차를멈춰세운곳은바로바닷가.용수는그렇게엉뚱하게바닷가에도착하게된다.

한편인석은특별히잘하는것도,좋아하는것도없는청년이다.정확하게는불규칙적으로생활하고기분내키는대로행동하는인물이다.그는“늘자신을둘러싼모든것이부자연스럽다고생각”(230쪽)하고,그런이유로늘화가나있다.인석은그때그때모습을바꾸어자신이원하는대로살면서도사회의질서안팎을넘나든다는‘움막선생’의존재를동경하며그를만나삶에대한가르침을얻고자한다.인석은‘내가할일은내가하자’라는자급자족모임에서만난사람들과움막선생을찾으러떠났다가다다른바닷가에서용수와만난다.
일영과작은털보는또어떤사람들인가.움막선생이살고있다고알려진산속에서사는그들은게스트하우스를관리하며지내고있는데,게스트하우스의사장부부가그들을내쫓을예정임을알고산속에더오래머물방법을고민한다.여느때와다를것없이산속에서약초술을담그고,게스트하우스를관리하고,장작을패던일영과작은털보는움막선생을찾아산으로온용수와인석을마주하게된다.
이렇듯이소설의주인공은단일하지않다.용수와연수,인석,일영과작은털보,쌍둥이자매를비롯해각설이패,칵테일바의사장등다양한인물이끊임없이등장하며각자의서사를이야기한다.이들은공통적으로사회로부터버려진,더정확하게는자본주의사회에서쓸모없다고여겨지는사람들이다.하지만작가는마치이렇게묻는듯하다.“필요없는건버려지지.(…)하지만버려지는게꼭나쁜걸까?”(105쪽)

그질문과더불어소설을읽어내려갈수록독자에게는다양한질문이쌓일것이다.인석은원하는대로움막선생을만나조언을구할수있을까?용수와연수는재회하게될까?움막선생은대체누구일까?이인물들은앞으로어떻게살아가게될까?여러질문들로가득찬이소설에서인터랙티브미디어월은그질문에대한하나의답을제시해주는것같다.최정나식미디어월을통해서는한사건이여러장소에서동시다발적으로발생할수있고같은인물이두장소에동시에등장하는게가능해진다.현실에서는불가능한일들이아무렇지않게일어나며현실의한계가흐릿해지는것이다.최정나작가가보여주는이런환상은‘메타버스’와같은기술이일상이되어버린동시대독자들에게마냥멀게만느껴지지않을것이다.그런점에서『월wall』은가장현실적인환상을그린소설이라고할수있지않을까.
소설속인물과공간은묘한방식으로연결되고,이처소재하는인물과비슷한듯다른공간,선문답처럼돌고도는대화들은물줄기처럼계속이어진다.끊어질듯하면서도끊임없이연결되는장면들을따라가다보면우리는어느새소설의마지막장에다다라있을것이다.그리고“홀린기분은홀린기분인데그게꼭나쁘다고할수는없었다.아니,오히려좋았던것같다(‘작가의말’에서)”고중얼거리게될것이다.

“쓰지도않았는데어느새채워져있더라는말은들어본적있어도쓸수록줄어들다니,홀린기분이었다.홀린기분은홀린기분인데그게꼭나쁘다고할수는없었다.아니,오히려좋았던것같다.

접힌문장들이있다.문장을쓰면쓸수록문장이사라지고단락이줄어들어마침내는완전히사라져버리는원고도있는것이다.

그러니까접힌파일안에더많은것이숨어있다고하면지나친과장일까?”_‘작가의말’에서

골똘한시선에는은근한힘이있어서나도모르게이끌려버리고만다.무심히몇페이지를넘기다작가옆에서서그의눈으로세상을들여다보게되었다.빌딩에서쏟아져내리는네온사인,외벽에설치된미디어파사드,그리고그안으로걸어가는사람들……질펀히흐를‘용溶’자를쓰는용수가멀리흐를‘연演’자를쓰는연수와이별한후,밀려들었다빠져나가는바닷물‘석汐’자를쓰는인석을만나무작정걷는모습을지켜보는데,누군가내옆에서며이렇게묻는상상.지금뭘보는거예요?그러면나는약간멍한얼굴로빛속으로흘러가는물줄기요,한방향으로흐르다이리저리퍼져동시에여러곳에존재하는물줄기요,하고말할것같다.그사람도곧여기에같이서서,최정나가가진응시의힘을느끼게되리라짐작하면서._황예인(문학평론가)

책속에서

너는네가알고있는네가진정너라고어떻게확신할수있지?(…)너는네가하는생각이진정너만의생각이라고어떻게확신할수있지?(22쪽)

나는버려지는게더무서워.
무인판매대에붙은현수막과절벽위암자를번갈아보던연수가시선을돌려용수를바라봤다.용수는해안으로내려오는한무리의관광객을보고있었다.
필요없는건버려지지.연수가말했다.하지만버려지는게꼭나쁜걸까?(105쪽)

지금도고래상어는수족관안을빙글빙글돌고있을거라고,삼분에한번씩같은자리로돌아오고있을거라고,앞으로도계속그럴거라고생각하자슬픔이밀려왔다.용수는자신도어딘가를빙글빙글돌고있는기분이들었다.끝도없이이어지는원형의미로에서앞으로나아가도다시제자리로돌아오는것만같았다.(172쪽)

용수는자신이야말로연수의모든정보를알고있다고생각했고,그런생각을하자뿌듯했다.연수의모습을기록하고기록한정보를그대로재생하는게홀로그래피라면자신이연수의홀로그래피였다.연수가생각하는대로생각하고,연수의행동을따라하고,연수의취향을제취향이라고믿으며연수를그대로복제했다.그런생각을하자느닷없는공포가일었다.한번도해본적없는생각이었는데왜한번도생각해본적이없었는지의아했다.용수는갑자기자신이낯설게느껴졌다.그러자연수도낯설게만느껴졌다.연수를만난후로둘이떨어져있어본적이없다는것을깨달았다.(220쪽)

이곳뿐이아니라네.높은곳에서낮은곳까지그모든곳에우리가있다네.수많은이름으로활동하지.탐욕과쾌락,경쟁심과두려움,불안한마음과비겁한마음이있으면언제든비집고들어가원래거기에있던양자연스럽게녹아들어그들과하나가되지.그것은하나의완벽한플랫폼이라네.(273쪽)

일영이아름다운빛의세계를보고있다가무덤으로들어가는것처럼그안으로걸어들어갔다.그안에서일영은어디로든갈수있었고무엇이든될수있었다.한장의이미지가될수도있었고,동영상이될수도있었다.글자가되었다가숫자가되었고흑백이었다가컬러가되었다.음악이되었고소리가되었다.일영은그누구도아니었으며동시에그모두였다.그무엇도아니었으며동시에모든것이었다.입력값이었고출력값이었다.일영은화면안에서영일한시간을보낼거였다.(276쪽)

인석은순간적으로모든것을보았다.모든얼굴과모든사람을보았다.그들은무언가에도취되어화면에비친제얼굴을보고있었다.안으로들어가면밖으로는나오지못하는거울은외부가차단된하나의완전한외부이자내부였다.그러므로그곳에서는누구든될수있었고,어디로든갈수있었고,모든시간을살수도있었다.그리고사람들은그안에서모두같은모습으로무한히복제되고증식했다.(2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