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꿈 : 손보미 연작소설

사랑의 꿈 : 손보미 연작소설

$16.50
Description
젊은작가상 최다 수상 작가, 손보미 신작 소설집
2022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불장난」 수록
엄선된 문학을 읽는 일, 그 강렬한 기쁨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작가 손보미가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문학과지성사, 2018) 이후 오 년 만에 신작 소설집 『사랑의 꿈』으로 돌아왔다. 2009년에 등단해 한국일보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굵직한 상을 휩쓴 손보미는 특히 사 년 연속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작가 경력에 남다른 방점을 찍었다. 단편소설 「임시교사」로 네번째 젊은작가상을 받을 당시 이 이례적인 수상을 가리켜 문학평론가 권희철이 “손보미는 젊은작가상을 이미 세 번이나 연달아 수상했으므로 여간해서는 네 번 연속 수상할 수는 없었으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임시교사」는 여간하지 않았던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바, 손보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부수는 식으로, 다시 말해 ‘여간하지 않은 방식’으로 소설세계를 확장해왔다. 그러니 손보미의 소설에 대해 ‘손보미스럽다’고 하는 설명은 그다음 작품을 통해 뒤엎어지고 부서지리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소설집 『사랑의 꿈』 역시 그러하다.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문학동네, 2013)과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등을 통해 친밀한 관계에서 생겨나는 불안과 의심을 날카롭고 세련된 방식으로 그려온 손보미가 『사랑의 꿈』에서 공들여 묘사하는 세계는 그전과는 전혀 다르다. “한때는 부부에게, 한때는 특별히 비참한 삶을 산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었고, 지금은 일인칭에 관심을 가지는 중이다”(웹진 비유 2021년 3월호)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그 세계는 주로 ‘일인칭 십대 여자아이’로 이루어져 있다. 장편소설 『작은 동네』(문학과지성사, 2020)에서 처음으로 일인칭 여성 화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간 손보미는 이번 소설집에서 다양한 나이의 여자아이를 본격적으로 등장시키며 “연약하지만 다채롭고 위태롭지만 맹렬한 세계 속에 포함되어”(192쪽)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그렇지만 『사랑의 꿈』 또한 손보미의 소설이기에 ‘십대 여자아이’에 대해 우리가 기대하고 예상하는 것들은 짜릿하고 통렬하게 깨어지며 새로운 얼굴로 드러난다.
저자

손보미

1980년서울에서태어났다.2009년[21세기문학]으로신인상을수상하고,약간혼돈의시간을보내다가2011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담요」가당선되면서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그들에게린디합을』과『우아한밤과고양이들』,『맨해튼의반딧불이』,중편소설『우연의신』,장편소설『디어랄프로렌』을출간했다.‘망드(망한드라마)’를즐겨보고,‘고독한빵순이’로활동중이다.침대...

목차

밤이지나면*7
불장난*63
사랑의꿈*133
해변의피크닉*187
첫사랑*249
이사*315

해설|강지희(문학평론가)
소녀들의사랑과위대한유산*363

작가의말*392

출판사 서평

비밀스런공모부터첫사랑의시작까지
모든것이가능한손보미식일인칭의세계

손보미가그리는십대여자아이이야기,그연작소설의시작을알리는「밤이지나면」은열살의여자아이‘나’가경기도에있는외삼촌부부네집에맡겨진첫해의일을따라간다.그당시사람들은‘나’에대해이렇게말했다.“유별난애”라고,그래서“감정도표출하지않는거라고”(25쪽).하지만사실은그렇지않았다.‘나’는그시기,동네에서‘정신나간여자.미친여자.그러니까미친년’으로통하던한여자와많은대화를나누며지냈으니까.동네에서작은식료품점을운영하는그여자에게는온갖소문이따라붙었다.그녀가이혼을했고자식이죽었는데그녀가죽인거나마찬가지라는것,동네남자들을꼬시려든다는것,그리고결정적으로예지몽을꾼다는것.그리고‘나’는바로‘그런’여자와함께멀리떠나기로한다.사람들은그여자가‘나’의‘비정상적으로’약한마음을이용한거라고,“좀더과격하게표현하는걸좋아하는사람들은그정신나간여자가(…)나를‘납치’했다고말”(같은쪽)하지만,이것역시사실과다르다.그녀에게자신을데리고제발멀리떠나달라고애걸복걸한사람이바로‘나’였으니까.

그즈음그녀는모종의이유로반아이들에게은근히따돌림을받고있었다.하루는체육시간에피구경기에서아이들이‘나’에게만공을던졌고,얼굴을정통으로맞은‘나’는비명을지르며자리에주저앉았다.그일이있고난뒤학교에가는일이두려워진‘나’는그여자에게자신을데리고떠나달라고부탁했던것이다.그렇게‘나’는비가오는저녁,여자를따라차에올라탔다.그러니납치를둘러싼사람들의말에대해‘나’가다음과같이정정하는건당연한일일테다.“내가그녀를부추겼다”(38쪽)고.

“단번에흥미롭게읽을수있으면서도다시한번처음부터정독할때새로운충격을느끼게한다”(소설가권지예)는평과함께2022년이상문학상대상작으로선정된「불장난」의‘나’는또어떤가.자신을둘러싼세계가바뀌면서변화된상황을통과해야하는열두살‘나’의지상최대의과제는두가지다.하나는아버지의재혼으로달라진새가족에적응하는것.새어머니는학교선생으로일하다가아버지와재혼하면서일을그만두었다.그런그녀를두고‘나’의어머니는뭐라고했던가.“남자에게미치면여자가그렇게도되는거다.알겠니?”(92쪽)또하나의과제는같은반아이‘양우정’을둘러싼소문의정체를파악하는것.‘나’는친구들과온갖이야기를주고받는데,남자아이들에대한것과함께가장많이화제에오르는건바로양우정무리에대해서다.양우정을중심으로하는무리는반에서유일하게숙직실을청소할수있는아이들로,청소가끝난뒤에도그곳에머문다는소문이있다.중학생오빠들이그곳에찾아온다는둥,무리중하나가중학생오빠와뽀뽀를했다는둥하는소문과함께.그러다방학이얼마남지않은날,‘나’는용기를내어숙직실의문을조심스럽게두드리고예상외로양우정은‘나’를쉽게숙직실안으로들인다.

하지만그안에서‘나’가마주하는건중학생오빠들이아닌,마치자신들이모델이라도된듯음악에맞춰워킹을하는아이들이다.넋을놓고그모습을바라보는‘나’에게양우정이말한다.“어때,너도해볼래?”(107쪽)‘나’는자신이그정도쯤은능숙하게해낼수있을거라고여기며벽앞에서지만어쩐지한발자국도움직이지못한다.그러다결국도망치듯그곳을빠져나오고만다.그일이있고얼마지나지않아‘나’의불장난이시작된다.‘나’는집안에서우연히발견한아버지의라이터를들고햇볕이뜨겁게내리쬐는계단을걸어올라옥상으로향한다.그리고그곳에서라이터를켜고종이를태우기시작한다.“햇볕이쨍쨍내리쬐는여름날오후에(…)열기에열기를”(119쪽)더하듯이,또는숙직실에서도망쳤던일을떨쳐내듯이,‘나’는그불장난에매혹된다.

「밤이지나면」과「불장난」이자신을둘러싼세계가변화하면서그세계를각자의방식으로해석하고통과하는여자아이에게초점을맞춘다면,「첫사랑」과「이사」는과외선생이라는타인과의강렬한만남으로인해일어나는변화를그린다고할수있을것이다.두작품의차이라면「첫사랑」의과외선생은군입대를앞둔명문대남학생이고,「이사」의과외선생은주인공과몇살차이나지않는중학생언니라는점이다.하지만두작품모두에서주인공들은자신이또래와는다른세계에있다는착각에빠지는한편상대를향한격렬한감정을품는다.그감정이어찌나강렬한지「첫사랑」의‘나’는평소와달리후줄근하고지저분한모습으로등장한그를보면서도자신이생각하는‘환상속의첫사랑’의모습이무너지지않도록눈앞의흉허물에대해서는눈을감고,「이사」의‘나’는언니의미심쩍은행동보다는언니가자신을안으며했던,“나는……너를사랑하니까”(343쪽)라는말을반복해떠올린다.

그리고또다른축에서두소설을이끌어가는건엄마를추동하는어떤열띤감정이다.「첫사랑」에서자신보다“좀더나은삶을살기바라는”(301쪽)마음으로‘나’에게과외를시키는엄마의마음한쪽에는자신은대학을가지못했다는사실이자리해있고,「이사」에서회사일때문에어쩔수없이‘나’를중학생언니에게맡기는엄마의마음한쪽에는“여자혼자아이를먹여살리는게얼마나힘든일인지”(319쪽)아느냐고소리치고싶은현실이자리해있다.때로는은밀하게때로는노골적으로욕망을드러내며서로에게얽혀드는이인물들의세계에서중요한것은서로를향한몰두,그자체인지도모른다.

“나는어린아이에불과했지만뻔뻔하고경박하게타락할수있었다.
모두를깜짝놀라게만들수있었다.
그렇게함으로써내가있을자리를스스로결정할수있었다.”

성장은아름답지도매끄럽지도않다
십대시절에만열리는감각,그세계에대한독창적이고흥미진진한탐구

이번소설집에서유일하게삼인칭시점으로전개되는「사랑의꿈」은아이를떠나‘도망칠기회’를얻고싶었던한여자의충동적인겨울밤을둘러싼이야기이다.오랜시간이흘러그날을다시떠올리는시선속에서‘여자’는지금차에간단히짐을실은채초조하면서도들뜬마음으로운전대를잡고있다.몇년전남편과이혼하고그가사고로갑작스레죽은뒤그의어머니로부터경제적인지원을받아오던그녀는스스로딸을키워보겠다고결심하고몇달전학교행정실에계약직으로취직한참이었다.만족감과비참함이동시에아로새겨진그시기에그녀는자신과마찬가지로행정실에서일하는‘공주연’과가까워지면서공주연의소개로한모임에참석하게된다.그모임에는결혼한여자도있고안한여자들도있는데,결혼한여자들은그모임을‘탈엄’,즉‘일탈중인엄마들의모임’이라고부른다.그렇게공주연을따라참석한어느날의모임에피아노학원을운영한다는여자가참석하고,새로온여자는주위사람들의부추김에피아노를몇차례연주한다.

리스트의〈사랑의꿈〉이집안을가득채우는그순간,그녀는꿈속인듯그연주를들으며몰래밖으로빠져나와자신의차에올라탄다.차에올라탄것만으로도이미멀리떠나온것같은기분을느끼던그때,공주연이차문을두드리고는묻는다.말도안하고왜혼자가려느냐고.그제야그녀는자신이지금무엇을하려했는지불현듯깨달으며깜짝놀란눈으로공주연을바라본다.언젠가자신에게“애들은정말성가셔요.쓸데없이죄책감을불러일으키잖아요.가끔씩은버리고싶은기분이들죠?”(159쪽)라고말했던,따지고보면자신을이렇게내몬장본인과마찬가지인공주연을.

이어지는작품인「해변의피크닉」은「사랑의꿈」과긴밀히묶어읽을수있다.엄마의시점으로전개되는「사랑의꿈」과달리,「해변의피크닉」은그와비슷한배경을가진가족의딸의시점에서펼쳐진다.매해여름방학이면부산에있는할머니네집으로가보름에서한달가량머무르는열한살의‘나’는이번여름에도평소처럼할머니의집으로향한다.그런데집에도착하자처음보는젊은남자가소파에앉아있다.자신을아빠의동생이라고소개하는남자,그러니까‘나’의삼촌인그가말한다.“너는아빠를별로닮지않았나보다.너네아빠는마르고키가컸는데……엄마를닮은건가……?(…)뭐어쨌든너희엄마는정말대단해.너희엄마가여름마다너를여기에보내는대가로……”(207쪽)그말에할머니는“여기가어디라고함부로입을놀려!이러는걸네아버지가가만두고보실것같으냐?”(같은쪽)라고소리친다.

아버지의이복동생인그와할머니사이에는일촉즉발의긴장감이흐르지만‘나’는어쩐지그가마음에든다.그와가까워지는게할머니를배신하는일인것같다고느끼면서도‘나’는그에게계속말을걸고싶은마음을억누르지못한다.그리고집에아무도없던어느날,드디어‘나’에게기회가찾아온다.‘나’는그에게어린아이처럼보이지않길간절히바라며‘나’의방을찾아가이런저런말을늘어놓는다.하지만그의반응은태연하기만하다.조급해진‘나’는이렇게말하고야만다.“할머니와내가해변으로소풍을가는거알아요?(…)거기에삼촌,반쪽짜리삼촌을초대하고싶어요.”(222쪽)할머니를배신하는것보다‘나’를더두렵게하는건,그가방문을닫고자신앞에서그냥사라지는것이었기때문이다.

기꺼이배신자가되는것,어쩌면그것이손보미의여자들이선택한길인지도모른다.결국에는허황되고터무니없는것으로밝혀질지언정『사랑의꿈』의인물들은얕은속임수를쓰고,명백하게누군가를상처입히고싶다는욕망을느끼고,신경질적인조바심과반감을표출하고,사소한충동으로누군가를들끓게하면서기존의무언가에흠집을내고그것을깨뜨리기를망설이지않는다.한발떨어져서보면소심하고평범하다고여겨질수있는이아이들은독창적이고집요한방식으로그세계를들여다보는손보미에의해과감하고헝클어진모습으로,비틀리고엉성한모습으로,끈덕지고열정적인모습으로,다시말해우리가전혀알지못하던모습으로우리앞에나타난다.그리고기꺼이비밀과비극,사랑에매혹되길선택하는손보미의이인물들은우리에게“영구불변한흔적”(147쪽)을남길것이다.뜨겁게내리쬐는태양을피하기위해눈을돌릴수는있어도“살갗의뜨거움”(118쪽)은어찌할수없는것처럼.

이글을쓰면서생각해보건대,『사랑의꿈』에실린소설들은바로그때느꼈던낭패감과비정함을바탕으로쓰인것같다.그런것같다.언제나그렇듯이여기에실린소설들을쓰던시간과공간을기억할수있다.다른건몰라도,이소설을쓰던시간은다른누군가의변덕스러움에의해주어진것이아니었다.이런식으로말하는게가능한지모르겠는데,그것들은온전히나의변덕스러움이선택한세계였다.때때로는신이났고,때때로는좌절했으며,때때로는현기증이났다.때때로는주눅이들었고,때때로는고양되었다.내가통과한시간들을,이렇게손으로만질수있는무언가로남길수있어서다행이라고생각한다.운이좋았다._‘작가의말’에서

추천사

초월적인광기와공포에집어삼켜지는대신,광기와공포로부터거짓말이라는위대한유산을상속받는이영민한소녀들을보라.이번소설집에서손보미는이전자신의모든작품을갱신했을뿐더러,한국문학사가보여준성장의순간들을다시썼다.소녀들의에너지속에서사랑은소용돌이치며거듭탄생하고,투명해진밤은환하게빛난다.우리시대가장섬세하게세공된단편미학의경이로운성취가여기에있다.
-강지희(문학평론가)

『사랑의꿈』에묶인소설속아이들은꽤나큰일을당하며살아남는다.그들은버림받고(자진해서)납치당하고부모의결별에하릴없이동행한다.불장난에한철중독되고‘허언증’있는생판남에게매혹된다.그러나돌아보건대이위험천만한사건들은보편적경험이기도하다.대부분의우리는그일들이파국이나구원으로귀결되지않았다는이유로잊었을뿐이다.손보미는결과로종합되지않은조짐들에대하여,서로를상쇄하며유야무야된허다한모순에관해집요하게쓴다.머지않아착각으로판명될지언정생이초점거리안으로들어와명료해지는드문찰나에바로소설의목숨이달려있다는듯이.이렇다할야심이없어보이는손보미소설의야심은독자를움찔하게한다.
-김혜리(<씨네21>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