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신 - 문학동네 시인선 190

작은 신 - 문학동네 시인선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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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무서운 곳에서도 나는 낙천적일 거예요”

생의 고통을 즐거이 감각하게 하는
명랑함이라는 작은 기적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생의 아픔들을 감각적 이미지와 위트로 시화하는 시인 김개미.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문학동네시인선91)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은 그의 네번째 시집 『작은 신』이 문학동네시인선 190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와 반시』에 시를, 『창비어린이』에 동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개미 시인은 지치지 않는 창작력으로 『어이없는 놈』 『레고 나라의 여왕』 『커다란 빵 생각』 등 여러 동시집을 펴내기도 했으며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권태응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동시를 쓸 때의 김개미와 시를 쓸 때의 김개미는 근본적으로 같은 시선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순수하고 천진하게 현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눈.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은/ 내 생각이 아니죠”(「파랑의 감각」)의 말처럼 사회적 정의나 편견을 지우고 있는 그대로, 자신만의 시선으로 투명하게 세계를 응시하는 눈. 그러나 동시가 아닌 ‘시’를 쓸 때는 그의 시선이 외부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삶을 통해 겪어내야만 하는, 시인 자신을 포함한 인간 개개인의 삶에 어쩔 수 없이 산재하고 있는 내면의 고통을 향한다는 점만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

김개미

강원도인제에서태어나2005년[시와반시]에시,2010년[창비어린이]에동시를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앵무새재우기』『자면서도다듣는애인아』,동시집『어이없는놈』『커다란빵생각』『쉬는시간에똥싸기싫어』『레고나라의여왕』『오줌이온다』등을냈다.제1회문학동네동시문학상,제1회권태응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화장실은몰라도해당화는있어야지
민들레/들판의트레일러/파랑의감각/나의천사/눈오는날의신/울면서콜라를먹으면서/수국이창문을들이받으므로/결국수정액도페인트아니겠어?/인형이아니라서더/당신보다당신고양이/몬스터B/그집에동물이남았습니다/몬스터일기1/몬스터일기2/뱀파이어의인간성

2부모래옆에모래모래옆에모래
3시의고양이/災의아리아/모래의형식/달맞이꽃피는개울에/버드나무그림자가떨리는손으로미친듯이연주를시작하기전에/저방/스물다섯살이지만어린이병원에입원했어요/조용한여름/유령의시/이상한사람의이상한밤/라보카행오토바이/아스팔트위의지렁이

3부사랑고백이그렇게시시한거였나
작은동물의방문/틈새일기/허수아비/숲속엔저녁이없어요/간절기/보파와브레이크타임/나이지리아에서왔어요/제임스,나도영어를배워볼까요?/카카의기차역/그는그로이루어진게아니었나/작고도큰나의아이야/명동/너와나와네아들과/빌라라는세계/雪人

4부슬픔은걱정보다잔잔해서
나는여기없어/초대하지않은애인/벽돌속인간/금요일밤의정체/로키/화정동/귀뚜라미를묵상하는밤/다리밑의눈/파란빈백이있는집/업혀가는아이/아버지제사/이제무엇으로울어요?/찔레꽃

해설|기적의유일한조건|임지훈(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무서운곳에서도나는낙천적일거예요”

생의고통을즐거이감각하게하는
명랑함이라는작은기적

필연적으로존재하는생의아픔들을감각적이미지와위트로시화하는시인김개미.『자면서도다듣는애인아』(문학동네시인선91)로많은독자들의사랑과지지를받은그의네번째시집『작은신』이문학동네시인선190번으로출간되었다.『시와반시』에시를,『창비어린이』에동시를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한김개미시인은지치지않는창작력으로『어이없는놈』『레고나라의여왕』『커다란빵생각』등여러동시집을펴내기도했으며문학동네동시문학상,권태응문학상을수상한바있다.동시를쓸때의김개미와시를쓸때의김개미는근본적으로같은시선을가지고있는듯하다.순수하고천진하게현상과사물을바라보는눈.“다른사람에게들은말은/내생각이아니죠”(「파랑의감각」)의말처럼사회적정의나편견을지우고있는그대로,자신만의시선으로투명하게세계를응시하는눈.그러나동시가아닌‘시’를쓸때는그의시선이외부세계가아니라우리가삶을통해겪어내야만하는,시인자신을포함한인간개개인의삶에어쩔수없이산재하고있는내면의고통을향한다는점만이다르다고할수있겠다.

누구에게나아픔은있다.그러나그고통을언어화하는것은쉽지않은일이다.김개미는그것을자신만의시적스펙트럼으로언어화해내고,우리는그의작업으로고통을새로운방식으로재감각,재인식하게된다.이세계를충분한시간동안살아온독자라면임지훈평론가의“고통에천착하는일은무의미하거나자신을파멸로이끄는길이아니라,생을살아내기위해감내해야하는필연적인대가”이며,“고통만이우리가살아있음을입증하는진정한생의언어”(해설에서)라는말에고개를끄덕이지않을수없을것이다.하지만그렇다고우리가구태여우리를힘겹게하는고통들을다시들여다볼필요가있을까?『작은신』에수록된55편의시는그일의유의미함을여지없이설득해낸다.시를통해우리의아픔을유심히들여다보는일이그저유의미할뿐아니라(문자그대로는아니겠지만)나아가즐거운일이되게하는것은김개미시인이만들어내는작은기적이라할수있을것이다.

당신이들판에살면어떨까생각하곤해.독초와뱀과바위가많았으면해.입에담을수없는끔찍한사건이있었던곳도좋아.그런곳일수록진귀한풀과나무와꽃이가득하니까.
_「들판의트레일러」에서

김개미시의특징은어떤명랑함을잃지않는다는것이다.“무서운곳에서도나는낙천적일거예요”(「버드나무그림자가떨리는손으로미친듯이연주를시작하기전에」)라는문장은그의시를가장잘보여주는말이라할수있겠다.“우리는자기목숨을가지고도농담을했다/죽고싶지않지만/죽음에대한농담은통쾌하니까”(「수국이창문을들이받으므로」)라는그의말처럼,우리삶의고통을대하는그의시어들은우리에게어떤통쾌함을선사한다.그의시를통하면우리는비극속에서도나지막이미소를짓게된다.물론그미소는오롯한즐거움에서나오는미소만은아닐것이다.화자에게다정하지않았던,화자를사랑했는지도분명치않은아버지에대해“어쩌다며칠아버지가집을비우면집이춥게느껴졌는데,그게사랑이라면사랑이겠죠”라고말하는「아버지제사」의표현을빌려‘그게웃음이라면웃음이겠죠’라고말해보면어떨까?극도의고통을겪고있는이가어느순간느닷없이웃음을터뜨리곤하는것은,그가스스로를순간적으로나마멀리서바라볼수있게되었기때문일것이다.

‘자기목숨을가지고하는농담’처럼,김개미가‘자기고통을가지고하는농담’이유머로서성립할수있는조건은바로그거리감이다.잠시나마비극이나고통으로부터한발짝떨어져나왔을때,오로지캄캄한벽처럼느껴졌던그것들은다양한색채와모양으로탈바꿈한다.그리고그것은시인김개미가지닌낙천성의근원이며,동시에결과이기도할것이다.자신을잡아가둔몬스터에게“저렇게약한게무슨몬스터야.(…)//저렇게피곤한게/무슨몬스터야”라고,“내두려움의도움없이넌아무것도할수없어.몬스터도될수없어”(「몬스터B」)라고말할수있도록하는것도,그렇게발화함으로써발생/강화되는것도바로시인의낙천성인것이다.

이시집의마지막을닫는시는「찔레꽃」인데,“세상어딘가에머리통만한장미꽃이있다고해도/죽기전에는이꽃이생각날거야”가전문인이짧은시는김개미시인의인식을잘보여준다.찔레꽃은가시덤불을이루는꽃이다.찔레꽃을본다는것은온몸에가시를찔러넣는찔레꽃처럼거추장스럽거나고통스러운경험을감수한다는뜻이며김개미시인은마지막순간에는결국그러한것들이떠오를것이라고이야기하고있다.그것이그가「들판의트레일러」에서말한‘들판’에서의삶이며,어쩌면진정한삶이라고말하는것처럼.

혼자라서길을잃었을까요
길을잃어서혼자라는걸알았을까요

나무그림자에기겁을하고
나무그림자에숨어요
_「숲속엔저녁이없어요」에서

또한가지주목하게되는것은,이시집의제목에도들어가있는‘신’이라는단어일것이다.제목에서처럼『작은신』에는‘신’이라는존재가꽤나자주등장한다.신은때로눈을보고즐거워하는아이이기도하고(「눈오는날」),동물이기도하고(「그집에동물이남았습니다」),외계인이기도하고(「울면서콜라를먹으면서」),빨간불자동차를타고오는어떤존재이기도하고(「災의아리아」),머리에떨어진부스러기이기도하고(「버드나무그림자가떨리는손으로미친듯이연주를시작하기전에」),시를쓰며만나는설인이기도하며(「雪人」),존재하지않는존재이기도하다(「스물다섯살이지만어린이병원에입원했어요」).이시들에서말하는신은무엇일까?그것을한단어로정의할수는없을것이다.신은다양한모습이될수있는것처럼,다양한의미도될수있을테니말이다.

그러나시들에등장하는신들이형상화된어떤믿음들이라고가정해본다면,그것을어느정도짐작해볼수있을것이다.신은반드시신일필요도없다.시인또한“누군지도모르는신에게기도하는것보다,아는귀신에게부탁하는게좋을것같았다”(「화정동」)거나,“외로운자의갈망이싶고크고높으면/신이든사탄이든무엇이든만나게된다”(「雪人」)라고말하고있지않은가.어쩌면시들속의신은“나무그림자에기겁을하고/나무그림자에숨”는「숲속엔저녁이없어요」의그림자와같은존재일것이다.그는우리를두렵게도하고,우리에게숨을곳이되기도한다.그것은또한우리를고통스럽게하기도하고,우리에게고통을버틸수있도록해주는무언가이기도할것이다.그렇다면신은우리가두려워하고,의지하고,믿고,믿지않는모든것이될수있지않을까?

덧붙여보자면시인김개미의‘작은신’은많은경우아마시가아닐까싶다.“시를쓰다잤다/시를쓰다깼다”(「雪人」)는그의말처럼,그에게고통을주며동시에세계와고통을이해하고받아들이도록해주는존재로서의신말이다.그러나그게단지시인에게만일까?시는,적어도김개미의시는우리에게도바로그러한존재가되어줄것이다.

◎김개미시인과의미니인터뷰

Q1.안녕하세요.『작은신』은『자면서도다듣는애인아』에이어문학동네에서내는작가님의두번째시집이죠.이번시집을내는소회,또는선생님의근황이(괜히)궁금합니다.

시집이봄에나오는걸알고있어그런지봄이되니당황스러워요.제가열명이있는것같아요.혈관에혈액대신탄산수가흐르는느낌이랄까요.긴장되고불안하고설레고공허하고기대되고……긁을수없는어딘가가가렵고간지럽고따끔거리고그래요.그런나를피해서성거리다그런나를마주치며지내요.세상에는시집한권나오는일이너무도사소한일이지만,시를쓰는저한테는엄청난일이에요.이기간이빨리지나가길바라다영원히계속되길바라다해요.도대체뭐가나지?마음을정돈하고다음시집을준비해야해,라고생각하지만집중을못하고있어요.

Q2.작가님은동시도활발히쓰고계신데요,동시와시(왠지쓰고나니이상한표현같네요)의결정적인차이는무엇일까요?

저는일인칭화자를많이사용해요.누군가에게이야기하는방식으로쓰는게편한데요.이‘누군가’가차이를결정짓는것같아요.우선동시는친한친구에게이야기하듯써요.이친구는저의말을잘들어주기때문에저는무엇도될수있어요.마음껏천진해져서끝없이상상하며될수있는모든것이돼요.반면시는저와똑같은쌍둥이에게털어놓듯써요.이자매는저의한계를저와똑같이갖고있어요.그래서논리나근거를기반으로한사실의진실이아니라감정의진솔함만가지고다가가면돼요.무기없음을무기로,무엇도될수없는나에대해말해요.

Q3.제목부터그렇지만이번시집에는‘신’이라는단어가많이등장합니다.여기서‘신’은무엇을뜻하는것일까요,라고질문드리려다가그것은독자들의몫으로남겨두도록하고……(웃음)다른질문들드리겠습니다.작가님은무엇을믿으시나요?

시집제목을정한순간부터걱정했어요.‘신’이무엇이냐는질문을듣게되리라는.지금이질문을받고보니전략을수정해야겠다는생각이들어요.말하지않음으로답변해야겠다는.창작하는모든분들이그렇듯시를쓰며살때가장힘든건시를쓰지못할때예요.책을여러권내기도했지만,돌이켜보면그걸다어떻게썼나모르겠어요.시를쓰는그순간말고다른때는방법을모르겠어요.불안해서살수가없어요.그런이유로저의시를위한종교는‘잠재력’이에요.언젠가쓸수있다는믿음.한편도쓰지못하고여러달을보낼때그걸믿지않으면어떻게될지모르겠어요.믿어야한다는세뇌에서시작했지만지금은정말로믿는것같아요.아웃사이더인제가가진게있다면낙천성이전부인데,그게믿음의원천인것같아요.살아있으니까요.살아있으면변하고변하면결국쓰게되지않을까요?영원한게하나도없어서다행이에요.모든창작물은유한의결과니까요.

Q4.이시집에서특히아끼거나,첨언을하시고싶은시가있다면말씀해주세요.

「파랑의감각」이각별해요.그림구경하는걸좋아하는데요,간혹전시회에가면어떤그림앞에서는울기도해요.집에돌아와생각하고생각하며아름다움의여운을붙잡고있어요.어쩌다파랑의매혹에빠지게되었는데,화가들의파랑을유심히보았어요.사람들이입은옷이나가구,간판,건물,바위,하늘등눈에보이는모든것에서파랑을찾아즐겁게바라보던시기가있었어요.그때의행복을기록해두면좋겠다는생각으로「파랑의감각」을썼는데,쓰고보니꽤마음에들었어요.내가이렇게밝고긍정적으로도쓸수있는사람이라는생각에안도감을가졌어요.참,지금은초록에빠져있어요.이걸좋아하면결국저것도좋아하게되나봐요.

5.끝으로이시집을읽을독자들께인사말씀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알록달록한계절에『작은신』으로인사드리게되어반갑습니다.저는시집을계절에한번정도구입하는데요,침대옆이나식탁근처에쌓아두고한권씩읽고,읽고난시집은책꽂이에꽂아요.밥먹을때도읽지만주로자기전이나아침일찍일어나침대에누워서읽는걸좋아해요.미지의시인이자신의이야기로내이야기를하는것같은시를발견할때가즐거워요.『작은신』도그런구석이있었으면좋겠어요.치킨과키친을섞어쓰며바쁘게이계절을보내더라도종종탄성이나오는순간이있었으면좋겠어요.시간내서읽어주세요,라고말씀드리진못하겠고요.시간나면읽어주세요.저의『작은신』!

■시인의말

매일아침
절벽아래떨어진
참혹한인간을발견한다
아무것도기억하지못하는
아무것도아닌인간
제로의인간
내얼굴을한물거품의인간
기다림은그의전문이아니지만
그가할일은그것뿐이다

2023년3월
김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