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마음의갈라진틈새에서비밀이피어난다.
내밀한한편누구든공감할법한어린이의비밀.
이비밀에동참하고공감하는어린이모두자유로워질것이다.”
_김유진(아동문학평론가,동시인)
유머와농담을잃지않으며
매일매일새롭게탄생하는아이의마음으로
아침에눈을뜨면
나는수프같이부드럽고따뜻할뿐
오분정도기다리면
여기서팔이하나
저기서다리가하나생긴다
손가락이돋고
발톱이나오고나면
마지막에정신이돌아오는데
그때까지기다리지않으면
그날은종일좀비다
그러니까엄마아빠는
내가나를조립할때까지
기다려줘야한다
_「나의조립」
“깃털만큼가볍게도쓸줄알고납덩이만큼무겁게도쓸줄아는”(이안)김개미시인의새동시집『선생님도졸지모른다』가출간되었다.『어이없는놈』으로제1회문학동네동시문학상대상,『쉬는시간에똥싸기싫어』로권태응문학상을받으며독보적인문체로오늘날가장사랑받는동시인으로자리매김한그가오랜만에어린이일상에초점을맞춘‘생활밀착동시집’을선보인다.동시집을펼치면부드럽고따뜻한수프이불을덮고누워있는아이가우리를맞는다.만들어진기성품이아니기에매일매일새로운팔과다리를조립하고정신까지돌아와야침대에서벗어날수있으니기다리라고선언하는아이의맑고당찬목소리를따라40편의동시를만나보자.
어제나랑싸운애가
웃긴얘기한다
애들이웃는다
선생님이웃는다
난안된다
웃으면안된다
아직도애들이웃는다
아직도선생님이웃는다
나도웃을까?
웃어도될까?
_「세상에서제일긴3초」부분
어제와오늘이고만고만해보이는어린이의일상도자세히들여다보면그속에비밀하나가반짝이며탄생하는순간,그비밀을지키기위해안간힘을쓰는순간,참다참다시원하게속을터뜨려버리는순간이있다.시인은마치투명인간이된듯살금살금어린이가까이다가간다.딱히회장될생각은없지만선거에서딱3표는받고싶은마음(「왜나를추천하냐」),어제싸운애가웃긴얘기하니까3초만에무장해제되고마는얼굴(「세상에서제일긴3초」),지하철옆자리에서드라마보는아저씨가우리아빠랑똑같은장면에서울까봐조마조마한마음(「안된다안된다」)이생생하게중계된다.김유진평론가의해설처럼“‘보편의어린이’는무너지고오직한명의목소리가생겨”나는지점이다.여기서“으레그러려니정도로알고있던어린이의마음과생각”을보다또렷이만나게된다.
눈동자를뒤룩뒤룩굴리며하는생각
우리선생님은언제부터선생님이었을까?
어쩌면선생님도
수업시간에졸지모른다
졸지만우리가모르는건지모른다
우리선생님은
십년도넘게선생님했으니까
졸면서도눈안감을지모른다
졸면서도말하고
졸면서도걸어다니고
졸면서도우리한테졸지말라그럴지모른다
우리선생님은진짜
못하는게없으니까
졸면서도우리를잘가르칠지모른다
_「선생님도졸지모른다」
표제작「선생님도졸지모른다」와같이동시집의화자는어린이가하루중가장많은시간을보내는학교에서,특히가장많은시간을함께하는선생님생각에곧잘빠진다.우리선생님은언제부터선생님이었을까?선생님은못하는게없으니까졸면서도우리를잘가르칠지모른다(「선생님도졸지모른다」).자물쇠달린다이어리에중요한메모가아닌고양이낙서를하고있다(「선생님그림그리신다」).다같이묵념할때선생님도묵념하는지궁금하지만고개를들어확인할수없으니답답하다(「묵념」).선생님과나사이,그아득히먼듯가까운듯한간격을자꾸의식하면서호기심부풀리는일을멈출수없다.무엇이든우리보다잘하는것처럼보이는어른의근방을기웃거리며염탐하다보면어느날엔기막힌접점을찾아낼지도모를일이니까.
아픈,아플것같은,아프고싶은기분
조금낯선나자신과아리송의시간
학교는사랑의감정이싹트기좋은곳이다.그애가내시야에들어온순간쉬는시간종소리가멜로드라마속배경음악처럼울려퍼지고(「엘리제를위하여」),모두들똑같다고하는은조와은호가나한테는너무다르다(「은조와은호」).이감정은사랑일까?할머니집뒷문을열면펼쳐지는참나무숲을그애와함께걷기위해아껴두고싶어지고,거울속나를보며고백을연습하다이런내모습에멋쩍어한다(「고모방」).사랑이라는말은없지만아이는분명사랑의감정에집중하고있다.김개미시인은발표하는작품마다사랑에대한감정을꼭넣는다.사랑이라는감정에대해모르면조급하게되고다그치게되기때문이다.
하지만이감정의모양이늘“오늘보다내일/내일보다모레더예쁠”것이라는기대만있는건아니다.가까워지고싶은아이가생기는한편멀리하고싶은아이가생기기도하고(「죄인가요?」),누군가를때리고싶은마음이산처럼커져부서진주먹을쥐기도한다(「벽을때렸습니다」).하루하루굴러가는일상속에서둥긂과뾰족함사이를부유하며,이아리송의시간은대개“아픈기분”혹은“아프고싶은기분”으로흘러간다.시인은아이의부정적인감정을뭉뚱그리지않고오히려그어두움의실체를찬찬히짚어나간다.그렇게아이는자기안의여러감정을낯설게마주하며어린자신으로부터조금씩자란다.
아침이랑뭐가다른지모르지만
뭔가가다르다
기분이그렇다
아픈기분이다
아플것같은기분이다
아프고싶은기분이다
_「아픈기분」부분
말랑말랑해진정체성으로만나는세계
그세계를감싸안는아이의너른품
“김개미의동시가보여주는어린이와어른은종종‘어느정도어린이이고어느정도어른’인정체성을지녔다.말랑말랑해진어린이의정체성은어린이를다양한타자와만나게하고,타자와만난어린이는새로운정체성을구성해나간다.”_김유진(아동문학평론가,동시인)
곰그림책을읽다곰이되기도하고,모래의후손세자르가되어낙타를타고사막을건너기도하는아이는말랑말랑한정체성을지녔다.이동시집에서가장뭉클해지는지점은어린이화자가먼미래의자녀를상상하며그아이를향한약속의목록을적어나가는대목이다.무엇으로든변신할수있는아이의마음속에“지치고힘든일이있을때도유머와농담을잃어버리지않고”함부로어린아이를“비웃거나무시하지않”고“내가잘못했을때는정중히사과할”어른될자신이있다(「이다음에아이를낳으면」).이처럼명랑하고거침없는목소리속에별처럼빛나는희망을심어두는김개미동시세계의진면모가여지없이드러난동시집『선생님도졸지모른다』를곁에두고,동시가품은유머와뭉클함을한껏느껴보기를권한다.
주머니에쏙넣고싶은,도토리같은일러스트
무엇을쓰든재미있게쓰는김개미시인의시와무엇을그리든유쾌하게그리는고마쭈작가의일러스트가만나서로의매력이형형색색의폭죽처럼빵터졌다.집사와고양이의일상을위트있게풀어낸고양이시리즈로온오프라인을막론하여큰사랑을받고있는고마쭈작가의첫단행본으로,그의능청스러운과장과유머가책장의넘김을한층더경쾌하게만들어준다.언제어디서나아이의일상을함께하고있는고양이의표정도놓치지말자.작가의말처럼“마음에드는그림몇개를주워담아주머니에넣어두었다가심심할때꺼내”보기에딱좋은,귀엽고사랑스러운일러스트가가득한동시집이다.
*인증유형:공급자적합성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