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적어도 이 이야기를 들을 만큼은 사랑이 남아 있나요?”
삶을 닮은 이야기, 사랑을 품은 시
삶을 닮은 이야기, 사랑을 품은 시
사람의 내면이 가진 다종다양한 무늬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시인 김상혁의 네번째 시집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가 문학동네시인선 192번으로 출간되었다.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제목이 김상혁의 시가 내포하는 아이러니를 미리부터 암시한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면서도 홀로 자유로울 자신을 생각하거나, 친지의 죽음을 앞두고 그의 실책이 먼저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 이때 제목은 세파에 닳을 대로 닳아 놀랍고 새로울 일이 없다는 건조한 심상을 뜻한다. 하지만 회의와 무감함에 시달리는 이가 정작 꺼내는 말이 상대방의 안녕을 바라는 염려라는 데서 시는 한층 아이러니의 농도를 높인다. 사람의 심오하고 두터운 이면을 어루만지는 그의 아이러니는 다면적인 존재로서의 사람을 고스란히 긍정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삶이 초래하는 불안과 이별에도 결코 굽히지 않는 위로이자, 사람에 대한 사랑이 된다.
김상혁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
1. 작가님의 네번째 시집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를 펴내신 소감과 더불어 제목이 어떻게 정해지게 되었는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안도와 체념의 정서를 동시에 환기하고 싶었어요. 먼저 ‘앞으로 아주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고 안도하는 ‘우리’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와는 조금 다른 ‘우리’를 상상해볼 수도 있을 듯해요. 사는 동안 너무나 허다한 슬픔을 겪어온 ‘우리’이기에, 앞으로 그 어떤 큰일이 닥친다 해도 그걸 큰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어버린 ‘우리’요. 행운 앞에서든 불행 앞에서든 우울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며 제목을 골랐습니다.
2. 작가님의 시에는 이야기성이 돋보입니다. 시와 이야기의 결합이 언뜻 생경한 듯하면서도 시를 읽다보면 인물과 대화, 사건 사이의 매력적인 여백으로 인해 절로 납득이 되곤 했어요. 작가님에게 시와 이야기는 각각 어떤 것일지, 그것들의 결합이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여쭙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도피처로 삼을 것이냐, 아니면 별 가치 없어 보이는 순간을 어떤 이야기로 만들어낼 것이냐는 주체의 결심과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시가 지향하는 것은 후자입니다. 우리가 흘려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은 이야기로 인식되지도, 전달되지 못하고 버려지고 맙니다. 하지만 좋은 시는 죽은 시간, 버려진 마음, 사라진 사람을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시가 이야기가 되지 못한다면, 때로는 현실보다 먼저 탄생하는 저 이야기들이 없다면, 더 많은 인간적인 부분들이 그저 폐기되리라 생각해요.
3. 시집을 읽으며,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오래 남았습니다. 특히 1부의 「작은 집」 「동생 동물」 연작, 「불확실한 인간」 들이 그러했는데요. 삶이 초래하는 염려와 불안, 이별에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사랑을 확실하게 전하는 시인님의 시야말로 시가 현실에 유용하고 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믿음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특히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래서 시를 통해 작가님께서 구현하고자 하는, 또는 바라는 게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질문을 듣고 나니, 문득 시에 유용한 현실이 더 많이 존재한다면 행복할 듯해요. 시를 쓸 수 있게 시인에게 기꺼이 시간과 공간을 내주는 현실, 시가 하는 엉뚱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주고 더 해보라고 권해주는 현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처럼 초라한 것에도 손을 내미는 현실이 존재한다면, 그런 선량한 현실은 괴롭고 가난하고 고립된 인간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겠죠? 시만큼 무력한 게 어딨겠어요? 시가 바꿀 수 있는 건 언제나 현실은 아니었고, 고작 인간 몇이었으며, 시를 읽고 잠시 자기를 돌아보던 그 몇 사람마저 곧 시를 잊은 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질문하신 바와 같이, 시는 언제나 현실 안에, 그러나 현실만은 아닌 어떤 것으로 놓여 있습니다. 현실 안으로 뛰어들 만한 역량이 시에겐 없어요. 그렇지만 시는 독자가 얼마나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든지 그걸 전적으로 수용하고 긍정하는 데엔 무한한 역량을 발휘하리라 생각합니다.
4. 시집이 나온 지금, 작가님께 특별히 마음에 남는 시가 무엇일지요.
「작은 집」이 자꾸 생각납니다. 남들은 좋아하지 않는데 시인이 자기만 좋아하는, 그런 전형적인 시가 아닐까 싶어요. 어떤 공간이 인간의 정신과 정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실감하던 시기에 「작은 집」을 썼습니다. ‘작은 집’과 같은 공간, 모든 것을 다 포기한 후에도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은 공간이 인간에게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저 ‘작은 집’이 진짜 ‘집’은 아니다, 마음 속 공간처럼 무언가의 비유다, 하고 말하는 편이 더 시적일 것 같기는 한데요, 이 시에 대해서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시가 말하는 ‘작은 집’이란 실제로 우리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아이를 만지는, 그런 현실 속 건축물을 말합니다. 그런 물리적인 공간이 때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결정적인 토대입니다. 어떤 공간에 대한 욕심은 종종 다른 그 무엇보다 근본적이고 인간적인 욕망이 되기도 합니다.
5. 독자분들께 인사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선, 어렵게 읽히는 시집이 아니라면 좋겠습니다. 모든 분들이 너무 좁지 않게 쉴 만한 집을 가졌으면 좋겠고, 책을 읽을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상혁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
1. 작가님의 네번째 시집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를 펴내신 소감과 더불어 제목이 어떻게 정해지게 되었는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안도와 체념의 정서를 동시에 환기하고 싶었어요. 먼저 ‘앞으로 아주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고 안도하는 ‘우리’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와는 조금 다른 ‘우리’를 상상해볼 수도 있을 듯해요. 사는 동안 너무나 허다한 슬픔을 겪어온 ‘우리’이기에, 앞으로 그 어떤 큰일이 닥친다 해도 그걸 큰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어버린 ‘우리’요. 행운 앞에서든 불행 앞에서든 우울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며 제목을 골랐습니다.
2. 작가님의 시에는 이야기성이 돋보입니다. 시와 이야기의 결합이 언뜻 생경한 듯하면서도 시를 읽다보면 인물과 대화, 사건 사이의 매력적인 여백으로 인해 절로 납득이 되곤 했어요. 작가님에게 시와 이야기는 각각 어떤 것일지, 그것들의 결합이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여쭙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도피처로 삼을 것이냐, 아니면 별 가치 없어 보이는 순간을 어떤 이야기로 만들어낼 것이냐는 주체의 결심과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시가 지향하는 것은 후자입니다. 우리가 흘려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은 이야기로 인식되지도, 전달되지 못하고 버려지고 맙니다. 하지만 좋은 시는 죽은 시간, 버려진 마음, 사라진 사람을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시가 이야기가 되지 못한다면, 때로는 현실보다 먼저 탄생하는 저 이야기들이 없다면, 더 많은 인간적인 부분들이 그저 폐기되리라 생각해요.
3. 시집을 읽으며,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오래 남았습니다. 특히 1부의 「작은 집」 「동생 동물」 연작, 「불확실한 인간」 들이 그러했는데요. 삶이 초래하는 염려와 불안, 이별에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사랑을 확실하게 전하는 시인님의 시야말로 시가 현실에 유용하고 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믿음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특히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래서 시를 통해 작가님께서 구현하고자 하는, 또는 바라는 게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질문을 듣고 나니, 문득 시에 유용한 현실이 더 많이 존재한다면 행복할 듯해요. 시를 쓸 수 있게 시인에게 기꺼이 시간과 공간을 내주는 현실, 시가 하는 엉뚱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주고 더 해보라고 권해주는 현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처럼 초라한 것에도 손을 내미는 현실이 존재한다면, 그런 선량한 현실은 괴롭고 가난하고 고립된 인간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겠죠? 시만큼 무력한 게 어딨겠어요? 시가 바꿀 수 있는 건 언제나 현실은 아니었고, 고작 인간 몇이었으며, 시를 읽고 잠시 자기를 돌아보던 그 몇 사람마저 곧 시를 잊은 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질문하신 바와 같이, 시는 언제나 현실 안에, 그러나 현실만은 아닌 어떤 것으로 놓여 있습니다. 현실 안으로 뛰어들 만한 역량이 시에겐 없어요. 그렇지만 시는 독자가 얼마나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든지 그걸 전적으로 수용하고 긍정하는 데엔 무한한 역량을 발휘하리라 생각합니다.
4. 시집이 나온 지금, 작가님께 특별히 마음에 남는 시가 무엇일지요.
「작은 집」이 자꾸 생각납니다. 남들은 좋아하지 않는데 시인이 자기만 좋아하는, 그런 전형적인 시가 아닐까 싶어요. 어떤 공간이 인간의 정신과 정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실감하던 시기에 「작은 집」을 썼습니다. ‘작은 집’과 같은 공간, 모든 것을 다 포기한 후에도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은 공간이 인간에게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저 ‘작은 집’이 진짜 ‘집’은 아니다, 마음 속 공간처럼 무언가의 비유다, 하고 말하는 편이 더 시적일 것 같기는 한데요, 이 시에 대해서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시가 말하는 ‘작은 집’이란 실제로 우리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아이를 만지는, 그런 현실 속 건축물을 말합니다. 그런 물리적인 공간이 때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결정적인 토대입니다. 어떤 공간에 대한 욕심은 종종 다른 그 무엇보다 근본적이고 인간적인 욕망이 되기도 합니다.
5. 독자분들께 인사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선, 어렵게 읽히는 시집이 아니라면 좋겠습니다. 모든 분들이 너무 좁지 않게 쉴 만한 집을 가졌으면 좋겠고, 책을 읽을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 문학동네 시인선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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