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계절

각각의 계절

$15.00
Description
한끗이 만들어내는 차이,
한국문학의 대표 작가 권여선 신작 소설집

2021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기억의 왈츠」,
2020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실버들 천만사」,
2019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하늘 높이 아름답게」 수록
유려하고도 엄정한 문장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며 한국문학이 신뢰하는 이름이 된 작가 권여선이 삼 년 만에 신작 소설집 『각각의 계절』을 펴낸다. 술과 인생이 결합할 때 터져나오는 애틋한 삶의 목소리를 담아낸 『안녕 주정뱅이』(창비, 2016), 에두르지 않는 정공법으로 현실을 촘촘하게 새긴 『아직 멀었다는 말』(문학동네, 2020) 이후 일곱번째 소설집으로, 책으로 묶이기 전부터 호평받은 일곱 편의 작품이 봄날의 종합 선물 세트처럼 한데 모였다. 1996년에 등단해 사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글쓰기에 매진하며 많은 사람의 인생작으로 남은 작품들을 선보여온 권여선은 이번 소설집에서 기억, 감정, 관계의 중핵으로 파고들며 한 시절을, 한 인물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그 직시의 과정을 거쳐 드러나는 삶의 모습은 결코 화사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과정이 우리로 하여금 풍성하고 생동적인 삶을 욕망하는 곳으로 향하게 하리라는 것이다.

저자

권여선

1965년경북안동출생.서울대국어국문학과와같은학교대학원을졸업하고인하대대학원에서국문학과박사과정을수료했다.1996년장편소설『푸르른틈새』로제2회상상문학상을수상하며등단했다.솔직하고거침없는목소리로자신의상처와일상의균열을해부하는개성있는작품세계로주목받고있다.2007년오영수문학상을수상했다.2008년도제32회이상문학상수상작인'사랑을믿다'는남녀의사랑에대...

목차

사슴벌레식문답…007
실버들천만사…043
하늘높이아름답게…085
무구…115
깜빡이…147
어머니는잠못이루고…169
기억의왈츠…201

해설│권희철(문학평론가)
영원회귀의노래…243

출판사 서평

“나는원래생겨먹은데서얼마나많이바뀌었을까.”

무엇을기억하는가,어떻게기억하는가,왜기억하는가
우리가왜지금의우리가되었는지에대한
권여선의깊고집요한물음

소설집의처음과끝에는‘기억’을주된키워드로하는「사슴벌레식문답」과「기억의왈츠」가한쌍처럼나란히놓여있어『각각의계절』을둥그렇게감싸안는다.오랫동안외면해온진실을마주했을때의아연함과서글픔을그려낸「사슴벌레식문답」은권여선의오랜주제인기억의문제를한발짝더밀고나간빛나는수작이다.“지방에서서울로올라온대학신입생들은낯선공간에던져진새끼오리들처럼초창기에대학가에서함께지낸친구들을오래도록잊지못”(11쪽)하듯‘준희’와‘부영’,‘경애’,그리고‘정원’역시그랬다.대학교에입학해같은하숙집에서살게된이들넷은함께술을마시고일상을공유하며친밀하게지낸다.모임의리더격인시원시원한부영과규칙적이고예의바른경애,상냥하고조심성이많은정원,그리고술을좋아하고즉흥적인소설의화자준희는해가바뀌고거주환경이달라진후에도한달에한번씩은꼭만나려하고서로의생일을결사적으로챙긴다.네사람이아름답게그려나가던궤적은그러나정원의갑작스러운자살과경애의배반으로엉클어지고만다.대체무엇이우리를이렇게만들었는지알수없고다만과거와같은방식으로는결코돌아갈수없을뿐이라는사실만이선명한지금,준희는지난세월을엄격하고절박하게돌이켜보기시작한다.그리고그기억의중추에자리잡고있는것이바로‘사슴벌레식문답’이다.오래전네사람이함께떠난여행에서정원은숙소에사슴벌레한마리가있는것을발견하고주인에게물은적이있다.방충망도있는데사슴벌레가어디로들어오느냐고.주인은잠시망설이더니이윽고이렇게답한다.

어디로든들어와.
그리고가버렸다.사슴벌레를대변하는듯한그말에나는실로감탄했다.너어디로들어와,물으면어디로든들어와,대답하는사슴벌레의의젓한말투가들리는듯했다.(21쪽)

어디로들어왔느냐는물음에어디로든들어왔다고대답하기.준희와정원은상대의질문을그대로받아서따라하는이대화의방식을‘사슴벌레식문답’이라고이름붙이며‘마법의버튼’이라도생긴듯여긴다.그렇게생각할수있었던것은준희는소설을쓰고싶어하고정원은연극을하길바라는,다시말해두사람모두미래가불투명하고불완전한처지에놓여있었기때문일것이다.어떤소설을쓰고싶은지,어떤연극을하고싶은지세세하게설명할필요없이,‘어떤소설이든쓰고싶고어떤연극이든하고싶다’고말하면되는이사슴벌레식문답을통해두사람은어떤자유를느꼈을것이다.하지만그산뜻하고명료한사슴벌레식문답은과거를되돌아보는준희의시선속에서점차다른의미를지닌것으로바뀌어간다.그대답에는당시에는읽어내지못한‘무서운뉘앙스’가숨어있었던것이다.

어디로들어와,물으면어디로든들어와,대답하는사슴벌레의말속에는,들어오면들어오는거지,어디로든들어왔다,어쩔래?하는식의무서운강요와칼같은차단이숨어있었다.어떤필연이든,아무리가슴아픈필연이라할지라도가차없이직면하고수용하게만드는잔인한간명이‘든’이라는한글자속에쐐기처럼박혀있었다.(29쪽)

하지만권여선은여기서멈추지않고사슴벌레식문답에담겨있을또다른의미를헤아리는데까지나아간다.비록그과정을통해스스로가다치는결말에이르게된다하더라도.“직시하지않는자는과녁을놓치는벌을받는다”(40쪽)는소설속말을빌린다면,직시함으로써스스로가과녁이되는자리로옮겨가는것이라할수있지않을까.
“잿빛수의의기억을은빛베일의기억으로변환하는기적같은순간을찾아냄으로써잊힌시간과의감동적인소설적조우에성공했다”는평과함께2021년김유정문학상수상작으로선정된「기억의왈츠」에도과거를또렷이직시하는인물이등장한다.‘나’는동생부부와교외에있는숲속식당에찾아갔다가오래전,그러니까삼십여년전의기억과마주한다.대학생이던그시기“내손에쥔확실한패는오늘밖에없고그하루를땔감삼아시간을활활태워버리면그만이라고생각”(211쪽)하며살아가던‘나’앞에‘경서’라는또래의남자가등장한다.우연히도서관통로를걸어가다가술자리에서몇번마주친적있는‘구선배’가‘나’를불렀고,그옆에앉아있던경서와처음으로대화를나누게되면서인연이시작된것이다.그날을계기로경서는‘나’에게살갑게대하고,그러던어느가을날‘나’는경서,구선배등과함께짧은소풍으로교외에있는식당에가게된다.그식당이바로현재의‘나’가동생부부와함께다녀온그숲속식당이었던것이다.그간‘나’는자신이경서에대해각별한감정을품고있지않았다고,그건“연애라고할수있을까싶을만큼애매한연애”(209쪽)였다고,소풍을다녀온뒤서로멀어지게된데에는경서의책임이크다고여겨왔지만숲속식당에다녀온지금,삼십여년전의기억은오류와회피의더께를걷어내고‘나’의앞에새롭게떠오른다.
기억을떠올리는과정에는필연적으로왜곡과미화가끼어들수밖에없다.하지만권여선의인물들은마치불순물을제거하듯자기합리화의욕망을누르고자신이저질렀을지도모를실수와과오를천천히,깊고집요하게짚어낸다.그리고그런과정을거친끝에바라보게된기억은뜻밖에인물들에게선물처럼다른무언가를쥐여준다.「기억의왈츠」에서“걸리는족족희망을절망으로,삶을죽음으로바꾸며살아가던”(241쪽),결코되새기고싶지않던이십대를돌아본후‘나’가그시절경서에게건네받은위안의손짓도함께떠올리게된것처럼.그럼으로써“아직희망을버리기엔이르다”(같은쪽)고말할수있게된것처럼.그리고그건‘기억을하면서두번(다르게)살고,기억을쓰면서세번(다르게)사는’(권여선,특별소책자‘어텐션북’에서)일일것이다.

기억의속수무책,감정의속수무책,관계의속수무책
우리를단번에무장해제시키는권여선의계절소설

소설집의제목인‘각각의계절’은「하늘높이아름답게」의“각각의계절을나려면각각의힘이들지요”(114쪽)라는문장에서비롯되었다.「하늘높이아름답게」는일흔두살에병으로죽은‘마리아’를회상하는성당신도들의모습을차례로보여주며마리아가어떤인물이었는지를재구성한다.신도들은각자가기억하는마리아의모습을앞다투어이야기하며마리아의죽음을안타깝게여기지만,그시선에는마리아를자신들보다아래에놓는은근한배타성이담겨있다.‘베르타’또한“참고귀하지를않구나,이사람들은”(91쪽)하고생각하며그들의위선을예민하게느낀다.그렇다면의문은“자신이왜이들과계속만남을이어가고있는가하는것”(91쪽).그에대한답변이소설마지막에인상적으로그려져있다.베르타는마리아가죽기전그녀와함께동행했다가어떤여자의양산에눈가가찔리고주저앉는데,황급히자신에게다가와눈가를살피려는마리아에게서구취를맡고그녀를밀친적이있었던것이다.그장면을떠올린베르타는자신이왜“그들과계속만남을이어왔는지가분명히이해되”(114쪽)면서이렇게생각한다.“전혀고귀하지를않구나우리는……”(같은쪽)하지만‘고귀함’은거기서부터시작되는것인지도모른다.다른사람들을평가하는그가차없고엄격한눈으로자기자신을깊숙이들여다보는것에서부터말이다.그리고그과정을통해마리아는성당신도들이퍼즐을맞추듯조각조각이어붙여완성된것과는다른모습으로드러날것이다.
새로운계절에는그계절에맞는새로운힘이필요하다는의미로도읽히는소설집의제목은계절뿐만아니라인물들에게도적용되는것같다.특히다른어떤관계보다질기고단단하게엮여있는모녀를‘각각의계절’의관점에서바라보면어떨까.「실버들천만사」의‘반희’는코로나19로일하던체육관이휴관에들어간어느날딸‘채운’에게서전화를받는다.가까운곳으로함께1박2일여행을다녀오자고.이혼을한후채운과따로살고있는반희는그제안에다소놀란다.반희는“채운이자신을닮는게싫”어서,“둘사이에눈에보이지않는닮음의실이이어져있다면그게몇천몇만가닥이든끊어내고싶”(50쪽)어서,채운과자신을끈끈한모녀관계로묶기보다고유한개인으로지켜주고싶어서딸과어느정도거리를두고지내왔기때문이다.망설이는반희에게채운은“갑자기말이빨라”지면서“강원도깊은산골에자기가아는펜션이있다고,차몰고갔다차몰고오면된다고,거기서는밥도해먹을수있어서밖에나갈일이없다고,거기꼭꼭숨어서아무도안만나고그근처만산책하고그렇게딱하루만지내다오면괜찮지않겠느냐며”(49~50쪽),마치반희가거절하리라는걸예상하기라도한듯말을쏟아낸다.그렇게두사람은처음으로함께여행을떠나게되고,서로를엄마나딸이아니라‘반희씨’와‘채운씨’라고부르기로한다.가정내역할이아닌한개인으로서로를지켜주려는이행동은여행의산뜻한시작을알리는듯보인다.그러나두사람은여행을통해그것이어쩌면서로에게상처를주는행동일수있다는것을한순간깨닫게된다.반희에게있어채운은자꾸살피고점검해야하는딸이기만한것이아니고,채운에게있어반희또한어린시절자신을두고떠난엄마이기만한것이아닌것이다.

반희는담배를끄고두손을맞잡았다.바람이휙지나가면서진한흙내와풀향이스쳤다.사랑해서얻는게악몽이라면,차라리악몽을꾸자고반희는생각했다.내딸이꾸는악몽을같이꾸자.우리모녀사이에수천수만가닥의실이이어져있다면그걸밧줄로꼬아서로를더단단히붙들어매자.함께말라비틀어지고질겨지고섬뜩해지자.뇌를젤리화하고마음에전족을하고기형의꿈을꾸자.한번도해본적없는생각들이밑도끝도없이샘솟았고반희는믿기지않는일이일어나기라도한듯가슴이뛰었다.(79쪽)

서로를이어주는수천수만가닥의실을끊는것이아니라밧줄로꼬아더단단하게연결하기.뜻밖이면서자연스러운이전환은계절의변화를닮아있는듯하다.계절이달라지면필요한힘도달라지듯이두사람은이제그전과는다른시선으로서로를바라보게될것이다.그리고그렇게했을때비로소자신들앞에과거와는다른새로운계절이펼쳐지는모습을볼수있게될것이다.우리가시간의연결된흐름을봄,여름,가을,겨울이라고구분함으로써현재의계절을마무리하고다음계절로넘어가는힘을얻을수있는것처럼권여선이우리에게건네는건지금필요한새로운계절,그러니깐‘각각의계절’인듯하다.

추천사

평범한언어로는도무지포착할수없는일상의미묘하고도미세한영역들을더듬고묘사하면서거기에서시간의흐름을뒤집어놓기에이를만큼격렬한정동이범람하게만드는권여선의내러티브는,소설속한요소로노래를활용하고있다기보다‘이야기로된노래’가되어가는것만같다.이야기로만들어진‘노래’인동시에‘이야기’가된노래가.우리가이‘이야기-노래’를따라부를수있을까?그러면서우리의무엇인가를다시쓸수있을까?그답은‘의젓한사슴벌레식문답’에이미제시되어있는것같다._권희철(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