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나라

당신들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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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유

2010년세계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2015년『소각의여왕』으로제21회문학동네소설상을수상했다.소설집『커트』가있다.

목차

파란…7
아나스…33
이쌈…54
야신…76
지연…90
나나…104
이모나…132
나임…151
바크…175

작가의말…197

출판사 서평

자신의이름이불리기만을기다리는이들이머무는곳,
그들과함께있어줌으로써,목소리를들어줌으로써
여기사람이있음을증언하는
특별하고아름다운방문의시간

일종의옴니버스형식으로진행되는이소설은주요인물의이름을딴아홉개의장으로구성되어있다.‘나’와같은방문자들이외국인보호소를찾는목적은무엇보다도그이름들을불러주기위함이다.보호외국인들을만나러오는사람이있다는사실을통해보호소로하여금최소한의인격적인대우를촉구하게하려는의도인것이다.‘나’가처음만나는인물은‘파란’이다.파란은셀수없이많은날을갇혀지낸장기수용자로,고향땅인나이지리아에서종교분쟁으로부모를여의고한국으로도피해온인물이다.그는누가시키지않았음에도하루에스무번도넘게보호소화장실을청소하면서주위사람들을곤란하게하는데,알고보니그행동은그자신이인간으로서“쓸모를,쓸모에대한권리”(32쪽)를느끼기위함이다.그가처음으로배운한국어가“살려주세요”(51쪽)였다는점은한국에서이방인으로서지내온삶이얼마나녹록지않았을지를생각하지않을수없게한다.

‘아나스’역시파란처럼나이지리아에서온인물이다.한국에입국한첫날체포된그는한국어를잘구사하지못한다.그와영어로대화해야한다는사실에‘나’는불현듯중학생시절암기를못하면따귀를맞았던영어수업의트라우마를떠올린다.아나스가한국어교실을다닌다는소식을듣고‘나’는그를만난자리에서한국어로대화를시도하지만아나스는불편한기색을내비친다.모국어가다른두사람이조금씩서로에대한경계를풀어나가면서“생각을나누고감정을나눌수있”(49쪽)게되기까지노력하는모습은읽는이에게심심한감동을전한다.

이처럼『당신들의나라』는인간으로서의존엄성,소통같은본질적인문제를각각인상깊은인물의에피소드로보여준다.그럼으로써낯설기만했던외국인보호소안쪽으로한걸음가까이다가간듯한실감을준다.한방에있는수용자들을괴롭히며대장으로군림하려는동료수용자를제압하기위해자신이살인자라고거짓말하는‘이쌈’목사,아내와어린딸아이를한국에두고혼자만추방당할위기에놓인‘야신’의에피소드또한강렬하다.

“여기서나는인간이아니야.”
이쌈은설명했다.
“난민이라고하면한없이넓은바다에작은쪽배를타고가는사람들,의지할데하나없는사람들,그런걸떠올리잖아.한방에있는사람들한테도인간취급을받지못해.돌아갈곳이없으니까.”
야신은여전히모르겠다는얼굴이었다.
“여기와서알았어.나는아무것도아니다.그러니까살인자가되지못할것도없지.내가너와다른게뭔지알아?여기서나는인간이하라는걸안다는거야.”_85~86쪽

신과운명을믿으며새벽기도를게을리하지않는이쌈,가족과생이별을앞두고있는야신이나누는대화는상징적이며또그자체로울림이크다.살아갈집을갖고이동권을당연하게누리는삶이누군가에게는주어지지않는현실을저릿하게곱씹게된다.

지금우리가살고있는나라는어떤나라일까,
질문을불러일으키는문제적인이야기

한편,소설을읽어나가다보면외국인보호소에방문하는방문자들은어떤사람인가질문하게된다.그들중에는수녀도있고학생도있으며‘미스터바크’와같은인권센터의활동가도있다.“어떤방문자는논문을준비하느라,어떤방문자들은이주민에관련된일을하고있어서.또어떤방문자들은인권센터활동의일부”로“저마다의이유와필요에따라”(21쪽)방문에참여하고있는것이다.

반면‘나’는“이먼곳까지”“왜하루를다바쳐서굳이이곳에오는”(19쪽)건지스스로도답을내리지못한다.다른방문자들과달리‘나’에게는특별한목적도이유도없다.‘나’는어떤사연을지니고있는것일까?‘나’의남모를상처와아픔은보호외국인들과의만남을통해언뜻언뜻고백적으로드러난다.

‘나’는십오년동안일한은행에서영업사정이안좋아졌다는이유로희망퇴직을권유받았다.같은은행원인남편대신에‘나’가퇴직을하고그렇게전업주부가되었다.늦은나이에결혼을한부부는이제라도아이를가져보려고노력해보지만그마저도뜻대로되지않는다.소설에서‘나’가남편을‘당신’이라는호칭으로부르는것을통해암시되듯,두사람사이에는건너지를수없는소통의단절이존재하는것처럼보인다.‘나’는말못할과거의상처또한지니고있는데,그것은십대시절에엄마를여읜일이다.‘나’는“엄마가땅에묻히고났을때”“닫힌방에갇”혀“웃음소리로가득”한“바깥세상”(38쪽)에공포를느꼈다고회상한다.어쩌면‘나’는외국인보호소의보호인들이겪을정신적인고립상태를누구보다뼈저리게공감할수있는사람이아닐까.‘나’가멀고낯설기만한외국인보호소를끊임없이방문하는것은,그누구도아닌바로‘나’자신의내면으로향하는과정이아닐까.

‘나’의심리적고립,단절의상황과유사한궤를보여주는인물이‘지연’과‘나나’이다.지연은‘나’와같은은행에서일했던동료로,새로운꿈을위해진작에일을그만두고네덜란드로유학을떠나이민자로살아가고있는여성이다.하지만그곳에서“동양인여자가겪을거라고생각하는”(91~92쪽)모든차별을다겪는다.지연은비자문제로잠시귀국한한국에서우연히마주친흑인을향해인종주의적편견을드러내고는자신또한타국의혐오자들과다를바없다는부끄러운진실을깨닫는다.“아마도언니,나는떠나게될것같아요.그런데거기가어딘지는잘모르겠습니다”(102쪽)라고고백하는지연의독백은뼈아프게들린다.나아갈방향을상실한듯한지연의목소리는,고국에서든타국에서든누구나이방인이자약자가될수있다는슬픔을자아낸다.그슬픔속에는누구든함부로타인을구별짓고차별하지않아야한다는고요한성찰도배어있을것이다.

나나의상황은지연과는또다르게불안하고위태로워보인다.나나는한국인인지외국인인지국적이모호한인물로,아홉시간의비행을통해국경을넘어와어느바닷가의작은마을에잠시머문다.숙소의아래층투숙자여성의권유로식당에일하러간나나는그곳이불법영업장인줄모른채있다가하필그날이루어진단속으로경찰에게연행되어보호시설에갇히게된다.“온통화난얼굴들”(108쪽)뿐인,전혀말이통하지않는그곳에서나나는우여곡절끝에자신을도와줄통역사를만난다.하지만통역사가고국으로돌아갈비행기티켓을끊어주겠다고했을때,뜻밖에나나는돌아가지않겠다고선언한다.나나가돌아가기를거부하는고국은어떤나라일까.뒤이어밝혀지는진실을통해,독자는지금우리가살고있는나라가누구를위한나라인지,얼마나안전한나라인지를질문하지않을수없을것이다.

“네가난민신청을한다고해도절대받아들여지지않을거라는사실이지.”
“왜지?”
“왜냐니.난민으로인정받으려면네가위험한나라에서와야해.그런데네나라는박해가능성이전혀없는안전한곳이다.”
“안전?”
나나가놀라물었다.
매니저는나나의울긋불긋반점이올라온얼굴을보면서달래듯말했다.
“몰랐어?그걸왜몰랐어.어느나라보다안전한나라,그게당신들의나라다.”_130~131쪽

“잊지않고그길을걷고또걷다보면
언젠가는한사람과함께돌아오는날도있으리라.”

소설에직접적인에피소드로등장하지는않지만,이야기의저변에는실제외국인보호소에서벌어져온인권탄압의문제들이깔려있다.그간에한외국인보호소에서보호외국인의신체를결박해고문하는‘새우꺾기사건’이있었고,소설안에서텔레비전뉴스를통해그사건으로추정되는가혹행위소식이보도된다.‘나’의남편은‘나’에게보호소에서저런일이일이일어나고있다는걸알았는지묻는다.팬데믹의시국하에서정기적으로난임병원을다니게된‘나’는그곳에방문하지못한지오래였는데,벌써까마득하기만한그곳에서자신이보지못한것이무엇이었는지를다시생각해보게된다.

“정말그곳에서고문이나고문에가까운폭행이있었다고해도그들은그사실을나에게,우리에게말했을것같지않다.면회실의시시티브이때문이아니라,누군가자신의일거수일투족을지켜보고있다는것때문이아니라,인간으로대접받고이해받고존중받고싶은사람앞에서자신이인간답지못한대접을받고있다는말을하기는쉽지않으니까.”(174쪽)

‘나’의남편처럼텔레비전이나뉴스기사를통해그곳을알게된이들은그곳에갇힌보호외국인들을그저불법체류자이자추방을앞둔난민,수감자로인식하겠지만,‘나’에게그들은저마다자기목소리를지닌한명한명의,자신과다르지않은인간이었다.‘나’가보지못한것이아니라바로그것을보았기때문에,그외의사건에대해서는미처기억하지못했던것이다.

소설의말미에는인권단체의활동가‘미스터바크’가방문자들의사진을찍어주는장면이등장한다.보호소앞에서사진을찍는일은방문자들에게는하나의의식이다.보호소내면회실에서는사진을찍을수없기에,보호소밖에서라도사진을찍어방문을기억하고기념하기위해서이다.계절의변화에따라방문자들의옷차림은달라져있지만이들의얼굴은하나같이어떤희망을품고있다.그곳에찾아가기를멈추지않는다면,“잊지않고그길을걷고또걷다보면언젠가는한사람과함께돌아오는날도있으리라”(192쪽)는희망.그것이바로작가이유가이소설을통해진정말하는바가아닐까?

“만나는동안우리사이에는철창이없었다.그들은갇혀있는게아니라고,잠시숨을고르고있을뿐이라고,삶이언제든다시이어질거라는표정으로,온몸으로말하고있었다.”_‘작가의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