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 문학동네 시인선 195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 문학동네 시인선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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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아무 대가 없이 사랑해줄 수는 없어요?”

사랑을 위한 기초, 세계를 건축하는 행위로서의 시
인간의 세계로 내려온 천사들이 부르는 처절하고 다정한 노래

제11회 문지문학상 수상작 「비밀과 질문 비밀과 질문」 수록
2012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한 이후 첫 시집 『가능세계』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도움받는 기분』까지 펴내는 시집마다 한국 시의 가장 내밀한 고백이 되어온 백은선의 네번째 시집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이 출간되었다. 지금 여기의 시단에서 ‘백은선 마니아’들이 유독 존재감을 지니는 이유는 백은선의 시가 읽는 이의 마음을 깊게 찔러 고유한 일기를 끄집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시집의 제목은 상자를 열지 않겠다는 의지와 함께 상자를 바라보고 의식하는 눈을 암시한다. 그런 상자 안에 담긴 것은 홀로 직면하기에 버거운 것일 테다. 이를테면 세상의 기준에 위축되어 상자에 담길 정도로 옹송그려진 자신, 그리고 연모하는 이를 향한 섬세하고 상처받기 쉬운 사랑의 마음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보는 것이야말로 영속되는 괴로움을 해체하는 시작이며, 사랑하는 이에게 나아가는 첫걸음이 된다는 것이 백은선의 시가 알려주는 진실이다. “새로운 심장의 발명”(이원)이라는 평을 이끈 문지문학상 수상작들이 수록된 이 시집에서 독자는 사랑을 위한 기초이자 세계를 건축하는 행위로서 백은선의 다정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커다란 기차를 생각했어 기차를 끌어당기는 은빛 선로에 대해 생각했어 그 안에 가득찬 빼곡한 숨을 숨찬 주문을 들으며 들으며 귓속으로 쏟아지는 계속되는 것을 영원히 끝나지 않는 순환의 지독함과 아름다움을 액자 속에 걸려 천 년 동안 서서히 밝아지는 동시에 스러지는 이미지를 떠올렸어 그것을 온전한 절망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은 없기에 책 속에 머리를 박고 활자를 중얼거리며 기차가 달리는 리듬으로 한 문단 한 문단 달리고 달리며 비밀과 질문 비밀과 질문 출렁이는 물속을 들여다보려 애를 썼고 아무리 애를 써도 보이지 않는 심장처럼 물은 검기만 했고 숨찬 내일 무한을 잠시 엿본 것만 같다고 꽃이 꽃꽃꽃꽃 달리고 달이 달달달달 떨리고 숲이 숲숲숲숲 웃어대는 리듬 속에서 숨찬 내일 두 손을 휘저으며 끝없이 두 손을 휘저으며 이렇게 시끄러운 밤 어떻게 너는 꿈을 꾸고 잠을 자는가 그것이 정말인가 무엇을 향하는지도 모르고 삿대질을 하며 울던 줄곧 가지고 다닌 두 손

손목을 은빛 선로 위에 둔 채 기다리고 있다 기적이 가까워지기를
_「비밀과 질문 비밀과 질문」 부분

시를 읽으며 자신의 언어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은 어떤 이들인가. “나는 눈을 뜨는 순간 빛의 세계에서 탈락했”(「비신비」)다고 느끼며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줄 순 없으니 차라리 스스로를 숨기고 싶은 이들(“빛나는 것은/ 전부 두 손 안에 있는데// 어째서 자꾸만 숨기고 싶어지는 걸까”(「형상기억합금」)). “한 대 맞고 웃는 일은 너무 쉽다”(「엔젤: 러브레터」)고, “아무리 많은 고통도 현재의 방패가 되어주진 않는다”(「섭(攝)」)며 지나온 생이 자신에게 남겨놓은 상처와 이물감을 실감하는 이들. “이토록 많은 시공간 속에 살아 있었다는 게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게 끔찍해서 눈물이 날 거 같았다”(「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고 말하는, 감정에 젖어들 때에도 그것을 설명할 언어를 찾느라 눈물이 멎는 이들이다. 백은선은 고통의 전문가라고 할 만큼 삶이 야기하는 괴로움과 아픔에 집중하면서도, 고통의 조건과 인간의 기저를 명징하게 꿰뚫어본다. 하지만 백은선의 관찰이 말뿐인 허울에 그치지 않는 것은 그가 바라보고 말해보는 행위로 자족하지 않은 채, 운명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언제나 인간보다 거대한 운명이 기차가 되어 자신을 집어삼킬 듯이 다가온다면, 선로 위에 자신의 손목을 내어주리라 결심한다. 그럴 때 운명과 자신은 서로가 서로를 선택하는 관계가 될 터이므로.

우린 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지. 사랑이 아닌 것도. 손이 바빠 머리가 멍해질 때까지. 우물거리며 고기와 와인을 먹고 커피를 마셨지. 나는 너희와 함께 있을 때 가장 똑똑해진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장면들을 돌려보며 팝콘처럼 터지는 웃음, 열매처럼 뚝 떨어지는 눈물. 계속해봐! 더 해봐! 서로의 등을 밀며 기차는 달린다. 너는 빨강 너는 초록 나는 검정. 모든 게 멋지고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나의 옷을 돌려 입으며, 나는 가끔 무한히 길어질 수 있을 것 같아. 말하려는 순간 딸꾹질이 시작된다.
_「만나서 시쓰기」 부분

실로 백은선의 시는 더이상 구원과 낭만을 믿지 않게 되어 “날개를 접고 내려앉은”(「진실은 구체적이다」) 천사들이 가장 낮고 단단한 지면에서 발을 내딛는 행위이다. 그 천사들은 익숙한 신의 사랑이 아니라 어설픈 인간의 다정을 부단히 반복한다. 파토스 가득한 어조, 자유롭고 아름다운 비약, 솔직한 내면의 고백 등 백은선에 뒤따르는 수식어들이 있지만, 그 사이에서 백은선의 다정은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물론 백은선은 손쉬운 다정을 믿지 않는다. “달라진 건 하나도 없는데 갑자기 다정해지는 게 있나요?”(「앙망」) “사람이 이 이상 다정할 수 있어? 묻지만 단 한 번도 원한 적 없어요”(「픽션다이어리」). 그러나 “마음이라는 이 좆같고 애매한 말!”(「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이라고 외치며 세계와 자신을 똑바로 들여다보려는 이가 꺼내는 마음에는 진실이 담겨 있기에 진심이라고 이르게 된다.
백은선의 시가 솔직하다면 그가 정직하기 때문이다. 올곧게 사랑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아무 대가 없이 사랑해줄 수는 없어요?”(「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묻는 백은선의 질문은 사랑에 주저하는 이들의 폐부를 찌르면서도, 사랑하는 이에게 건넬 편지지가 되어준다. 글씨를 연습하듯 백은선의 문장을 따라 쓰는 동안, 읽는 이는 백은선의 다정을 자기에게 옮겨담게 될 것이다. 그 다정은 곧, 사랑 앞에서 자신을 허무는 자세이자, 시야를 좁혀 사랑하는 이를 그대로 바라보는 눈맞춤이고, 사랑을 소중히 대하는 태도이며, 사랑만 있다면 신이 없는 세상도 괜찮다는 의연한 믿음이리라.

백은선의 시가 반드시 우리 앞을 가로막는 한계를 뛰어넘고 초월하게 하는 물리적인 날개가 되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때로는 시를 읽고 마음이 북받쳐 뛰어오르고도 장대에 걸려 철푸덕 넘어져 이가 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미래와 가능성, 무한이라는 단어가 지긋지긋해서 아무런 말도 듣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땐 의심과 번복을 꼬리에 주렁주렁 달고도 이어지는 백은선의 다정을 생각해보자. 그 언어가 어떻게 우리에게 계속하고 반복할 수 있는 의지와 연습이 되어주는지를. 문학이 삶을 닮고, 삶이 문학을 닮아가는 우리는 만나서 시를 쓸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것이 내가 백은선에게 배운 시이자, 백은선의 시를 읽은 이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말,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고픈 삶의 태도였다.
_편집자의 말 「다정한 시」 부분*

* 백은선 시인과 담당 편집자가 시집의 편집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동안, 수록 시들에 대한 이해가 서로 크게 겹치고 있다는 생각이 감돌았고, 보통의 시집 말미에 해설이나 발문을 싣는 것과 달리 시인이 편집자의 목소리가 들어가길 요청해 ‘편집자의 말’이 수록되었다.
저자

백은선

2012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을수상하며등단했다.시집『가능세계』,『아무도기억하지못하는장면들로만들어진필름』,산문집『나는내가싫고좋고이상하고』등이있다.‘김준성문학상’,‘문지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자꾸만나도모르게펼쳐지는게있어
숨은귤찾기―이선에게/형상기억합금/엔젤:러브레터/섭(攝)/적심(摘心)/역할바꾸기/비밀과질문비밀과질문/진짜괴물/좋은소식/상자를열지않는사람/상자를열지않는사람/상자를열지않는사람/생의찬미

2부당신이내내뒤적인건나의심장
비신비/비신비/잠(潛)/마음의창/새나무/픽션다이어리/피크닉/사쿠라노요루/검은튤립이만발하던계절/줄리델피/평생의복수/포마/수지(壽指)/평균대위의천사

3부이제가느다란뼈를다무너뜨려볼까
생일축하해―구유에게/진실은구체적이다/진실은구체적이다/명일(命日)/앙망/적색광선/향기/만나서시쓰기/커다란배나무의집/가장아름다운혼/가장아름다운혼/가장아름다운혼/Whycan’tyouloveme?

편집자의말|다정한시
이재현

출판사 서평

커다란기차를생각했어기차를끌어당기는은빛선로에대해생각했어그안에가득찬빼곡한숨을숨찬주문을들으며들으며귓속으로쏟아지는계속되는것을영원히끝나지않는순환의지독함과아름다움을액자속에걸려천년동안서서히밝아지는동시에스러지는이미지를떠올렸어그것을온전한절망이라고믿고싶었다그러나온전한것은없기에책속에머리를박고활자를중얼거리며기차가달리는리듬으로한문단한문단달리고달리며비밀과질문비밀과질문출렁이는물속을들여다보려애를썼고아무리애를써도보이지않는심장처럼물은검기만했고숨찬내일무한을잠시엿본것만같다고꽃이꽃꽃꽃꽃달리고달이달달달달떨리고숲이숲숲숲숲웃어대는리듬속에서숨찬내일두손을휘저으며끝없이두손을휘저으며이렇게시끄러운밤어떻게너는꿈을꾸고잠을자는가그것이정말인가무엇을향하는지도모르고삿대질을하며울던줄곧가지고다닌두손

손목을은빛선로위에둔채기다리고있다기적이가까워지기를
_「비밀과질문비밀과질문」부분

시를읽으며자신의언어에대해고민하는이들은어떤이들인가.“나는눈을뜨는순간빛의세계에서탈락했”(「비신비」)다고느끼며아름다운모습만보여줄순없으니차라리스스로를숨기고싶은이들(“빛나는것은/전부두손안에있는데//어째서자꾸만숨기고싶어지는걸까”(「형상기억합금」)).“한대맞고웃는일은너무쉽다”(「엔젤:러브레터」)고,“아무리많은고통도현재의방패가되어주진않는다”(「섭(攝)」)며지나온생이자신에게남겨놓은상처와이물감을실감하는이들.“이토록많은시공간속에살아있었다는게앞으로도계속된다는게끔찍해서눈물이날거같았다”(「상자를열지않는사람」)고말하는,감정에젖어들때에도그것을설명할언어를찾느라눈물이멎는이들이다.백은선은고통의전문가라고할만큼삶이야기하는괴로움과아픔에집중하면서도,고통의조건과인간의기저를명징하게꿰뚫어본다.하지만백은선의관찰이말뿐인허울에그치지않는것은그가바라보고말해보는행위로자족하지않은채,운명으로나아가기때문이다.언제나인간보다거대한운명이기차가되어자신을집어삼킬듯이다가온다면,선로위에자신의손목을내어주리라결심한다.그럴때운명과자신은서로가서로를선택하는관계가될터이므로.

우린늘사랑에대해이야기하지.사랑이아닌것도.손이바빠머리가멍해질때까지.우물거리며고기와와인을먹고커피를마셨지.나는너희와함께있을때가장똑똑해진다.아직완성되지않은장면들을돌려보며팝콘처럼터지는웃음,열매처럼뚝떨어지는눈물.계속해봐!더해봐!서로의등을밀며기차는달린다.너는빨강너는초록나는검정.모든게멋지고더할나위없이좋다.하나의옷을돌려입으며,나는가끔무한히길어질수있을것같아.말하려는순간딸꾹질이시작된다.
_「만나서시쓰기」부분

실로백은선의시는더이상구원과낭만을믿지않게되어“날개를접고내려앉은”(「진실은구체적이다」)천사들이가장낮고단단한지면에서발을내딛는행위이다.그천사들은익숙한신의사랑이아니라어설픈인간의다정을부단히반복한다.파토스가득한어조,자유롭고아름다운비약,솔직한내면의고백등백은선에뒤따르는수식어들이있지만,그사이에서백은선의다정은찬란하게빛을발한다.물론백은선은손쉬운다정을믿지않는다.“달라진건하나도없는데갑자기다정해지는게있나요?”(「앙망」)“사람이이이상다정할수있어?묻지만단한번도원한적없어요”(「픽션다이어리」).그러나“마음이라는이좆같고애매한말!”(「상자를열지않는사람」)이라고외치며세계와자신을똑바로들여다보려는이가꺼내는마음에는진실이담겨있기에진심이라고이르게된다.
백은선의시가솔직하다면그가정직하기때문이다.올곧게사랑으로나아가기때문이다.“아무대가없이사랑해줄수는없어요?”(「상자를열지않는사람」)묻는백은선의질문은사랑에주저하는이들의폐부를찌르면서도,사랑하는이에게건넬편지지가되어준다.글씨를연습하듯백은선의문장을따라쓰는동안,읽는이는백은선의다정을자기에게옮겨담게될것이다.그다정은곧,사랑앞에서자신을허무는자세이자,시야를좁혀사랑하는이를그대로바라보는눈맞춤이고,사랑을소중히대하는태도이며,사랑만있다면신이없는세상도괜찮다는의연한믿음이리라.

백은선의시가반드시우리앞을가로막는한계를뛰어넘고초월하게하는물리적인날개가되어줄수는없을것이다.때로는시를읽고마음이북받쳐뛰어오르고도장대에걸려철푸덕넘어져이가깨질수도있을것이다.미래와가능성,무한이라는단어가지긋지긋해서아무런말도듣고싶지않을지도모른다.하지만그럴땐의심과번복을꼬리에주렁주렁달고도이어지는백은선의다정을생각해보자.그언어가어떻게우리에게계속하고반복할수있는의지와연습이되어주는지를.문학이삶을닮고,삶이문학을닮아가는우리는만나서시를쓸수만있다면어디서든다시일어설수있다.그것이내가백은선에게배운시이자,백은선의시를읽은이들에게가장전하고싶은말,그리고사랑하는이들과함께하고픈삶의태도였다.
_편집자의말「다정한시」부분*

*백은선시인과담당편집자가시집의편집방향에대해논의하는동안,수록시들에대한이해가서로크게겹치고있다는생각이감돌았고,보통의시집말미에해설이나발문을싣는것과달리시인이편집자의목소리가들어가길요청해‘편집자의말’이수록되었다.

■백은선시인과의미니인터뷰

1.『상자를열지않는사람』은시인님의네번째시집입니다.시집을펴내신소감이궁금합니다.

시집을낼때마다하는생각인데,의외로큰감흥을못느끼는타입이에요.다만이만큼의글을내가썼구나하는물성이주는자각에신기하기도뿌듯하기도합니다.시를쓰는일은늘현재에있는일과같아서,누군가저에게‘넌네권의시집을내게될거야’하고말했다면믿지못했을거예요.닿을수없는미래는믿지않는편이거든요.

2.이시집속에는믿음에대해말하는장면들이있습니다.믿음은손쉽게이루어지는약한것이고,가짜라고말해지기도하지만시속인물들은각자의믿음을서로에게보여주기도하고,스스로도알수없는불가사의한믿음을갖기도해요.요즈음시인님께서무언가믿고있는것,또는도무지믿을수없는것이있다면무엇일지요.

도무지믿을수없는것은세상이엉망진창이고때로악의로가득차있다는것이에요.뭐든이해하려고깊게생각해보는편이기도하고공감능력이나름뛰어나다고생각하는데도사람이사람을죽이는일,전쟁을일삼는일,다름을이유로차별하는일등은도저히이해하고받아들여지지않아요.제가진실이라고생각할수있는것은믿음은무르다는것,그래서힘이있다는것이에요.저의믿음은그렇게약하고그래서소중한게아닐까싶어요.

3.시인님의시를읽으며유독,시가세상을바꿀수있을까,라는생각을오래했습니다.시집의화자들이세상이바뀌기를바라며말을걸면서도자신의말마저의심하는듯해서요.저는시가세계와사람을바꿀수있다고믿고,그렇지않다고생각하면힘들구나,싶었습니다.그러면서시인님께서시로써도모하시는것이있다면무엇일지궁금했습니다.

저의이전시집『도움받는기분』의‘시인의말’도이렇죠.“고정된것은없다/나에게는그것이중요하다”.모든것을의심해요.그래야진실을발견할수있을것같아요.저는시가세계를바꿀수있다는말을온전히믿는동시에온전히불신해요.그건반만믿고반은안믿는것과는다른거죠.그런동시적인상태에있어야시를쓰는게가능해지는것같아요.시로써도모하는것은딱히없어요.가끔세상모든사람들이시를읽고쓴다면조금나아질까?상상해보지만그건순진한생각이라는것도알아요.가장정확하게말할수있는게있다면이전에저는시로써저를구하고싶었던것같아요.지금은그마저도잘모르겠어요.

4.시집이나온지금,시인님께특별히기억에남는시가무엇일지요.

아무래도「평균대위의천사」가아닐는지.표제시로삼으려고도했었거든요.굉장히마음을쏟아쓴시이기도하고쓰면서많이힘들었기때문인것같아요.제가가진의심의총합이그시에들어있지않나하는생각도들어요.마지막문장을쓸때가슴이미어졌던게지금도기억나요.

5.독자여러분께인사한마디부탁드리겠습니다.

시는믿을수없이아름답고아픈장르라고생각해요.그래서진짜로시를알게되면결코시를떠날수없게된다고믿어요.제시집을읽는분들이여러번걸려넘어지기를,때로한문장에주저앉아떠날수없게되기를바라면너무큰희망이겠죠.이제막세상에나오려는시집이니감히그런마음을품어봅니다.시를쓰인그대로읽어주시면좋을것같아요.그러면어느순간퍼즐처럼완성되는장면이있을거라고,그게우리를어딘가로데려다줄거라고요.

■시인의말

영혼은어디있을까?
너의배꼽
그치,우린질문으로시작해야지

2023년6월
백은선

■책속에서


귤에대해생각하다
빛나는심장을
쟁반에담아
식탁에올려두었다

눈뜨면네가제일먼저볼수있게

어느날은
중력은무엇이든떨어뜨리니까
빛과무관하게나는아플수있어서
다행인날이었다

꽁꽁얼어버린빛이있다

전부녹아버린밤의일이었다
_「숨은귤찾기―이선에게」부분

커다란머리띠우스꽝스러운모자를쓰고
부스에들어가사진을찍었던날
감자튀김을집어먹다가너는
갑자기물었잖아

모든것을기록하는카메라를머릿속에심을수있다면
이식할거야?

나는아―니,라고대답하면서도
지금이순간만은영원히기억하고싶었다
내마음을너는몰랐으면좋겠어서
괜히케첩을푹찍어감자튀김을네입에밀어넣었다

빛나는것은
전부두손안에있는데

어째서자꾸만숨기고싶어지는걸까
_「형상기억합금」부분

무력한것만이유효하다는믿음은손쉽게이루어지면서도부서지기때문에너는그럴듯한기분으로태도를지키기좋았지.시안에서꽃이다뤄지는방식으로.미래처럼.절망하기위해태어난포즈는늘호응받기에,너는줄곧들여다보았지.들여다보지않는순간에도들여다보고있다고그것이바로흔들림이라고적었지
_「상자를열지않는사람」부분

아무일도일어나지않았다
아무일도

덮어도가려지는건많지않다
그걸완성이나종결이라말해도되는걸까요?
아니죠아니죠아닌거알아요

이름을지우고돌아서면
왜지워진게이름만이아닌것같은지

내가지우고있는게
진짜로뭐죠
진짜
진짜로요
_「평균대위의천사」부분

어린새처럼너는
칭얼거리곤했는데
그럼나는가끔
좋은시를
때로는노래를
읽어주기도불러주기도했다

지나갈거야오늘밤도
매일아침에해가뜬다는거
어쩐지기적같지않니

어젯밤엔
어김없이아침이찾아오는게지옥같다고
적어놓고
오늘은네게그런말을했다
_「향기」부분

웃음은때로강한방어막이죠가진것없이스스로를지키려면그렇게돼요
_「가장아름다운혼」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