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 문학동네 시인선 194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 문학동네 시인선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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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삶도 사랑도 그렇게 근거 없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명명됨에서 비롯되는 마음들
불합리한 세계 속에서도 근거 없이 지속되는 사랑
황인찬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서정

제66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이미지 사진」 수록


제66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이미지 사진」 수록
“예술적인 다양한 방법론을 지워버리는 방법론을 지닌 희귀한 시인”(김행숙)이라는 평과 함께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로 한국 시단에 새로운 언어를 선물한 황인찬. 이후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 등을 통해 그 누구와도 다른 감각으로 한국 시를 대표하는 목소리가 된 황인찬의 신작 시집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시들이 전부 미쳤구나 싶게 근사하다”(황인숙)라는 평을 이끌어낼 만큼 탁월한 감각으로 빛나는 현대문학상 수상작 「이미지 사진」을 포함해 64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일상적 제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화詩化하는 황인찬은 우리 주변에 놓인 사물이나 사건들을 보고 섣불리 안다고 말하지 않고, 쉽사리 단정하지 않은 채, 그 모르겠는 것들에 신중하게 하나둘 이름을 부여하(기를 시도하)는 방식으로 시를 써나간다. 그는 ‘이게 내 마음이다’라고 말하는 대신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라고 말한다. ‘사랑이다’라고 말하는 대신에 그는 “그걸 사랑이라 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것도 없겠습니다”(「없는 저녁」)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빛의 언어로 충만한 황인찬의 시에는 명백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름답지 않지 않은 역설적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그의 시는 전승민 평론가의 말처럼 “사실상 그것이 품고 있는 서정을 내파하는 시인의 메타적인 자의식과 재현이 침투된 ‘새로운 서정시’”(해설에서)라 할 만하다. 시를 읽는 우리는 황인찬이 그려 보이는 세계의 모습을 보며 자주 혼란에 빠질 것이다. 마치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놀라는 순간에도// 그 여름은 뭐였을까, 자꾸 생각하게 되”(「인화」)는 시인처럼, 우리 또한 그의 시에서 느낀 아름다움은, 그리고 마음들은 무엇이었을지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 속에 남아 고정되고 기억 속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이미지들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사랑하고 너무 좋다고 생각하며 너무 좋아하면서

언젠가 누군가와 남도의 풍경에 대해 이야기할 때 거기 정말 좋았어요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말하게 되는 그 순간에
아름다움이 만들어지는 것이겠지
_「아는 사람은 다 아는」에서

어쩌면 황인찬에게 시를 쓰는 일은 결국 커다란 의미에서의 이름 붙이기일지도 모르겠다. 현상과 사물을 바라보며 그것에 시라는 언어로 이름을 붙이는 일. 세계는 그에게 해석하는 곳이 아니라 인식하는 곳, 명명하는 곳인 셈이다. 그래서 그는 “말하게 되는 순간에”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재인식을 통해 우리의 경험은 실체로서 재생성되는 것이다.
그의 시에는 빛과 사진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것도 그러한 재인식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의 시에서 빛과 초록, 여름과 기쁨 등 찬란한 것들은 대부분 과거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 이 시집의 문을 여는 첫 시 「당신에게 이 말을 전함」을 보자.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하자/ 학교에서 봐”가 전문인 이 짧은 시는 이 시집 전체의 정서를 예고하고 있다. 그의 시에서 ‘학교’는 주로 공간이 아니라 시간으로서 존재하는데, 그래서 그는 ‘학교’라는 단어를 통해 한순간에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과거 속 ‘내일’ 이전의 어떤 시간으로 우리를 소환한다. 이 시의 전문을 우리도 한 번쯤은, 어쩌면 무수히 많이 발화했을 것이므로,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그 시간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시집을 읽다보면 우리는 황인찬의 시에서 학교란 단지 아스라한 빛으로 감싸인 노스탤지어의 공간이 아니라 기쁨과 아픔이 모두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시인은 그러한 공간을 그 모습 그대로 그리는 대신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일련의 시들을 통해 폭력과 사랑이 공존하는 그 공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인식한다. “당신의 시에는 현실이 없군요/ 현실에는 당신이 없는데요//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흰 빛뿐이지만/ 그 이상이 없다는 것은 이미 알지만”(「왼쪽은 창문 오른쪽은 문」)과 같은 부분에서 느껴지는 전환의 노력을 통해 ‘폭력 (그리고) 사랑’은 ‘폭력 (그럼에도) 사랑’에 가깝게 실체화된다.
그렇다면 시인은 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대신 그것을 재실체화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의 개별적 의지가 아니라 그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는 곳이어서가 아닐까. 그것은 그의 재인식 작업의 대상이 학교에서 세계로 확장되는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황인찬의 시 속에서 화자의 경험은 여러 방식으로 재인식되는데, 그 과정을 통해 실체화되는 것은 주로 기쁨, 사랑, 아름다움 등이다. 그의 그러한 재인식은 인간에게 친절하지 않은 세계를 그럼에도 사랑하기 위한 ‘능동적 체념’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나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것도 없겠습니다”라는 화자의 말은 기쁨과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한 일종의 다짐이 된다. 세계가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닌,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또는 사랑하기로 해서 사랑하는 것. 자신이 속한 세계에 자신의 방식으로 이름을 붙이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로서의 다짐.
어쩌면 우리가 시를 읽는 이유는, 황인찬의 시를 읽는 이유는 그것일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세계를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인식하고 실체화하기 위해.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에서 서정을 발견해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부조리 속에서도 서정을 발견해내는 황인찬이라는 필터를 통해 세계를 한 번쯤 바라보기 위해. 시인은 이 시집에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라는 제목을 붙임으로써 시 속에 그러한 자신의 마음을 담았다. 이 시집을 집어들기로 하는 것도 일종의 다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다짐을 통해 우리의 세계는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다.
저자

황인찬

1988년경기도안양에서태어났다.시를이용해무슨일을할수있을지자주고민한다.시를통해타인과깊게만날수있기를소망하며매일시를쓰고읽는다.2010년[현대문학]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구관조씻기기』『희지의세계』『사랑을위한되풀이』등이있다.김수영문학상,현대문학상등을수상했다.

문학이란잘대화하는일이라믿고있습니다.문학을통해더나은사람이될수있기를...

목차

시인의말

1부당신에게이말을전함
당신에게이말을전함/학교를안갔어/왼쪽은창문오른쪽은문/밝은방/이미지사진/그해구하기/인간의기쁨/마음/받아쓰기/아는사람은다아는/데스드랍/무령/흰배처럼텅비어/산비둘기/고요의풍속은영/인화/장미는눈도없이/공자의겨울산/내가노래를관둬도/미래빌리기

2부당신영혼의소실
빛의용사전설/살아있는자의마음속에있는죽음의육체적불가능성/당신영혼의소실/발명/단속과정복/잃어버린정신을찾아서/음애/우주세기의돌돌이/봄의반/개완/퇴적해안/호프는독일어지만호프집은한국어다/감시자는누가감시하나/공중의새를보라심지도거두지도않고/철거비계/금과은/드워핑/역사는밤에이루어진다/증오/하해/미술관에갔어/중계/할머니가나오는꿈/이걸내마음이라고하자

3부당신의어둠이당신의존재와반대방향으로기울어지는군요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바지를입은사람은바지를입고떠난다/벽해/공원을떠났어/겨울빛/흐리고흰빛아래우리는잠시/구자불성/명경지수/공리가나오는영화/자율주행의시/외투는모직신발은피혁/그릇없어요/내가아는모든것/없는저녁/리스토어/믿음으로하나되어/잃어버린천사를찾아서/잃어버린자전거를찾아서/느린사랑/내친구의집은어디인가/

해설|그렇다면이것을나의영원이라고하자|전승민(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사진속에남아고정되고기억속에서영원히반복되는이미지들사랑한다고생각하며사랑하고너무좋다고생각하며너무좋아하면서

언젠가누군가와남도의풍경에대해이야기할때거기정말좋았어요아주인상적이었어요

말하게되는그순간에
아름다움이만들어지는것이겠지
_「아는사람은다아는」에서

어쩌면황인찬에게시를쓰는일은결국커다란의미에서의이름붙이기일지도모르겠다.현상과사물을바라보며그것에시라는언어로이름을붙이는일.세계는그에게해석하는곳이아니라인식하는곳,명명하는곳인셈이다.그래서그는“말하게되는순간에”‘떠오르는’것이아니라“만들어지는”것이라고말한다.그러한재인식을통해우리의경험은실체로서재생성되는것이다.

그의시에는빛과사진의이미지가자주등장하는데,그것도그러한재인식과관련이있는듯하다.그의시에서빛과초록,여름과기쁨등찬란한것들은대부분과거에존재한다.그리고그것은어쩔수없이우리에게노스탤지어를불러일으킨다.이시집의문을여는첫시「당신에게이말을전함」을보자.“나머지이야기는내일하자/학교에서봐”가전문인이짧은시는이시집전체의정서를예고하고있다.그의시에서‘학교’는주로공간이아니라시간으로서존재하는데,그래서그는‘학교’라는단어를통해한순간에우리모두가공유하고있는과거속‘내일’이전의어떤시간으로우리를소환한다.이시의전문을우리도한번쯤은,어쩌면무수히많이발화했을것이므로,우리는속수무책으로그시간속으로빨려들어가는것이다.

그런데시집을읽다보면우리는황인찬의시에서학교란단지아스라한빛으로감싸인노스탤지어의공간이아니라기쁨과아픔이모두존재하는공간이라는것을깨닫게된다.하지만시인은그러한공간을그모습그대로그리는대신학교를배경으로하는일련의시들을통해폭력과사랑이공존하는그공간을자신만의방식으로재인식한다.“당신의시에는현실이없군요/현실에는당신이없는데요//창밖으로보이는것은흰빛뿐이지만/그이상이없다는것은이미알지만”(「왼쪽은창문오른쪽은문」)과같은부분에서느껴지는전환의노력을통해‘폭력(그리고)사랑’은‘폭력(그럼에도)사랑’에가깝게실체화된다.

그렇다면시인은왜현실을있는그대로그리는대신그것을재실체화하는것일까.어쩌면그의개별적의지가아니라그곳이그래야할필요가있는곳이어서가아닐까.그것은그의재인식작업의대상이학교에서세계로확장되는것을통해짐작할수있다.황인찬의시속에서화자의경험은여러방식으로재인식되는데,그과정을통해실체화되는것은주로기쁨,사랑,아름다움등이다.그의그러한재인식은인간에게친절하지않은세계를그럼에도사랑하기위한‘능동적체념’이라고할수있을지도모르겠다.그렇다면“이걸내마음이라고하자”나“하지만그러지못할것도없겠습니다”라는화자의말은기쁨과사랑과아름다움에대한일종의다짐이된다.세계가아름답기때문에사랑하는것이아닌,사랑할수밖에없어서,또는사랑하기로해서사랑하는것.자신이속한세계에자신의방식으로이름을붙이겠다는적극적인의지로서의다짐.

어쩌면우리가시를읽는이유는,황인찬의시를읽는이유는그것일것이다.우리가직면한세계를보이는그대로가아니라자신만의방식으로재인식하고실체화하기위해.그리고아름다운것들에서서정을발견해내는것이아니라,세계의부조리속에서도서정을발견해내는황인찬이라는필터를통해세계를한번쯤바라보기위해.시인은이시집에‘이걸내마음이라고하자’라는제목을붙임으로써시속에그러한자신의마음을담았다.이시집을집어들기로하는것도일종의다짐이라고할수있지않을까.그리고그러한다짐을통해우리의세계는다시만들어지는것이다.

◎황인찬시인과의미니인터뷰

Q1.안녕하세요.『이걸내마음이라고하자』는『사랑을위한되풀이』이후4년만에출간하는정규(?)시집이죠.이번시집을내는소회가궁금합니다.
시집을내는일은항상조금은부끄럽고어색한일입니다.그건이번에도마찬가지군요.이번시집은이전의시집들보다도더부끄럽고어색한기분입니다.지난4년을참정신없이보낸까닭일지도모르겠습니다.그동안우리는팬데믹을통과하기도했고,몇가지슬픈일을겪기도했습니다.여기서‘저’라고말하지않고‘우리’라고말하고싶은그마음이어쩌면이질문에대해,제가가장전하고싶은말인지도모르겠습니다.

Q2.이런질문은조금이상하겠지만왠지시인님께는여쭤보고싶어집니다.시는어떻게쓰시나요?
시를쓰기전까지는시를쓰는방법을안다고생각하지만,시를쓰는동안에는그알던방법을모두잊어버리는것이시쓰기인것같습니다.그러니시를쓰는과정대신,시가어떻게출발하는지말씀을드리는수밖에없겠습니다.무심코들려온말,갑자기떠오른말들,그런말들을메모장에적어두는데서부터저의시쓰기는시작됩니다.하나의말이다시다음문장들을떠오르게하고,어떤장면을떠오르게하고,그즈음부터한편의시를쓰기위한상태에들어가게되는것같습니다.그리고여기서더는나아갈수없다고생각할때,그시쓰기는끝이납니다.

Q3.독자들마다이시집을읽으며느끼는정서가조금씩다를것같다는생각이드는데요,저는어떤그리움과잔잔한분노와애정과체념을느꼈어요.제목과연관이되는질문이면서조금사적인질문일수도있겠는데요,평소자연인황인찬을이루고있는가장주된감정은무엇일까요?
사실저도제마음을잘모르겠다고말하는수밖에없겠습니다.그러니이러한제목의시집을내버리게된것이아닐까요?과도한의심과과도한자기확신사이를항상오가는것이저의마음이아닐까합니다.무슨일을보든일단의심을해보려하고,동시에그의심끝에과도한확신을얻게되고,다시시간이지나그것을또의심하는일을자꾸반복하고있습니다.이것도사실은제가제마음을잘알수없어서그런것인지도모르겠네요.그러니어느한순간에는제마음을결정하지않을수없겠습니다.

Q4.이시집에서특히아끼거나,첨언을하시고싶은시가있다면말씀해주세요.
저는제시를그다지좋아하지않지만,그나마최근의시들을덜부끄럽게생각하는편입니다.이시집에서가장마지막으로쓴시는「드워핑」과「공리가나오는영화」입니다.

5.끝으로이시집을읽을독자들께인사말씀부탁드립니다.
저는제마음을자주모릅니다.그래서가끔은그냥오늘은기쁜셈치자,생각하기도하고,또가끔은그냥모르는그대로있자고생각하기도합니다.이생각이중요하다는생각을요즘은하고있습니다.여러분들이이시집을어떻게읽으실지저는참궁금합니다.하지만어떻게읽으셔도여러분마음이니,그저편하게읽어주시길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