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의 실패

루의 실패

$17.00
Description
여기 좀 이상한 젊은이들이 있다. 눈앞을 늘 빨간 머리 커튼으로 가린 채 세상과 자신 사이에 벽을 치는 청년은 말하는 법을 잊은 듯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반면 네 발에 운동화를 야무지게 신은 개는 어쩐 일인지 따박따박 말을 하며 주위의 한심한 인간들에 대해 탄식하고 일침을 놓는다. 머리가 박스형으로 된 네모 청년은 네 개의 눈에서 폭포처럼 눈물을 쏟는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시를 세상에 끊임없이 발신하는 청년이 있고, 온갖 쌍욕을 입에 달고 살지만 세상에서 제일 마음 약한 젊은이도 있다. 이 젊은이들은 좀, 애석하다. 웃기고 심플하게 살고 싶지만 인생은 한정 없이 복잡하고 아득하게 꼬여간다.
지금까지 MZ세대에 대한 편견과 비아냥으로 규정당해온 청년들의 모습이 아닌 오늘의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일상과 갈등을 예리하게 포착한 만화 『루의 실패』가 이야기장수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SNS나 웹툰을 통해 인지도를 모으고 다음 수순으로 종이책을 출간하는 것이 일반적인 요즘의 만화 시장에서 신예 만화가 강산은 어디에도 연재하지 않은 이 괴상하고도 친근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출판만화로 처음 선보이며 데뷔한다.
미디어를 통해 비쳐진 ‘MZ세대’는 이기적이고 우스꽝스럽고 재수 없는 미친놈처럼 그려질 때가 많다. 그러나 현실의 MZ세대들은 고민하고 아파하고 분노하면서 끊임없이 현실의 늪에서 빠져 죽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기성세대가 요구하는 청년의 패기와 꿈이 공상이나 망상, 내지는 한때의 회상으로 시들어가는 일이 더 많은 요즘의 젊은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성공과 ‘갓생’을 향해 달려가는 매스미디어 속 건실한 청년들의 모습 뒤로 평범하고 흔한 젊은이들의 실패와 절망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주목해야 할 신예 만화가 강산은 ‘욕하기 좋게 빚어진 미친놈들’ 같은 요즘 세대가 아닌 애석하고도 애틋한 우리 곁의 젊은이들의 서사를 그려나간다.
저자

강산

살면서수없이전공을바꿔왔다는느낌을갖고있다.그러나사실한번도바꾼적은없고,아주어렸을적부터계속만화를만드는것만생각해왔다.〈문장웹진〉에단편만화〈동병상련〉을실었다.

인스타그램@fuljumeok

목차

VR_11
독서_21
복수_29
냄새_33
아침_43
반복_45
발작_55
매치_75
무게_85
방문_93
지각_97
구조_113
리턴_123
검사_127
추적_141
산책_157
고백_167
구토_177
기회_211
반복_227
마실_237
모임_245

추천글
너는왜맨날이지랄이지진짜_이슬아257

출판사 서평

추락하고있는데붙들손이없을때,우리는모두루다

『루의실패』는‘반복’‘발작’‘지각’‘구토’등예외없이두글자로된제목이달린에피소드22편으로이루어진만화다.각에피소드에서는루,블래키,솜차이,슬기,네모,최정원이여섯캐릭터들이각각주연이되었다가조연이되기도하며서사를쌓아간다.이만화를보고있으면어떤에피소드와인물로부터기시감을느꼈다가때론괴리감을느끼는것을반복하게될것이다.왜냐하면『루의실패』속캐릭터들이말하고행동하는모습은언젠가바닥에굴러떨어졌을때,최악의시절이었을때의우리,그럼에도그늪에서헤어나오기위해애쓰던어느한시절의우리와너무도닮아있기때문이다.

나는“아무도나를……”로시작하는지겹게되풀이된자기연민을또늘어놓으려는루에게단호히“나가”라고하는슬기이고,대책없는프로젝트를시작하려는루에게현실적인문제를상기시키는솜차이다.“너희들의온갖증오와우울을보고있으면아주아주깊은곳에서구토감이올라”온다고직언하는블래키이고,끝내루의손을잡지않는최정원이다.
동시에나는,원나잇상대앞에서철봉에매달리며까부는루이고,버스에실려가며머릿속으로새로운문장을쓰는솜차이이고,그의마음을헤아리며다음원고를독려하는최정원이고,선천적인본능과후천적인배움사이에서시민성을갈고닦는블래키이고,짝사랑하는사람앞에서“나로는충분하지않”다는걸알게되면서우는네모다.
_이슬아추천글,「너는왜맨날이지랄이지진짜」중에서

강산작가는독자들이자신의만화속의캐릭터들을단순하게사랑하거나혹은함부로미워하도록몰아붙이지않는다.이들은대부분의인간이그렇듯때로는지긋지긋하고때로는애처로운면을가진규정짓기힘든존재들이며,자기나름대로버텨내고있는사람들이다.그러나이젊은이들은어디로도포섭되지않기때문에지독히모순적인면모들도갖고있다.그들의멤버안에엄연히‘개’가있는데도‘개새끼’랄지‘병신’이라는말을아무렇지않게쓰면서세상을증오하다정작친구에게상처를주고,자주‘좆같은’세상에비분강개하지만그보다더많이자기자신을미워한다.이것은결국‘어중이떠중이오합지졸’들이끝내영광을손에쥐지못하고,그어떤꿈도이루지못한채그나마있던조금의우정과연대마저생채기가나서실패하고해체하는이야기이다.
대부분의픽션에서이런실패와해체는여운과여지를남기고희망을예고한다.작가는인물들이언젠가는이실패를발판삼아다시일어나리라는아련함과애정을담아서,그들의실패와절망마저희망과환상의단서로변주해버린다.하지만현실에서우리가맞닥뜨리는실패들이과연그런가?실패는실패일뿐이다.자빠지고한숨쉬고인생이찌그러지고마음이조금씩늙어가고낡아가는실패일뿐이다.작가는실패마저청춘의심볼로,찬란한성공을위한전단계로변질시켜버리는‘어른들’과세상의화려한서사들을향해이렇게말하는듯하다.
우리는지금이순간도이렇게실패중이라고,실패가요즘젊은이들의일상이라고.그리고이또한애써변명할필요도,치장할필요도없는삶그자체라고.

“이제정말로끝나버린것같아.뭔가를할수있었던기회가…
더는내가있을자리가없어.날증언할사람도없어.
내가아직살아있다는걸,알릴방법이없어…”_본문에서

“이만화가웃기지않고걱정스럽기만하다면,
당신은루보다더심각하게고장난사람일지도모른다.”

어느날루는매일그렇듯누군가로부터또다시실패를,쓰라린상처를당하고혼잣말을한다.
“하~새끼유머를모르네~”
많이웃고싶고남을웃기길좋아하는루가‘유머를모르는새끼들’의세계를혼자터벅터벅걸어간다.그러다눈쌓인더러운골목에벌러덩넘어진다.창백한하늘에는별도구름도없다.루의눈앞엔전깃줄만이거미줄처럼드리워져있다.루는죽은듯이누워그하늘을바라본다.그리고휴대폰을꺼내사진을찍는다.‘찰칵’.루는그카메라로자신을찍었을까?칠흑같은하늘을찍었을까?
강산만화『루의실패』는마치이장면처럼대수롭지않은실패들을매일거듭당하며살아가는젊은이들을당사자가휴대폰카메라로툭툭찍어낸듯한순간들이담겨있는만화다.이슬아작가는“이만화가웃기지않고걱정스럽기만하다면,조심스레추측하건대아마당신은루보다더심각하게고장난사람일지도모른다”라고썼다.실패한사람을가만두고바라볼수없는마음,실패한젊은이에게그냥손을내밀어주거나나도사실별다르지않다며웃어주지못하고,자꾸훈계하고고함치는사회는어딘가망가져도크게망가진것이아닐까?
이제당신의눈으로,삶으로『루의실패』를마주할차례다.아직딱딱해지지않은마음의소유자라면,이애석한젊은이들의실패에너그러이미소를띄우거나혹은나랑똑같다며폭소를터뜨리게될것이다.

추천글

루에게세상은마음에안드는것들투성이다.시내한복판을걸으며온갖불평을늘어놓는가하면(“난이동네가싫어!좆같은간판들에양아치에…”)예사롭게지나치면될길목에서도굳이행인과시비가붙는다(“뭐라고이씹쌔끼야?”).그러다곧잘우울로빠져들어자기연민의늪에서허우적거리고(“아무도나를…”)시작도마무리도못할프로젝트를추진하다관둔다(“요즘독립출판구리잖아.우리가하면더잘할걸?”).
루의친구들은어떠한가.천방지축에다몹시무례한슬기.어째서인지말을하는개블래키.왠지모르게말을하지않는유학생솜차이.어이없게도얼굴이사각형인네모.무슨소린지모르겠는시를쓰는최정원.이들이모여있으면뭐랄까……어중이떠중이들처럼보인다.언제흩어져도이상하지않을오합지졸의무리다.
나는오합지졸이모여영광을거머쥐는이야기에익숙하다.누구나익히알법한만화에선언제나그랬으니까.유명한만화속주인공들은시간이갈수록틀림없이성장했다.인물들의치명적인약점또한결정적인순간에는소중한강점으로작용하곤했다.실패는성공의발판이되었다.
하지만『루의실패』에는그럴싸한모험도,고난도,성공도없다.심지어그럴싸한실패조차없다!딱히뭔가를거창하게시도하지않으니실패역시시시하게그칠따름이다.어쩌면진짜실패는이만화가시작되기전에일어났을지모른다.이책이이미실패해본자의후일담처럼읽히기도하니말이다.그실패가무엇이었는지는모른다.잘은몰라도그리대단하지는않은,그러나루가자빠지기엔충분한고난이었을것같다.
하루는네모가말한다.“루,나는기다리고있어.네가다시우리의선장으로돌아오기를……”나역시내심기대했다.루에게서〈원피스〉의루피같은기질이발휘되었으면,지금보다미더운캐릭터로거듭났으면하고.그러나루는그런인물이아니다.그리고이만화는그런장르가아니다.호기로운성장만화나눈부신청춘만화랑은거리가멀다.
나는시간이선형적으로흐른다고믿듯이,문장을왼쪽에서오른쪽으로읽듯이,주인공이어떤식으로든나아질것을굳게믿으며이야기를써왔다.세월의흐름과함께더강해지거나더현명해지거나더행복해지는인물들.그믿음엔자석같은관성이있었다.끝없는성장이라는,자본주의의기반이되는이개념은늘어떤방향으로우리를이끈다.그방향성은너무도강력하여숱한이야기가자기도모르게성장서사에빨려들어가고만다.이런세계에서는실패담또한장사가될수있다.실패담은누구보다도성공을의식하는자의이야기니까.이미성공해버린,혹은언젠가성공할게분명한자가말하는과도기적실패이야기는때때로성공담보다달콤하고도취적이다.
허나이만화는성장이라는거대한스토리를위한도구로실패를이용하지않는다.실패는그저실패일뿐이다.의미화되지않는삶이있고,회복할수없는일이있고,오직후회스럽기만한헤어짐도있다.실패의축제에서조차쫓겨날실패또한있을것이다.강산은말한다.변화는그런삶에도찾아온다고.또한『루의실패』는변화와성장을나란히놓는서사를경계한다고.아마인생이그런식으로흐르지않음을작가가알기때문일것이다.지지부진한,도태된,아무것도돌파하지않는이작품이그저패배감에사로잡혀있느냐고묻는다면,루의대사를그대로돌려주겠다.
“하~새끼유머를모르네.”
『루의실패』가웃기지않고걱정스럽기만하다면,조심스레추측하건대아마당신은루보다더심각하게고장난사람일지도모른다……
나는이책을웃겨하고슬퍼하는사람과마주앉고싶다.그런사람과는딱맞아떨어지지않는삶에대한이야기를몇시간이고나눌수있을것만같다.
_이슬아추천글,「너는왜맨날이지랄이지진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