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외투 - 문학동네 시인선 193

여름 외투 - 문학동네 시인선 193

$12.00
Description
“어떤 문장은
마치 유일한 열쇠처럼
비로소 어떤 상태를 이해한 느낌을 준다”

낯익은 일상 속 숨은 빛을 찾아내는 섬세한 감각,
추운 이들의 어깨를 감싸주는 따뜻한 속삭임
작은 목소리를 지닌 존재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평범한 단어들에서 반짝이는 의미를 포착해내는 김은지 시인의 세번째 시집 『여름 외투』가 문학동네시인선 193번으로 출간되었다. 2016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은지는 첫 시집 『책방에서 빗소리를 들었다』(디자인이음, 2019)와 두번째 시집 『고구마와 고마워는 두 글자나 같네』(걷는사람, 2019)를 통해 “시의 공간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시 속의 공간으로 함께 걸어가기 위한 곁을 생각하고 있”(시인 육호수)는 시인이며, “김은지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시를 좋아”한다. 그게 시를 쓰는 사람에게 얼마나 위안을 주는지 모른다”(시인 서효인)는 동료들의 애정어린 평을 받은 바 있다. 『고구마와 고마워는 두 글자나 같네』 이후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은 자칫 심상하게 넘길 수 있는 일상의 사물과 순간들을 주의깊게 들여다보며 앞으로 어떤 시를 지향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작가론적 대답이 담긴 시집이다.
김은지가 사용하는 시어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익숙한 단어들이다. 하지만 “바람에 꿀이 든 것 같은 날씨”(「여름 외투」)를 만끽하고 “자전거를 타고 싶다면/ 자전거를 타면 되는/ 세계에 대해”(「어제 새를 봤어」)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일상에서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찾아낼 줄 아는 김은지의 문장을 통과하면 그 단어들에서는 은은한 빛이 새어나온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화려하게 꾸며진 일상을 자주 마주하는 우리에게 김은지의 시에서 그려지는 평범한 일상은 오히려 새롭게 느껴진다. 반복되는 일상을 무료하거나 시시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일상을 사랑하는 김은지의 시를 읽고 있으면 우리는 “나에게도/ 똑같은 일이 있었어요”(「밥을 먹는다」)라고 중얼거리는 동시에 “마치 유일한 열쇠처럼/ 비로소 어떤 상태를 이해한 느낌”(「가게 보기」)을 받게 된다.
이렇듯 김은지가 일상의 틈새에서 시를 길어올리고 작은 단어들에서도 시를 발견해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시인이 매순간 시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치볶음밥을 먹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시인은 “밤이 깊어 날짜”가 바뀌면 시인은 “읽고 싶던 시집의 비닐을 뜯어/ 제목에 끌린 시를 몇 편 읽다가/ 아, 맞다 나/ 시 써야 해”(「아, 맞다 나 시 써야 해」)라고 생각한다. 또한 시인은 사람과 친해지는 일에 대해 생각하다가도 “누가 누구와 친해지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시가 달라진다면// 아무래도 조금은/ 달라지겠지 그렇다면/ 누구랑 친해지지”(「슬픔과 기쁨의 개 인사」)같이 시에 대한 고민으로 생각을 이어나간다. 이처럼 김은지에게 시를 쓰거나 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일상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저자

김은지

경상북도문경출생.동덕여대문예창작과와같은과대학원을졸업했다.2016년[실천문학]신인상을받으며등단했다.2016년[실천문학]신인상시부문이당선되었고2017년아르코유망작가지원금을수혜했다.강혜빈,임지은,한연희시인과‘분리수거’낭독회,육호수시인과‘여행에서주운시’낭독회를개최하였다.

시와소설을쓰고,그림을그리고,팟캐스트를만든다.2016년실천문학신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도서팟캐스트‘세상엔좋은책이너무나많다그래서힘들다…’(세너힘)를진행하면서,종종작은책방에서시모임을갖는다.쓴책으로시집『책방에서빗소리를들었다』,『고구마와고마워는두글자나같네』,독립출판소설『영원한스타-괴테72세』,에세이『팟캐스터』(공저),앤솔러지『페이지스3집-이름,시』등이있다.

목차

1부시의제목을오독한후그시가더좋아지고
1월의트리/여권/박쥐와울퉁불퉁함과날씨/어제새를봤어/차가운밤은참/여름외투/만일우리가만나게된다면/등축제/기역이라는의자에앉은바다/털모자의보풀을떼어내는20분/슬픔과기쁨의개인사/소리줌인

2부제가준비한건평범한거예요
정미/개별토끼/한두개/제가준비한건/위생장갑―김을좋아하고몇주째김을생각합니다/굴/앨범/반깁스/작년신상티브이/피나무가열식된산책로/밥을먹는다/간담/두개의달이있고세번째달을보는일은아주드물다/졸다가신기록/포도

3부누가부탁하지않아도열매를줍고자리를맡고
종이열쇠/아,맞다나시써야해/미안한연기/고궁의타임랩스/자기소개/친구의취향/포포/타이레놀에대한어떤연구/증폭/예시와호박/어제보다7도높아요

4부너무쉽게는말고좀어렵게찾아졌으면해
초여름/거대하고같은시계/그영화는좋았다/비타민D/가게보기/매일마침내/과학독서모임/연면/월기/중간고사/서쪽하늘렌더링/새로운그늘막

발문_김은지의시에친구하다―조용하고귀여운웃음폭발시
이소연(시인)

출판사 서평

김은지가사용하는시어들은우리의일상에서쉽게접할수있는익숙한단어들이다.하지만“바람에꿀이든것같은날씨”(「여름외투」)를만끽하고“자전거를타고싶다면/자전거를타면되는/세계에대해”(「어제새를봤어」)감사한마음을가지며일상에서즐거움과아름다움을찾아낼줄아는김은지의문장을통과하면그단어들에서는은은한빛이새어나온다.유튜브나인스타그램등을통해화려하게꾸며진일상을자주마주하는우리에게김은지의시에서그려지는평범한일상은오히려새롭게느껴진다.반복되는일상을무료하거나시시한것으로생각하지않고일상을사랑하는김은지의시를읽고있으면우리는“나에게도/똑같은일이있었어요”(「밥을먹는다」)라고중얼거리는동시에“마치유일한열쇠처럼/비로소어떤상태를이해한느낌”(「가게보기」)을받게된다.
이렇듯김은지가일상의틈새에서시를길어올리고작은단어들에서도시를발견해낼수있는이유는바로시인이매순간시를생각하기때문일것이다.김치볶음밥을먹다가도,일을하다가도,시인은“밤이깊어날짜”가바뀌면시인은“읽고싶던시집의비닐을뜯어/제목에끌린시를몇편읽다가/아,맞다나/시써야해”(「아,맞다나시써야해」)라고생각한다.또한시인은사람과친해지는일에대해생각하다가도“누가누구와친해지느냐에따라서/그사람의시가달라진다면//아무래도조금은/달라지겠지그렇다면/누구랑친해지지”(「슬픔과기쁨의개인사」)같이시에대한고민으로생각을이어나간다.이처럼김은지에게시를쓰거나시에대해생각하는시간은일상그자체인지도모른다.

강아지
주사기로밥을먹이고
손톱을깎는다

콜라캔따는소리
당신은새벽다섯시에깼지

바람이불때마다
현관문에고속인터넷광고용지가

앞머리를자르다가눈을찌를뻔했고
살을집었다

헬스장시간을조정하고
서로의스케줄을자세히주고받자

바람이불때마다
현관에광고용지가흔들거린다
_「연면」부분

이번시집의빛나는점중하나는김은지가한개인의일상을바라보는것에그치지않고모두의삶으로생각의폭을넓힌다는점이다.김은지는“문화양식”으로자리잡은“위생장갑을끼는”일,“물질을쓰지않는방식으로홍보”(「위생장갑―김을좋아하고몇주째김을생각합니다」)하는방법에대해고민하며환경에대한관심을드러낸다.그는자신을소개하는방식으로“따릉이내정보”속“탄소절감”양을인용하기도하고(「자기소개」),소비를과시하는문화가만연한세상에서“허름한옷을영원히입는사람이되고싶”(「털모자의보풀을떼어내는20분」)다고이야기하기도한다.또한시인은보다많은사람이환경보호를위한작은행위들을실천해나가길바라는마음을은근하게드러낸다.시인은“인스타그램적인환경캠페인”(「위생장갑―김을좋아하고몇주째김을생각합니다」)이라는말에담긴‘과시’와‘허세’를감지하면서도그과시성을무조건비판하는것이아니라그렇게라도많은사람이환경보호에동참할수있길바란다.

일년더쓰고다닐까
어울리는모자니까말이야
울이나그런건아니지만
따뜻하고훌륭한모자니까말이야

다읽지못한책을꽂아둔칸에는
낡은것들의힘이있고
그책을사서조금읽었을때나는
허름한옷을영원히입는사람이되고싶었다
_「털모자의보풀을떼어내는20분」부분


시집의표제작이기도한시「여름외투」에는이런구절이등장한다.“내가쓰고싶은건/여름외투/겨울보다추운실내에서/어깨를감싸주는/그런/시”(「여름외투」).겨울에우리는따뜻한옷을챙겨입는다.하지만무더운여름,추울정도로에어컨을트는실내에서우리는때때로속수무책이된다.한여름에겉옷을챙기는사람은별로없기때문이다.그런상황에서바람을막아주는얇은외투는무엇보다반가운존재이다.김은지는아마그런시인이되고자하는게아닐까.예상하지못한상황에서당황하지않도록,갑자기닥쳐온추위에떨지않도록다정하게어깨를감싸주는시.두꺼운겨울외투와는달리김은지가우리의어깨에덮어주는여름외투는얇고가볍다.그리고산뜻하다.김은지의시역시그렇다.우리의평범한일상이권태롭게느껴지기시작할때,김은지의시는예상치못한반갑고따스한선물이될것이다.

관객석으로만들어진데크에앉아운동화를벗었을때
바람에꿀이든것처럼쾌적한날씨라는것을깨닫고
당황해서계단에등을기댔다

‘실외기’의이름을풀어본다
바깥기계
대체어떻게이렇게섭섭하게이름을지을수있는지,
이처럼특별하고단정한이름이또있을까,싶기도하고

갑자기퇴직하고
갑자기휴일을보내면서
내가쓰고싶은건

여름외투
겨울보다추운실내에서
어깨를감싸주는
그런

_「여름외투」부분

김은지는가만히,충분히들어준다음말한다.상대의기분을맞춰주려는말말고,기분을상하게하지않으면서도자기생각이담긴단단한말을한다.그리고그런시를쓴다.바깥보다추운실내에서어깨를감싸주는여름외투같은시.어떻게그런시를오십편이나쓸수있는걸까?아무리지켜봐도그건모르겠다.나는그모르는힘으로은지의시에친구한다.
_이소연,발문에서

■김은지시인과의미니인터뷰

Q.두번째시집『고마워와고구마는두글자나같네』이후4년만의신작시집입니다.그동안어떻게지내셨는지,이번시집을출간하는마음은어떠신지궁금해요.

책방에서꾸준히시를썼어요.보름에한편씩쓴것같아요.시를쓴주에는너그러운사람이되고,시를쓰지못했을땐조금예민한사람으로지냈습니다.시쓰는것외에도책방에서다양한활동을했습니다.좋은동료시인들을많이만났어요.2년동안‘예술로’사업에참여했는데요,안무가,제작자,배우,작곡가이렇게다른장르의아티스트들과협업하면서시쓰는게더재미있어졌어요.책방에서쓴시들이이번시집에담겨있답니다.
시집을출간하는마음은……여러가지마음이드는데요,꼭말하고싶은것은시쓰는데도움주신분들께너무너무감사하다는거예요.이번원고로대산창작기금을받기도했고,시집을준비하며격려와응원도많이받았어요.이소연시인이피와땀으로발문을써주어서말할수없이감동했고요,표지도진짜마음에들어요.꼼꼼하게챙겨주신서유선편집자님께도꼭감사의말씀을전하고싶어요!

Q.‘여름외투’라는제목은어떻게결정하게되셨나요?여름에는보통외투를입지않기때문인지한번더돌아보게되는제목인것같아요.

얇은외투를선물받았어요.처음엔여름외투인지몰랐어요.부들부들한천으로만든옷은추운날엔따뜻했고더운날엔시원했어요.가벼워서들고다니기에편했고,가방에서꺼내도구김이생기지않았습니다.비를맞으면다른옷보다잘마르기도했고요.그제야아,이건‘여름외투였구나,사람들이여름을잘나길바라는마음과기술이축적된옷이었구나’,깨달았죠.이외투같은시를쓸수있다면좋겠다,생각했습니다.겨울보다더차갑고난해한여름의추위로부터체온을지켜주는옷.점점복잡해지고파편화되어가는현대의삶에서자신을돌보는마음을‘여름외투’를통해표현하고싶었습니다.

Q.자전거,산책,환경보호,친구같은일상적인소재들이등장하는시가많이눈에띄어요.“나는자전거를탄다/수면위로빛나는물결과/커다란나무에내려앉는키큰새들과/굽은도로를따라멀어지는자동차”(「어제새를봤어」)“나는김을먹고싶고/김이나는바다가깨끗해야한다고믿고/시간을들여하는노력이/자연을파괴하지않는일에소용이있기를원하지만”(「위생장갑―김을좋아하고몇주째김을생각합니다」)“홍차를주는친구는/항상내가먼저연락하는친구다”(「친구의취향」)처럼요.일상의어떤순간들에‘이것을시로써야겠다!’고생각하시는지궁금해요.

일상을문장으로옮기는것을좋아해요.일상이소중하기때문이기도하지만,메타버스에서현실세계의한강공원을체험할때흥미로운것처럼,만화에서실재하는육교가나올때잠시그페이지에머물게되는것처럼,글자로구성된시의세계에서일상을만나는것은신기한체험이라고생각합니다.독자를시의세계에안착시켜주는장치로서일상을다루는것이재미있어요.

Q.읽을수록단어에대한고찰이눈에띄는시집인것같아요.단어를여러번곱씹고,익숙한단어의의미도한번더생각하는시들이많은데요,단어를대하는작가님의태도가시인의말에서도드러나는것같아요.“단어가나타날때순간/궁금해/너는무슨생각을할까”(「시인의말」)작가님께서요즘특별히주목하고있는단어가있다면어떤것인지궁금합니다.

주문,그늘막,여지정도가떠오르는데요,앞의두단어는최근에시로썼습니다.상품을부탁하는행동‘주문(注文)’,무언가를간절히바랄때처럼거는‘주문(呪文)’,두가지의미가모두성립하는시를써서재미있었어요.그늘막은근래거리에생긴작은변화이면서,세글자로된단어가마음에들어서시로쓰게되었습니다.여지는지난겨울부터자주중얼거리는말‘조금나아질여지가있다’때문에가지고있는단어인데요,‘남은땅’이라는뜻도좋고주로가능성과희망을이야기할때쓰는단어라는것도마음에들어요.

Q.마지막으로『여름외투』와함께여름을보낼독자들에게인사를건네주세요.

이렇게뵙게되어반갑습니다.모쪼록재미있게읽어주시면감사하겠습니다.독자님을생각하니까지난겨울,시모임에참가하신한분이떠오르는데요.제가쓴시가맘에든다고,시를읽다가마치노래를들을때처럼시를더청해서읽고싶은기분이들었다고말씀해주셨어요.다정한격려덕분에다음시도힘내서쓸수있었습니다.이시집을읽고그렇게느끼는독자분이또생긴다면너무좋을것같아요!

■시인의말

홀을걸어오는너의신발소리
글자를쓸때새끼손가락의각도
무지개횡단보도는물론이고

뜻을모르는외국어를볼때마다
궁금해
너는무슨생각을할까
너는이계절을어떻게보낼까
너는항상
무슨생각을하고있다고
이계절엔이직을할거라고얘기해주지만

캠핑의마지막밤처럼
만화책의21권처럼
보풀이생겨버린아끼는니트티셔츠처럼

꼭한가지질문이더생겨나고
모닥불은가끔타닥소리를내고

시카고매뉴얼
물붓
나타냄말
네개묶음
단어가나타날때순간
궁금해
너는무슨생각을할까

2023년6월
김은지